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계절은 만나봐야 좀 안다.’고 한다. 사계절 이상을 알고 지낸 사람도 만나지 않으면 멀어지다가 타인이 된다. 줌으로 진행하는 북클럽을 한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새 회원은 잘 모른다. 구 회원들도 가물가물하다. 우리는 의기투합하기 위해 사계절마다 소풍 간다. 맨해튼에 사는 회원들은 조지 워싱턴 다리만 건너가면 뉴저지에 사는 회원의 차로 이동한다. 나는 소풍만은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차 창밖을 내다봤다. ‘겨울이 정말 간 것일까?’ 겁먹은 듯 의심하는 몸짓으로 살짝 삐져나온 새순을 뒤집어쓴 나무들이 무성한 시골길을 죽 올라갔다가 한참을 내려갔다. 멀리 좁아져 사라지는 길을 보며 아득한 애잔함에 빠졌다. 아카시아 냄새 맡으며 시골길을 걷던 어린 시절, 시골집 개울가에서 놀다가 젖은 옷을 말리던 커다란 바위의 따사로움이 떠올랐다. 차가 멈추자 다시 뉴욕의 건물 안에 갇힌 잔인한 암울함 속으로 떠밀려 들어가듯 기억의 필름이 끊겼다. 허드슨강이 내려다보이는 톨맨 마운틴 주립공원(Tallman Mountain State Park)에 차를 주차했다. 한국 사람 이름이 새겨진 벤치가 서너 개 있었다. 고인이 평소에 즐겨 찾던 곳에 기부한 것이다. 구글링했다. 센트럴 파크 벤치는 1만 달러 기부로 채택될 수 있다. 리버사이드 공원은 7천500달러다. 기부한 의자에 앉아 절벽 아래 강을 내려다보다가 “우리 햇볕 받아 따뜻해진 의자에 등을 기댈 수 있는 봄이 오면 만나자.”라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못된 버릇이 있다. 고치려고도 하지 않고 평생 함께한 버릇이다. 친구, 자매, 아이들 남편에게까지 아주 급하지 않으면 전화하지 않는 버릇이다. 전화가 걸려 오면 상냥하게는 받는다. ‘왜 내가 이렇게 반가운 사람을 잊고 살았지?’ 깨닫고 만나고 싶어질 정도다. 그런 내 불통화 버릇 때문에 사람들에게 핀잔받는다. ‘연락하지 않는 게 자랑이냐? 잘 놀다가도 헤어지면 감감무소식이냐?’ 자주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의 부정적 특징의 유튜브 동영상을 보내며 섭섭하다고들 한다. 칼바람을 휘두르며 협박하듯 뺨을 치던 겨울이 힘에 겨웠는지 따사로움에 외투를 벗어 던지고 가버렸다. 봄이 약속처럼 찾아왔다. 큰맘 먹고 그녀에게 전화했다. 그녀가 감질나는 말, ‘따뜻해진 벤치에 등을 기대고’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만나자고 전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리버사이드 공원, ‘매기 스미스’(Maggie Smith)라고, 쓰인 벤치에 앉아 의자에 등을 기대고 그녀를 기다렸다. 따스하다. 어릴 적 엄마 침대에 들어가 엄마 냄새를 맡으며 느꼈던 그 따뜻함이다. “잘 지냈어? 네 얼굴 한번 보기가 왜 이렇게 힘드냐? 어쩐 일로 전화를 다 했어? 집안에 뭔 일 있는 건 아니지? 생전 전화 한번 하지 않는 네 전화 받고 놀랐잖아.” “햇빛 받아 따뜻해진 벤치에 등을 기댈 수는 봄날에는 만나자. 고 네가 한 말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어.” 이수임 화가·맨해튼글마당 봄날 생전 전화 리버사이드 공원 불통화 버릇
2024.04.19. 21:59
봄날은 천천히 불어오는 바람이어요 나무가지 설레임으로 푸릇 물오른 바쁠 곳도 없이 너를 만나려 나서는 지극한 일상의 하루 두 팔로 안아보는 봄날 아침이어요 봄날은 너의 하루가 시작되는 하늘이어요 나의 하루도 그 길따라 펼쳐져 눈가에 흐려오는 눈물이어요 서로를 향해 걸어오는 반가운 봄날 아침이어요 봄날은 하얀 꽃 망울 품고 있는 언덕이어요 저미도록 꽃잎을 접고, 펼치며 제 손으로 뿌려 놓은 향기 이어요 깊이 들이마시면 막혔던 숨 터지는 봄날 아침이어요 새소리가 들리는 곳, 뒤란이 바라다보이는 데크에 앉아 있다. 따스한 봄 햇살이 온몸을 나른하게 녹이고 있다. 둥근 유리 테이블에 올려놓은 Note book에서는 J. Offenbach의 Belle nuit의 달콤한 첼로 음악이 내 마음의 맨바닥을 쓸어주는 듯 봄날 아침의 여유를 수놓고 있다. 새 한 마리 날아와 데크 펜스에 앉았다. 가벼운 몸짓으로 움직이다 물끄러미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다. 무엇을 한참이나 바라보는 듯,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이나 하는 듯 머리를 떨구기도 하다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움직이기도 한다. 내가 즐기고 있는 이 빛나는 봄날 아침을 함께 즐기기라도 하는 듯 한동안 곁을 떠나지 않았다. 꼭 정지된 시간에 그려놓은 풍경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움직이지만 정지돼 있는, 흐르지만 움직이지 않는 봄날 아침을 보내고 있다. 멀리서 바라볼 때 눈에 띄는 풍경이 있었다. 가까이 가 보았더니 가시가 엉켜있는 덤불이었다. 실망하여 발걸음을 돌려 돌아오는 길에 발 밑에 이름도 모르는 들꽃이 피어있었다. 가까이 보아서 이쁜 꽃이 멀리 떨어져서 보니 민민한 들판이 되기도 하였다. 자유가 멋져 보여 다가갔더니 오히려 단단한 속박이 되기도 하였다. 사람도 별반 틀리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속 같아서 성급히 생각하고 발을 담갔다가는 물속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 때도 종종 만난다. 오래 지내봐야 한다. 속을 다 내어줄 것 같다가도 이해 못할 차가운 태도로 변해버리기도 한다. 그 말은 나에게도 예외일 수 없다. 누구나 자신조차 알 수 없는 일들에 접할 때마다 나의 잣대가 아닌 너의 바로미터로 나를 돌아보아야 한다. 시간이 멈추도록 입맞추고 싶을 때가 있다. 목적지를 정해 놓지 않은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날이 져 어두워지면 책 한권을 들고 나와 한 소절씩 되뇌이며 갔던 길을 되돌아 오고 싶을 때가 있다. 읽고 또 읽어 어두운 밤 책을 보지 않아도 낭송이 절로 되는 신기함을 느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시간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을 때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고 느낌으로 받아 안고 싶을 때가 있다. 시간을 길게 늘이고 싶을 때는 깊은 호흡으로 하루를 마감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시간이 내 머리를 차오를 때는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가 있다. 물감이 번지는 노을 아래 스포트라이트를 켜고 여여한, 끝이 없는 길을 걷고 싶을 때가 있다. 하루라는 캔버스에 단순히 물감을 덧칠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관찰을 쏟아 놓는 것이다. 풍경이나 사물이 우리와의 사이에 가려져 있는 것은 우리의 손길이나, 발길이나, 우리의 시선에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는 것을 기억하는 것으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함께 보는 나만의 마음의 눈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지구가 다른 지층을 쌓아가듯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많은 지구의 현상을 평생 만지거나 느껴보거나 경험하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나에게서 가려져 있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사물을 넓게, 깊게, 때로는 아주 가깝게, 오랫동안 자세히 경험하려 하는 노력을 게을리한 탓이 아닐는지. 나에게 있어 ‘다시 그림이다.’라는 명제 앞에 떨리는 나의 고백이기도 하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봄날 봄날 아침 나무가지 설레임 첼로 음악
2024.04.08. 12:51
봄날엔 빗장을 풀고 / 깜깜한 고요 속에 / 세상 작은 기척처럼 살아가는 것이지요 // 파아란 하늘 닮은 푸른 계절 / 나무마다 수 천의 싹을 품고 가는 것이지요 // 봄날을 사랑해 / 소리쳐도 들리지 않으니 / 온 몸으로 앓고 있는 너를 안고 잠드는 것이지요 //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요 / 봄날은 이렇게 지나가는데 // 꽃 피운 대견에 맺히는 눈물이야 어쩌리요 / 외롭게 만나는 아픔이야 어쩌리요 / 한 밤을 지내 두 밤을 깨어도 소식 없는 봄날 / 흥얼거리는 슬픈 노래는 낸들 어쩌리요 // 봄날은 향기로워, 저 별처럼 / 수 백 광년 손짓하여 피어나는데 / 저 너머 연두로 풀어져 세상 어느 구석까지 / 봄날은 그렇게 부딪치며 살아나는 아픔이려니 / 애간장 타들어가는 몸짓이려니 / 미련 없이 아련한 봄날이려니 에곤 쉘리의 ‘오렌지색 옷을 입은 여인‘은 얼굴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던지는 날카롭지만 몽환적 눈길이 매혹적이다. 30살을 채 넘기지 못하고 요절한 천재화가. 그의 대부분의 그림의 대상은 여자이다. 그는 다른 화가들의 관념을 뛰어넘어 전혀 예기치 못한 적나라한 포즈와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치부를 드러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그의 그림을 접할 때마다 그의 그림 속에 꿈틀거리는 익숙하지 않은 본능적 태도와 거침없이 표현되는 언어들을 발견하곤 한다. 일상을 그저 지나치는 풍경 정도로 여기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 나의 내면은 말라가고 나의 걸음은 시간을 쫓아 허둥되어질 것이다. 에곤 쉘리의 그림 속에서 본능적 태도와 원초적 언어들을 배우고 싶다. 익숙하지 않아 주저된다면 한 발 내 디딤으로 시작하면 된다. 모든 것들의 시작은 생소하기 때문에 거침없어지기 까지는 시간이 걸릴 뿐이다. 여행은 눈에 익숙하지 않은 곳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 경험이 여행자들에겐 자양분이 되어 앞으로의 삶의 활력소가 되고 길을 만들어가는데 첫걸음이 되기도 한다. 눈에 익지 않은 나무, 다른 모양과 색깔의 지붕과 기와, 접해보지 못한 꽃, 하늘과 바다, 산 그리고 구불구불한 길, 산등성이 비탈에 잘 다듬은 밭 이랑, 생소한 길 이름, 도시 이름들, 경사진 비탈길, 산등성이로 내려오는 구름, 안개. 질끈 동여맨 소녀의 머리, 작은 동네로 들어갈 때의 어색함. 여행은 꼭 멀리 간다고 여행은 아니다.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열면 어디에서나 여행의 기쁨과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숨을 고르며 살면 될 것을 거칠게 호흡하면 삶은 늘 힘들어진다. 작은 어려움에도 회복하기 어려워진다. 참아 내는 것이다. 말을, 감정을, 움직이는 행동을 견디어 내는 것이다. 한 밤에 그리움을, 고요를, 쓸쓸함을 짙은 푸르샨 블루의 하늘로 온 몸을 덮어 내는 것이다. 요세미티의 침엽수들이 뜻밖의 불길에 그랬다. 껍질을 다 태우고 속살을 들어 내어도 견디어내야 했다. 절반은 죽고 절반은 살아남아 한 겨울 맨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참아야 했다. 온몸의 세포가 뒤섞여 더러는 죽고 더러는 살아남아 봄을 기다렸다. 죽은 듯한 나무 꼭대기 푸른 잎을 보았을 때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푸르게 자라는 생명의 고귀함에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산 등성이 쌓인 눈이 무게를 견디어 내며 한 겨울 산을 덮어 감싸고 이제 햇살에 조금씩 녹아 내리는 물줄기가 시내를 이루고 강물을 이루었다. 자기 몸을 내주어 제 새끼를 살리는 가시 고기와 같이 둥둥 떠 가는 제 몸보다 살아나는 새끼들의 흔들리는 꼬리를 기뻐했다. 세상 모든 어미처럼 자식 입안 한 숟갈의 밥이 더 고마워 끼니를 굶어도 배불렀던 어미 사랑처럼 나무도 귀하게 새 잎을 내었다. 이 미련 없이 아련한 봄날에도.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봄날 비탈길 산등성이 산등성이 비탈 나무 꼭대기
2023.05.08. 14:24
▶애덤스 애비뉴 언플러그드(Adams Avenue Unplugged) -일시: 4월29일, 낮 12시~오후 10시 -장소: 애덤스 애비뉴(Adams Avenue) 일대 -입장료: 무료(일부 프로그램은 유료) 샌디에이고 다운타운 서브 컬쳐를 리드하는 켄싱턴 지역에서 매년 열리는 음악축제. 로컬의 유명 밴드와 팝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 깊어 가는 봄날을 흥겹게 해준다. ▶에스콘디도 르네상스 축제(Escondido Renaissance Faire) -일시: 4월29일~30일, 오전 10시~오후 6시 -장소: 펠리시타 카운티 파크(Felicita County Park / 742 Clarence Lane, Escondido) -입장료: 23달러~38달러 -문의: https://www.oldetymeproductions.com/ 중세 유럽의 다양한 풍습을 그대로 재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왕족과 귀족들의 행진과 함께 기사들의 마상경기도 생생하게 재현된다. ▶미션 페드 아트워크(Mission Fed ArtWalk) -일시: 4월29일~30일, 오전 11시~오후 6시 -장소: 다운타운 리틀 이태리 일대 -입장료: 무료 -문의: https://artwalksandiego.org/missionfederal/ 샌디에이고 지역에서 주목받는 중견 작가부터 취미로 활동하는 아마추어에 이르기까지 300여 명의 예술가들이 출품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매년 로컬에서 봄철을 맞아 열리는 예술 이벤트로는 상당한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터카즈 온 메인스트리트(AutoCars on MainStreet) -일시: 30일, 오전 10시~오후 3시 -장소: Isabella & Orange Ave., Coronado -입장료: 무료 -문의: https://www.coronadomainstreet.com/ 클래식 자동차 애호가라면 한 번쯤 관람해볼 만한 자동차 이벤트로 올해로 32회째를 맞았다.주말 이벤트 음악축제 봄날 샌디에이고 다운타운 자동차 이벤트 샌디에이고 지역
2023.04.28. 20:25
화사한 봄날의 정취가 더해 가는 일요일인 지난 23일 샌디에이고의 관광명소 발보아 파크를 찾은 맣은 시민들이 거리 공연단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김영민 기자봄날 시민 관광명소 발보아 거리 공연단과
2023.04.25. 20:10
기다림의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이맘때 즘이면 그랬다 서서히 다가와 눈치챌 새도 없이 나를 놀라게 했다 내 시선은 순간의 탄성으로 고정되었다 봄눈 녹은 가지 끝에 햇살 가득히 품고 새싹들이 겨우내 시린 무릎 세워 놀래키듯 눈망울 터뜨려 봄을 알렸다 여린 손짓이 기다림의 내 가슴을 열어 손에 잡힐 듯한 정겨움에 눈을 감는다 그리운 사람도 이렇게 불쑥 찾아왔으면 하는 그런 봄날 양기석 / 시인·퀸즈글마당 봄날
2023.04.21. 17:54
샌디에이고 칸타모레 합창단(음악감독 정현관, 단장 김소정)이 주최하는 ‘제15회 봄날의 향연’ 콘서트가 오는 16일(일) 오후6시30분파웨이퍼포밍 아트센터(Poway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 / 15498 Espola Rd. Poway)에서 열린다. 매년 봄과 겨울 자체 정기 공연을 열어 지역 한인사회에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는 이 합창단은 특히 봄 콘서트에는 로컬의 다양한 연주 그룹과 음악인들을 초청해 행사 규모를 키워 더욱 다채롭고 경쾌하게 꾸미고 있다. 오는 16일 열리는 콘서트에도 자신들의 합창단 외에도 청소년 현악그룹인 ‘유스엔게디 앙상블(대표 윤숙경)’을 비롯해 피아노, 바이올린, 클라리넷 트리오 등 프로페셔널 연주자들을 초청해 , 봄의 정취에 맞는 아름다운 곡들을 함께 선사할 예정이다. 이날 공연에서 칸타모레 합창단은 귀에 익은 클래식과 민요, 영화음악 등을 레퍼토리로 꾸몄다. 김소정 단장은 “유난히 춥고 비가 많이 왔던 지난 계절 동안 화창한 이 봄을 기다리며 정성껏 선곡하고 열심히 연습한 결과를 나누고자 하니 많이들 오셔서 마음껏 즐기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티켓문의: [email protected], (858)740-4919.합창단 봄날 이날 공연 프로페셔널 연주자들 음악감독 정현관
2023.04.07. 19:57
완연한 봄이다. 도시 암자에서 맞이하는 몇 번째 봄이던가? 화려한 도시의 봄도 계절의 무상을 느끼기는 매일반이다. 내일(8일)이 ‘부처님 오신 날’이다. 절에선 여러 가지 준비로 부산하다. 부처님 가르침대로라면 더 열심히 정진해야 할 테지만 온전한 수행자의 모습은 간 데 없고, 3년 만에 치러질 행사 준비에만 온통 신경이 가 있다. 그래서인가? 봄이 오면 이상의 소설 ‘봉별기’의 첫 문장이 떠오른다. “스물세 살이요- 삼월이요- 각혈이다”라던. 괜히 잘 알지도 못하는 20세기 초의 유치한 분위기에 잠겨 달달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곤 한다. 누가 말했던가? “변화무쌍하여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것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오뉴월의 구름이요, 둘째는 고양이 눈, 그리고 세 번째는 여자의 마음”이라고. 언젠가부터 까만색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이따금 내가 사는 암자를 들락거렸다. 허락도 없이 나지막한 벽을 타고 넘어와 눈치를 보며 어슬렁거리기도 하고, 조그만 툇마루에서 제집인 양 늘어지게 졸곤 했다. 이 녀석은 빨리 달리는 법도 없지만, 한편 항상 조심스럽게 굴었다. 무료하여 조는 듯해도 가느다랗게 반개한 눈에는 긴장을 감추고 있다. 길고양이라 그런지 사회생활을 거부하고, 저 혼자 치열하게 생존의 노력을 하는 듯했다. 마음에 거리를 두고 ‘도시의 외로운 사냥꾼’을 가끔씩 지켜보다가, 추운 겨울나기가 저나 나나 힘들지 싶어 사료를 사서 먹였다. 공양 시간 맞추어 나타나는 저 녀석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하기는 할까? 근데 뭔가 응시하는 듯한 저 눈! 꺼림칙하다. 겨우 밥을 주며 눈을 마주치고 나서야 표정도 눈빛도 보이기 시작했다. 장자의 ‘추수편’ 이야기 잠깐! 장자와 혜자가 호수의 다리에서 거닐다가 장자가 말했다. “피라미가 나와서 한가로이 놀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물고기의 즐거움일세.” 이에 혜자가 대꾸하기를 “자네는 물고기도 아닌데, 어떻게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 수 있겠는가?” 다시 장자가 반박하기를 “자네는 내가 아닌데, 어떻게 내가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지 알 수 있겠는가?” 사람과 동물이 서로 심리적 교감을 할 수 있을까? 언어학자에 의하면 사람의 생각은 언어로 한다는데, 저 고양이에게는 언어도 없는데 어떻게 저런 눈빛을 할 수 있지? 꼭 뭔가 사색하는 것처럼. 하긴 강아지나 송아지의 눈도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다. 다만 알 수 없을 뿐이다. 장자에 의하면, 사람도 서로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하니 말이다. 불교의 한 학파에서는 “모든 존재는 물질, 마음, 개념, 유형, 무형 등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고, 그 다섯 가지 유형에 속하는 세부 존재들은 총 100가지가 있으며, 이를 오위백법(五位百法)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마음’이 67개다. 전체 100가지 중 3분의 2가 넘는다. 그만큼 마음에 대한 탐구가 많다는 뜻이다. 과연 불교를 마음의 종교라고 부름 직하다. 그런데 불교가 말하는 67개의 마음으로 변화무쌍한 봄날과 고양이 눈빛을 포착할 수 있을까? 한순간도 머물지 않는 내 마음을 알 수 있을까? 물도 흘러가고 배도 흘러가는데, 배에서 빠뜨린 칼을 뱃전에 그은 표식으로 찾을 수 있을까? 불교는 모든 것을 회의적 눈으로 살피면서 무상과 무아라는 ‘자유와 외로움의 세계’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늘 따뜻한 자비를 행하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따져 이해되는 범주 내에서만 살 수는 없다.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잠시라도 타인의 보살핌과 도움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니, 사람들은 평생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게 마련이다. 이것만으로도 우리가 서로 도와야 할 이유가 될 터이고,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의 시작인지도 모르겠다. 저 고양이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태어나, 많은 시간을 자력으로 살아가는 듯하다. 밥을 찾긴 해도 일견 힘 있어 보이는 인간에게조차 비굴한 표정으로 호의를 구하지 않는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고양이 특유의 삶의 태도인가보다. 하지만 이따금 남의 호의는 대범하게 수용하면서, 남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은 없는 고양이의 삶이 왠지 차고 쓸쓸해 보인다. 봄날 절집 툇마루 한쪽에서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를 보니, 무심한 듯 냉정한 눈을 가진 고양이의 외로움이 안쓰럽다. 하지만 나는 모른다. 저 고양이가 정말로 외로워하는지. 원영스님 / 청룡암 주지기고 고양이 봄날 고양이 눈빛 봄날 고양이 까만색 새끼고양이
2022.05.06. 19:10
이제 봄인가. 각양각색의 새들이 난데없이 창가로 몰려왔다. 햇빛을 입에 문 아름다운 새들이 날갯짓하며 내 창을 노크했다. 꿈이었다. 오늘 숲으로 하이킹을 가기로 해서 그랬을까? 꿈의 여운을 안고 빅베어 아랫동네 ‘포리스트 폴스(Forest Falls)’에 왔다. 몇 해 전 두어 번 왔는데도 처음인 것처럼 감동이 새로웠다. 하이킹 팀원 중 막내는 초행길이라 그런지 표정이 잔뜩 들떠 있다. 집에서 한 시간 반 거리를 한걸음인 듯 달려 오고픈 곳. 산을 오르면서 바라보는 하늘은 파스텔 파란색이다. 앞쪽 하늘로 바람이 구름을 몰고 퍼져 나간다. 하늘을 캠퍼스 삼아 그분이 수묵화를 그리는가, 입김을 내뿜는가. 참나무와 고목들이 뿌리를 드러낸 채 서 있다. 땅이 비옥해서인지 산길에 도토리가 떨어져 수북하다. 도토리가 가나안의 포도알처럼 유난히도 크다. 전에 왔을 때 산에 눈이 쌓였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개울가는 3월의 초록으로 가득하다. 하늘과 나무, 개울물 소리가 여전히 청아하다. 크고 작은 바위는 창조주가 대지에 그린 입체 그림처럼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 생생하다. 물가에 앉아 손으로 퍼 올리는 맑은 수정의 계곡물. 너무 깨끗해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흐르는 물소리에는 잡음이 없다. 청정, 물의 화음이다. 냇물에 구름도 같이 흐른다. 맑은 물 냄새와 산 내음이 가슴으로 스며든다. 돌멩이, 너는 옛날엔 큰 산이었겠지. 맨몸으로 굴러 떨어지며 바위가 되고 작은 돌멩이가 되고 모래가 되느라 모난 곳이 깨어질 때 얼마나 아팠을까. 큼직한 돌덩이 사이사이에 박힌 자그마한 돌멩이가 개울 물에 떨어져 몸을 씻는다. 인고의 씻음이다. 흐르는 개울 속에 무늬를 그린 돌멩이가 많다. 같이 간 친구는 그 예쁘고 기묘한 모양의 돌들에 눈 덮인 산, 말 타는 사람, 우주와 달, 머리핀을 꽂은 여인, 킬리만자로의 눈이라 이름 붙이며 행복해했다. 돌멩이는 내 감성의 영토에 들어와 이야기를 건넨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옷 한 벌 걸치지 않아도 춥지 않고 행복해.” 전나무의 바늘잎이 신록의 계절을 절감하게 한다. 스쳐오는 맑은 바람에 잎사귀가 흔들려 흐르는 물소리와 합주한다. 아픈 영혼도 치료가 될 것 같은 오묘한 소리다. 산들바람이 스친다. 족히 백 살은 되지 않을까 싶은 아름드리 나무의 그늘 밑, 소풍 도시락은 맛나기 그지없다. 하늘을 가린 가지만큼 널따란 우리의 대화는 산행에서 얻어가는 귀한 보약이 된다. 계곡 옆 도토리나무가 떨어지는 작은 폭포에 자리를 내어주고 뿌리를 드러냈다. 나도 저렇게 깎인 후에도 자리를 내어줄 수 있을까. 개울 속 돌멩이처럼 굴러떨어져 씻기며 살아갈 수 있을까.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무소유의 소유를 살고 싶다. 엄영아 / 수필가이 아침에 봄날 산행 돌멩이가 개울 나무 개울물 앞쪽 하늘
2022.03.07. 20:11
이제 봄인가. 각양각색의 새들이 난데없이 창가로 몰려왔다. 햇빛을 입에 문 아름다운 새들이 날갯짓하며 내 창을 노크했다. 꿈이었다. 오늘 숲으로 하이킹을 가기로 해서 그랬을까? 꿈의 여운을 안고 빅베어 아랫동네 ‘포리스트 폴스(Forest Falls)’에 왔다. 몇 해 전 두어 번 왔는데도 처음인 것처럼 감동이 새로웠다. 하이킹 팀원 중 막내는 초행길이라 그런지 표정이 잔뜩 들떠 있다. 집에서 한 시간 반 거리를 한걸음인 듯 달려 오고픈 곳. 흙으로 밥을 짓고 돌멩이로 공기놀이하며 신발을 물에 띄우고 놀던 어릴 적 추억이 돋아나는 편하고 풍요로운 곳이다. 산을 오르면서 바라보는 하늘은 파스텔 파란색이다. 앞쪽 하늘로 바람이 구름을 몰고 퍼져 나간다. 하늘을 캠퍼스 삼아 그분이 수묵화를 그리는가, 입김을 내뿜는가. 참나무와 고목들이 뿌리를 드러낸 채 서 있다. 비바람으로 산이 깎여 계곡 끝에 용케 버티고 선 나무들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땅이 비옥해서인지 산길에 도토리가 떨어져 수북하다. 도토리가 가나안의 포도알처럼 유난히도 크다. 전에 왔을 때 산에 눈이 쌓였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개울가는 3월의 초록으로 가득하다. 하늘과 나무, 개울물 소리가 여전히 청아하다. 크고 작은 바위는 창조주가 대지에 그린 입체 그림처럼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 생생하다. 어떤 바위는 멧돼지 같아 보이고 어떤 바위는 호랑이 같고 다른 바위는 눈 큰 사람의 얼굴로 보이니 그 변화무쌍이 신기하다. 물가에 앉아 손으로 퍼 올리는 맑은 수정의 계곡물. 너무 깨끗해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흐르는 물소리에는 잡음이 없다. 청정, 물의 화음이다. 냇물에 구름도 같이 흐른다. 맑은 물 냄새와 산 내음이 가슴으로 스며든다. 돌멩이, 너는 옛날엔 큰 산이었겠지. 맨몸으로 굴러 떨어지며 바위가 되고 작은 돌멩이가 되고 모래가 되느라 모난 곳이 깨어질 때 얼마나 아팠을까. 큼직한 돌덩이 사이사이에 박힌 자그마한 돌멩이가 개울 물에 떨어져 몸을 씻는다. 인고의 씻음이다. 흐르는 개울 속에 무늬를 그린 돌멩이가 많다. 같이 간 친구는 그 예쁘고 기묘한 모양의 돌들에 눈 덮인 산, 말 타는 사람, 우주와 달, 머리핀을 꽂은 여인, 킬리만자로의 눈이라 이름 붙이며 행복해했다. 돌멩이는 내 감성의 영토에 들어와 이야기를 건넨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옷 한 벌 걸치지 않아도 춥지 않고 행복해.” 전나무의 바늘잎이 신록의 계절을 절감하게 한다. 스쳐오는 맑은 바람에 잎사귀가 흔들려 흐르는 물소리와 합주한다. 아픈 영혼도 치료가 될 것 같은 오묘한 소리다. 산들바람이 스친다. 족히 백 살은 되지 않을까 싶은 아름드리 나무의 그늘 밑, 소풍 도시락은 맛나기 그지없다. 하늘을 가린 가지만큼 널따란 우리의 대화는 산행에서 얻어가는 귀한 보약이 된다. 계곡 옆 도토리나무가 떨어지는 작은 폭포에 자리를 내어주고 뿌리를 드러냈다. 나도 저렇게 깎인 후에도 자리를 내어줄 수 있을까. 개울 속 돌멩이처럼 굴러떨어져 씻기며 살아갈 수 있을까. 없는 것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무소유의 소유를 살고 싶다. 엄영아 / 수필가이 아침에 봄날 산행 돌멩이가 개울 돌멩이로 공기놀이하 나무 개울물
2022.03.03. 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