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괜찮아요
서해 인천 바다 위를 지나고 있다. 한참을 달렸는데 아직 다리 위에 있다. 인천 대교다. 이 길을 다시 건너게 될까? 안개 너머로 다가오는 모습이 쓸쓸하기만 하다. 추적추적 비는 내리는데 다들 어디로 이렇게 바삐 가고 있는 걸까? 한 달의 한국 방문을 끝내고 시카고로 떠나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가고 있다. 다 주워 담지 못할 풍경과, 낯선 만남과, 발길 닿는 여행의 날들. 모두가 잊힐 리 없는 귀한 시간들이었다. 여행의 반을 지낼 즈음 시카고가 몹시 그리웠다. 시카고로 간다. 사이의 힘 // 낙화하는 꽃은 더 이상 / 뿌리에 미련을 두지 않는 법 //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 사이의 온도가 있다 // 너무 가까우면 뜨겁고 // 너무 멀면 식어 버린다 // 어느 쪽으로 기울지 / 알 수 없는 힘이 / 그 사이를 맴돈다 // 모든 사물은 서로의 사이에 / 서서 자신을 지탱하기도 한다 // 24시간의 벽에 부딪히기도 / 견디어 나가기도 한다 // 시차에 적응하느라 낮과 밤의 경계를 넘나든다 // 산다는 건 / 피고 지는 일 / 겨울 가고 봄 오듯 꽃이 핀다 / 가을 가고 겨울 오듯 꽃이 진다 / 꽃이 피었다 지듯 / 우리도 피어나고 진다 / 산다는 건 피고 지는 일 아닌가 밤새 잔 눈이 내렸다 쌀가루같이 내렸다. 새벽이 지나자 본격적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거리의 모든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몇 시간 내린 눈에 이렇게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해 버렸다. 위대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다. 눈은 계속 내릴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들은 그 아래 덮일 것이다. 높은 자도 낮은 자도 없을 것이고, 부유한 자도 가난한 자도, 행복한 자의 마음에도 불행하다고 느끼던 안타까운 마음에도 공평히 내릴 것이다. 쌓이고 또 쌓이면 그곳에 집을 짓자. 누구도 쉽게 무너트릴 수 없는 견고한 집을 짓자. 그곳에 사는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 평화가 가득하여 꽃이 마구 피어나는 하얗고 따뜻한 집을 짓자. 괜찮아요 / 눈이 내리고 있어요 / 오랜 이름을 불러보아요 / 무너지는 나의 기척을 알지 못해요 // 어디서 부터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 핏줄 선 손에 오랜 시간의 음각이 보여요 // 자신을 덜어 빈몸이 된 달처럼 / 깎여야 채울 수 있어요 / 그믐뿐이겠어요// 괜찮아요 / 눈이 쌓이고 있어요 / 반짝이는 윤슬의 기억으로 / 내 맘 같은 미시간 호수를 바라보아요 / 달이 뜨고, 또 하루가 가고 / 파도의 결 하나씩 지워지고 있어요 // 일어나 허리를 펴는 남자 / 달빛이 남자를 껴안아요 // 파도를 깨우고 / 나는 눈을 뜨고 있어요 // 오래된 이름을 가슴에 불러 보아요 / 무너지는 나의 기척을 알지 못해요// 괜찮아요 / 세상을 하얗게 덮어줄 / 겨울이 오고 있어요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 풍경 미시간 호수 서해 인천 자의 마음
2025.12.01. 1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