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9월 11일, 태풍 13호 ‘므르복(Merbok)’이 서부 알래스카의 ‘놈(Nome)’을 강타했다. 당시 한국에서 파견된 극지연구소 연구진은 물론 지역 주민들에게까지 막대한 피해를 안긴 이 재난 상황을 필자는 같은 해 10월 말 기고한 바 있다. 피해 주민들은 생활용수 부족과 도로 유실 등으로 수년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알래스카 주정부와 미군, 민간 구호단체의 지원으로 비교적 빠른 복구가 이뤄졌고, 놈을 중심으로 도로망이 복구되면서 인근 소규모 빌리지(인구 100~500명 내외 원주민 정착촌)들의 회복 속도 또한 빨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3년 뒤인 지난 10월 또 한 번의 거대한 재난이 서부 알래스카를 덮쳤다. 10월5일 북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 ‘할롱(Halong)’은 일본 남부 해안을 따라 북동쪽으로 이동하며 일본 서쪽 해상에서 저기압으로 약화돼 큰 피해 없이 소멸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북태평양 해수면 온도 상승의 영향으로 거대한 폭풍으로 변해 10월 11~12일 이틀간 서부 알래스카 여러 빌리지를 강타했다. 피해 지역은 광활한 ‘쿠스코퀌 델타(Kuskokwim Delta·약 13만㎢)’ 일대로, 폭풍 해일과 대규모 홍수, 시속 45km에 이르는 허리케인급 강풍이 겹치며 참혹한 상흔을 남겼다. 특히 ‘킵눅(Kipnuk·인구 488명)’, ‘크위길링옥(Kwigillingok·461명)’, ‘나파키악(Napakiak·345명)’ 등 세 곳의 피해가 가장 컸다. 킵눅에서는 주택과 공공시설 등 구조물의 90%가 파괴되거나 사용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고, 크위길링옥에서는 전체 주택의 3분의 1 이상이 붕괴됐다. 사망자도 계속 발생하고 있으며, 1500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들 지역은 도로가 없어 이동수단이 비행기와 선박에 의존하는 곳이다. 태풍 이후 주민들은 군용기를 이용해 앵커리지와 ‘베델(Bethel)’ 등지로 긴급 대피했다. 알래스카 주지사는 연방정부에 재난지역 선포를 요청했고, 피해 규모가 워낙 커 대부분의 이재민이 최소 18개월 이상 고향으로 돌아가기 어렵다는 공식 발표도 나왔다. 현재도 공청회를 통해 피해 최소화 대책과 이재민 이주 계획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한편 알래스카 대학을 비롯한 기후과학자들은 이번 태풍의 발생 원인과 이동 경로, 과거 태풍보다 비정상적으로 거대해진 이유, 동베링해에 미친 영향, 향후 태풍 발생 빈도 등을 분석하는 긴급 회의를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해수 온도 상승이 태풍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으며, 기후변화와 온난화가 극지방까지 태풍의 위력을 키우고 있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원주민 공동체는 본래 생존력과 회복력이 강하지만, 이번처럼 생활 기반이 거의 전면적으로 파괴된 상황에서는 개인의 힘만으로는 생존과 복구가 불가능하다. 현재 대대적인 공중 수송 작전이 진행 중이지만, 수송기가 착륙할 공간조차 확보되지 않은 지역이 많아 헬기를 통한 소수 인원 이동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알래스카 주정부는 2022년 므르복 피해 당시와 유사한 대규모 장기 지원 계획을 다시 준비 중이다. 현재 베델의 구호소는 이미 포화 상태이며, 대부분의 이재민은 앵커리지로 이송되고 있다. 이번 재난은 기후변화 시대에 어떤 대응과 대비가 필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경고다. 북극권 공동체가 앞으로 직면하게 될 새로운 위기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해졌다. 알래스카 원주민들, 특히 에스키모인은 조상 대대로 수렵과 어로를 위해 연안에 삶의 터전을 형성해 왔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온난화는 이들의 삶의 기반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연안 침식(coastal erosion)이다. 태풍과 강풍으로 연안 지반이 무너지며 주민들은 내륙으로 이주를 강요받고 있다. 침식으로 노출된 동토층은 온난화를 더욱 가속시키는 악순환을 낳고 있으며, 알래스카와 러시아 전역에서 이런 사례가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더 나아가 연안에 위치한 조상의 봉분까지 유실·노출되며 공동체는 깊은 상실감과 정신적 고통까지 겪고 있다. 온난화로 인해 북태평양 수온이 계속 상승할 경우, 아시아에서 발생한 태풍이 알래스카까지 장거리 이동하는 빈도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 규모와 위력 역시 지금보다 훨씬 강력해져, 평지가 많은 서부 알래스카 지역은 현재보다 더 큰 재난에 노출될 수 있다. 이제 인간이 자연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무거운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이번 알래스카 재난은 기후변화가 더 이상 이론이나 예측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생존을 위협하는 현실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기고 태풍 북극 서부 알래스카 알래스카 주정부 알래스카 주지사
2025.12.18. 20:27
올해 4월부터 준비한 9월 마지막 야외관측이 서부 알래스카 도시인 놈(Nome)에서 실시될 예정이었다. 9월 18일 새벽에 비행기를 타야 정오에 놈에 도착할 수 있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그곳 숙소 주인으로부터 17일의 태풍 (므르복 (Merbok): 말레시아어로 비둘기)으로 인해 시내가 침수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침수된 수위가 3.2미터나 되었다. 태풍은 동아시아에서, 사이클론은 인도양에서, 그리고 허리케인은 멕시코만에서 발생하는 열대성 저기압이다. 따뜻해진 수온으로 인해 수증기를 많이 함유하고 지구의 자전과 편서풍에 의해 발생한다. 또 큰 태풍의 씨앗이 작은 태풍의 씨앗을 먹어 세력이 거대해지는 경우도 간혹 발생한다. 페어뱅크스에서 직접 놈으로 가는 비행기는 없다. 그래서, 앵커리지를 경유해서 가기 때문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앵커리지에 도착하니 놈으로 가는 비행기가 연착됐다는 메시지가 떴다. 17일에 불어 닥친 태풍의 후유증으로 도시가 비상 상태임을 직감했다. 두세 시간 기다리니 비행기 출발이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왔다. 도착한 놈은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연안의 집은 둥둥 떠내려가고, 바닷가에는 유목이 마을로 밀려와 있었다. 만조에 태풍이 강타한 것이었다. 이 태풍의 기원은 어딜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태풍은 알래스카에서 먼 동아시아 지역 북태평양에서 생성되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무척 드문 현상으로, 50년 만에 처음 불어닥친 태풍으로 기록되었다. 원래 북태평양 물은 다른 곳보다 기온이 낮은, 찬물에 속한다. 북태평양은 용승현상(저층수가 표층으로 올라오는 자연현상)으로 저층수에 포함된 풍부한 영양성분이 올라와 매년 어장이 형성된다. 이처럼 찬 북태평양 해수가 따뜻해져 수증기 증발을 가속화시켜 태풍의 씨앗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해양연구에서는 표층해수 온도 변화를 직접 측정하거나 위성으로 관측한다. 태풍은 대체로 10월과 11월에 서부 알래스카로 불어온다. 그렇지만, 기후학자들은 이미 잠재적으로 태풍을 만들 조건이 충분한 상태라고 지적한다. 시베리아에 가까운 서부 베링해와 놈에 가까운 동부 베링해의 수온 차이가 태풍을 만드는 기폭장치가 되었다. 이 온도 차이로 인한 것이 이번 태풍이라고 한다. 즉 온난화로 태풍 형성이 더 빈번해지고 강도도 더 커졌다고 한다. 따뜻해진 해수로 인해 미래에 태풍이 더 자주 불어닥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번 태풍의 영향을 받은 지역는 베링해 연안을 따라 수백 마일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놈에서 내륙 쪽으로 85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연구 사이트는 전혀 태풍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놈 동쪽 3마일 지점은 해안선이 완전히 파괴되었고, 20마일 지점에 위치한 다리는 반파되었다. 공동연구를 하는 한국극지연구소 팀은 헬리콥터를 빌려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두 번째 출항 시 탑승할 수 있을 것 같아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지만, 헬기 또한 기상의 영향을 많이 받는 탓에 당일이 되어야 할 수 있을 것 같다. 태풍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한인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이 전기합선으로 불이 나 전소됐고 부부도 부상을 입었다. 식수 문제도 심각하다. 식수원의 파괴와 바닷물의 유입으로 해결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들 것으로 보인다. 원주민의 생활터전인 사냥과 수산업 등도 막대한 피해를 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알래스카 주 정부 등에서는 신속한 피해 복구를 통해 피해 최소화에 주력하고 있다. 더욱이 겨울이 다가오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지구 온난화와 극지 기후변화의 부작용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가올 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김용원 / 알래스카주립대 페어뱅크스 교수기고 태풍 알래스카 서부 알래스카 서부 베링해 북태평양 해수
2022.10.25. 1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