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생활을 하면서 가끔 영어로 실수하는 것이 있다. 신호등 불이 파랄 때 “It‘s blue (파란색이야)!”라고 외치면 친구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한국에서 초록불 대신 파란불이라고 불러온 습관 탓이다. 우리는 형용사 ’푸르다‘를 청색과 녹색, 그리고 그사이에 위치한 색상을 모두 포함한 색으로 여기지만 서양 언어권에서는 그 두 색깔은 전혀 다른 색이다. 서양사에서 ’블루‘라는 색깔의 근원을 더듬어 올라가면, 기본 색상 중 가장 최근에 생성된 색이다. 초록색과 달리 ’블루‘는 자연에서 흔히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하늘과 바다를 파랗다고 하지만 365일 중 정말로 파란 하늘은 몇 번 볼 수 없고, 바다도 엄밀히 말하면 파란색으로 보이는 때가 많지 않다. 고대 그리스인은 바다를 호메로스 ’오디세이‘의 유명한 구절에 따라 ’어두운 와인색 (the wine-dark sea)‘이라 규정했다. 오현명이 부른 ’명태‘에서 말하는 검푸른 바다가 보랏빛을 띤다고 생각하면 그 개념이 멀지 않다. 기원전 6세기에 만들어진 대접 모양의 와인잔은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타고 있는 돛배가 잔 안쪽에 둥실둥실 떠 있는 모양이다. 와인이 가득 담긴 이 잔을 입에 대고 죽 들이켜 마셔보자. 그러면 포도 줄기가 솟아나는 돛배 주위로 돌고래가 검푸른 와인색 바닷물에서 헤엄치는 신비한 이미지를 보게 된다. 디오니소스를 몰라본 해적이 모두 돌고래로 변해 물속으로 뛰어들어간 신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미술 역사상 ’블루‘라는 색상은 고대 이집트를 제외하면 중세기에 이르러서야 보편화했다. 그 이후에도 물감 재료가 무게당 금보다 비싸서 왕족이나 성모 마리아가 입는 옷의 색깔로 지정되어 신성함과 권력을 상징했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사랑받는 색인 ’블루‘는 이토록 희귀한 역사를 자랑한다. 김승중 / 고고학자·토론토대 교수아메리카 편지 블루 색깔 미술 역사상 와인색 바닷물 기본 색상
2023.08.25. 19:28
아무래도 나는 빨강이 되어가는 중이다// 빨강을 만난 건 겨울이었으나 겨울이 아니었더라도, 그 흰 눈 위에 떨어진 핏방울 혹은 얼음 속의 불// 우리는 잠시 스쳤을 뿐인데// 묻었나봐/ 꼭 여며두었던 소매 끝이거나 긴 목도리의 한쪽/ 열꽃이 번지고// 나는 사흘에 한 번 빨강을 앓고 하루에 한 번 그를 앓으며// 빨강이 되어간다/ 빨강은 얼어붙은 불이거나 불타는 얼음(…) -유병록 시인의 ‘빨강’ 부분 코로나가 시작되고 우울감이 가중되던 때 빨간색으로 차를 바꿨다. 토스터도 커피포트도. 세상이 다 칙칙해 보이고 마음도 바닥으로만 길을 내서 빨강이면 좀 기분이 나아질 것 같았다. 주위에서는 웬 빨강, 하면서 빨강색 차는 도난의 위험도 크다고 하고 너무 튀는 것 아니냐며 다소 의아해했다. 빨간색 차가 우울감을 해소하는 데 공헌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빨강의 역할로 좀은 기분이 나아지기도 한 것 같다. 코로나라는 터널을 어둡지만은 않게 지내왔다고 생각된다. 얼어붙은 불이거나 불타는 얼음으로 표현되는 빨강의 내부에는 생명력이 잠재해 있음은 확실하다. ‘색채의 향연’ (장석주 지음)은 색에 관한 통찰이 매력적인 책이다. 색에 관한 작가의 관찰이 남다르다. 지은이는 “사람이 식별할 수 있는 색깔은 1000개 정도다. 놀라지 마시라, 디지털 기술로 빛의 삼원색을 조합해서 만들 수 있는 색깔은 1600개! 이토록 많은 색깔은 저마다 만물과 조응하면서 마음 깊은 곳 금(琴)을 울린다. 색깔은 오감과 비벼지면서 감정과 심리에 영향을 미치고, 사람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고 기술했다. 그 많은 색깔 중에서도 빨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빨강은 생명의 원점이다. 생명은 무엇으로도 대체가 불가능한 절대 가치에 속한다. 그래서 빨강은 고귀하다. 빨강은 이성을 압도하는 본성의 색깔이다, 열정과 희열은 검정도 아니요 노랑도 아닌 빨강을 타고 온다. 빨강은 사랑과 열정의 신호색이다” 적색은 가시광선 중에서 가장 긴 파장을 가지고 있다. 갓난아이에게 가장 먼저 인지되는 색이라고 한다. 인류가 찾아낸 대표적인 빨강의 원천은 진드기류의 빨간색을 띤 벌레였다. 그중에서도 질 좋은 빨강을 제공하는 ‘코치닐’은 최상이다. ‘코치닐’은 선인장에 기생하는 연지벌레로 붉은색을 띠는 암컷만을 말린 후 붉은 색소로 사용된다. 에너지와 생명의 상징인 빨강, 그러나 부정적인 측면도 크다. 격렬, 폭력, 무자비, 혈투, 전쟁, 파괴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빨강의 문화사’를 쓴 스파이크 버클로(회화복원 전문가)는 신화, 종교, 과학, 언어학, 고고학, 인류학, 미슬 등 다양한 분야에 걸친 빨강의 변화무쌍한 일대기를 추적한다. 그에 의하면 오늘날 붉은 깃발은 흔히 공산주의, 좌파, 혁명, 노동자를 상징한다. 이는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러시아 볼셰비키와 중국 공산당 등이 붉은색을 상징으로 삼은 탓이다. 하지만 사실 빨강은 각 나라의 국기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색이다. 전 세계 80%의 국기에 빨간색이 포함되어 있다. 빨강은 혁명의 색 이전에 왕의 위엄과 헌신, 정치적인 인내심을 나타내는 색이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빨강은 왕실과 귀족들이 선호하는 색이었다. 흰색에서 검정에 이르기까지 잦아들고, 내치고, 부딪치면서 탄생했을 색깔들, 밝고 부드러운 색과 차고 서늘한 색들이 대치하지 않고 스며들어 가며 봄은 색깔을 탄생시킨다. 조성자 / 시인시로 읽는 삶 색깔 사실 빨강 사회주의 혁명 디지털 기술
2023.03.14. 17:36
2021년 연방 제2항소법원의 판례(Sulzer Mixpac AG v. A&N Trading Co.)와 관련된 제품 ‘믹싱팁’은 임플란트 제조시 카트리지에 연결하여 몰딩 재료를 석는 데 사용하는 간단한 기구이다. 슐저 (Sulzer)는 스위스 다국적 기업으로 전세계 치과용 믹싱팁의 90% 이상의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슐저는 수년 전부터 믹싱팁과 관련된 상표 25개를 미국 특허청에 등록했다. 노랑색, 녹색, 청색, 분홍색, 보라, 갈색(Candy-color, 사탕색깔로 통칭) 및 상품의 일부 모양을 조합하여 25개의 상표를 등록하여 사용하였다. A&N는 우리 로펌에서 대리한 한국 고객이다. 부산에 위치한 한국 중소기업 세일글로벌의 자회사로 세일글로벌이 제조한 믹싱팁 판매를 위해 세운 판매법인이다. 미국 치과 의료용 기구 박람회에서 세일글로벌 믹싱팀 제품을 전시하였고, 미국내 믹싱팁 수입 및 판매업자들의 명함을 받았다. 이후 슐저는 A&N과 세일글로벌을 상대로 뉴욕 멘헤튼에 위치한 뉴욕 연방지방법원에 상표침해 소송를 제기하였다. A&N 뿐만 아니라 슐저는 사탕색깔을 사용하여 믹싱팁을 제조하거나 판매하는 거의 모든 회사들을 상대로 미국 여러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다. 거의 모든 회사들이 소송대응을 포기하고 판매를 중지하거나 로열티를 지불하는 방식으로 슐저에 유리한 방향으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유일하게 세일글로벌 안임준 대표는 부당하다고 생각하여 용감하게 소송 대응을 하였다. A&N은 사탕색깔로 명칭된 믹싱팁의 색깔은 상표적 사용이 아니라 기능적인 사용이며 오래전부터 각 색깔은 믹싱팁의 직경과 매칭되어 사용되어져 왔다고 주장하였다. 믹싱팁을 사용하는 치과의사, 간호사들이 만들고자 하는 임플란트 치아 종류에 따라서 적절한 재료와 믹싱팁을 선택해야 하는데, 믹싱팁의 직경을 알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색깔을 보고 믹싱팁을 선택한다는 증거와 주장을 제기 하였다. 그러므로 색깔은 상표적 사용이 아니라 기능적 사용이므로 상표가 무효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A&N에서 판매 예정이었던 세일글로벌 믹싱팁은 슐저의 믹싱팁과 동일한 색깔을 사용하고 있지만, 모양이 다르기 때문에 상표가 유효할지라도 비침해라고 주장하였다. 슐저는 대형로펌을 고용하여 막대한 자금을 사용했다. 불필요한 증거조사 요구를 하는 등 매출이 없는 A&N이 과대하게 소송 비용이 발생하게 해 경제적 부담을 주는 전략으로 소송을 진행하였다. A&N는 소송비용 절감을 위해서 배심원 재판을 포기하고 판사단독 재판을 선택하였다. 1심 판사는 사탕색깔과 모양이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로 인정되며 상표적 사용으로 믹싱팁 소비자들에게 인식되어 있다고 판결했다. 거대기업인 슐저의 손을 들어 주었고 매출 하나 없는 A&N에게 2백만 달러 손해배상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항소법원은 정반대로 1심 판결을 뒤집었다. 항소법원은 A&N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슐저의 사탕색깔은 믹싱팁 직경과 상응하여 기능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므로 슐저의 모든 관련상표가 무효라고 판결하였다. 슐저는 대법원에 항고하였으나 대법원은 사건 심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항소법원의 결정이 최종 결정이 되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처럼 작지만 정의를 위해서 용감하게 싸운 세일글로벌 때문에 직경 크기와 관련한 사탕색깔의 믹싱팁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 기업이 문자, 디자인, 로고 상표뿐만 아니라 상품과 제품의 색깔, 모양 또는 색깔과 모양의 조합을 상표로 등록해서 지적재산을 보호하고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전략을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새로운 제품을 전시회에서 전시하기 전부터 특허나 상표와 관련해서 전문 변호사에게 상담받을 것을 권한다. ▶문의:(703)738-3438, [email protected] 김재연 / 변호사지식재산권 색깔 상품 세일글로벌 믹싱팁 상표적 사용 color 사탕색깔
2022.08.28.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