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mas 라는 말은 라틴어의 그리스도(Christus)와 모임(Massa)의 합성어로 사전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모임 또는 의식’을 의미한다. 크리스마스가 언제부터 종교적인 의식으로 승화되고 대중화되어 온 세계인의 축제일로 발전하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AD 303년까지만 해도 기독교 신학자들 사이에 사람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은 이집트 왕이나 죄인들이 하는 일종의 우상숭배행위로 비천 시 하는 경향이었다. 또 그것을 뒷받침하듯 성경도 예수 탄생에 대한 이야기는 누가복음에 약간 언급되고 있을 뿐 다른 성경은 그의 수난과 죽음, 부활과 구원에 훨씬 무게를 두고 있음도 사실이다. 공식적으로 12월 25일이 성탄절로 지정된 시점은 AD 350년, 로마 가톨릭 주교 율리오 1세가 이날을 ‘예수 탄신을 기념하는 날’로 선포하면서부터다. 그러나 종교개혁 후 개신교는 이 결정이 성경에 의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로마의 태양숭배 사상과 연이 닿아있다며 한때는 성탄 축하 행사를 금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기독교인은 물론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조차 12월 25일을 ‘기쁘다 구주 오셨네’ 하며 트리도 장식하고 카드도 써서 보내는 등 축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참고로 율리우스력을 신봉하는 동방교회국인 몰도바, 레바논,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등은 1월 7일을 성탄절로 지킨다고 한다. 미국은 청교도의 순수신앙 위에 세워진 나라다. 따라서 어느 나라보다 성탄절을 가장 열심히 지켜왔을 법하다. 그러나 청교도가 첫발을 디딘 뉴잉글랜드 지역의 경우 200년 넘게 크리스마스에 대한 반대가 심했고 중심도시 보스턴은 1659~1681년까지만 해도 성탄 행사 자체를 불법화하였다. 그러나 루트 교도들이 많이 살던 버지니아, 뉴욕, 펜실베이니아지역은 달랐다. 그들은 유럽에서의 관례대로 크리스마스를 지켰고 특히 독일계 주민들이 많이 살았던 베들레헴 같은 곳은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온주 국민이 앞다퉈 트리 장식 및 촛불 점화, 그림 모형들로 온 동네를불야성화하면서 ‘크리스마스 타운’이라는 별칭 속에 지금도 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크리스마스로 인해 역사의 흐름이 바뀐 전사가 있다. 1776년 12월 24일의 ‘트렌톤 전투’인데 이날 조지 워싱턴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은 델라웨어강 저편에서 트렌톤 상륙준비를 끝내고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고 방어 중인 영국군은 시내에 진 치고 있었다. 문제는 대부분의 영국군이 물러나면서부터 크리스마스를 축제일로 삼고 지켜온 독일용병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크리스마스이브에 무슨 전쟁이냐며 대낮부터 먹고 마시며 ‘메리 크리스마스’에 취해 있었다. 이날 밤 야음을 틈탄 기습전에서 워싱턴의 독립군은 대승했고 이후 미국이 독립전쟁에 승기를 잡게 된다. 미국은 1860년 뉴잉글랜드를 비롯한 13개 주가 성탄절을 법정 공휴일로, 1875년 그랜트 대통령에 의해 연방 공휴일로 서명 공표된다. 같은 해 크리스마스 아버지로 불리는 루이스 루팽에 의해 크리스마스 카드가 보급되기 시작했고 이후 수많은 책과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청교도 정착 후 200년, 독립 후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잘못된 신앙관에 의해 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이 침묵했음은 안타깝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미국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타운 메리 크리스마스 주가 성탄절
2022.12.23. 17:28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 이번 주말 한국에서 출판될 나의 책 제목이다. 1985년, 뉴욕·뉴저지 최초 한인 교사 중 하나로 일할 때 처음 신문에 칼럼을 쓰게 되었다. 당시 담당 기자는 끈질기게 나를 들볶으셔서, 매주 미국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한인 부모님들이 꼭 알아야 할 이야기들, 자녀 교육에 관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참 많이 나누었다. 그러다 그 기자가 다른 데로 옮기고 나도 힘든 일이 생기면서 한동안 기고를 중단했었다. 한 오년 전부터, 다시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은 욕망이 슬슬 일어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내 안에는 늘 말하고 싶어 꿈틀대는 이야기들이 있었던 것 같다. 이 이야기들을, 이 생각들을, 말하지 않고 혼자만 가지고 있는 게 너무 아쉬워, 다시 칼럼을 쓰겠다고 연락을 드렸다. 기자는, 이제는 데스크의 허락이 필요하니 글을 하나 보내라고 했다. 글자 수 맞춰 칼럼 하나 쓰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가는데, 바빠도 쓰겠다는데, 글구 전에 얼마나 많이 썼는데 허락이라니. 하지만 절차라기에 글을 보냈다. 당장 그것부터 이번 주에 내자고 연락이 와, 다시 칼럼을 시작했다. 그때는 심리치료사로 제2의 인생을 살 때라 주로 정신 건강, 회복 탄력성, 감사의 자세, 소통의 중요성 같은 주제의 글을 썼다. 요즘 새로운 모임에 가면, 신문에서 글 잘 읽고 있다면서 좋은 글 도움 된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럴 때면, 아, 역시 말하기 잘했다, 소통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이나, 학부형 등을 대상으로 한 여러 세미나 부탁도 기꺼이 임하는 편이다. 살면서,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기에, 아니 대부분이기에, 이렇게 나는 늘 말하고 소통하는 것에 전력을 다해왔던 것 같다. 얼마 전, ‘수학용어사전’ 출판으로 인연을 맺은 출판사 ‘자유로운 상상’의 대표님이 내 칼럼들을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을 때 많이 주저가 되었다. 그러다가, 따뜻하고 좋은 글들 꼭 사람들이 읽게 하고 싶다는 말씀에 용기를 얻었고, 한국 인지도가 있는 사람도 아닌데 믿어주는 출판사에 감사했다. 신나게 제목을 북클럽에 공모했다. ‘내려가는 길을 올라가며’, 내리막 같은 삶의 길을 그래도 한번 올라가 보자고 홧팅하는 나의 메시지들이다 보니. ‘도움 닫기 멀리 뛰기’, 내가 다루는 정신건강, 심리학, 배움, 노력, 사람, 나눔 이야기들이 좀 더 멀리 뛰는 것을 도와준다고. ‘밥물 좀 볼까요’, 살면서 갸우뚱할 때 나의 글이 밥물 한번 봐준 덕에 입맛과 퍼즐처럼 맞는 밥이 지어진다는 요리 대가 회원의 기발한 제목. ‘마음이 온통 귀가 될 때’, 늘 소통하고 들어주는 심리치료사 내 모습. ‘우리를 철들게 하는 것들’, 이 나이에도 계속 철이 들어가는 갈팡질팡 나의 고백들이라서? 이외에도 여러 제목을 가지고 고심 끝에 출판사와 최종 합의된 제목은,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다. 내가 그리도 나누고 싶어하는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이 책에 적합한 제목 같다. 이 책에서 나오는 인세는, 전액 남편 생전 함께 계획했던, Love and Compassion (시편 103:4) Fund에 기증하여, 한국 미혼모·미혼부 지원 단체인 ‘러브더월드’에 보낼 생각으로, 이 겨울 부끄러운 글들을 세상에 내보낸다. (문의 문자 201-727-3107, 이메일 [email protected]) 김선주 / NJ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이야기들 자녀 정신건강 심리학 한국 인지도
2022.12.21. 19:39
숨으려다 들킨 사람처럼 나는 아들의 물음에 움찔했다. 올해는 성탄 모임을 안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여름에 남편의 칠순 잔치를 했을 때, 우리 집이 코로나의 진원지가 되었다. 다음 날, 맨해튼 사는 젊은 애 엄마가 열이 나더니 일가족 넷이 다 아프고, 그다음 날은 브루클린에서 온 가족이 발열이 시작되었다. 친척 카톡방은 돌려가며 뽑기라도 하듯이, 코로나 사태로 한동안 분주했었다. 칠순이라고 조카들에게 선물과 덤으로 포옹까지 받은 남편은 며칠을 드러누워 있어야 했다. 코로나 때문인가? 우리 집에서 몇십 년 해 오던 연례 성탄 파티를 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마음 깊은 곳에서 핑계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사촌들이 할리데이 파티가 언제냐고 물어봐요. 어떻게 해요?” 아들이 다시 물었다. 오래전 파티를 처음으로 시작할 때, 나보고 하라는 등 떠민 것도 아니었다. 혼자 자라는 아들 옆에 사람이 북적거렸으면 했다. 어른 친척들은 파티를 환영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대목이라 꽃 배달을 밤 10시까지 한다는 A, 할리데이에는 직원 대신 빨래방을 지켜야 한다는 B, 마지막 순간에 네일을 하는 손님이 밀린다는 C…. 다들 먹고 사는 이유였다. 반찬집 음식이나 디저트를 들고 느지막이 나타나는 친척들이 그저 고맙기만 했다. 내가 총대를 멜 수밖에 없었다. 어느 해 12월은 주메뉴를 프라임 립(prime rib)로 정했다. 아이들은 시뻘건 레어(rare)를, 어른들은 겉은 브라운, 안은 핑크를 선호했다. 고기 한 덩이에 두 가지가 나오도록 미리 연습해 보기도 했다. 어른으로 진입한 아이들은 머릿수를 자랑하는 부족 대회라도 하는 듯했다. 많이 모일수록 좋아했다. 육촌, 팔촌, 사돈의 팔촌까지 세를 늘리더니, 파트너까지 50여 명에 이르렀고, 새 생명이 여기저기서 태어났다. 젊음의 절정에 있는 아이들은 12월이면 빨강, 초록으로 꾸민 올망졸망 아이들을 매달고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이토록 성업 중인 패밀리 비즈니스(?)를, 그것도 내가, 올해 유독 뜨악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며느리가 눈치를 채고 말한다. “어머니, 음식은 저희가 어레인지 할게요!” “정말?” 나는 미심쩍어하는 아이처럼 다시 물었다. “이제는 좀 쉬세요!” 이렇게 좋을 수가. 바로 그거였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이. 몇 년 사이에 나도 모르게 음식 준비가 버거워진 거였다.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이메일로 메뉴 차트를 돌리며 신나게 파티 준비를 하고 있다. 아, 쓸데없는 기우였다! 좀 더 일찍 넘겨도 될 걸 그랬다. “올해부터 우리가 하던 준비를 아이들이 한답니다. 30년 후쯤에는 자기들도 넘긴다고요. 우리는 케이크나 하나씩 들고 오래요. 그날 봬요!” 나는 날아갈 듯이 어른 카톡방에 문자를 올렸다. 기대감이 풍선처럼 떠오른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할리데이 파티 어른 친척들 어른 카톡방
2022.12.09. 21:52
지금 지구촌은 축제 중이다. 제22회 FIFA 월드컵이 중동의 작은 나라 카타르에서 열리고 있어서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은 역사상 아랍권은 물론 이슬람권에서 처음 개최되는 의미 있는 경기다. 카타르의 월드컵 개최 신청은 의외였다. 무엇보다 축구인들의 공감대를 얻기에 부족한 점에서 더욱 그랬다. 세계적인 축구 강국도 아닌 데다 그렇다 할 국제경기를 치러본 경험도 노하우도 전무한 데다 한국처럼 전 국민의 열화 같은 지지를 얻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사막의 지형도를 획기적으로 반전시켜 유명세에 편성해 보고자 하는 산유국의돈 잔치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카타르는 한낮 기온이 40~50도를 오르내리고 국토 또한 너무 작고 협소해 FIFA가 제시하는 최소 경기장 12개 조성조차 충족지 못하고 5개 도시 8개 스타디움에서 그 많은 경기를 돌려야 하는 물리적 한계까지 지녔다. 여기서 말이 5개 도시 8개 경기장이라지만 셋은 수도 도하에 위치하고 루시일, 아리얀, 알와크 스타디움조차 다 도하의 위성도시라 선수나 관람자 입장에서는 편리한 호조건이기도 하다. 카타르 월드컵은 2010년 12월 2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22명의 FIFA 집행위원회에서 투표로 결정되었는데 당시 개최를 신청한 국가는 카타르는 물론, 미국, 한국 일본 등도 있었다. 투표결과는 카타르 14표, 미국이 8표를 얻었는데 이 과정에서 카타르 정부가 500만불의 뇌물을 공여하였다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기도 하였다. 카타르로 낙점된 뒤에도 불볕더위 문제는 뜨거운 감자 중 하나였다. 이에 카타르 정부는 8개 전 경기장의 관중석은 물론 그라운드까지 에어컨을 가동해 역대 어느 대회보다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기에 이르렀고 실제로 지금까지 더위로 인한 폐해가 보고되지 않고 있다. 예선 32강에서 한국은 포르투갈, 우루과이, 가나가 풀리그를 펼쳤다. 다들 지역 예선을 뚫고 어렵게 올라온 강호들이라 어느 한 팀이라도 만만치 않아 첫 경기에서 우루과이와 비기고 두 번째 상대 가나에 패하므로 16강 꿈이 좌절되는 듯했으나 한국의 위대함은 위기의 순간 빛을 발하지 않았던가? 남은 마지막 한 경기 포르투갈전에서 손흥민과 황희찬의 그림 같은 협업으로 포르투갈에 2대1 역전승을 거두고 2010년 남아공 대회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루면서 꿈은 계속되는 듯했다. 그러나 한국에 월드컵의 벽은 역시 높고 강했다. 지난 월요일 피파 랭킹 1위이자 영원한 우승 후보 브라질을 상대로 한 16강전에서 4대1로 패하면서 그 꿈을 일단 접어야 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가운데 “전장에서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말이 있다. 옛날 중국의 덕망 높은 임금이 전쟁에 패한 뒤 낙망 중인부하 장수를 위로하기 위해 한 말로 더 준비해 다음 전쟁을 잘 준비하라는 당부일 것이다. 이 말을 브라질전에 패해 낙심 중인 우리 선수와 국민에게 적용하면 경기에서 지고 이김은 ‘병가지상사’일 것이다. 경기하다 보면 16강에서 스위스를 6대1로 대파한 강호 포르투갈을 이길 수도, 약간 약체라고 봤던 가나에 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승패 자체가 아니다. 승패 후 정확한 자기 진단과 확고한 대비책으로 다음을 대비함이 경기자들이 임할 자세가 아닐까.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카타르 월드컵 경기 포르투갈전 카타르 정부
2022.12.09. 17:28
숨으려다 들킨 사람처럼 나는 아들의 물음에 움찔했다. 올해는 성탄 모임을 안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여름에 남편의 칠순 잔치를 했을 때, 우리 집이 코로나의 진원지가 되었다. 다음 날, 맨해튼 사는 젊은 애 엄마가 열이 나더니 일가족 넷이 다 아프고, 그다음 날은 브루클린에서 온 가족이 발열이 시작되었다. 친척 카톡방은 돌려가며 뽑기라도 하듯이, 코로나 사태로 한동안 분주했었다. 칠순이라고 조카들에게 선물과 덤으로 포옹까지 받은 남편은 며칠을 드러누워 있어야 했다. 코로나 때문인가? 우리 집에서 몇십 년 해 오던 연례 성탄 파티를 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마음 깊은 곳에서 핑계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사촌들이 할리데이 파티가 언제냐고 물어봐요. 어떻게 해요?” 아들이 다시 물었다. 오래전 파티를 처음으로 시작할 때, 나보고 하라는 등 떠민 것도 아니었다. 혼자 자라는 아들 옆에 사람이 북적거렸으면 했다. 어른 친척들은 파티를 환영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대목이라 꽃 배달을 밤 10시까지 한다는 A, 할리데이에는 직원 대신 빨래방을 지켜야 한다는 B, 마지막 순간에 네일을 하는 손님이 밀린다는 C…. 다들 먹고 사는 이유였다. 반찬집 음식이나 디저트를 들고 느지막이 나타나는 친척들이 그저 고맙기만 했다. 내가 총대를 멜 수밖에 없었다. 어느 해 12월은 주메뉴를 프라임 립(prime rib)로 정했다. 아이들은 시뻘건 레어(rare)를, 어른들은 겉은 브라운, 안은 핑크를 선호했다. 고기 한 덩이에 두 가지가 나오도록 미리 연습해 보기도 했다. 어른으로 진입한 아이들은 머릿수를 자랑하는 부족 대회라도 하는 듯했다. 많이 모일수록 좋아했다. 육촌, 팔촌, 사돈의 팔촌까지 세를 늘리더니, 파트너까지 50여 명에 이르렀고, 새 생명이 여기저기서 태어났다. 젊음의 절정에 있는 아이들은 12월이면 빨강, 초록으로 꾸민 올망졸망 아이들을 매달고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이토록 성업 중인 패밀리 비즈니스(?)를, 그것도 내가, 올해 유독 뜨악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며느리가 눈치를 채고 말한다. “어머니, 음식은 저희가 어레인지 할게요!” “정말?” 나는 미심쩍어하는 아이처럼 다시 물었다. “이제는 좀 쉬세요!” 이렇게 좋을 수가. 바로 그거였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이. 몇 년 사이에 나도 모르게 음식 준비가 버거워진 거였다.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이메일로 메뉴 차트를 돌리며 신나게 파티 준비를 하고 있다. 아, 쓸데없는 기우였다! 좀 더 일찍 넘겨도 될 걸 그랬다. “올해부터 우리가 하던 준비를 아이들이 한답니다. 30년 후쯤에는 자기들도 넘긴다고요. 우리는 케이크나 하나씩 들고 오래요. 그날 봬요!” 나는 날아갈 듯이 어른 카톡방에 문자를 올렸다. 기대감이 풍선처럼 떠오른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할리데이 파티 어른 친척들 어른 카톡방
2022.12.07. 21:39
추수감사절! 그 시작은 필그림 파더스로 불리는 102명이 메이플라워를 타고 1620년 9월 16일, 영국 남부플리머스 항을 출항 66일간의 항해 끝에 11월 11일 케이프 카드의 프로빈스 항에 불시착 후 다음 해 3월 21일 살아남은 단 53명이 플리머스 락을 밟으면서부터다. 그러나 수년 전 버지니아 정착촌 건설에 도전했던 이민자들이 원주민과의 충돌로 인해 대부분 살해당하므로 실패한 전철을 고려하면 이들 53명의 운명도 순탄해 보이지 않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필그림 파더스는 달랐다. 신앙에 바탕을 둔 순례자의 행위를 의롭게 보신 하나님의 보살핌이 있었던지 그 지방 인디언 ‘암파노아그’ 부족이 영어를 잘 구사하는 한 청년을 대동하고 나타나 도움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집을 세우고 농토를 개간한 뒤 옥수수 등의 재배법을 알려주는 친절을 베푼 것이다. 필그림은 그해 가을 풍성하게 수확할 수 있었고 감사의 표시로 추장 등 90여 명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푼 것이 오늘날 ‘Thanks giving Day’의 원조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7년 풍년을 이끌었던 총리 요셉의 공적이 후대 임금에게 무시당한 것처럼 ‘암파노아그’에 대한 감사도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오히려 더 많은 이민자가 몰려오면서 이제 원주민 인디언들은 빼앗고 죽이고 쫓아내야 할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고 54년 후인 1675년 정착민과 ‘암파노아그’ 사이에 전쟁이 발발, 4000여 명이 죽음으로 부족이 멸절되다시피 했다. 우리가 지키는 추수감사절! 일가친척들이 모처럼 한집에 모여 기쁨의 잔치를 통해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그 시간, 박힌 돌격인 왐파노아그 부족을 필두로 한 뉴잉글랜드 원주민연합(UAINE)은 오후 1시 애도의 날(Day of Mourning)로 지키며 이민자들의 배은망덕에 울분을 토하는 것을 생각하면 착잡함을 금할 수 없다. 앞서 언급한대로 살아남은 필그림 53명이 정착촌을 건립할 때 유창한 영어로 인디언 부족과의 소통을 도왔던 특이한 이력의 인물이 있었다. ‘스콴토’라는 청년으로 인근의 파두셋 부족이다. 그는 1605년경 뉴잉글랜드 일대 해안을 탐사 중이던 조지 웨이머스 선장에게 동료 4명과 함께 포로가 되어 런던으로 끌려간 뒤 가톨릭 신앙인이 되었고 우여곡절을 끝에 조선업자 존 슬래비어라는 사람의 집에 수년간 기거하며 충실하게 영어를 익힌 뒤 안내자 겸 통역자가 되었다. 그런 뒤 재주 좋게 뉴잉글랜드 탐험대의 통역 요원이 되어 1619년 꿈에 그리던 고향 땅으로돌아와 필그림의 정착을 돕는 일을 감당하게 된다. 성경에는 예수의 십자가를 나눠진 시몬 이야기가 나온다. 시골 구레네에서 관광차 예루살렘에 와 우연히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힘들게 오르는 예수를 맞이하게 되고 불의한 로마 병정의 명령에 따라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된 재수 없는 경우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행위를 의롭게 보았던지 그는 물론 어머니와 아들을 초대교회사에 기여한 거룩한 인물로 기록하고 있다. 스콴토 또한 그렇다. 15년 전 불행 같았던 포로생활이 오히려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미국 건국사에 이름을 올리게 됨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추수감사절 이야기 뉴잉글랜드 원주민연합 시몬 이야기 필그림 파더스
2022.11.25. 21:37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건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 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풀꽃 시인으로 잘 알려진 나태주의 시 ‘11월’ 이다.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흘러 왔고, 버리기엔 차마 아까운 시간’ 11월의 어정쩡한 시간을 이렇게 공감 있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11월은 떠나가는 가을이 아쉽고, 다가오는 겨울이 반갑게 느껴지는 달이다. 요 며칠 사이에 조석으론 벌써 쌀쌀한 겨울 추위가 맛보기로 느껴지는 듯하다. 시간과 계절은 서로 앞서거니 뒤따르거니 마냥 달려가더니 덜컹 2022년의 꽁무니가 저만치 보인다. 대자연의 신비와 섭리,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오랜 세월 북미 대륙에서 농사와 사냥으로 살아왔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시간과 계절을 아는 지혜가 있었다. 그들은 일 년 열두 달을 주변에 있는 풍경의 변화나 그들 마음의 느낌을 주제로 그 달(月)의 명칭을 정했다. ‘기러기가 돌아오는 달’(2월), ‘생의 기쁨을 느끼게 하는 달’(4월), ‘옥수수 수염이 나는 달’(6월), 등 계절의 변화를 정서적으로 표현한 달의 명칭이 2월, 4월, 6월 숫자 명칭보다 느낌이 훨씬 더 좋다. 뉴멕시코와 애리조나 주 지역에 살았던 푸에블로족은 11월을 ‘만물을 거두어들이는 달’ 이라 불렀다. 그들은 옥수수와 콩 농사의 추수를 거두어들이고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신께 감사하는 달이 바로 11월이었다. 미네소타주의 아칸소강을 따라 살았던 아라파호족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이라 불렀다. 낙엽이 수북이 쌓이고, 첫눈이 온 땅을 덮어 만물이 감추어졌어도 모든 것이 사라진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콜로라도 로키산맥에 거주했던 키오와족은 둥근 달이 뜬 밤하늘에 겨울 철새들이 떼를 지어 날아가는 걸 보며, 11월은 ‘기러기가 날아가는 달’ 이라 불렀다. 우리의 달 이름에도 11월을 ‘미틈달’, 12월은 ‘매듭달’, 다음 해 1월은 ‘해오름달’ 이라 부른다. 미틈달은 ‘가을을 밀쳐내고 겨울로 치닫는 달’ 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 한 해의 힘든 농사와 추수를 마치고, 빨리 겨울 농한기를 맞아 쉬고 싶었던 우리 조상들의 심정을 느낄 수 있는 명칭이다. 미국의 11월은 ‘감사의 달’ 이다. 영국인 청교도 102명이 종교의 자유를 찾아 60여일의 항해 끝에 대서양을 건너 미 대륙에 닻을 내린 때는 1620년 11월 21일이었다. 긴 항해, 질병, 열악한 환경, 혹독한 추위로 이미 절반이 사망했으나, 주위에 거주했던 원주민 왐파노아그족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들이 이웃 원주민이 전해 준 씨앗과 곡물, 농사법을 배워 눈물로 씨를 뿌리고 열심히 일해서 1621년 11월, 기쁨으로 첫 농사를 추수하고, 이웃의 왐파노아그족을 초대하여 감격적인 ‘감사의 예배’를 드렸던 것이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의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때의 감격은 세월이 흐르면서 변질했지만.... 감사절은 구약성서에 “초막절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유대인들은 기원전부터 토지의 소산을 추수하여 저장한 후, 7일 동안 감사제를 자손 대대로 지켜 온 것이 기원이라 할 수 있다. ‘감사하는 삶’과 ‘감사하지 않는 삶’은 기독교인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이분법 문제가 아니라, 삶의 목적과 가치관의 문제라고 본다. 우리도 낯선 타국에 이민 와서 언어장벽, 문화 차이, 환경적응, 경제문제, 인종차별, 세대간의 갈등 등 생존의 고통들이 눈물겹게 힘들었지만 되돌아보면 은혜요, 축복이요, 감사할 조건들이 많다.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고, 버리기엔 차마 아까운 시간, 11월을 감사로 채우면 어떨까! 이보영 / 전 한진해운 미주본부장살며 생각하며 감사 시간 동안 감사제 시간 11월 환경적응 경제문제
2022.11.21. 20:44
9월 초부터 40여 일을 한국에서 지냈다. 3년 만에 찾은 한국은 일단 참 편리했다. 지하철, 기차, 버스 어디든 인터넷이 연결됨은 물론, 다음 버스는 몇 분 후에 도착하며 사람이 많은지, 이 전철 어느 문에서 타면 사람이 덜 많은지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간혹 건널목 바닥에까지 설치된 신호등과 편하게 기다리라고 세워놓은 파라솔, 지하철역 내의 깨끗한 화장실은 감탄스러웠다. 친구와 산책하다 앉았던 한 공원 벤치 옆에는 책이 가득 꽂힌 책꽂이가 있었다. 지하철 문에도, 시골 담장에도 가슴을 흔들어주는 시들이 쓰여 있는 이 감성의 나라, 산속이며 물가 곳곳의 널찍한 카페들은 왜 그렇게 예쁘고 운치가 있는지! 디지털 최강국답게 작은 호두과자 가게든, 큰 음식점이든 키오스크 화면으로 주문하고, 식당에는 로봇들이 돌아다니며 서빙을 돕는다. 전기차도 미국보다 훨씬 많고 생활화되어 있다. 하루는 은행에 갔더니, 도수 별로 돋보기안경들이 준비되어 있다. 나같이 40년 외국에서 산 사람, 이런 배려 완전 감동이다. ‘Trying Too Hard’라는 이모지(식은땀 흘리면서도 웃고 있는 얼굴)를 생각게 하는, 편리와 안전을 엄청 배려하는, 흠, 한국, 너란 나라! 힘들었던 것으로 말씀드리자면, 쓰레기와의 사투였다. 특히, 과일도 껍질까지 먹어버리고 싶게 만드는 음식물 분리수거! 사과 껍질은 음식물 쓰레기고, 파인애플 껍데기는 수분을 말려 잘게 잘라 일반 쓰레기에 버려야 함을 아시는지. 옥수수 알은 음식물 쓰레기고 껍질과 대는 일반 쓰레기라는 사실은 아시는지. 심지어 아이디로 무게를 자동 감식하는 전자 쓰레기통이 설치된 동네도 있다니! 이동식 감시 카메라가 감시하고, 규정을 어길 시 100만원 이하 과태료 사인이 붙어 있다. 오피스텔을 떠날 즈음에는 쓰레기 완전 정복이 이루어졌는데, 나도 모르게 쓰레기양을 줄이려고 애쓰게 되는 걸 보면서, 미국도 이런 점은 많이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 한국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수많은 지시 사항과 안내 사인이다. 이번에 가보니 지하철에서 교통카드를 댈 때마다 “마스크를 착용해 주세요” 한다. 한국에 마스크 안 쓰는 사람 1도 없다!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서면, “손잡이를 잡아 주세요. 걷지 말아 주세요” 등, 너무도 당연한 것에 대해 안내를 하는 것이 늘 신기했다. (하긴 그런데도 에스컬레이터 한쪽으로는 늘 사람들이 걷는다!) 때로는 어린 애들도 아닌데 구태여 이런 기본적 안내까지 해야 하나 하면서도, 역시 한국은 국민의 안전과 편의를 우선하는 나라라고 좋게 생각했었다. 그랬기에, 돌아온 지 약 보름 만에 발생한 이태원의 어이없는 사고가 큰 충격으로 다가왔음은 물론이다. 작은 일에도 안전과 편의에 신경을 쓰는 나라가 한국이던데 안타깝다 못해 멘붕에 빠져 며칠을 보냈다. 피부에 느껴지는 환경은 분명 좋아졌는데, 소득이나 생활 수준 격차에서 오는 좌절감은 더 심해진 듯했고, 그래서 그런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던 지하철이나 길거리 사람들 표정 또한 떠올랐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한국, 너란 나라! 이제는 사회 구조적으로도 깨어, 안전하고 더 책임 있게 국민의 행복을 향해 가는 그 길만 걷게 되길 기도한다. 김선주 / NJ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한국 나라 하나 한국 전자 쓰레기통 쓰레기 완전
2022.11.15. 20:04
2022년 10월 29일 저녁 6시 34분. 112, 119를 찾는 전화 소리가 요란하다. ‘핼러윈’의 한국 원조 거리 이태원의 해밀턴호텔 옆 골목이 지하철에서 흘러들어온 인파와 근처 클럽에 입장하려고 줄을 선 사람들로 뒤엉켜 압사당하기 일보 직전이니 빨리 구출해달라는 내용이다. 그 후 밤 10시까지 무려 79건의 비슷한 신고가 줄을 이었으나 관련 당국은 먹고 마시고 자며 허허했다. 그리고 밤 10시 15분, 외국인 26명 포함 우리 청소년 156명이 사망하고 196명이 다치는 전대미문의 참사가 한국의 수도 서울, 그것도 대통령 집무실에서 지근거리인 용산 이태원에서 발생하여 전 국민을 슬픔과 허탈, 좌절케 하였다. 사전에 대비책을 어느 정도 세웠거나, 쇄도한 신고 전화에 조금만 반응했더라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죽음은 막았지 않았나 하는 자괴감에서다. Halloween에서 Hallow는 성인(Saint)이라는 의미의 고 영어다. 오래전 가톨릭에서는 매년 11월 1일을 All Hallow’s day라 하여 ‘천국에 가 있는 모든 성인을 기리는 행사’를 열어왔는데 그 전야 10월 31일은 All Hallow’s Day Evening이라 칭한 데서 ‘핼러윈’이란 말이 생겼으나 내용을 살펴보면 종교나 신앙은 없고 귀신이나 주술 등의 신비주의만 가득한 미신적 행사였다. ‘핼러윈’의 유래에 대해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고대 켈트족 ‘서우인 축제’다. 켈트족은 1년을 10달, 계절을 겨울과 여름으로만 나누고 총 4개의 기념일을 지켰는데 그중 가장 큰 명절을 한해의 마지막인 10월 31을 서우인(Samhain)이라 하며 ‘죽음과 유령을 찬양하는 축제놀음’을 벌였다. 그들은 이날 저승의 문이 열려 조상들은 물론 이상한 잡귀들이 빠져나와 이승을 방문한다고 믿으면서 귀신 복장을 하고 거리를 다니며 ‘Trick or Treat’ 하며 과자를 달라고 한 것이 ‘핼러윈’이 되었다는 설이다. 이렇게 ‘핼러윈’ 발상지는 유럽이고 현저하게 꽃을 피운 나라는 미국이라면 오늘날 가장 거세게 지키는 나라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다. 사실 미국에서는 수년 전 아이들에게 독이 든 사탕을 주는 범죄가 발생하면서 열기가 옛날 같지 않고, 한인 교회들은 이날, 아이들을 교회로 불러 안전하고 은혜스러운 새 어린이 축제로 승화시켜나가고 있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대형 사건 사고가 발생하는 데는 같은 원인과 징조가 사전에 수십 차례에 걸쳐 나타난다는 통계적 논리다. 1931년 Traveles 보험회사 손실통제 부서에서 근무하던 허버트 하인리히라는 사람이 ‘산업재해 예방’이라는 책을 통해 주장하여 유명 해졌는데 지금도 그 분야의 교과서다. 이태원 참사도 마찬가지다. 단지 징후와 대비방책은 넘쳤지만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이 법칙을 무색게 했을 뿐이다. 오히려 4시간여 동안 죽음의 현장에서 몸을 아끼지 않은 79건의 한국 디지털 세대들의 거룩한 신고음성만이 선한 기록으로 남았다. 바라기는 이 음성들을 새 항목으로 추가한 제2의 하인리히 법칙을 만들어 세계 재난사에 새로운 이정표로 제시되었으면 한다. 그래야 저들의 무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고 또 다른 유형의 압사, 붕괴, 침몰, 깔림 같은 후진성 인재들이 마침표를 찍지 않을까 싶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하인리히 승화 하인리히 법칙 이태원 참사도 한국 디지털
2022.11.11. 16:29
9월 초부터 사십여 일을 한국에서 지냈다. 삼 년 만에 찾은 한국은 일단 참 편리했다. 지하철, 기차, 버스 어디든 인터넷이 연결됨은 물론, 다음 버스는 몇 분 후에 도착하며 사람이 많은지, 이 전철 어느 문에서 타면 주로 사람이 덜 많은지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간혹 건널목 바닥에까지 설치된 신호등과 기다리는 동안 안락하라고 세워놓은 파라솔, 지하철 역내의 깨끗한 화장실들은 감탄스러웠다. 친구와 산책하다 앉았던 한 공원 벤치 옆에는 책이 가득 꽂힌 책꽂이가 있었다. 지하철 문에도, 시골 담장에도 가슴을 흔들어주는 시들이 쓰여 있는 이 감성의 나라, 산속이며 물가 곳곳의 널찍한 카페들은 왜 그렇게 예쁘고 운치가 있는지! 디지털 최강국답게 작은 호두과자 가게든, 큰 음식점이든 키오스크 화면으로 주문하고, 식당에는 로봇들이 돌아다니며 서빙을 돕는다. 전기차도 미국보다 훨씬 많고 생활화되어 있다. 하루는 은행에 갔더니, 도수 별로돋보기 안경들이 준비되어 있다. 나같이 40년 외국에서 산 사람, 이런 배려 완전 감동이다. ‘Trying Too Hard’라는 이모지(식은땀 흘리면서도 웃고 있는 얼굴)를 생각게 하는, 세심한 편리와 안전을 엄청 배려하는, 흠, 한국, 너란 나라! 힘들었던 것으로 말씀드리자면, 쓰레기와의 사투였다. 특히, 과일도 껍질까지 먹어버리고 싶게 만드는 음식물 분리수거! 사과 껍질은 음식물 쓰레기고, 파인애플 껍데기는 수분을 말려 잘게 잘라 일반 쓰레기에 버려야 함을 아시는지. 옥수수 알은 음식물 쓰레기고 껍질과 대는 일반 쓰레기라는 사실은 아시는지. 심지어 아이디로 무게를 자동 감식하는 전자 쓰레기통이 설치된 동네도 있다니! 이동식 감시 카메라가 감시하고, 규정을 어길 시 100만원 이하 과태료 사인이 붙어 있다. 오피스텔을 떠날 즈음에는 쓰레기 완전 정복이 이루어졌는데, 나도 모르게 쓰레기양을 줄이려고 애쓰게 되는 걸 보면서, 미국도 이런 점은 많이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 한국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수많은 지시 사항과 안내 사인이다. 이번에 가보니 지하철에서 교통카드를 댈 때마다 “마스크를 착용해 주세요” 한다. 한국에 마스크 안 쓰는 사람 1도 없다!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서면, “손잡이를 잡아 주세요. 걷지 말아 주세요” 등, 너무도 당연한 것에 대해 안내를 하는 것이 늘 신기했다. (하긴 그런데도 에스컬레이터 한쪽으로는 늘 사람들이 걷는다!) 때로는 어린 애들도 아닌데 구태여 이런 기본적 안내까지 해야 하나 하면서도, 역시 한국은 국민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Trying Hard 하는 나라라고 좋게 생각했었다. 그랬기에, 돌아온 지 약 보름 만에 발생한 이태원의 어이없는 사고가 큰 충격으로 다가왔음은 물론이다. 경찰이 CCTV로 감시하며 쓰레기 불법 투기범(!)을 잡아낸다는 정보의 나라, 이렇게 세심하게 작은 일에도 안전과 편의에 신경을 쓰는 나라가 한국이던데!!!! 안타깝다 못해 멘붕에 빠져 며칠을 보냈다. 피부에 느껴지는 환경은 분명 좋아졌는데, 소득이나 생활 수준 격차에서 오는 좌절감은 더 심해진 듯했고, 그래서 그런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던 지하철이나 길거리 사람들 표정 또한 떠올랐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한국, 너란 나라! 이제는 사회 구조적으로도 깨어, 안전하고 더 책임 있게 국민의 행복을 향해 가는 그 길만 걷게 되길 기도하면서, 뉴욕의 가을이 깊어 간다. 김선주 / NJ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한국 나라 전자 쓰레기통 하나 한국 쓰레기 완전
2022.11.09. 20:54
“참 오래 애썼다. 너에게 진 빚, 어떻게 다 갚아?” “우리가 모르고 산 것 아니냐, 다 알아. 이제부터는 너희도 오붓하게 우리도 오붓하게 살아보는 거야.” 이어 “한마디만 더할게요” 한 뒤 며느리를 향해 90도 머리 숙여 울먹이며 “감사합니다.” 그리고 현관을 향해 걸으며 하는 말 “앞으로 신세 질 일 전혀 없지는않겠지만, 그동안 정말 하늘만큼, 땅만큼 고마웠다.” 요즘 아침나절에 재방송 중인 ‘그래 그런 거야’ 라는 드라마 44회에 나오는 대사 일부다. 노부부가 수십 년 함께 살았던 셋째 아들 집에서 분가키로 작정한 뒤 이사하는 날 아침, 시어머니 강부자가 그동안 모시고 고생하며 산, 막내며느리 김해숙에게 하는 감사의 표현이다. 말솜씨의 달인 작가, 김수현이 썼다는 것을 고려해도 너무 감동적이다. 도저히 한국사회의 고부지간에 있을법한 장면과 대화가 아니라 귀를 의심하며 몇 번이고 유튜브를 돌려가며 받아적어 소개한다. 앞으로 우리 가정의 말문화가 이처럼은 아니라도 조금씩의 변화를 기대하는 소망과 함께 말이다. 말의 사전적 뜻은 사람의 생각과 뜻을 담아 내놓는 그릇인 동시 뜻과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맛있게 요리한 음식을 어울리는 그릇에 제대로 담아 정성스럽게 치장하는 것을 플레이팅이라 하여 훌륭한 셰프는 요리실력만큼 이 분야의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한다. 말도 마찬가지다. 같은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듯이 때와 장소 분위기는 물론 누가 어떻게 표현되느냐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말도 플레이팅이 필요하지 않을까? 빛깔 좋게 담긴 음식이 맛도 좋고 건강에도 유리해 보이듯이 말 또한 곱게 다듬고 향취를 더할 때 더 맛깔나고 진정성 있게 전해지며 때로는 감정선까지 자극하기도 한다. 그 좋은 예가 강부자의 대사다. 그녀가 짧은 감사의 말을 울음과 함께 허리 굽힌 최상의 겸손이란 그릇에 담아 전달하므로 며느리는 물론 시청자들의 마음마저 훔쳐가고 있는 것이다. 일반인들의 경우 보통 하루에 20만 단어나 되는 말을 한다고 한다. 책 한 권의 원고량이 대략 18만 단어라고 한다니 우리는 매일 책 한 권, 일 년에 400여권, 한평생 3만여권의 자서전을 쓰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말이 많다고 다 좋거나 쓸만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악한 생각과 음란과 도둑질, 살인과 간음, 탐욕과 속임수, 질투와 비방, 교만, 우매함’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부처님 또한 ‘생각은 말로, 말은 행동을, 행동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성격으로 굳어진다’라며 생각과 말의 무서움을 경고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말의 순기능은 이웃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배우고 익힌 진리를 표현하며, 변화된 문명을 전달하라는 뜻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신 특별한 은혜다. 그런데 인간은 말을 통해 좋았던 인과 관계를 깨고 참된 진리를 왜곡시키며, 길이 전해야 할 문명을 훼손시키는 등 말의 순기능을 ‘필요악’으로 전락시키는 경우가 많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성경이 말하는 답이다. 우리 모두 세상의 거짓 선동에 현혹되지 말고 참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에 귀 기울이므로 참자유를 누리길 소망해본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진리 자유 막내며느리 김해숙 음란과 도둑질 재방송 중인
2022.10.28. 18:05
유쾌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데 꼭 필요한 일곱 가지 ‘UP’에 대해 칼럼을 쓰다 한국에 다녀왔다. 3년 만에 한국에 가서 처음으로 40일이란 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전에 이삼 주 후닥닥 다녀오느라 못 느꼈던, 한국의 여러 UP 된 면을 느낄 수 있었던 즐거운 여행이었다. 세븐 업의 여섯 번째는 드레스 업(Dress Up)이다. 한국 분들, 진짜 다들 옷을 좀 잘 입으시는 듯! 지하상가 상가마다, 왜 그리 착한 가격의 예쁜 옷들이 많은지, 나도 요즘 센 달러에 힘입어 몇 개 데려왔다. 동네에서도 화장을 곱게 하고 옷을 화사하게 차려입고 다니시는 미국 할머님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뭔가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시는 것 같기 때문이다. 단정하게 자신을 가꾸는 것은, 어느 나이에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호의이자 예의인 것 같다. 마지막 중요한 세븐 업은 기브업(Give Up)이다. 세븐 업 중 가장 어려운 것이 기브업이다. 특히, 자녀에 관한 것들은 포기가 아주 어렵다. 우리의 분신 같은 자녀들에 대한 것을 내려놓기란 죽기보다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자녀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적성과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채 부모가 ‘결정’한 아이에 대한 미래 같은 것을 밀어붙여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 자녀가 성인이 되면, 부모로서 포기해야 할 것들은 더 많아진다. 미국에서는 18세라는 아직 한참 뇌의 전두엽이 발달 공사 중인 나이를 성인이라고 여겨, 모든 것을 아이들이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대학 학비를 내주면서도 성적조차 아이들의 동의 없이는 볼 수 없다. 그리고 아이들은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간다! 자녀들이 결혼하게 되면, 내려놓을 것의 리스트는 더 길어만 간다. 독립성을 인정해주고,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들의 가정과 삶을 존중해주려면, 더 많은 것들을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된다. 노력하지 않아도, 사실 인생이 걍 우리에게 막 가르쳐준다. 내려놓으라고. 한계를 받아들이라고. 팬데믹 초기 심하게 코로나에 걸린 후 회복되지 않는 체중 때문에, 살이 좀 빠진 채 한국에 갔다. “아유, 예전이나 똑같으세요.” 이렇게 말이라도 기분 좋게 해주는 사람들(복 받으실 거예요!)도 있었지만, “아이고, 젊었을 때는 예쁘더니” 여기까지 하고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시는 이 잔인하도록 솔직한 분들, 이분들을 사랑해, 말아? 이제 외모를 기브업해야 하는 나이인가? 아, 한국에 괜히 갔다! 이런저런 한계를 하루가 다르게 느끼면서도, 이렇게 막상 포기하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마땅히 기브업해야 할 걸 하지 못하고 매달리는 삶은 자신과 남을 다 힘들게 한다. 내려놓을 걸 내려놓고 받아들일 걸 받아들여 보면, 비로소 열리는그다음 깊은 단계의 삶이 분명 있다. 단풍 시즌이 한창이다. 추워지는 날씨에 맞춰 푸르름을 내려놓고, 눈부시게 피었다 낙엽이 되어 이듬해를 준비하는 단풍은 그래서 꽃보다 아름답다. 항상 깨끗하게 클린업(Clean Up)하면서, 열심히 쇼업(Show Up)하여 교류하고, 셧업(Shut Up) 하며 들어주는 인생, 남에게 격려가 되는 치어 업(Cheer Up)과, 할 수 있으면 페이 업(Pay Up)도 좀 하고, 단정하게 드레스 업(Dress Up), 그리고 내려놓을 것을 내려놓는 기브업(Give Up)의 자유로움으로, 우리 모두 세븐 업처럼 시원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김선주 / NJ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미학 한국 분들 단풍 시즌 지하상가 상가
2022.10.26. 20:14
지난 한주 무척 바빴다. 월요일부터 4박 5일 일정으로 뉴욕주 끝자락에 위치한 Lake Placid에 머물다 금요일 저녁 돌아왔다. 인구 2638명의 작은 산골 마을이 1932년, 1980년 겨울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일약 유명 관광지로 발돋움하면서 찾는 이들로 넘친다.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은 지난 2월에 이어 두 번째다. 당시는 마지막 겨울 끝자락의 눈 나라였다면 이번은 가을의 찬란한 시작이 거기 있었다. “산마다 불이 탄다 고운 단풍에, 골마다 흘러간다 맑은 물줄기, 황금빛 논과 밭에 풍년이 왔네. 드맑은 하늘가에 노래 퍼진다. 눈이 닿는 우주 공간에 손이 닿는 구석구석에…”라는 찬송 가사가마음에 와 닿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산 White face를 오른 것이다. Adirondack park의 랜드마크 격인 1483m(4867ft)의 이 산은 4600피트까지 차가 올라간다. 나머지 267피트는 돌산 한 중앙을 꿰뚫고 꼭대기까지 연결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거나 외곽 등산로를 15분 정도 걸어서 오를 수 있다. 정상에 서면 야호! 하늘과 구름, 굽이굽이 이어진 산과 들판, 호수 사이로 북쪽으로는 몬트리올, 동북으로는 버몬트주가 손에 잡힐 듯 저 앞에 고개를 디민 모습을 굽어볼 수 있다. 다시 336마일을 돌아 토요일, 펜실베이니아주 랭커스터로 갔다. 수개월 전 예약한 성극 ‘David’을 관람하기 위해서다. 팬더믹 이전 본 작품들도 좋았지만, David는 정말 대단한 영감을 준 명작이었다. 전반부는 인간 다윗의 신실한 믿음과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는 과정이라며 후반은 실수와 범죄, 참회 그리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다. 명장면을 꼽으라면 끝부분, 다윗이 넘어져 절망 중일 때 화면 가득 비친 구세주 예수의 모습과 함께, 용서의 상징인 듯 온 극장에 가득 흩날리는 흰 눈발과 사방에서 들려오는 천상의 화음들! 2000명 관객은 자신도 모른 채 눈가를 훔치며 아멘, 할렐루야 하고 화답한다. 성극 관람 후 찾은 곳은 ‘아미시 타운’이다. 1720년대 독일에서 건너온 재세례파 극보수주의 신앙촌 격으로 지금도 현대문명을 거부하고 옛 방식을 고집하며 불편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직접 만든 검은색 계통의 옷을 주로 입고 4마리의 말이 끄는 쟁기로 땅을 갈며 작은 수확에도 만족해하는 듯하다. 전기도 가능한 직접 사용치 않고, 셀폰 대신 마을 전체가 공용전화 한 대로 비상시를 대비해도 불안해하지 않는다. 자녀들은 마을 내 학교에서 읽기 쓰기 더하기 빼기 정도만 배우고, 주 이동수단은 마차이고 단거리는 바퀴가 두뼘 정도에 지나지 않는 씽씽이를 사용한다. 요즘 세상이 변하고 있다. 금과옥조처럼 알고 지켜왔던 윤리와 도덕 신앙적 기준들이 무너지고 있어 혼란하다. 자녀들이 학교에서 가져온 교재나, 책을 무심코 펼치다 보면 민망한 내용과 장면들로 가득하고, 상대를 he, she 대신 they로 부를 것을 가르침 받고 그것이 옳다고 알고 있어 답답하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성경에서 가증하다고 규정한 동성애 문제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용납당하고, 싫으면 당신들이 떠나라는 항변이 불편한 진실이다. 아미시인! 그들에게 세상은 무엇일까? 참 진리가 주는 자유함을 누리며 작은 불편을 신앙으로 감수하며 평안을 누리는 그들이 오늘 한없이 부럽고 귀한 존재로 느껴진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진리 자유 극보수주의 신앙촌 뉴욕주 끝자락 산골 마을
2022.10.14. 16:41
작년부터 고춧가루 만드는 재미에 빠졌다. 전에는 고춧가루는 물론 멸치, 미역, 다시마 등을 한국에서 가져다 먹었다. 내가 살았던 미국 시골은 탄광으로 알려진 척박한 곳이었다. 한국 식품점은 물론, 변변한 쇼핑몰도 없었다. 내 옷, 아들 옷, 남편 옷이 색깔별로 들어있는 상자가 절기마다 도착했다. 세관에서 비즈니스라고 오인했는지, 세금 딱지가 붙어서 오기도 했다. 아들이 한 살 무렵에 살고 있었던 웨스트버지니아는아팔라치안 산맥이 있는 동네다. 내가 살던 아파트는 언덕 위에 있었다. 눈썰매를 타듯 브레이크를 밟으며 언덕길을 내려오면 평지에 대학 건물 파킹장이 있다. 그 옆에 잡풀이 자라는 공터에 필리핀 가게가 있었다. 동양 학생들은 아쉬운 대로 두부, 숙주 같은 것을 사곤 했고 주인아줌마의 수다스러운 웃음을 덤으로 얹어 갔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빈약한 선반에는 건조물과 통조림이 듬성듬성 있었다. 아들 돌을 차릴만한 식재료가 있을 리가 없었다. 한국에서 한 보따리 물건이 또 왔다. 버섯, 나물, 해삼, 생선, 조개 말린 것들이 왔다. 내일이 아들 돌이다. 학생 부부들을 손님으로 청해 놓았다. 전날 밤에 나물과 버섯을 종류별로 한 움큼 물에 풍덩 담갔다. 아침에 부엌에 나가 보니 이게 웬일, 내 눈은 대야만큼 커졌다. 그것들은 하마처럼 불어서 부엌 곳곳에서 대야 밖으로 넘치고 있었다. 흐물거리고 있는 나물과 버섯을 일단 없애야 했다. 손님들이 돌아갈 때 사정해 가며, 한 봉지씩 안겼던 기억이 난다. 건조식품에 대한 감이 전혀 없었던 애송이 시절이다. 지금은 안다. 그 물건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이곳의 즐비한 한국마켓에 나가도 구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경동시장까지 발품을 팔고 노심초사 골라서 비싼 운임으로 부친 것이라는 것을. 어디 먹거리뿐인가. 그 시절의 나는 한국을 다녀오면 다른 사람이 되어서 돌아오곤 했다. 탱글한 파마에 윤기 나는 피부에 유행하는 옷을 입고 미국에 돌아왔다. “이제야 제 모습이 나오는구나”라며 읊조리는 그분의목소리를 뒤로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어머니의 마법 지팡이는 길어야 석 달이면 효력이 다했다. 파마는 늘어지고 피부는 거칠해지고 옷은 후줄근해졌다. 담가주신 김치는 떨어졌고, 챙겨주신 밑반찬은 바닥이 보였다. 그분의 지팡이도 미국 땅까지는 세력을 뻗치지 못했다. 나의 일상을 스스로 해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봄이면 나는 고추를 심는다. 안 매운 고추, 아삭이 고추를 심어도 어느 정도 자라면 매워서 먹을 수가 없다. 아기 고추 몇 개를 따 먹다가, 가을볕에 고추가 빨개지도록 그냥 두었다. 깊고 그윽한 햇볕을 받아서 대롱처럼 매달린 고추를 줄기에서 낚아챈다. 반을 갈라서 건조기에 밤새도록 말린다. 집안에 알싸하고 매캐한 냄새가 퍼진다. 가을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오그라든 고추를 다시 한번 해를 보게 한다. 이제 가루가 될 준비를 마쳤다. 마법 지팡이로 나를 ‘팡’ 건드려 주던 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보따리가 오지 않아도 그럭저럭 해결되고 있다. 시월 어느 따뜻한 날을 골라서, 햇고춧가루로 김장을 해야겠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지팡이 마법 마법 지팡이 아기 고추 한국 식품점
2022.10.11. 17:16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 하고잊혀져야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생각나는 10월 첫날이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렸는데, 아! 어느새 새벽의 스산함이 긴바지, 긴소매로 손이 가게 한다. 하기야 입추가 8월 7일, 더위가 한풀 꺾인다는 처서가 23일,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백로가 9월 8일, 추분이 9월 23일이었으니 변하는 계절의 수레 앞에 더위 신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어릴 적 자연 시간에 배운 기억력을 소집해보면, 계절변화의 요체는 지구의 축이 23.5도 기울어진 채 자전하며 1년에 한 번 태양 주위를 돌도록 섭리하신 하나님의 지혜 때문이다. 따라서 북반부 중반에 위치한 한국과 미국은 때로는 태양의 광원을 직각으로 오랜 시간 받기도 하고 때로는 짧은 시간 비스듬하게 받으므로 여름에는 해수욕을, 겨울은 눈 덮인 산을 스키로 오르내리고 봄에는 꽃망울의 신비한 개함을, 가을에는 오색찬란한 단풍을 구경하는 등 같은 장소 다른 분위기 속에서 폭넓은 삶을 구가할 수 있다. 고대에도 이런 천체 운행을 암시하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었음을 본다. 가나안 정복 전쟁 때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지는 태양을 향해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달아 너도 아일론 골짜기에 머물러라고 명하자 천체 운행의 주재자 하나님이 해의 운행을 하루 동안 정지시키므로 전쟁에 승리케 하셨고, 또 히스기야 왕 때 아하스의 해 그림자를 10도 물러나게 했다 함 같은 것이다. 사람들은 가을을 남자와 연관시킨다. 아마 가수 이용의 노래처럼 남자들이 가을을 많이 타는 데서 비롯된 것 같다. 그렇다. 가을, 그중 10월은 남자들을 한없이 쓸쓸하고 외롭게 하되 특히 홀로 사시는 어른들에게 말이다. 사회성이 좋기로 알려진 붉은털원숭이 가운데 항상 무리에서 떨어져 외롭게 생활하는 놈을 대상으로 백혈구를 조사해 보니 놀랍게도 외로움을 잘 타는 노인들과 비슷한 수치를 나타냈다고 한다. 그들을 대상으로 한껏 스트레스를 준 뒤 피검사를 하니 노르에피네프린이란 호르몬의 수치가 높게 나왔다. 이 호르몬은 미성숙 단핵구가 많아 항바이러스 유전자의 생성을 저해하는 물질이란다. 그 후 원숭이에게 바이러스성 질병을 주입하자 뇌와 혈액에 넓게 퍼졌다고 한다. 외로움이 질병에 취약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연구다. 필자의 부친은 72세를 사셨다. 동갑이셨던 어머니는 그보다 5년 일찍 67세에 돌아가셨다. 젊어서 지켜본 아버지는 물 한 그릇도 손수 해결하시는 법이 없으셨다. 모두가 어머니가 대신하셨다. 그렇게 수족처럼 받들며 사시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의 건강은 쉽게 무너져 내렸고 종래는 허리, 무릎, 뼈의 기능이 현저히 저하되어 앉고 일어서심이 불편한 채 어머니 곁으로 가셨다. 지금 생각하니 어머니 없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가져다준 항바이러스 결여로 생명 단축현상을 빚은 것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 이 시간 한쪽 부모님을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자녀들 계시면, 보약보다 귀한 보약, 외롭고 쓸쓸함에 맞는 처방을 통해 부모님의 건강을 지켜드리길 권면한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가을 부모 부모님 보약 천체 운행 항바이러스 유전자
2022.09.30. 17:38
지난 10일 추석날 저녁, 날씨가 흐려 보름달을 못 보나 했는데 저녁 7시경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린다. 손주를 맡기고 잠깐 외출한 며느리다. 흥분된 목소리로 지금 집채만 한 보름달이 솟아오르고 있으니 빨리 밖으로 나오란다. 미국 며느리지만 2주 전 필자가 쓴 추석 칼럼을 구글링하는 등 한국문화라면 귀찮을 정도로 묻고 파고드는 등 피로 낳은 아들, 딸보다 훨씬 지한파에 속한다. 아내와 함께 손주 손을 나눠 잡고 현관을 나서니 동쪽 하늘이 온통 장관이다. 반나절 전고국 산하를 비추었던 엄청난 크기의 밝은 보름달이 계수나무를 한끗 머금은 채 우리 집을 문안이나 하듯 키 큰 두 나무 사이로 고개를 디밀고 있지 않은가? 보름달은 해와 지구, 달이 일직선일 때 볼 수 있다. 그런데 달이 지구를 정방형이 아닌 타원 궤도로 공전키 때문에 보통의 경우 완벽한 원을 구성치 못한다. 그런데 2022년 올 추석에 뜬 보름달은 백 년 만에 보는 완벽한 풀문(Full Moon)으로 이날을 놓치면 38년 후인 2060년까지 기다려야 할 정도로 귀한 존재였다. 어릴 때 고향에서 본 달 색깔은 붉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요즘은 노란색 또는 푸른색을 띠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대기 중에 먼지나 오염물질이 많이 쌓였다는 방증이기도 하지만 빛이 지구를 향하면서 대부분의 색상은 대기권에 도달하기 전 흩어지고 노란색만 지구에 도달하므로 생기는 현상임도 이번에 확인하였다. 한국은 지난 6월 21일 ‘누리호’를 세계 6번째로 우주궤도에 안착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어 8월 6일 미국의 팰컨 9 라는 로켓을 통해 우리의 달 탐사선 ‘다누리’를 우주로 보냈고 현재 달을 향해 항해 중이다. 계획대로라면 올 12월 16일 달궤도 진입, 12월 31일 달 상공 100km 도달, 그리고 1년간 매일 달 주위를 12번씩 돌며 5개의 탐사체(NASA의 셰도캠 포함)로달 표면을 정밀 탐색하게 된다. 달까지 직선거리는 38만4399km다. 1969년 7월 16일 아폴로 11호는 4일이 채 안 걸려 7월 20일 도착했다. 그런데 ‘다누리’는 4개월 이상? 이는 적은 연료로 더 많은 장비를 싣고가기 위한 고육지책을 택했기 때문이다. 즉 달을 향해 직선 비행하는 대신 오히려 태양 쪽으로 멀리 날아간 뒤 기수를 돌리므로 총 59만5600km를 가는 완행비행로를 택했다. 이유는 기대기 전법! 즉 태양, 지구, 달 등 행성의 중력에 기대어 비행하므로 연료소모를 현저히 줄일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다누리의 1차 목표는 ‘요정의 탑, 정체, 자기장 형성의 미스터리, 영구음영지역의 물 존재’ 등 달의 3대 비밀에 대한 해답을 갖고 오는 것이란다. 천문학자들이 가정하는 달의 생성설 가운데 가장 유력한 학설이 충돌설이다. 태초에 지구가 화성만 한 크기의 천체와 충돌하면서 그 충격으로 떨어져 나간 조각들이 기체와 먼지 구름을 만들면서 달이 생성되었다는 이론이다. 그때 충돌로 인해 튀어져 나온 여러 철과 중금속 조각들이 지구에 있던 액체상태의 철과 합쳐져 더 큰 금속의 핵을 만들었고 그것이 강력한 자기장을 형성하므로 대기권을 유지하고 또 태양의 인력을 차단해 지구가 인간의 생존환경을 보존케 되었다 뭐 이런 추론이다. 바라기는 ‘다누리’의 이번 여정을 통해 이런 추론을 증명하고 또 달의 비밀 중 일부라도 밝혀 세계 각국의 교과서에 누리호와 함께 다누리의 성공담이 소개되었으면 한다.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이야기 태양 지구 추석날 저녁 중금속 조각들
2022.09.16. 17:32
지난 칼럼에서 유쾌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일곱 가지 ‘UP’, 즉 클린업(Clean Up), 쇼업(Show Up), 셧업(Shut Up), 치어업(Cheer Up), 페이업( Pay Up), 드레스업(Dress Up), 그리고 기브업(Give Up) 중, 첫 세 개를 소개했다. 읽어보신 분들이 무엇보다 셧업(Shut Up) 이 가장 어렵지만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들 하셨다. 입을 다문다는 것, 역시 강적이다! 네 번째 세븐업은 치어업(Cheer Up)이다. Cheer Up이란 기분을 좋게 해주고 격려해주는 것이다. 낙심하고 있는 사람에게, Hey, cheer up! 이라고 말하고, 건배를 들 때도 Cheers! 하지 않는가. 무엇보다, 경기장에서 치어리더들을 보면 누구나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사실 우리 모두에게는, 평생 치어리더가 필요하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에게도 칭찬과 격려는 늘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링컨 같은 위대한 대통령도, 피살 후에 보니 양복 주머니 안에서 한 시민의 감사편지가 나왔다고 한다. ‘인싸’와 ‘아싸’를 아시는지? 인싸는 인싸이더, 아싸는 아웃싸이더라는 말이다. 인싸이더는 주변에 사람들이 많은 사람이다. 인싸이더, 그것도 핵인싸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만나는 사람에게 치어리더가 되는 사람들이다. wet blanket이라는 말이 있다. 젖은 담요! 만나면 축 쳐지고 기분이 가라앉게 되는 사람을 열심히 찾아 만나고 싶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 같은 심리치료사를 제외하고는. 사는 게 힘들다 해서 주위 사람에게 늘 젖은 담요가 된다면 인싸로 살 수 없다. 항상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고 기분 좋게 해주려고 노력할 때, 핵인싸로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기분 좋은 관계가 주는 행복감 덕분에 나란 담요도 늘 뽀송뽀송할 수 있다. 그 다음은 페이업(Pay Up)이다. 대접만 받으려 하지 말고, 돈을 낼 수 있을 때는 돈을 내라는 것이다. 상담에 전념하기 위해 학교를 조금 일찍 은퇴한 나는, 연금을 받게 되면서 여러 사람에게 큰소리를 쳤다. 평생 밥을 사주겠다고!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많은 사람에게 약속을 한 것 같다. 좀 떨린다. 하지만 그 말을 할 때마다 얼마나 행복했던지! 상담을 막 시작했을 때, 상담 분야 대선배이신 뉴욕의 한 선생님을 만나 뵈려 약속을 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식사 비용은 반드시 더치페이로 하지 않으면 안 만나겠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말 마음이 불편했지만, 연로하신 선생님과 더치페이를 하면서, 나도 앞으로 이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직도 잘 안된다. 만나는 분들이 다, 늘, “다음부터!” 이러시기 때문이다. 여건이 허락만 한다면, 크든 작든 대접하려는 자세는 아름다운 것 같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가신 엄마가 구순을 맞이하실 때였다. 우리 자녀들은 당연히 구순 식사 자리를 의논 중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얘들아, 지금껏 평생 너희들이 생일을 차려주었으니, 이번 나의 아흔 번째 생일은 내가 너희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 좋은 데 예약을 해라. 말도 안 된다고 말렸지만, 결국 엄마의 뜻을 꺾지 못해, 엄마의 아들, 딸, 며느리, 손자, 손녀, 증손주들까지 수십 명이, 구십 엄마가 사주시는 뷔페를 황송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던 기억이 있다. 항상 치어업,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페이업도 하면서 관계의 열매가 풍성해가는 가을이 되기를 기도해본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세븐 행복감 덕분 상담 분야 평생 치어리더
2022.09.14. 20:08
몇 년 전 어느 단체로부터 시니어 회원 모임에 와서 강의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우울한 황혼기가 아닌 유쾌한 황금기로 노년을 보내기 위해 어떤 말씀을 드리면 좋을까 하다가, 전에 남편이 설교 중 인용했던 ‘세븐업’이 생각났다. 마시는 세븐업이 아니라, 유쾌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데 꼭 필요한 일곱 가지 ‘UP’으로, 즉 클린업(Clean Up), 쇼업(Show Up), 셧업(Shut Up), 치어업(Cheer Up), 페이업(Pay Up), 드레스업(Dress Up), 마지막으로 기브업(Give Up)이다. 처음엔 시니어 분들을 위해 이 세븐업을 생각해봤지만, 사실 이것은 모든 연령대에 필요한 아주 중요하고 기억해야 할 삶의 원칙이다. 첫 번째는, 클린업(Clean Up)이다. 깨끗한 공간은 정신 건강에 완전 짱이다. 하지만 강박이 있는 나는 직성이 풀리게 청소를 하면 반드시 몸살이 났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턴 매주는 아니지만 청소해주는 분의 도움을 받고, 중간중간 살살 청소를 한다. 그런데, 내가 지출하는 경비 중 가장 아깝지 않은 것이 이 비용이다. 그분이 왔다 간 날이면, 우리 집이 너무너무 사랑스럽고 갑자기 인생이 아름다워진다. 특히 요즘은 미니멀리스트의 삶이 지향되고 있다. 꼭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살려 해도 우리가 소유한 것들은 너무나 많다. 그러다 보니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산다. 가을이 오기 전, 계속하여 안 쓰게 되는 물건이나, 철이 지나도록 한 번도 안 입게 되는 옷, 신발, 가방, 모자 등은 필요한 사람이나 단체에 도네이션하고, 간단하고 정리된 모습으로 가을을 맞자. 참전 용사들을 돕는 단체인 purpleheartfoundation.org 같은 곳에서는, 박스에 도네이션할 물건을 담아 문 앞에 내놓고 웹사이트에서 픽업을 요청하면 와서 픽업해 간다. 두 번째는 쇼업(Show Up)이다. 자꾸 나가서 여러 곳에 참여하고 모습을 나타내자는 것이다. 요즘은 너무 많은 만남과 배움의 기회가 주변에 널려있다.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모든 배움의 기회에 모습을 드러내자. 전에 뉴저지에서 자녀 교육과 미국 학교에 대한 세미나를 할 때 오신 아주 연로하신 할아버님을 잊을 수 없다. 형편상 손주들의 양육을 맡고 계신 이 분은, 롱아일랜드 중에도 아주 먼 거리에서 장거리 운전을 하고 오셔서 세미나에 참석하셨다. 열심히 쇼업하여 소통하고 배우는 성숙한 가을이 되자. 세 번째는, 셧업(Shut Up)이다. Shut Up 하면 기분이 좀 나쁘시려나? 하지만, 사실 인간관계에서 이만큼 중요한 말이 없다. 상대의 말을 중도에 끊고 싶을 때, Shut Up이라고 내게 속으로 말하자. 누구든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들어주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둘이 말하는데 내가 50% 이상을 말하려고 할 때, Shut Up이라고 속으로 말하자. 음식값 계산할 때만이 아니라, 대화도 n분의 1이다. 반대로, 너무 셧업을 하는 것도 큰 문제다. 요즘 뒤늦게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키야, 이렇게 입을 닫고 어떻게 가족으로, 부부로 살 수 있었을까. 남편은 아내를 오해하면서도 묻지 않는다. 아내도 남편을 크게 오해하지만, 묻는 대신 자존심에 평생 입을 다문다. 나중에 셧업을 풀고 대화를 하면서 진정한 가족이 되어 간다. 궁금하면 묻고, 서운하면 말하고, 고마우면 표현하자. 깊고 성숙한 인간관계가 주렁주렁 맺히는 가을이 될 것이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가을 맞이 가을 맞이 장거리 운전 시니어 회원
2022.09.05. 13:12
다음 주 토요일은 8월 대보름 추석이다. 예년보다 올해 추석이 보름 정도빨리 와서인지 분위기는 아직 무덤덤하다. 한국 또한 올해 추석을 ‘보릿고개 한가위’라고 한단다. 이유는 경제 사정 때문이다. 추석 전에 불어닥친 홍수피해, 천정부지로 뛰는 물가, 금리와 환율의 급격한 동반상승이라는 삼각파도 앞에 추석특수란 말도 맥을 못 추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추석의 다른 말은 한가위로 ‘한’은 크다는 관형사이고 ‘가위’는 가운데를 나타내는 우리말로 어원은 가배(嘉俳)다. 신라 3대 유리왕 이사금의 두 딸이 음력 7월 16일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6부에 속한 여인들을 두 편으로 나눠 길쌈 내기를 벌인 뒤 다음 달 8월 15일 대보름날 평가해, 진 팀은 술과 음식을 차려 이긴 팀을 대접하는 유흥을 즐겼는데 이것을 가배로 불렀다고 삼국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그 후 세월이 흐르면서 가배가한가배, 한가위로 변천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추석의 전통적 의미는 아직 수확기에 접어들기 전덜 익은 쌀로 빚은 송편과 햇과일 등으로 상을 차린 뒤 점지해주신 조상을 추모하고 은혜에 보답하는 제사를 드린다는 뜻인 추원보본(追遠報本)으로 미국의 추수감사절과 흡사하다 할 수 있지만 그 기원은 1000년 이상 우리가 앞선다. 과거 추석은 아이들에게 꿈의 잔칫날이었다. 추석이 가까이 오면 어른들은 아이들의 발 치수를 손가락으로 어림하거나, 윗 등판과 바지 길이를 팔목으로 치수하는 등 오일장준비를 하시는데 이는 일 년에 단 두 번 설·추석을 향한 아이들 선물 구입의 전조다. 당시 옷이라야 무명으로 짠 검은색 국민복이고 신발은 통 고무 타이어 표, 양말은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한 나일론 실로 짠 낙하산표가 전부였다. 그렇다 보니 필자의 초등학교 졸업사진에는 전원이 검은색 국민복 일색인데 현도, 병웅이, 봉원이만 가로로 하얀 둘레 무늬가 선명한 같은 스웨터에 운동화를 신고 있다. 이들 부모는 읍내에서 소문난 부자였다. 또 추석은 아이들이 간접적이나마 세상 나들이를 할 기회다. 이때가 되면 외지에서 잘나간다고 소문난 동네 형, 누나들이 무엇인가를 잔뜩 담은 가방을 양손에 들고 나타난다. 대부분 학교 졸업 후 도시로 간 선배들로 머리에 포마드 기름을 바르고, 나팔바지에, 끈을 반쯤 내린 군화를 덜거덕대며 걷는 어깨는 힘이 잔뜩 들어간 모양새다. 후배들은 멋대로 뻐기는 그들을 종일 따라다니며 꿈같은 도시생활과 말투, 유행, 맵시들을 얻어들으며 대견해 한다. 이렇게 추석은 “1년 내내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어른들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풍성하고 즐거운 한마당 축제였다. 한국 교회사를 보면 조선의 천주교는 1930년대까지 제삿날 또는 설 추석 명절에 교인들이 음식을 차려놓고 조상 앞에 절하는 것을 우상에 절하는 행위라며 금지했다. 그런 뒤 1939년 12월 8일 교황 비오 2세가 칙령을 통해, 제사의식은 조선의 민속양속일뿐 교리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고 하면서 제사가 공식인정되었다. 그러나 개신교는 여전히 교인이 절을 하는 제사보다 함께 둘러앉아 조상의 위업을 추억하고 감사하는 추모예배나 잔치를 선호하는 것 같다. 그러나 어떠랴! 즐겁고 귀한 1000년 전통 명절 추석! 교포사회나마 이날 온 가족 친지가 모여 웃고 즐기는 뼈대 있는 ‘우리의 추수감사제’로 전통을 이어가자. 김도수 / 자유기고가살며 생각하며 추수감사절 추석 추석 명절 올해 추석 과거 추석
2022.09.02. 17:21
몇 년 전 어느 단체로부터 시니어 회원 모임에 와서 강의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우울한 황혼기가 아닌 유쾌한 황금기로 노년을 보내기 위해 어떤 말씀을 드리면 좋을까 하다가, 전에 남편이 설교 중 인용했던 ‘세븐업’이 생각났다. 마시는 세븐업이 아니라, 유쾌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데 꼭 필요한 일곱 가지 ‘UP’으로, 즉 클린업(Clean Up), 쇼업(Show Up), 셧업(Shut Up), 치어업(Cheer Up), 페이업(Pay Up), 드레스업(Dress Up), 마지막으로 기브업(Give Up)이다. 처음엔 시니어 분들을 위해 이 세븐업을 생각해봤지만, 사실 이것은 모든 연령대에 필요한 아주 중요하고 기억해야 할 삶의 원칙이다. 첫 번째는, 클린업(Clean Up)이다. 깨끗한 공간은 정신 건강에 완전 짱이다! 하지만 강박이 있는 나는 직성이 풀리게 청소를 하면 반드시 몸살이 났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턴 매주는 아니지만 청소해주는 분의 도움을 받고, 중간중간 살살 청소를 한다. 그런데, 내가 지출하는 경비 중 가장 아깝지 않은 것이 이 비용이다. 그분이 왔다 간 날이면, 우리 집이 너무너무 사랑스럽고 갑자기 인생이 아름다워진다! 특히 요즘은 미니멀리스트의 삶이 지향되고 있다. 꼭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살려 해도 우리가 소유한 것들은 너무나 많다. 그러다 보니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산다. 가을이 오기 전, 계속하여 안 쓰게 되는 물건이나, 철이 지나도록 한 번도안 입게 되는 옷, 신발, 가방, 모자 등은 필요한 사람이나 단체에 도네이션하고, 간단하고 정리된 모습으로 가을을 맞자. 참전 용사들을 돕는 단체인 purpleheartfoundation.org 같은 곳에서는, 박스에 도네이션할 물건을 담아 문 앞에 내놓고 웹사이트에서 픽업을 요청하면 와서 픽업해 간다. 두 번째는 쇼업(Show Up)이다. 자꾸 나가서 여러 곳에 참여하고 모습을 나타내자는 것이다. 요즘은 너무 많은 만남과 배움의 기회가 주변에 널려있다.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모든 배움의 기회에 모습을 드러내자. 전에 뉴저지에서 자녀 교육과 미국 학교에 대한 세미나를 할 때 오신 아주 연로하신 할아버님을 잊을 수 없다. 형편상 손주들의 양육을 맡고 계신 이 분은, 롱아일랜드 중에도 아주 먼 거리에서 장거리 운전을 하고 오셔서 세미나에 참석하셨다. 열심히 쇼업하여 소통하고 배우는 성숙한 가을이 되자. 세 번째는, 셧업(Shut Up)이다. Shut Up 하면 기분이 좀 나쁘시려나? 하지만, 사실 인간관계에서 이만큼 중요한 말이 없다. 상대의 말을 중도에 끊고 싶을 때, Shut Up이라고 내게 속으로 말하자. 누구든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들어주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둘이 말하는데 내가 50% 이상을 말하려고 할 때, Shut Up이라고 속으로 말하자. 음식값 계산할 때만이 아니라, 대화도 n분의 1이다! 반대로, 너무 셧업을 하는 것도 큰 문제다. 요즘 뒤늦게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키야, 이렇게 입을 닫고 어떻게 가족으로, 부부로 살 수 있었을까! 남편은 아내를 오해하면서도 묻지 않는다. 아내도 남편을 크게 오해하지만, 묻는 대신 자존심에 평생 입을 다문다. 나중에 셧업을 풀고 대화를 하면서 진정한 가족이 되어 간다. 궁금하면 묻고, 서운하면 말하고, 고마우면 표현하자! 깊고 성숙한 인간관계가 주렁주렁 맺히는 가을이 될 것이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가을 맞이 가을 맞이 장거리 운전 시니어 회원
2022.08.31. 2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