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가정상담소(KFAM)의 2025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혼란스럽고, 정신없고, 바쁜 시기였다. 일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KFAM의 모든 팀원들은 9월6일 토요일에 열리는 제42회 기념 갈라 준비에 에너지를 쏟았다. 이 행사는 단순한 모금 행사를 넘어선 깊은 의미를 지닌다. 올해 행사인 ‘동화책 갈라’의 초점은 KFAM의 입양 및 위탁 가정 이니셔티브(AFFI) 프로그램의 핵심에 맞춰졌다. KFAM은 모든 아이가 동화처럼 인생에서 행복한 결말을 맞이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현실은, 사회 복지 시스템 내의 수많은 아태계 어린이들에게 안전하고 문화적으로 익숙한 가정이 여전히 안타깝게도 요원했다. 매일 LA에서만 약 400~600명의 아태계 아동이 사회복지 시스템 내에서 필사적으로 가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중 약 40~60명이 한인 아동이지만, 한국어를 구사하고 문화적으로 적합한 위탁 가정의 수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위탁 가정의 따뜻한 마음과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들은 종종 가장 기본적인 문화적, 언어적, 정서적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가정에 배치되었다. KFAM에 오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0~5세 사이였다. 이 어린 나이에 그들의 첫 언어는 한국어였고, 흰 쌀밥, 국, 반찬 등 한국 음식을 먹으며 자랐다. 이것들은 그들에게 편안함을 주고 안전함을 느끼게 하는 맛, 냄새, 그리고 언어다. 2014년 AFFI를 통해 처음 배치했던 아이를 잊을 수 없다. 그는 시스템에 들어왔을 때 두려워하고 혼란스러워 했으며, 배치된 가족들과 소통할 수 없었던 어린 소년이었다. 한인 위탁 가정을 찾기 전, 그는 라틴계 가정, 흑인 가정, 그리고 백인 가정으로 옮겨다녔다. 각 가정은 그를 사랑하고, 먹이고, 돌보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들이 줄 수 없었던 한 가지는 소속감이었다. 그가 한인 위탁 가정에 맡겨졌을 때, 그는 완전히 말을 멈췄었다. 밥도 먹지 않았다. 아이의 정신은 사례 기록으로는 도저히 포착할 수 없는 방식으로 시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새로운 위탁모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 쌀밥 한 그릇, 김치찌개, 그리고 김을 포함한 반찬 등 소박한 식사를 그의 앞에 놓았을 때, 무언가가 변했다. 음식을 앞에 둔 아이는 고향의 한 조각을 알아보고, 먹기 시작했다. 그는 밥 한 그릇을 게걸스럽게 먹고, 또 한 그릇, 그리고 또 한 그릇을 먹었다. 그날 밤 그는 세 그릇의 밥과 셀 수 없이 많은 김을 먹었다. 그리고 몇 주 만에 처음으로 그는 입을 열었다. “밥이랑 김이 제일 맛있어요.” 그 순간은 오늘날까지도 나에게 남아있다. 그것은 문화가 부수적인 것이 아님을, 세상에 홀로 남겨진 아이에게 생명줄과 같다는 것을 우리 모두에게 상기시켜 주었다고 생각한다. 밥 한 그릇, 익숙한 김치 맛, 자신의 언어를 듣는 편안함, 이것들은 어쩌면 작은 것들이지만, 위기에 처한 아이에게는 모든 것이었다. 올해 동화책 갈라를 위해 함께 모이면서, 나는 우리 공동체가 우리 아이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행복한 결말을 주기 위해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것을 목격하길 희망한다. 왜냐하면 어떤 아이의 인생 이야기도 그들을 집으로 안내하고 소속감을 느끼게 할 자신의 문화와 공동체의 따뜻함 없이는 쓰여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캐서린 염 / 한인가정상담소 소장가정 행복통신문 기적 위탁 가정의 사회복지 시스템 문화적 언어적
2025.07.15. 18:38
나는 지금까지 이 ‘은퇴는 처음이라서’의 코너를 빌려 은퇴 계획과 노후대책에 있어서 개인의 책임을 강조해 왔다. 그런데 사실은 미국 사회에서 이민자로 살아오며 은퇴를 스스로 계획하고 준비할 만큼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 몇이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면 나의 주장은 많은 사람에게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사회의 서민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경우라면 현재의 생활조차 빠듯할 것이니 노후 대책은 까마득한 경우가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이러한 문제는 개인이 각자 알아서 해결할 수 없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지도 모른다. 그러니 국가가 나서서 대책을 마련하고 사회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을 위한 안전망을 만들어 주어야 하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이민자로 이 나라에 와 살다가 이제 은퇴를 준비하고 노후를 마주하고 있는 분 중에는 미국의 사회복지 시스템에 의존하는 것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은퇴계획이고 노후 대책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비록 우리가 이민자로 이 나라에 왔다 하더라도 이 사회의 일원이 되어 살아왔다면 언젠가는 미국 정부가 주는 혜택과 도움도 받을 수 있는 권한과 지위도 갖게 되는 것이다. 이 지위는 먼저 이민법상의 여러 절차를 거쳐서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획득하게 되었을 때 생길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일정한 법적 지위를 갖추고 이 사회의 일원으로 오래 살아왔다 하더라도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와 나라에 대한 소속감과 주인의식이 없다면 늘 자기 집이 아니라 남의 집에 얹혀살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고 자신을 이방인으로 여기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자기가 일원이 되어 살아가고 있고 또 그 안에서 나이 들어 늙어가게 될 이 사회에 대한 진정한 소속감은 이 사회에 대한 각자의 참여와 기여와 공헌에 의해 생겨나는 것 같다. 즉 각자의 위치에서 이 사회가 움직이는 데 일조해 왔고 또 그것을 함께 만들어가고 이끌어 왔다고 느낄 때 이 사회에 대한 소속감이 생기게 될 것 같다. 미국에 대한 주인의식은 자신을 미국의 주인이라고 여기고 주인처럼 행동할 때 자라나는 것 같다.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이기에 이민자들은 누구나 이곳에서 이 나라의 시민이 되고 주인이 되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미국을 진정 자기의 나라라고 느낀다면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하기 전에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자기 가족과 자기 집이라면 그것을 지키고 그것의 잘됨을 위해 희생과 봉사를 아끼지 않을 것이니 자기의 나라를 위해서도 그것의 잘됨을 바라고 그것으로부터 하나라도 얻어 내려 하기보다는 하나라도 보태려고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마음이 바로 주인의식인 것 같다. 그리고 힘들게 일한 수확에 대한 일정한 부분을 아까워하지 않고 세금으로 내고, 누가 보지 않더라도 법을 지키며 살고, 자기와 생각과 말과 문화가 다른 사람들도 사회의 일원으로 존중하면서 살아가는 일인 것 같다. 여기서 얼마나 오래 살아왔느냐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마음과 자세를 갖추었을 때 미국은 우리에게 제2의 조국이 되어 줄 것이며 그때가 바로 우리 이민자들이 미국을 나의 나라라고 부르는 때인 것 같다. 위선재 / 웨스트체스터은퇴는 처음이라서 미국 이민자 우리 이민자들 사회복지 시스템 사회 저소득층
2021.11.17.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