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는 인간의 본질이란 무엇이냐는 물음을 던지는데, 사르트르는 그의 저서인 '닫힌 방'에서 '응시'에 대해서 얘기한다. 그 작품 속에는 성인 남자 한 명과 성인 여자 두 명이 출구도 없는 조그만 방에 갇히게 된다. 그들은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자, 서로를 응시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인간을 응시하는 것처럼 지옥이 없다고 사르트르는 작품 속에서 하소연한다. 지옥이 무서운 것은 항상 불이 켜져 있고, 자기를 응시하는 것이라고 사르트르는 말한다. 인간의 응시와 관련된 것으로 '현상학'이 있다. 현상학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에드문트 후설이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현상학에 관해서 많은 연구를 했으나, 모두 책으로 출간하지 않아서 그가 집필한 수많은 원고(책 100권 정도의 분량)를 나치 독일의 감시를 뚫고 벨기에의 '루뱅대학'에 숨기게 된다. 아직도 그의 철학을 무엇이라고 단정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아직도 연구 중이기 때문이다. 그는 과학 실증주의에 빠진 인문 사회를 구하고자 '현상학'이란 학문을 주창한다. 현상학은 사물의 본질을 직관하여 그것을 토대로 모든 학문의 토대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후설은 모든 자연적 태도(현상에 보이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것, 선입견 또는 주관적 태도)를 버리고 '판단중지(epoche)'를 통하여 사물을 응시하는 '순수의식'의 상태로 직관해야 사물의 본질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즉, 순수의식이 된 상태로 사물을 주시(노에시스)하면 본질화된 사물(노에마)로 되는데 이것을 위해서 형상적 태도를 통한 자연스러운 변경과 분석이 필요하다고 했다. 노에마가 형성되면 그것을 뇌로 보내서 기억시키고 필요시, 그 사물을 다시 보면 본질을 바로 볼 수 있다는 '환원'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마치 칸트의 관념론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칸트는 본질을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고, 후설은 본질을 볼 수 있다고 한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여기서 환원되는 사물의 본질이 사람마다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이 모순처럼 보인다. 객관화가 빠진 상태서 어떻게 관념화가 가능한지 의심스러운 것이다. 사르트르는 '순수의식'은 무(無)라고 한다. 사람은 의식이 무(無)이므로 새로운 내용의 의식으로 언제든지 채움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대해 메를로퐁티는 비판한다. 인간의 의식은 항상 무언가로 채워진다는 것이다. 즉, 죽을 때조차도 인간의 표정을 보면, 그 순간도 뭔가를 의식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을 '몸의 현상학' 또는 '지각의 현상학'이라고 부른다. 즉, 응시는 눈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감각을 모두 동원한다는 것이다. 예술작품을 보면서 시각뿐만 아니라 촉각으로도 느낀다는 것이다. 가령, 셸링이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 무의식 속에서 본질의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과도 유사하다. 플라톤은 본질을 보는 방법으로, 참지식에 이르기 위해서는 '본질'을 봐야 하는데, 이것은 '변증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후에 헤겔이 변증법을 사용하여 본질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헤겔은 정반합(正反合) 개념으로 변증법을 정형화했다.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그 변화의 원인을 자기 부정 즉, 모순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원래의 상태를 정(正)이라 하면 모순에 의한 자기 부정은 반(反)이다. 만물은 이 모순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그 결과 새로운 합(合)이 생기는 원리이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 최고의 지점에 도달하고 이것을 본질이라 한다. 가령, 꽃을 변증법적으로 계속 응시하면 꽃의 본질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박검진 단국대 전자공학과 졸업. 한국기술교육대에서 기술경영학(MOT)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LG반도체 특허협상팀 팀장,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차장, 호서대 특허관리어드바이저, 한국기술교육대 산학협력단 교수를 거쳐 현재 콜라보기술경영연구소 대표.박검진의 종교·철학 여행 본질 사물 사물 본질 학문 토대 하이닉스반도체 특허분석팀
2025.11.03. 18:09
“문의하신 상품은 품절되셨어요” “주문하신 음료 나오셨습니다”와 같은 표현은 이제 사라졌을까? 여전히 많이 쓰이지만 이를 바로잡으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고객의 폭언 등을 막는 최소한의 장치인 감정노동자 보호법도 힘을 실어 준다. 그동안 모르고도 사용했지만 알고 나서도 사용했다는 것이 고객 응대 노동자들의 속사정이다. 사물에까지 경어를 붙여 말하는 것이 잘못인 줄 알면서도 무례한 고객에게 꼬투리를 안 잡히기 위해서다. ‘사물 존칭’이 퍼지게 된 것은 고객을 왕으로 모시는 과정과 무관치 않다. 고객 만족을 서비스의 최고 가치로 삼으면서 마구 쓰인 측면이 있다. 우리말에서 물건은 높임의 대상이 아니다. 선어말어미 ‘-시-’를 붙일 수 없다. “문의하신 상품은 품절되었어요”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처럼 표현하는 게 바르다. 말하는 이가 주어를 직접 높이는 게 아니라 주어와 관련된 대상을 통해 높이는 것을 ‘간접 높임’이라고 한다. 높임 대상의 소유물이나 신체 일부분, 관련된 사람을 높이는 방법이다. “선생님은 모자가 많으시다” “할머니는 발이 크시다”와 같은 표현이 해당된다. 이 간접 높임과 사물 높임은 다르다. “선생님은 모자가 많으시다”는 선생님의 소유물인 모자를 통해 주어를 높인 것으로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 “찾으시는 모자 있으세요”는 ‘모자’ 자체를 높이는 말로 어색하다. 직원이 손님에게 어떤 행동을 공손히 요구할 때 “자리에 앉으실게요” 등과 같이 말하는 것도 잘못된 표현이다. ‘-시-’는 ‘앉다’의 주체를 높이는 선어말어미다. ‘-ㄹ게요’는 말하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이라는 약속이나 의지를 나타낸다. ‘-시-’와 ‘-ㄹ게요’를 어울려 쓰는 것은 어색하다. 자신이 자리에 앉겠다는 것인지, 상대에게 자리에 앉으라는 것인지 모호한 표현이 돼 버린다. “자리에 앉으실게요” 대신 “자리에 앉으세요” “자리에 앉으십시오” “자리에 앉으시기 바랍니다” 등으로 바꿔야 자연스럽다.우리말 바루기 감정노동 사물 사물 존칭 감정노동자 보호법 사물 높임
2025.02.03. 18:55
“문의하신 상품은 품절되셨어요” “주문하신 음료 나오셨습니다”와 같은 표현은 이제 사라졌을까? ‘사물 존칭’이 퍼지게 된 것은 고객을 왕으로 모시는 과정과 무관치 않다. 고객 만족을 서비스의 최고 가치로 삼으면서 마구 쓰인 측면이 있다. 우리말에서 물건은 높임의 대상이 아니다. 선어말어미 ‘-시-’를 붙일 수 없다. “문의하신 상품은 품절되었어요”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처럼 표현하는 게 바르다. 말하는 이가 주어를 직접 높이는 게 아니라 주어와 관련된 대상을 통해 높이는 것을 ‘간접 높임’이라고 한다. 높임 대상의 소유물이나 신체 일부분, 관련된 사람을 높이는 방법이다. “선생님은 모자가 많으시다” “할머니는 발이 크시다”와 같은 표현이 해당된다. 이 간접 높임과 사물 높임은 다르다. “선생님은 모자가 많으시다”는 선생님의 소유물인 모자를 통해 주어를 높인 것으로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 “찾으시는 모자 있으세요”는 ‘모자’ 자체를 높이는 말로 어색하다. 직원이 손님에게 어떤 행동을 공손히 요구할 때 “자리에 앉으실게요” 등과 같이 말하는 것도 잘못된 표현이다. ‘-시-’는 ‘앉다’의 주체를 높이는 선어말어미다. ‘-ㄹ게요’는 말하는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이라는 약속이나 의지를 나타낸다. 우리말 바루기 감정노동 사물 사물 존칭 사물 높임 고객 만족
2023.02.14.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