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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아주 보통의 하루

새마음으로 맞이하는 또 한 번의 새해 을사년! 새해를 수십 번 맞으면서도 새해 결심은 한 번도 이루지 못한 채 늘 작심삼일로 끝나곤 했다.     연령에 따른 세월의 속도를 자동차주행 속도에 비교하기도 한다. 90대는 90마일로 달린다고 하니, 종착지가 다가옴을 아쉬워할 수밖에 없다. 2025년은 푸른 뱀의 해다. 푸른 뱀은 지혜 풍요 치유와 재탄생을 상징하는 동물이라고 하니 지혜와 성장의 기운이 많이 깃들기를 바라면서 모든 가정에 복이 가득하길 바라본다.   새해를 맞아 결심을 적기 위해 새 종이를 펼쳐놓는다. 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거창한 결심은 접어두고 남들 눈에는 대수롭지 않을지 모르나 내 나름대로 또 한번 적어 본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인생도 출생과 함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오래 살다 보니 사랑하는 남편과 친구들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봤다. 삶과 죽음은 무관하지 않다. 죽음을 겪으며 매순간 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죽음의 확실성도 알았다.     인생의 종착지에 다가가는 시점에 웰다잉(Well-Dying) 연습을 빼놓을 순 없다. 인생 즐거움을 아는 순간부터 더욱 절실해 지며 삶을 사랑한다면 그만큼 죽음에 대해서도 잘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결코 삶은 무한하지 않으니 말이다.   미래 소비 트렌드 예측서인 ‘트랜드 코리아 2025’는 올해 주요 트렌드 키워드로 ‘아보하’를 선정했다고 한다. ‘아주 보통의 하루’의 줄임말이다. 너무 행복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불행하지도 않은 보통의 무난한 일상을 말한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평온함을 찾으려는 삶의 태도다. 예측 불가능하고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사회의 다양한 갈등 속에 우리들의 바람인 것 같아 나도 함께하려한다.   무지와 교만, 허영과 오판으로 타인을 원망하지 말고 다가오는 순간 순간 감사하며 용서하면서 사랑하고 모든 것을 비우고 내려놓고 떠나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하지만 열정과 의욕까지 잊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도 같이 해본다. “인생에서 늦을 때란 없다”고 하니 말이다.   임순·LA독자 마당 보통 새해 결심 새해 을사년 자동차주행 속도

2025.01.23. 18:24

[기고] 분단 속 보통 사람들의 삶

아르노 피셔(1927~2011)는 2차대전과 분단·통일로 이어지는 20세기 독일 역사를 몸소 겪고 이를 카메라에 담아낸 대표적 사진가다. 작가가 직접 인화한, 빈티지 프린트 흑백사진에 담긴 냉전기 인물 군상의 일상 풍경은 프로파간다와 사실주의라는 획일화된 미학으로만 치부됐던 사회주의권 사진의 다양성과 깊이를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의 이름이 우리에게 낯선 이유는 그가 동독 출신 작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성곡미술관의 ‘아르노 피셔-동베를린의 사진가’전에서는 작가의 대표작 180여 점을 골라 이를 ‘베를린 상황’, ‘패션’, ‘뉴욕’, ‘여행’, ‘정원’ 등 5개의 주제로 나누어 전시 중이다(8월 21일까지).   베를린에서 출생한 피셔는 식자공이었던 부친을 일찍 잃고, 공산주의자로서 나치에 저항했던 삼촌 밑에서 소년기를 보낸다. 17살에 2차 대전에 참전해 영국군에 포로로 잡혔다 풀려난 그는 동베를린의 바이센제 예술대학에서 조각을 시작한다. 동·서 베를린 간 주민 왕래가 가능했던 1950년대 피셔는 당시 서독에 확산되던 ‘추상미술’에 이끌려 1953년부터 서베를린 조형미술대학으로 옮겨 조각 공부를 이어가지만, 곧 1920년대 아방가르드 사진과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 영화에 심취하며 독학으로 사진에 입문한다.     1956년 동베를린으로 돌아온 피셔는 바이센제 예술대학에서 수석 조교로 동독 최초의 사진학 강의를 개설하는 한편 동·서 베를린 곳곳을 다니며 체제의 경계를 뛰어넘어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삶과 그 속에 내재한 불안, 여전히 남아있는 전쟁의 트라우마를 렌즈에 담았다. ‘동베를린, 플렌츠라우어 베르크(1956)’에서는 아이들의 천진한 움직임과 대조를 이루는 남성의 고정된 시선이 영화의 스틸컷처럼 속도감 있게 포착되었다. 남성을 태운 검은 차량은 시신을 운구 중인 장례 차량으로, 불안정하게 기울어진 지면, 포화로 갈라진 건물 외벽과 함께 도시에 드리운 전쟁의 상흔과 죽음의 그림자를 여실히 드러낸다.   냉전 속 치열한 이데올로기 각축장이던 베를린에 1961년 장벽이 세워지기 전, 수백만의 동독인이 서독으로 탈출하지만 피셔는 동베를린에 머물렀다. 1960년대 집권한 울브리히트 정부의 강화된 검열과 통제로 인해 8년간 준비했던 사진집 ‘베를린 상황’의 출판이 무산되지만, 그는 곧 여행잡지 ‘자유세계’와의 작업을 통해 소련과 동구권으로의 외유 기회를 얻었고, 패션잡지 ‘지빌레’와의 작업을 통해 새로운 미학적 돌파구를 찾았다. 피셔는 베를린의 공장지대, 비터펠트 화학단지 등을 자주 배경으로 삼았으며 모델이 아닌 일반 여성들을 거리에서 캐스팅함으로써 동베를린의 현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1971년 집권한 호네커는 일시적으로 예술영역에서의 개방과 자유를 내세우며, 형식의 다양성을 강조했다. 작가들은 비로소 실존적 갈등과 혼란을 진솔하게 표현할 수 있었으며, 사진 역시 회화나 조각과 같은 조형예술로 격상되었다. 동독정부는 막스-엥겔스 기념관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비석에 세계 노동운동의 역사를 담은 사진을 새기기로 하고, 이를 피셔에게 의뢰함으로써 그는 세계 사진 아카이브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자유로운 해외여행의 기회를 얻게 된다. 1975년부터 약 10년간 뉴욕을 비롯해 적도기니, 인도, 포르투갈, 소련 등을 여행하며 피셔는 노동하는 다양한 인간들과 예술가들을 촬영했다. 그의 흑백사진에는 한 인간이 모든 사회적 역할을 내려놓고, 그 자신으로 돌아간 순간의 내면이 담겨 있다. 발레 공연이 끝난 후 탈의실에서 가운을 걸친 채 피곤한 모습으로 포착된 세계적 볼쇼이 무용수 마야 프리체스카야의 모습은 체제와 이념으로 가늠될 수 없는 한 인간의 실존적 깊이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1989년 통독 후 피셔는 사진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쫓겨나지만 서독의 도르트문트 대학에서 강의를 이어가게 되며, 그의 동독 시기의 작품들 역시 수십 차례의 전시를 통해 국제적 명성을 얻어 나간다. 피셔는 자신의 의지로 사회주의 동독을 선택했고, 교조주의적 동독 정부와 때론 협력하고 때론 부딪히며 분단체제 속 보통사람들의 일상을 기록하고자 했다.     2000년에는 보도사진 분야의 영예로운 상인 에리히 잘로몬상을 수상하며 통독 후 뒤늦게 인정받은 몇 안되는 동독의 예술가다. 이런 그의 개인사적 이력이 독일 국제교류처가 동독 예술인의 작품을 2012년부터 세계 순회전으로 개최하기에 적절한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이주현 / 미술사학자·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기고 분단 보통 서베를린 조형미술대학 베를린 상황 아르노 피셔

2022.07.29.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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