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침에] 세상에 필요한 ‘걸레 같은 만남’
살면서 숱한 헤어짐과 만남을 겪는다. 젊었을 때는 언젠가 다시 만나리라는 기대로 헤어짐을 견디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떠나보낼 수 있다는 호기로 만남을 가볍게 대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헤어짐은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기고, 만남은 만남대로 부담이 되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새 교회로 부임하면서 정든 교우들과의 헤어짐과 낯선 교우들과의 만남으로 뒤숭숭해진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것을 보면서 만남과 헤어짐의 무게를 느낄 나이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기대와 걱정이 뒤섞인 채 새로 오는 목사를 기다리던 교우들과의 첫 예배에서 정채봉 선생이 말한 ‘만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인이자 동화 작가였던 정채봉 선생은 다섯 종류의 만남이 있다고 했다. 그는 첫 번째로 ‘생선 같은 만남’이 있다고 하면서 이런 만남은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나기에 가장 잘못된 만남이라고 했다. 그가 말한 두 번째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이다. 꽃송이는 피어 있을 때는 환호하지만 시들게 되면 버려지기에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이다. 그가 말했던 또 하나의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인데, 만남의 의미가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기에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이라고 했다. 그는 또 ‘건전지 같은 만남’이 있다고 하면서 이 만남은 힘이 있을 때는 간수하다가 힘이 닳아 없어질 때는 버리기에 가장 비참한 만남이라고 했다. ‘생선, 꽃송이, 지우개, 건전지.’ 평소 아무렇지 않게 여기던 단어들이 이토록 날카롭게 만남을 풍자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만남을 괜찮게 빗댈 말이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 ‘하늘, 바다, 산, 들’ 그럴듯한 단어들이 떠올랐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가 또렷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정채봉 선생이 가장 아름다운 만남이라며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그는 ‘손수건 같은 만남’이 가장 아름다운 만남인 까닭은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 주고, 슬플 때는 눈물을 닦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차 싶었다. 지금까지 만났던 여러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며 손수건보다 생선, 꽃송이, 지우개, 건전지가 그들과의 만남을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손수건 같은 만남’을 갖겠다고 다짐하는데, ‘손수건은 무슨 손수건!’이라는 우레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라 주변을 살폈지만, 그 소리의 주인공을 찾을 수 없었다. 그 소리는 내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손수건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스스로에게 묻자, 불쑥 ‘걸레’라는 답이 들려왔다. ‘걸레 같은 만남’은 다른 이의 땀과 눈물만이 아니라 누군가가 흘린 오물까지도 닦아 줄 수 있는 만남이다. 어머니가 그러셨고, 나를 사랑해 준 이들이 그랬다. 그래서 그분들과의 만남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애틋해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점점 더 메말라가는 이유는 ‘손수건 같은 만남, 걸레 같은 만남’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기꺼이 손수건이 되고, 걸레가 되어 서로의 상처와 눈물, 땀은 물론이고,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와 허물마저 덮어주고 닦아주는 만남이 잦아질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살 만한 세상이 될 것이다. ‘손수건 같은 만남, 걸레 같은 만남’을 기대하며 이 아침을 맞는다. 이창민 / 목사·시온연합감리교회이아침에 걸레 만남 걸레 생선 꽃송이 정채봉 선생
2025.07.24. 1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