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거친 손에 새겨진 삶
손을 꼭 쥐었다 편다. 손바닥을 살펴보니 주름 사이로 흐르는 손금 옆에 길게 자리한 상처 흔적이 보인다. 오랜 세월 사랑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분개하며 살아온 손이다. 투박한 내 손을 어루만진다. 미국 이민와서 13년이 지나 두 아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홀로서기를 작정했다. 막 비행기에서 내린 이민자의 자세로 시작한 새로운 도전은 부지런하고 든든한 손이 있어 가능했다. 주름 사이에 드러나는 왼쪽 검지에 쌀톨만한 흉터를 들여다본다. 마음에 화를 담고 칼질하다 입은 상처의 흔적이다. 칼을 만질 때마다 머릿속을 비우라는 안전 수칙을 상기시킨다. 이렇듯 내 감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이 손이다. 이민 초기, 가게에 총을 든 강도가 들었다. 무서움으로 손에 땀이 흥건했다. 당할 수만 없다는 생각으로 상황을 침착하게 살펴보며 주먹을 쥐었다. 요구하는 돈을 챙기려면 강도 뒤쪽으로 가야만 했다. 놈은 제 뒤에 있는 여자 한 명쯤이야 안중에 없다는 듯, 마룻바닥에 엎드려 있는 종업원들을 말로 위협하며 건들거리고 있었다. 돈을 봉투에 담으며 상황을 살피는 동안 남자의 손 안에 총이 헐렁하게 자리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 순간 내 손이 민첩하고 강하게 총을 쳐냈다.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 생겼는지 나도 모를 일이었다. 공포에서 벗어난 종업원들이 일제히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놈은 우리 다섯 명 손에 꼼작 없이 잡혀 죽지 않을 만큼 맞은 다음 경찰에 넘겨졌다. 내가 기억하는 처음 손가락 상처는 대여섯 살쯤이었다. 집토끼 먹이를 찾아 개천 둑으로 갔다. 낫을 들고 어른 흉내를 내다 풀잎 대신 내 왼쪽 중지 마디를 찍어 피가 흘렀다. 울면서 들어서는 나를 본 엄마는 빨강 약을 발라주고 천 조각을 찢어 상처를 싸맸다. 지금도 손을 만지다 흉터를 느낄 때면 호호 입김을 불어 주던 엄마가 보인다. 생전에 내 손을 어루만지던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을 잊을 수가 없다. ‘손이 많이 상했구나’ 하며 내 손을 감싸며 안쓰럽게 바라보시던 어머니. 그 마지막 모습이 생생하다. 태평양 건너에 살아 자주 만날 수 없었던 딸,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 줄 알았던 딸의 고생을 알고 묻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미안하고 애틋한 마음으로 손을 꼬옥 잡고 소통하는 동안 뜨겁고 끈끈한 감동이 피어났던 그 시간이 그립다. 그때가 어머니와 피부를 맞대는 마지막이 되리라곤 짐작조차 못했다. 내 손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주름과 흠집이 많은 손, 내가 살아온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손이다. 내 어린 조막손을 잡아주던 엄마를 불러오는 손, 환갑이 지난 나를 염려하던 어머니의 따뜻한 체온을 간직하고 있는 손, 강도를 물리친 손이다. 산전수전 겪으며 생의 굽이 굽이를 헤쳐온 손. 그 거친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는다. 손의 온기가 얼굴에 전해온다. 아직 따뜻한 내 손, 이 손으로 옆집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 이웃과도 온기를 나누고 싶다. 이정숙 / 수필가이 아침에 상처 흔적 손가락 상처 강도 뒤쪽
2025.06.16. 2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