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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오뚝한 코’가 된 사연

“오뚝한 코에 눈매가 매섭다.” “코가 우뚝하고 눈매가 날카롭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와 마주쳐 몽타주를 만드는 데 참여했던 버스기사와 안내원은 그의 생김새를 이렇게 기억했다.   유력한 용의자의 모습을 묘사할 때 사용된 “오뚝한 코” “코가 우뚝하고” 중 어떤 표현이 맞을까? ‘오뚝하다’ ‘우뚝하다’ 모두 도드라지게 높이 솟은 상태를 일컫는 말로 쓸 수 있다.   ‘오똑하다’는 표준어가 아니다. 한 매체가 공개한 용의자의 고교 때 사진을 보고 “몽타주처럼 눈매가 날카롭고 코가 오똑하네”라고 표현하는 이가 많다. 이때의 ‘오똑하다’는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말이다. “코가 오뚝하네”나 “코가 우뚝하네”로 고쳐야 한다. ‘오뚝하다-우뚝하다’가 짝을 이루는 게 바르냐고 의아해하지만 ‘오뚝하다’ ‘우뚝하다’만 표준말로 인정하고 있다.   ‘오똑하다’를 취하지 않고 ‘오뚝하다’를 표준어로 삼은 이유는 양성모음이 음성모음으로 바뀌어 굳어진 단어는 음성모음 형태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음성모음화 현상을 인정한 결과다. 우리말에는 양성모음은 양성모음끼리, 음성모음은 음성모음끼리 어울리는 모음조화 현상이 있는데 지금은 이 규칙이 많이 무너져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깡총깡총’이다. ‘깡총깡총’을 버리고 언어 현실을 반영해 ‘깡충깡충’을 표준어로 정했다. 발딱발딱 일어서는 아이들의 장난감도 ‘오똑이’가 아닌 ‘오뚝이’로 써야 한다. ‘-동이’도 ‘-둥이’가 표준어다. ‘-둥이’의 어원은 ‘동이(童-)’이지만 음성모음화를 인정해 ‘막둥이’ ‘쌍둥이’처럼 사용한다.우리말 바루기 사연 음성모음화 현상 음성모음 형태 모음조화 현상

2025.04.14. 19:07

[우리말 바루기] 접미사 ‘-다랗다’의 사연

기다랗고 가는 목에 타원형의 얼굴. 모딜리아니 초상화의 특징이다. 이런 화풍은 그의 병증이 한몫했다는 주장도 있다. 모딜리아니의 작품 속 형태 변형이 심한 난시와 관련됐다는 것이다.   매우 길다는 의미의 단어 ‘기다랗다’도 잘못된 형태로 종종 표현되곤 한다. “긴 타원형의 얼굴 아래로 음악처럼 흐르는 길다란 목” “백조같이 길다랗고 가는 목”처럼 쓰면 안 된다. ‘기다란’ ‘기다랗고’로 고쳐야 바르다. ‘길다랗다’를 기본형으로 알고 잘못 활용한 경우다.   ‘길다’에 그 정도가 꽤 뚜렷하다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 ‘-다랗다’가 붙은 말이므로 ‘길다랗다’로 읽고 써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왜 어간 ‘길-’에서 ㄹ이 탈락한 ‘기다랗다’를 표준말로 삼은 걸까? 발음이 [기ː다라타]로 난다. 끝소리가 ㄹ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때 ㄹ소리가 안 나면 나지 않는 대로 적는다는 맞춤법 28항 규정에 따랐다.   ‘높다랗다(←높다)’와 같이 용언의 어간 뒤에 자음으로 시작된 접미사가 붙어서 된 말은 어간의 원형을 밝혀 적는 게 원칙이나 ‘기다랗다’는 변한 형태를 표준어로 삼았다. ‘가느다랗다(←가늘다)’도 같은 예다.   ‘짤따랗다(←짧다)’는 왜 이런 형태가 됐을까? 겹받침의 끝소리가 드러나지 않을 땐 소리대로 적는다는 맞춤법 21항 규정 때문이다. [짤따라타]로 발음되므로 ‘짧’에서 ㅂ은 버리고 뒤의 접미사 ‘-다랗다’도 소리를 반영해 ‘짤따랗다’가 됐다. ‘널따랗다(←넓다)’ ‘얄따랗다(←얇다)’도 같은 이유로 표기가 정해졌다. ‘굵다랗다(←굵다)’는 같은 겹받침 단어이지만 뒤에 있는 받침인 ㄱ이 발음되므로 원형을 밝혀 적는다.우리말 바루기 접미사 사연 모딜리아니 초상화 형태 변형 얼굴 아래

2025.02.12. 18:34

[영상] "교장선생님을 돌려주세요!"라고 외친 사연은

 영상 교장선생 사연

2023.11.3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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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접미사 ‘-다랗다’의 사연

매우 길다는 의미의 단어 ‘기다랗다’도 잘못된 형태로 종종 표현되곤 한다. “긴 타원형의 얼굴 아래로 음악처럼 흐르는 길다란 목” “백조같이 길다랗고 가는 목”처럼 쓰면 안 된다. ‘기다란’ ‘기다랗고’로 고쳐야 바르다. ‘길다랗다’를 기본형으로 알고 잘못 활용한 경우다.   ‘길다’에 그 정도가 꽤 뚜렷하다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 ‘-다랗다’가 붙은 말이므로 ‘길다랗다’로 읽고 써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왜 어간 ‘길-’에서 ㄹ이 탈락한 ‘기다랗다’를 표준말로 삼은 걸까? 발음이 [기ː다라타]로 난다. 끝소리가 ㄹ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때 ㄹ소리가 안 나면 나지 않는 대로 적는다는 맞춤법 28항 규정에 따랐다.   ‘높다랗다(←높다)’와 같이 용언의 어간 뒤에 자음으로 시작된 접미사가 붙어서 된 말은 어간의 원형을 밝혀 적는 게 원칙이나 ‘기다랗다’는 변한 형태를 표준어로 삼았다. ‘가느다랗다(←가늘다)’도 같은 예다.   ‘짤따랗다(←짧다)’는 왜 이런 형태가 됐을까? 겹받침의 끝소리가 드러나지 않을 땐 소리대로 적는다는 맞춤법 21항 규정 때문이다. [짤따라타]로 발음되므로 ‘짧’에서 ㅂ은 버리고 뒤의 접미사 ‘-다랗다’도 소리를 반영해 ‘짤따랗다’가 됐다. ‘널따랗다(←넓다)’ ‘얄따랗다(←얇다)’도 같은 이유로 표기가 정해졌다. ‘굵다랗다(←굵다)’는 같은 겹받침 단어이지만 뒤에 있는 받침인 ㄱ이 발음되므로 원형을 밝혀 적는다. 우리말 바루기 접미사 사연 얼굴 아래

2023.07.27. 19:21

[우리말 바루기] ‘오뚝한 코’가 된 사연

“오뚝한 코에 눈매가 매섭다.” “코가 우뚝하고 눈매가 날카롭다.”   유력한 용의자의 모습을 묘사할 때 사용된 “오뚝한 코” “코가 우뚝하고” 중 어떤 표현이 맞을까? ‘오뚝하다’ ‘우뚝하다’ 모두 도드라지게 높이 솟은 상태를 일컫는 말로 쓸 수 있다.   ‘오똑하다’는 표준어가 아니다. “코가 오똑하네”라고 표현하는 이가 많다. 이때의 ‘오똑하다’는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말이다. “코가 오뚝하네”나 “코가 우뚝하네”로 고쳐야 한다. ‘오뚝하다-우뚝하다’가 짝을 이루는 게 바르냐고 의아해하지만 ‘오뚝하다’ ‘우뚝하다’만 표준말로 인정하고 있다.   ‘오똑하다’를 취하지 않고 ‘오뚝하다’를 표준어로 삼은 이유는 양성모음이 음성모음으로 바뀌어 굳어진 단어는 음성모음 형태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음성모음화 현상을 인정한 결과다. 우리말에는 양성모음은 양성모음끼리, 음성모음은 음성모음끼리 어울리는 모음조화 현상이 있는데 지금은 이 규칙이 많이 무너져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깡총깡총’이다. ‘깡총깡총’을 버리고 언어 현실을 반영해 ‘깡충깡충’을 표준어로 정했다. 발딱발딱 일어서는 아이들의 장난감도 ‘오똑이’가 아닌 ‘오뚝이’로 써야 한다. ‘-동이’도 ‘-둥이’가 표준어다. ‘-둥이’의 어원은 ‘동이(童-)’이지만 음성모음화를 인정해 ‘막둥이’ ‘쌍둥이’처럼 사용한다.우리말 바루기 사연 음성모음화 현상 음성모음 형태 모음조화 현상

2023.07.20. 18:41

"18년만에 어머니 만나 모시고 왔는데..." 올랜도 거주 한인의 안타까운 사연

방문비자여서 오래 머무를 수도, 자신이 한국 돌아가기도 쉽지않아    18년 만에 한국을 방문해 어머니를 모시고 미국으로 돌아온 한인이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뇌종양과 폐암 진단으로 절망적인 상황을 맞게 된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거주하는 마 지나(44세, 미국 이름 지나 토마스) 씨는 지난 달 휴가를 얻어 18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설렘도 잠시, 그는 자신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거동도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마 씨는 3주간 한국에서 어머니와 함께 병원 이곳저곳을 다니며 검사를 받은 결과 인지 능력 저하, 우울증, 천식 등의 진단을 받았다.   그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시에는 분명 조금씩 괜찮아지셨다"며 "어머니를 이대로 혼자 둘 수 없어 미국에 같이 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5월 초 어머니를 미국에 모셔온 직후부터 갑자기 상태가 악화돼 한국으로 출국을 3일 앞둔 지난 5월18일 응급실로 옮겼고, 뇌종양과 폐암 4기라는 진단을 받았다.   한국으로 되돌아가 치료를 받으려고 했으나 항공 여행이 불가하다는 의료진의 진단에 따라 지난 26일 미국에서 우선 뇌종양 제거 수술을 진행했다. 그러나 폐 조직 검사 결과, 항암치료 밖에 다른 방법이 없고 6개월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청천벽력같은 의사의 말을 들었다.   마 씨에게 어머니 마명옥(71세) 씨는 유일한 가족이다. 마지나 씨는 한국에서 쇼트트랙 국가 대표 선수를 꿈꿨으나 혼혈이라는 이유로 좌절됐고, 이후 미군이었던 남편과 결혼해 미국에 왔지만 이혼하여 홀로 생업을 이어가며 넉넉치 않게 살고 있다. 방문 비자 신분인 어머니가 미국에 오래 머무를 수 없는 입장인데, 돌보아야 할 마 씨가 생업을 포기하고 무작정 한국행을 감행하는 일 또한 쉬운 결정이 아니어서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한국말이 유창한 마 씨는 "갑자기 닥친 상황에 어머니를 모시고 한국에 가야 할지, 치료비와 비자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 혼자서는 도저히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온라인 한인 커뮤니티에 사연을 올려봤지만, 진의를 의심하는 날선 말밖에 듣지 못했다"며 이 얽힌 문제를 풀 방법이 없겠느냐고 하소연했다.   고심끝에 마씨는 고펀드미에 기부 페이지를 열었다. 어머니의 미국 방문 비자가 8월 1일에 만료되는데, 의료 문제로 30일 연장을 할 수는 있지만 미국을 떠나기 전에 병원비 완납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씨의 어머니는 지난주 가장 큰 뇌종양 한 개를 부분 제거하기는 했으나 폐암과 나머지 종양의 치료를 앞두고 있다.   윤지아 기자  모녀상봉 사연 어머니 마명옥 이송 뇌종양 폐암 진단

2023.05.3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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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오뚝한 코’가 된 사연

“오뚝한 코에 눈매가 매섭다.” “코가 우뚝하고 눈매가 날카롭다.” ‘오뚝하다’ ‘우뚝하다’ 모두 도드라지게 높이 솟은 상태를 일컫는 말로 쓸 수 있다.   ‘오똑하다’는 표준어가 아니다. ‘오똑하다’는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말이다. “코가 오뚝하네”나 “코가 우뚝하네”로 고쳐야 한다. ‘오뚝하다-우뚝하다’가 짝을 이루는 게 바르냐고 의아해하지만 ‘오뚝하다’ ‘우뚝하다’만 표준말로 인정하고 있다.   ‘오똑하다’를 취하지 않고 ‘오뚝하다’를 표준어로 삼은 이유는 양성모음이 음성모음으로 바뀌어 굳어진 단어는 음성모음 형태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음성모음화 현상을 인정한 결과다. 우리말에는 양성모음은 양성모음끼리, 음성모음은 음성모음끼리 어울리는 모음조화 현상이 있는데 지금은 이 규칙이 많이 무너져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깡총깡총’이다. ‘깡총깡총’을 버리고 언어 현실을 반영해 ‘깡충깡충’을 표준어로 정했다. 발딱발딱 일어서는 아이들의 장난감도 ‘오똑이’가 아닌 ‘오뚝이’로 써야 한다. ‘-동이’도 ‘-둥이’가 표준어다. ‘-둥이’의 어원은 ‘동이(童-)’이지만 음성모음화를 인정해 ‘막둥이’ ‘쌍둥이’처럼 사용한다.우리말 바루기 사연 음성모음화 현상 음성모음 형태 모음조화 현상

2023.03.09. 19:14

[우리말 바루기] 접미사 ‘-다랗다’의 사연

기다랗고 가는 목에 타원형의 얼굴. 모딜리아니 초상화의 특징이다. 이런 화풍은 그의 병증이 한몫했다는 주장도 있다. 모딜리아니의 작품 속 형태 변형이 심한 난시와 관련됐다는 것이다.   매우 길다는 의미의 단어 ‘기다랗다’도 잘못된 형태로 종종 표현되곤 한다. “긴 타원형의 얼굴 아래로 음악처럼 흐르는 길다란 목” “백조같이 길다랗고 가는 목”처럼 쓰면 안 된다. ‘기다란’ ‘기다랗고’로 고쳐야 바르다. ‘길다랗다’를 기본형으로 알고 잘못 활용한 경우다.   ‘길다’에 그 정도가 꽤 뚜렷하다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 ‘-다랗다’가 붙은 말이므로 ‘길다랗다’로 읽고 써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왜 어간 ‘길-’에서 ㄹ이 탈락한 ‘기다랗다’를 표준말로 삼은 걸까? 발음이 [기ː다라타]로 난다. 끝소리가 ㄹ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때 ㄹ소리가 안 나면 나지 않는 대로 적는다는 맞춤법 28항 규정에 따랐다.   ‘높다랗다(←높다)’와 같이 용언의 어간 뒤에 자음으로 시작된 접미사가 붙어서 된 말은 어간의 원형을 밝혀 적는 게 원칙이나 ‘기다랗다’는 변한 형태를 표준어로 삼았다. ‘가느다랗다(←가늘다)’도 같은 예다.   ‘짤따랗다(←짧다)’는 왜 이런 형태가 됐을까? 겹받침의 끝소리가 드러나지 않을 땐 소리대로 적는다는 맞춤법 21항 규정 때문이다.우리말 바루기 접미사 사연 모딜리아니 초상화 형태 변형 얼굴 아래

2023.02.24. 19:01

[뉴스 포커스] 손편지에 담긴 사연

오피니언 면 제작 담당자로 자리를 옮긴 후 기다리는 것이 한 가지 생겼다. 매주 한두 번 ‘오피니언면 담당자 앞’으로 배달되는 손편지다. 처음에는 좀 놀라기도 했다. 지금 시대에 손편지라니.... 이메일이 일상화된 후 손편지는 기억 저편의 유물이 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손편지를 주고받았던 게 언제였던가 기억조차 까마득하다. 요즘 우편함은 각종 공과금 고지서와 광고 메일로 채워질 뿐 손편지는 보기 어렵다. 편리함에 밀려 아날로그 방식의 정겨운 소통 수단 한 가지가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손편지를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발신자는 주로 오피니언 면에 게재되는 ‘독자마당’의 기고자들이다. 처음에는 타이핑을 다시 해야 하는 번거로움 탓에 넌지시 이메일을 권했다. 그랬더니 이메일 사용이 익숙지 않다며 양해를 구했다. 대부분 연령대가 높은 분들이라 이해도 됐다. 분량 또한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어서 그 정도 수고는 감내키로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잘한 생각이었다. 손편지를 받았을 때의 느낌은 컴퓨터에서 이메일을 열어 볼 때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백지에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써내려간 사연은 다양하다. 자녀와 배우자 등 가족에 관한 이야기, 한국 여행을 다녀온 소감, 인생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조언, 때로는 잘못된 사회현상에 대한 지적, 정치인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있다.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꾹꾹 눌러쓴 손글씨를 보면 어렴풋이 모습이 그려지는 분도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생각을 정리해야 하고,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다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정 과정도 있었을 법한데 필자가 받아보는 편지들은 깔끔하다. 이들의 수고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편지봉투에 주소를 쓰고,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어야 비로소 기고가 마무리된다. 여간 정성이 아닌 셈이다.     이런 수고를 마다치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본인의 생각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하고 싶은 얘기, 전하고 싶은 사연을 마음속에만 담아 둘 수 없어서다. 아마도 기고하는 분들에게는 ‘독자마당’이 또 하나의 소통 창구가 되어주고 있는 듯하다.     비록 군데군데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틀리고 표현이나 문장이 어색한 곳도 있지만 이들의 글에서는 진심이 느껴진다.  그리고 세상살이의 연륜과 진한 사람 냄새도 배어 있다. 서운함을 토로하면서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 비판을 하다가도 “오죽하면 그랬겠어”하는 식으로 마무리가 되기도 한다. 이들이 보내주는 손편지는 잊고 있었던 추억 한 가지는 물론 사람의 따스함도 소환해 주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편지가 뜸해지면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건강은 괜찮은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타이핑 무료 봉사는 얼마든지 할 테니 앞으로도 왕성한 기고 활동이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피니언 면은 신문이라는 매체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물론 검증 과정은 거치지만 각계의 다양한 주장과 의견이 제기되는 공론의 장 역할을 한다. 본지의 오피니언 지면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독자마당’의 기고자들뿐만 아니라 변호사,교수,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 수필가·시인 등 문인, 그리고 전직 공무원, 전직 교사, 사회단체 관계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정기 기고자로 활약하고 있다. 이들의 치열한 고민과 수고가 있었기에 지면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었다. 다만 어렵게 보내준 내용 모두를 지면에 소개하지 못하는 점 양해 바란다. 지나치게 개인적인 내용이라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고 판단되거나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 특정인이나 단체를 이유 없이 비방하는 글, 또 본지의 편집 방향과 맞지 않는 내용 등은 활자화되지 못했다.     올 한 해 오피니언 면을 빛내주신 기고자들의 수고에 감사를 드린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손편지 사연 오피니언면 담당자 오피니언 지면 이메일 사용

2022.12.22.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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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냉장고의 사연

 그것은 지난여름부터 말썽의 징후를 보였다. 물방울이 송송 맺혔고, 바닥에 물을 흘렸다. 평소 32~33도였던 것이 50도로 올라갔다. 전문가를 불렀더니 모터가 늙었다고 한다. 새 모터로 바꾸라는 희망적인 의견을 주었다. 의사가 다녀간 후에 멀쩡해지는 아이처럼, 냉장고의 온도는 저절로 내려갔다. 냉동 회사에서도 연락이 없기에, 다시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하루에도 수십 번 내 손을 타면서, 뭐, 나와라, 뚝딱! 하면, 가족의 미각을 맞추던, 마술사 같은 존재였다.   우편물을 꺼내오는 것은 남편의 일이다. 병원, 은행, 보험 등등, 배심원 하라는 반갑지 않은 통지도 가끔 온다. 어느 오후, 남편이 우편물을 훑어보더니, 봉투 두 개를 급히 연다. 타운에서 보낸 등기물이다. 뒤뜰의 죽은 나무를 자르라는 것과 집 앞의 아스팔트를 고치라는 내용이다. 죽은 나무에서 가지가 떨어지면, 자기 강아지가 맞을 수도 있다고 뒷집이 신고했단다. 또 하나 우편물은 집 앞, 사이드 워크(sidewalk)가 패여서 통행자들에게 불편을 주니, 고치라는 내용이다. 타운홀에 소환될 수도 있다는 은근한 협박 문구도 있다. 남편은 갑자기 분주해졌다. 사람을 불러서 견적을 내고, 유튜브를 뒤지면서 며칠 동안 열심히 공부한다.     겨울이 되었다. 기온이 내려갔으니 냉장고가 편안해질 것이라고 여겼다. 내 예상을 빗나갔다. 다시 50도로 올라갔지만, 냉장고 내부는 서늘했고, 음식들은 멀쩡했다. 여름에 병났을 때도 저절로 나았으니, 이번에도 잠시 그러다 말리라 여겼다. 50도에서 살짝살짝 숨을 쉬는 상태가 한 달 이상 계속되었다. 컨테이너를 열고 음식의 냄새를 확인했다. 케일 샐러드는 짓물렀고, 비지찌개는 조짐이 좋지 않다. 끈적거리는 진을 내 뿜는 음식들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것은 20년 동안 단순한 냉장고가 아니고 마음을 나누어 가진 존재였다. 병이 난 지난여름부터 하루에 몇 번씩 냉장고 옆을 맴돌았다. 온도를 확인했고, 물방울이 생기면 닦아내고, 바닥에 수건을 깔아서 흘리는 물을 받아냈다. 고약한 냄새를 풍긴 후에야 알아차리다니. 쓸데없는 감정 소비를 반년이나 했다. 대책 없는 긍정이 얼마나 문제인가. 새 냉장고를 주문했다.     한갓 기계에 휘둘려 미적거릴 일은 아니었다. 사람도 사귀다 보면 조짐을 보이는 징후들이 일어난다. 억지로 같이 갈려고 할 때 넘어지고 코가 깨진다. 마음은 쉽게 변하는 것이기에, 예로부터 수많은 언약과 맹세와 혈서가 등장했던 것 아닐까. 매년 다시 살아나서, 항상 사는 줄 알았던 나무도 뒤틀어졌다. 밑둥치에 벌레들이 온상을 만들었으니, 나무가 썩을 만도 했다. 썩은 나무가 잘려나가니, 하늘이 보이면서 공간이 탁 트였다.   남편은 길에 쪼그리고 앉아서 아스팔트를 바른다. 어른이 흙장난하는 것처럼 보이는지, 동네 꼬마들이 몰려와서 뭐하냐고 묻는다. 메꾼 아스팔트는 한동안은 괜찮을 것 같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냉장고 사연 번씩 냉장고 냉장고 내부 하나 우편물

2021.12.0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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