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좋은 울타리는 좋은 이웃을 만든다
‘숲속의 두 갈래 길(The Road Not Taken)’이란 명시를 남긴 로버트 프로스트의 다른 시에 Mending Wall이 있다. 이 시에 ‘좋은 울타리는 좋은 이웃을 만든다. (Good Fence Makes Good Neighbors)’ 라는 말이 나온다. 시에 등장하는 이웃은 처음에 소를 키우고 있었다. 소의 주인이 누군지, 소들이 서로 놀다가 섞이고 달아나다 보면 구별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두 이웃은 울타리를 만들어 자기 소를 보호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자식들은 더는소를 키우지 않았다. 그래도 울타리는 허물지 않았다. 두 집 사이에는 여전히 경계가 필요한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다니엘 디포우의 소설 ‘로빈슨 크루소’, 브라질에서 출발해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잡아 오려던 배는 폭풍우로 어느 무인도에 표류했다. 혼자 외딴 섬에 고립된 주인공은 큰 바위 밑에 움막을 짓고 동물들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방안에 큰 벽을 쌓았다. 섬에는 사람은 없었으나 야생동물은 살았다. 그는 울타리를 만들어 동물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잡아서 먹었다. 불과 150~200년 전만 해도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국경 개념이 약했다. 전쟁에서 이긴 나라가 패전국의 땅을 빼앗아 말뚝을 막고는 자기 땅이라고 주장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 가인존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에 따르면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등을 빼앗았다. (샌디에이고 밑에 멕시코령 바하칼리포르니아가 있다) 전쟁에서 이긴 후 백인 지배계급은 허허벌판에 말뚝을 박고는 자기 땅이라고 우겼고, 나중에 자기들끼리 만든 법으로 이를 합법화했다. 지주들은 오클라호마, 서부 텍사스 등지에서 이주 노동자를 모아 캘리포니아 농장에 데려다 저임금으로 착취했다. 서부 개척 시대, 캘리포니아의 오렌지, 포도, 목화 농장은 불쌍한 노동자들이 흘린 ‘분노의 눈물’로 재배한 것이었다. 요즘 같이 외국 노동자들을 데리고 온 것이 아니었다. 가뭄으로 농토를 잃은 동족을 울린 수치스러운 노동력 착취였다. 미국은 당시 군사적 위협으로 여러 섬나라를 합병하고 루이지애나, 알래스카를 각각 프랑스와 러시아로부터 사들였다.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베를린 연설에서 “미스터 고르바초프, 이 벽을 허무세요” 하고 선언했다. 이후 소련연방 사이의 벽이 하나둘 무너지고 소련연방은 붕괴하였다. 세계사에 남는 ‘가장 큰 벽’이 없어진 것이다. 프로스트는 그의 시에서 사람과 사람, 이웃 사이의 장벽은 임의적이고 불필요한 것으로 은유하고 있다. 자연은 사람이 만드는 벽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는 벽을 높이 쌓고 허물 생각을 하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장벽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철조망을 넘어온 사람들은 검거돼 낯설고 무서운 나라로 추방되고 있다. 돌아보면 지난 행정부 시절, 너무 많이 들어왔다. 뉴저지 인구보다 많은 사람이밀입국했고그중에는 범죄자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두 나라 간의 울타리는 튼튼하지 못하고 구멍이 많았다. 좋은 울타리가 아니었다. 두 이웃 나라가 사이좋게 만든 좋은 울타리였다면 좋은 이웃이 되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어느 정도의 울타리(경계)는 필요할 것 같다. 우리 주변에는 남의 사생활을 침범하고, 개인 정보를 훔쳐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 할 수 없이 벽을 쌓고 이중 삼중으로 보호망을 구축해야 한다. 울타리는 단단한가. 자주 점검해 구멍이 발견되면 보수해야 한다. (Mending Wall) 울타리가 필요 없는 시대는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최복림 / 시인삶의 뜨락에서 울타리 이웃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사람 이웃 멕시코령 바하칼리포르니아
2025.09.10. 2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