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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내 안의 보라색 나무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는 숙제가 있었다. 빨간 꽃, 노란 꽃, 파란 꽃, 분홍 꽃을 그렸다. 마지막에 칠한 보라색 꽃이 마음에 들어서, 내친김에 나무도 칠했다. 짝꿍이 그걸 보고 세상에 보라색 나무는 없다고 했다. 하긴 나도 본 기억이 없었다.   곧 줄반장이 숙제를 걷기 시작했고, 다른 색으로 덧칠할 시간도 없고 해서 그냥 제출했다. 나중에 선생님이 나의 보라색 나무를 가리키며 상상력이 뛰어나다고 말씀하셨다. 많은 반 아이에게 그 말은 비꼬는 말로 들렸다.   방과 후, 그림을 아빠에게 보여주며 시무룩하게 친구들의 반응을 얘기했더니, “이 넓은 세상천지에 왜 보라색 나무가 없겠니. 가을이면 단풍이 드는 빨간 나무도 있고 은행나무는 노랗기만 하다. 속상해 하지 마라. 조물주가 어딘가에 만들어 놨을 거다.”라고 하셨다.   그 보라색 나무를 LA에 와서 처음 봤다. 자카란다는 황홀한 보랏빛 꽃을 피운다. 많은 꽃이 핀 자카란다는 나무 한 그루가 다 보라색으로 보인다. 바로 내가 그렸던 그 보라색 나무다. 아빠가 맞았다. 조물주의 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내 말을 들어주고 가능성을 믿어주던 아빠는 이 세상에 안 계시다. 그는 처음 두발자전거를 탈 때 뒤에서 밀어줬고, 팽이 치는 법과 다루는 법을 가르쳐줬고, 다 낡은 모기장으로 잠자리채를 만들어줬다. 우리는 겨울이면 꽁꽁 언 논바닥 위에서 함께 만든 연을 날렸다. 한여름에는 동생과 나를 냇가로 데려가 돌 틈과 수풀을 뒤져 작은 물고기도 잡았다. 미꾸라지를 놓쳐도 신바람이 났다.     아버지. 그는 나의 커다란 우산이었다, 그가 있었기에 나는 마음 놓고 들녘에서 팔랑거리는 나비를 잡으러 다녔고, 털이 수북해서 만지기조차도 무서웠던 할미꽃도 단숨에 꺾었다. 따로 과외 공부를 시키거나 피아노 학원을 보낼 만큼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은 행복했다. 내 행복의 척도는 아마 아버지와 함께했던 감정에서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살면서, 기가 막힐 웅덩이에 빠졌던 때와 형통하지 않은 때도 있었다. 나에게 힘이 되어주던 아빠가 있었기에, 그를 기억하기에, 힘들고 어려웠던 날을 버티며 지냈다. 그리고 그날들도 어김없이 냇물이 흐르듯이 떠내려갔다.   만약에 딸이 보라색 크레용으로 하늘을 칠한다면, 난 자신 있게,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말하련다. “이 넓은 세상천지에 왜 보라색 하늘이 없겠니. 노을이 질 때 하늘은 오렌지색으로 변하고, 눈 오기 전의 하늘은 어린 비둘기 털 같은 엷은 회색을 띠기도 하는데”라고. 이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는 보랏빛 하늘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리나 / 수필가이아침에 보라색 나무 보라색 나무 보라색 하늘 보라색 크레용

2025.06.12.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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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보라색 동그라미 태극기

집안 환경 탓으로 우리 아이들은 어린 시절 그림을 많이 그렸다. 그림 그리는 엄마 옆에서 놀면서 자연스럽게 붓을 잡아 휘두른 것이다.   두 살 남짓 무렵 아이들의 그림은 감탄스러울 정도로 좋았다. 아무런 꾸밈도 거침도 생각도 없는 그림…. 첫 아이의 그림은 엄마 개인전 때, 한구석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 전시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다. 문제는 그들이 성장한 후에도 예술가로 남을 수 있는가이다”라는 피카소의 말이 떠오르곤 했다.   그 무렵, 어느 날 문득 태극기가 눈에 띄기에 아이에게 주며 이걸 그려보라고 한 적이 있다. 아이가 태극기가 무엇인지, 거기에 어떤 심오한 뜻이 담겨있는지 알 리 없고, 나도 그냥 호기심에 그려보라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그린 태극기는 참으로 엄청난 것이었다. 한가운데 보라색 동그라미가 크고 당차게 자리 잡고 있고, 그 네 주위를 시커먼 작대기가 감싸고 있는 작품(?)이었다. 보라색은 붉은색과 푸른색이 자유분방하게 뒤섞이며 만들어낸 색깔이었다. 깜짝 놀랐다.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아, 이것은 통일의 모습 아닌가! 붉은색과 푸른색이 온전히 하나가 된!”   오랜 옛날의 그 장면이 불쑥 떠오른 것은 아마도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현실 때문일 것이다. 오른쪽 왼쪽으로 갈라지고 쪼개지고 부서져, 사분오열 서로 원수가 되어 핏발 선 싸움박질에 여념 없는 위험한 현실….   사람마다 자기만의 생각을 가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다양한 생각과 이념이 자연스럽게 부딪치고 어울리며 대화를 나누고 토론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것이 건강한 민주사회다. 내 생각만 옳고 나와 다른 생각을 한 자는 적이요 원수라는 식의 아집은 독이다.   혹시라도 말이 잘 안 통해서 싸움이 일어나고 대립이 심각해질 때, 중재에 나서라고 존재하는 것이 정치다. 정치는 타협과 조정, 화합의 예술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정치가들이 앞장서서 국민 갈라치기를 선동하는 망국적 판국이 되풀이되고 있다. 우리 편 아니면 모두 적이니 죽여없애야 한다. 이건 도무지 사람의 논리가 아니다. 정치는 격투기가 아니다.   오죽하면, 대중가수의 한마디 발언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 지경이다. 자초지종을 간추리면 이렇다. 물론,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가수 나훈아가 자신의 은퇴공연에서 말했다. “그만두는 마당에 아무 소리 안 하려고 했는데… 왼쪽이 오른쪽을 보고 잘못했다고 생난리다. (왼쪽 팔을 가리키며) 니는 잘했나?”   더불어민주당은 당연히 발끈했고, 나훈아도 물러서지 않고 거친 말로 맞받아쳤다.     “나보고 뭐라고 하는 저것들, 자기 일이나 똑바로 하라. 어디 어른이 이야기하는데 XX들을 하고 있느냐. 안 그래도 작은 땅에 선거할 때 보면 한쪽은 벌겋고, 한쪽은 퍼렇고 미친 짓을 하고 있다.”   그러자 이번에는 진보 경향의 가수, 배우 등 연예인들이 ‘어른과 노인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말로 비난하고 나섰다고 한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시시비비를 따지고 싶지 않다. 세상일을 단순한 이분법으로 갈라칠 수 있는가? 부질없다. 그저 한 가지만 묻고 싶다. 보수와 진보는 원수지간이고, 좌와 우는 정말 그렇게 다른 적인가? 간절한 마음으로 옛 어른들의 가르침을 되새긴다. ‘대동소이(大同小異), 화이부동(和而不同)’   멀리 바다 건너에서 그런 참담한 장면을 바라보면서, 아이가 그린 태극기의 보라색 동그라미를 떠올리니 처량하고 서글프기 한이 없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동그라미 보라색 보라색 동그라미 한가운데 보라색 거침도 생각

2025.01.23.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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