[길 위의 인문학] LA 선한 사마리아인의 140년 역사
LA 한인타운에서 윌셔 길을 따라 다운타운 쪽으로 가다 보면 위트머(Witmer)와 만나는 언덕에 자리한 붉은 벽돌 건물이 시선을 끈다. 한국어로 통역과 안내 서비스를 제공해 한인들에게도 친숙한 종합병원인 ‘선한 사마리아인 병원(PIH Health Good Samaritan Hospital)’이다. LA에서 가장 오래된 이 병원의 뿌리는 1885년 성공회 신앙인들이 세운 기독교 병원이었다. 당시 LA는 도시가 활발히 개발되던 시기였다. 성공회 수녀 메리 우드(Mary Wood) 여사는 올리브가(Olive Street)의 작은 통나무집에서 진료소를 열었다. 침상은 단 아홉 개. 그러나 병든 사람을 돌보려는 마음 하나만은 크고 단단했다. 그것이 오늘날 선한 사마리아인 병원의 시작이었다. 초창기 진료소 사정은 열악했다. 메리 우드 수녀가 홀로 운영하며 어려움에 직면하자, 10년 뒤인 1895년 성 바울 성공회 교회(St. Paul’s Episcopal church)의 여성도들이 이 진료소를 인수했다. 이들은 병원을 단순한 치료 공간이 아닌, 도시의 병든 영혼을 돌보는 신앙의 공동체로 키워갔다. 병원 이름도 ‘성 바울 병원(St. Paul’s Hospital)’으로 바꾸면서 발전시켰다. 이후 병원은 더 넓은 사랑을 실천하고자 병원 이름을 선한 사마리아인 병원으로 다시 변경했다. 성경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강도 만난 나그네를 외면하지 않았던 사마리아인의 선행처럼, 도시의 약자와 이방인을 품는 의료기관이 되겠다는 다짐이었다. 흥미롭게도 ‘선한 사마리아인 병원’이라는 이름은 전국에 14개나 있다. 캘리포니아주에만 LA, 샌호세, 베이커스필드 등 세 곳에 있으며, 오리건, 워싱턴, 뉴욕 등에도 같은 이름의 병원이 있다. 모두 성경 속 선행과 사랑을 본받자는 취지로 명명된 병원들이다. 병원 설립 26년 후인 1911년, 선한 사마리아인 병원은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 114년간 같은 자리에서 LA 시민들을 치료해온 셈이다. 병원은 1976년 408개 병상의 종합병원으로 확장 건축될 때까지, 시대의 요구에 맞추어 끊임없이 증축과 발전을 거듭했다. 특히 1896년에 부설 간호대학을 세워 100년 넘게 사명감 있는 간호사를 배출해온 역사는, 병원이 단순 치료를 넘어 인재 양성을 통한 사회적 책임을 다했음을 보여준다. 지역 의료를 담당하던 선한 사마리아인 병원은 2019년 PIH Health 그룹에 합류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비영리 의료 법인 연합의 일원이 된 것이다. 현재 다우니 PIH 병원 등과 함께 370만 주민의 건강을 돌보는 시스템의 중심축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Good Samaritan’, 그것은 병원의 브랜드를 넘어 도시가 간직한 하나의 이야기이자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LA의 하늘 아래 수많은 병원이 생겨나고 사라졌지만, 선한 사마리아인 병원은 여전히 그 언덕 위에 있다. 도시의 역사를 품은 건물로, 이민자들의 불안을 달래는 공간으로, 그리고 ‘선함’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마음 한가운데 자리한 상징으로. 한인타운을 관통하는 LA의 중심가인 윌셔길을 걸으며 이 병원을 마주칠 때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한 문장이 떠오른다. “길가에 쓰러진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연민.” 그 마음이 바로, 이 도시가 여전히 따뜻한 이유일지 모른다. 강태광 / 월드쉐어USA 대표·목사길 위의 인문학 사마리아인 역사 병원 이름 바울 병원 병원 설립
2025.11.05. 1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