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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고 김윤경 선생을 추모하며

잘 알려지지 않은 한 친구의 이야기를 전하려 합니다. 김윤경은 경기중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을 거쳐 미국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학문적 성취에 안주하지 않고 평생을 철학, 신학, 역사 연구에 바쳤습니다. 그가 고민한 것은 ‘진정한 인간의 삶은 무엇인가’와 ‘남북 평화는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였습니다.   그와의 첫 만남은 1986년이었습니다. 당시 그의 강연에 참석한 것이 계기였습니다.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 비판에 대한 강의는 무려 여섯 시간 동안 이어졌고, 깊이 있는 해석과 논증이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그의 설명 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성경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원죄 개념에 대한 상반된 시각을 설명하던 순간이었습니다.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다고 자식의 입이 쓰겠느냐? 내가 부모의 죄를 자식에게 묻지 않겠다’는 성경 말씀을 전하며 “원죄를 지닌 인간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깊은 사색을 유도했습니다.     또한, 자본주의가 ‘능력만큼 일하고 번 만큼 소비하는 체제’라면, 공산주의는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체제’라는 비교도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철학에 대한 열정도 남달랐습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1년간 강의했습니다. 칸트의 묘비명인 ‘머리 위에 별이 빛나는 하늘 그리고 내 마음의 도덕법칙’을 되새기며 철학 공부를 다시 이어갔습니다.     특히 정신과 의사들에게도 의미 있는 자료를 찾아 제공할 정도로 연구 범위가 방대했습니다. 그가 건네준 책 중 하나는 철학자이자 신학자, 음악가이면서 목사였던 슈바이처가 37세에 의과대학 졸업 논문으로 발표한 예수에 대한 정신의학적 연구였습니다. 그가 이끈 ‘86역사모임’은 1986년 시작되어 33년간 지속되었습니다. 강연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적 논점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분석하였습니다. 예컨대, 맥아더 장군이 남한을 유엔의 관리하에 둔다고 선언한 반면, 소련은 북한을 독립국가로 인정했다는 문서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소련군이 한반도를 거쳐 일본 북부를 점령하려 했고, 미국이 이를 막기 위해 두 차례 원자폭탄을 투하했다는 논점도 다루었습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왜 이렇게 공부만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진정 원하는 바를 하지 않는 인생은 낭비한 것”이라 답했습니다. 이 때문에 화가였던 부인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두 딸은 뛰어난 지적 능력으로 고등학교 3년을 월반하여 대학에 진학하는 기록을 세웠고, 현재는 인류를 위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김윤경 선생의 가르침을 받은 많은 이들이 이민 생활 속에서 깊은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2월 21일 금요일 밤, 잠든 채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서재에는 중국어로 된 역사서 400여 권, 독일어 원서를 포함한 철학 서적, 그리고 3000여 권의 영어 서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는 어려운 성장기를 겪었지만 누구와도 다투지 않았고, 평생을 ‘가장 평등하고 자유로운 삶’이 무엇인지 연구하는 데 바쳤습니다. 그를 떠올리면 “지면을 지그시 누르는 바위의 무게는 날아오르는 새의 중심을 잡아준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그의 열정과 애정이 AI 시대에 더욱 산만해져 가는 인간 정신세계 속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존재로 남기를 바랍니다. 조만철 / 정신과 전문의열린광장 김윤경 선생 김윤경 선생 철학 서적 철학 공부

2025.03.0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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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자살하는 선생님들

미국 뉴스에도 한국 선생님들의 자살 사건이 크게 보도됐다. 한국 언론을 통해 알고 있던 터라 놀라지는 않았지만 한국인의 자살 소식이 세계로 퍼져 나간다니 찹찹한 심정이다.   무엇보다 좋지 않은 일로 선생님을 잃은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된다. 어린아이들은 학교에서 선생님처럼 되려고 노력 하면서 교육이 이루어진다. 많은 초등학생이 선생이 되고 싶어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으려면 ‘집행 기능 능력(executive function)’이라 불리는 사고 기능이 필요하다. 이 기능은 태어날 때부터 두뇌 안에 가능성이 존재한다. 마치 언어 습득 가능성이 두뇌 안에 존재하는 것과 같다.       갓난아기는 갑자기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큰 소리로 울어댄다. 존재의 위협에 반응하는 본능적 행동이다. 그러다가 생후 6개월이 되면, 엄마를 찾아 울기 전에 엄마가 마지막으로 있던 곳을 쳐다본다고 한다. 즉, 자신의 감정을 조절해서 잠깐 참았다가, 그래도 엄마가 안 보이면 울기 시작한다. 아기는 이미 감정 조절을 할 수 있는 집행 기능 능력을 길렀고, 이것은 두뇌 전두엽의 발달이 진행되고 있음을 뜻한다.     갓난아기의 두뇌에는 어른 두뇌의 90%에 해당하는 뇌세포(neuron)가 이미 존재한다. 뇌세포는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크기에 변화가 오고, 뇌세포들을 연결하는 시냅스의 숫자가 증가한다.   6개월 된 아기는 ▶반응 억제(response inhibition) ▶주의 집중 (sustained attention) ▶기능에 필요한 기억(working memory) ▶감정 조절(emotional control) 등 4가지 집행 기능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 능력에 의해서 아기는 가까이 가거나 피하는 행동(Approach/Avoidance behavior)이 가능해진다. 어린이는 집행 기능인 ‘반응 시작/반응 억제(Responnse initiation/ Response inhibition)’를 통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배우고,이는 학교 교육에 중요한 기능이 된다. 부모가 이 기능을 잘 길러준 아이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만 학대를 받았거나 다른 상처로 인해 이 기능을 훈련받지 못한 아이는 뇌 구조에 변화가 올 수 있다. 집행 기능 능력이 떨어진 어린이나 청소년은 학교에서 문제 행동을 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이런 학생에겐 특별한 도움이 필요하다. 보조 교사, 카운슬러, 또는 특수 교육반 교육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도움이 없이 선생님 혼자서 문제아와 일반 아이들을 동시에 가르치기는 어렵다.     필자가 카이저에서 근무하던 시절, 의료 보험이 없는 한인들을 위해 교회 사무실에 ‘라이프 케어 센터’라는 정신과 클리닉을 운영했었다. 그런데 이곳을 찾는 한인 환자의 약 70%가 ADHD(주의력 결핍 및 과잉 행동 장애) 질환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자신에게 이런 질병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가정폭력, 아동학대, 알코올중독 또는 심한 우울 증상으로 찾아 왔다가, ‘들어본 적도 없는 이상한 병’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간혹 자녀 문제로 왔다가 자신에게도 똑같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한국의 초등학교 교실에 감정 조절, 주의 집중, 반응 억제 등 집행 기능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선생님은 적당한 체벌과 칭찬을 통해 문제 학생을 통제하며 다른 학생도 교육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선생님을 비난하기보다 학교나 교육청 차원에서 아이들이 집행 기능을 기르도록 도와야 마땅하다. 만약 아이의 문제가 ADHD라는 두뇌의 질병이면 정신과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받게 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의 한인 부모들도 선생님들이 자녀의 정신과 진단과 치료를 권하면, 그중 반 정도만 이를 따른다. 그리고 아이의 행동에 대한 질문지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또는 “아주 조금 있다”로 표시한다. 한국의 부모들도 자녀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선생님에게 화살을 돌리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아이들의 두뇌는 25세까지 계속 성숙한다. 비록 어린 시절에 어떤 이유로 집행 능력을 키우지 못했었더라도 좋은 선생님이나 상담사를 만나면 좋아질 수 있다. 부모와 교육 관계자들이 힘을 합해 아이들의 집행 능력을 길러주자. 선생님은 아이들이 존경하고 닮고 싶어하는 역할 모델이다. 그들이 행복하고 희망에 찬 모습으로 아이들의 등불이 될 수 있게 하자.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자살 선생 집행 기능인 한국 선생님들 문제 행동

2024.08.1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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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오현경 선생님 영전에 부쳐

한국 연극계의 거목 오현경 선생님이 지난 3월 1일,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비보를 접했습니다. 2016년 한국 방문 때 선생님과의 마지막 만남이 생각납니다.   미국에서 반가운 사람이 왔다며 약수동 자택으로 저를 불러 손수 점심을 요리해 주시고 오후에는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뒷편에 있는 ‘송백당’을 안내해 주셨습니다. ‘송백당’은 연극인들의 발음과 화술 교육을 위해 선생님이 사비를 들여 개관한 곳입니다. 그때 “지난 3년간 송백당을 거쳐 간 배우가 100여 명이 넘는다”고 어린아이처럼 웃으시며 기뻐하시던 것이 생전에 뵌 마지막 모습이 되었습니다.   오현경 선생님!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LA 연극인들도 무척이나 사랑하셨던 분이었습니다.  2000~2010년대에는 부인인 윤소정 선생님과 함께 2, 3년에 한 번씩은 LA를 방문하곤 하셨습니다. 그때마다 저에게 고국 연극계의 생생한 소식을 전해 주셨고, 때로는 고국 극단들과의 가교역할도 해주셨습니다. 그 덕에 저는 한국 최고의 수준 높은 연극을 초청해 한인 사회에 소개하는 기쁨을 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또한  LA 방문 중에 한인 연극인들의 공연이 있으면 꼭 찾아와 함께 축하하고 격려금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한인 배우들의 발음을 위해 어려운 시간을 내 워크숍도 열어 주셨던 선생님의 자상하신 모습을 이곳 연극인들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오현경 선생님!   선생님은 66년간 행복한 연극인이었습니다. 연극인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연극대상 남자 연기상, 한국문화대상 연극부문 대상, 서울시연극상, 동아연극상, 서울연극제 남자 연기상 ,KBS 연기대상 등 많은 상을 받았고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삶과 예술이 모두 빛나는 행복한 분이었습니다.     LA에서 선생님과 나눴던 얘기 가운데 잊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건강이 좋아지고 주변 여건이 조성되면 한미합작으로 한국정통해학극 ‘맹진사댁 경사’를 오현경 연출, 에이콤 기획으로LA 무대에 올리자는 것이었습니다. 전무송, 이호재, 정동환 등 한국 연극계의 스타들과 LA 연극인들이 함께 무대를 만들면 뜻깊을 것이라며…. 그러나 그 바람은 영원히 미완으로 남은 채 2023년 선생님의 유작 ‘한여름 밤의 꿈’ 속 마지막 대사처럼 “자, 저는 이만 갑니다” 를 남기고 먼 길을 떠나셨네요.   연극을 종교처럼 가슴에 품고 살았던 오현경 선생님!   이제 대한민국 연극은 자랑스러운 후배들에게 맡기시고 7년 전 먼저 떠나신 윤소정 선생님과 함께 대학로 마로니에 거리를 환히 비추는 큰 별이 되어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광진 / 문화기획사 에이콤 대표열린광장 오현경 선생 오현경 선생님 윤소정 선생님 오현경 연출

2024.03.1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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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그때 그 선생님

그때가 1964년이었으니까 60년 전 충청도에서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세 개의 마을을 합쳐 보았자 100가구도 안 되는 작은 시골 마을 학교였다. 대학을 갓 졸업한 공 선생님이 우리 반 담임으로 부임하셨는데 우리 학교가 초임지였다. 굉장한 미인이셨는데 선생님 가까이에 가면 향기가 났다. 나는 선생님의 그 향기가 참으로 좋았다. 나중에 커서 선생님처럼 예쁜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기도 했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선생님은 나를 무척 귀여워해 주셨다. 햇볕이 따스한 봄날 너무 배가 고파 나무에 돋아난 새싹을 따 먹으려 나무에 올라갔다가 가지가 부러지는 바람에 떨어져 왼쪽 팔이 부러졌다. 읍내 병원에 가서 깁스붕대를 하고 학교를 이틀 결석했는데 선생님도 보고 싶고 공부도 하고 싶어 안달복달하였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학교에 가서 교문 콘크리트 기둥 뒤에 숨어서 살며시 교실 쪽을 살피다가 선생님께 들켰다. 선생님은 운동장으로 걸어 나와 내 쪽으로 오시더니 손목을 잡고 교실로 들어가 “여러분도 공부에 열의가 있는 진용이를 닮아야 한다”고 칭찬해 주셨다.   하루는 체육 시간을 끝내고 교실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며 바지 속 주머니를 뒤져 보았더니 갖고 있던 10원짜리 지폐가 없어졌다. 소녀 가장인 누나가 공책 사라고 준 돈이었는데 그 돈이면 공책 서너 권을 살 수 있었다. 나는 훌쩍거리며 선생님께 알렸다. 선생님은 온갖 방법으로 범인 색출 작업에 나섰다. “전부 눈을 감아라. 아무런 문제도 삼지 않을 테니 돈을 가져간 사람은 살짝 눈을 떴다 감거라.” 애가 탈 정도로 달래 보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셨지만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선생님은 좋은 방법이 있다며 교실을 나가신 후 잠시 후 조그만 빈 항아리를 들고 오셨다. 아마 학교 옆에 있는 교장 선생님 사택에서 빌려 오신 듯 했다. “지금부터 한 사람씩 나와서 항아리 속에 손을 넣었다 빼거라. 돈을 안 가져간 사람은 아무 일이 없겠지만 돈을 가져간 사람은 이 속에 손을 넣었다 빼면 그 손이 서서히 썩어들어 가게 된다”고 겁을 주며 으름장을 놓으셨다.   모두 씩씩하게 나가서 항아리 속에 손을 넣었다. 내 짝꿍 차례가 되었는데 녀석이 주저하더니 항아리 속에 손을 넣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면서 ‘으앙’ 울음을 터뜨렸다. 선생님은 이렇게 슬기로운 지혜로 돈을 가져간 사람을 찾아낸 것이었다.   어느 날 셋째 산수 수업시간에 ‘드르륵’ 교실 문이 열리며 난데없이 어머니가 들어 오셨다. “이진용 어미인데 공부하는 것 좀 보러 왔다”고 하시자 선생님께서 반갑게 맞이하시며 뒤쪽에 의자를 갖다 놓고 어머니를 앉히셨다. 그리고 나를 나오라고 하시며 칠판에 산수 문제를 몇 문제 적어 놓으시고 나보고 풀어보라고 하시기에 나는 쉽게 답을 썼다. 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만족해하셨고, 어머니는 아들이 대견스러워 흡족해하셨다.   수업이 끝나자 어머니가 선생님 앞으로 나가시더니 돌아서서 몸빼 속에 껴입은 고쟁이 주머니에서 50원짜리 지폐 한장을 꺼내 “선생님! 이 교실에 거울이 없는데 이 돈으로 거울을 사 놓으시라”고 선생님 손에 쥐여 주시려 하자, 선생님은 화들짝 하시며 손사래 치셨다. 모든 학생이 주시하고 있으니 민망하셨는지 계속된 어머니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할 수 없이 받으셨다. 수업이 끝나고 하교 시간에 “진용이는 교실에 남아 있거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누런 편지 봉투 속에 그 50원짜리 지폐를 담아 돌려주시면서 “너는 아버지도 안 계셔 가정 형편이 어려운데 이 돈을 받을 수 없다. 내가 월급을 타면 거울을 꼭 사서 걸어 놓을 테니 어머니께 도로 갖다 드리라고 한사코 주셔서 그 돈을 돌려받았다. 며칠 후 우리 교실에는 선생님을 닮은 예쁜 사각 거울이 교실 뒷벽에 걸리게 되었다.   선생님은 우리 학교에서 일 년을 근무하시고 같은 군 내에 있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다.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에서 이임사를 하시고 곧바로 교문을 걸어나가셨는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 역시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허우룩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어 오랫동안 가슴이 아팠다. 내 생애에 100여 명이 넘는 은사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지만 유독 공 선생님이 기억에 남고 가슴 속에 각인된 이유는 무엇일까?   2년 후면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 어쩌면 돌아가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수소문하여 ‘그때 그 선생님’을 꼭 한번 찾아뵐 계획이다. 그리고는 큰절을 올려야지…. 이진용 / 수필가수필 선생 교장 선생님 선생님 가까이 산수 수업시간

2023.11.16. 20:12

"대학생때까지 선생님이 수년 간 성 학대" 소송

    한 여성이 라카냐다 플린트리지 소재 프렙 스쿨 재학 당시 수년 동안 한 교사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이 여성은 "어린 시절 그루밍 당하고 성적으로 학대 당했으며 이에 대해 학교 측은 나의 안전 보다는 학교 명성을 지키는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이 여성은 플린트리지 프렙 스쿨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면서 재학 당시 한 교사와 수년 간에 걸쳐 관계를 맺었으며 여기에는 부적절한 성적 관계도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이 여성의 변호사는 자신의 고객이 그녀보다 두 배나 나이가 많은 남성의 관심을 견뎌내면서 그 속에서 그루밍과 희롱, 성추행, 학대 등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해당 사건은 2013년부터 시작됐으며 피해 여성이 대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이어지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가 터지고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여성은 지난 주 이 문제와 관련해 정식으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학교측이 두 사람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고 있었음에도 학교 이미지를 고려해 그 같은 사실을 숨기는 것을 선택했다며 이에 대한 액수 미상의 피해보상액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학교 측은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두 사람에 관한 소문을 인지한 직후 해당 교사를 임시 휴직 시켰고 LA 카운티 셰리프국에 알렸다고 밝혔다. 학교 측은 또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더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철저한 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에 근거해 해당 교사의 임용을 4월에 종료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해 학생은 해당 조치가 10년 뒤에나 이뤄진 것은 너무 늦은 것이라며 그 기간 동안 전체 커뮤니티는 나를 지켜만 봤고 가해자를 멈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디지털본부 뉴스랩대학생때 선생 학대 소송 성적 학대 희롱 학대

2023.11.1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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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나의 소중한 선생님

보물보다 소중한 게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이다. 부피나 무게로 따질 수 없다. 만질 수도, 화폭에 담을 수 없어도 기억의 창고 속에 마른 꽃잎의 그리움으로 남는다.   언제부터인가 리사가 달력이나 공책, 내 책상 캘린더에 ‘McFarland’라고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낙서인 줄 알고 내 달력에 장난치지 말라고 했다. 리사는 말을 참 잘 듣는다. 한 번 약속한 건 꼭 지킨다. 그런데도 그 이름을 집안 곳곳에 있는 빈 종이에 적었다. 바쁜 내 일상 때문에 리사의 낙서(?)는 한참 계속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은 수 없는 목숨을 앗아갔지만 가정과 가족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게 한다. 큰 도시로 화랑 옮겨 크게 한판 벌려 보겠다던 허황된(?) 꿈을 접고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타인에게로 향하던 인생의 나침반을 오롯이 나 자신과 가족을 위해 고정시키니 사는 게 간단해졌다. 재물과 욕망, 권력과 명예의 헛된 망상의 뿌리를 자르니 사는 것이 편안해지고 리사와 눈 맞추고 즐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리사는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났다. 만 하루만에 막힌 십이지장 수술을 받아 생명를 건지고 일곱살 때 심장판막 재생수술을 받았다. 팬타곤 좋은 직장을 마다하고 오하이오주로 온 것은 리사 교육 때문이다. Mongomery County는 특수교육이 선두를 달리는 곳이고 큰 도시보다 중소도시에서 리사를 키우는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을 했다.     리사는 18개월부터 특수교육을 받고 장애아를 일반 학교에 합류시키는 Main Stream으로 일반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노란색 졸업모자 쓴 리사에게 다정한 눈길로 허리 굽혀 졸업장 주는 교장선생님과 리사는 당당하게 악수했다. 옹기종기 놓인 가족 사진 중 리사 졸업사진은 우리집 가보 1호다. 늘 즐겁고 착한 리사의 행복지수는 만점이다     리사는 내 수호천사다. 항상 내 곁을 지켜준다. 어릴 적엔 내가 리사를 지켰는데 지금은 리사가 날 보호해준다. 댕그랑 소리만 나도 “마미, 괜찮아?”라고 날 찿는다. ‘자라지 않는 아이’라는 내 글을 읽고 예전에 “지금은 힘들겠지만 리사가 곁에서 평생동안 지켜줄 거예요”라고 후배가 말했다. 애들이 각자 가정 꾸려 떠나간 빈 공터 같은 집에서 꽁무니 졸졸 따라 다니며 하루에 “사랑해”라고 백번은 더 종알거린다.   아! 이제는 리사가 ‘McFarland’이라고 집안 곳곳에 비밀처럼 적어둔 수수깨끼를 풀 시간이다. ‘맥 팔런’은 리사의 기억 속에 지울 수 없는 고등학교 선생님 이름이다. 리사는 “참 좋은 선생님이야. 정말 보고 싶어”라고 매일 그녀 이름을 부른다. 그동안 마음 속에 담아두고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몇 년 전부터 여러모로 수소문해도 은퇴한 뒤라서 연락이 닿지 않았는데 특수교육담당자 친구의 어머니가 비슷한 이름이라는 제보를 받고 첩보원처럼 수색작전 펴서 연락이 닿았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리사의 행복은 현재진행형이다. 식당 예약하고 고등학교 때 입었던 Centerville ELKS가 찍힌 티셔츠도 구입했다. 리사는 잠을 설치며 다음 주를 손꼽아 기다린다.     연이은 교사들의 자살은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수치와 고마움, 옳고 그름을 가르치지 못하면 자식의 미래는 없다. 독불장군은 인생에서 패배한다. 사람이 사람을 키운다. 졸업식 때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라는 노래를 부를 때는 감격의 눈물이 핑 돌았다. 언제부터 배움의 터전이 이토록 사악해졌을까. 리사는 장애아로 태어났지만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돌봄으로 행복하게 자랐다. 스무해를 애타게 그리워하며 찿던, 리사 인생에 보석보다 더 빛나는 소중한 선생님! 당신이 있었기에 내 딸은 차별 없는 곳에서 사랑의 꽃을 피웠습니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선생 고등학교 선생님 특수교육담당자 친구 리사 졸업사진

2023.09.12.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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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꽃 속에 드시다’…원로문인 오문강 시인

오문강 원로 시인이 세 번째 시집 ‘선생님 꽃 속에 드시다(시산맥·사진)’를 출간했다. 첫 번째 시집 ‘까치와 모국어’에 이어 두 번째 시집 ‘거북이와 산다’를 펴낸 지 13년 만이다. 이번 시집에는 ‘나 본 듯이 보거라’, ‘우리 국어 선생님’ 등 39편의 신작시와 산문 1편을 총 4부로 나누어 수록했다.     평론가 방민호 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는 “오문강 시인의 작품들은 일상의 소소한 경험들을 그려놓은 것 같지만 마치 물 한 방울에 세계를 담듯이 삶이라는 문제를 숙고하게 한다”며 “평이한 듯한 진술 속에 시인의 비범한 성찰적 시선과 태도가 돋보인다”고 평했다.     시인의 말에서 오문강 시인은 “시가 나를 버리지 않게 내가 시를 버리지 않게 애쓰지 않고 덤덤하게 같이 오래 살았다”며 “시와 함께 넣은 산 문 한편은 나에게는 내 시의 역사이기도 하고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을 기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문강 시인은 1986년 현대문학에 시로 등단했다. 미주시인상, 미주문학상 수상,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이은영 기자원로문인 선생 미주시인상 미주문학상 원로 시인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장

2023.08.1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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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따듯한 선생님 구합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토요 데이케어 프로그램인 '핸드 인 핸드'(이사장 김병대)가 봉사직으로 일할 교사를 모집 중이다.   '핸드인 핸드'는 지난달 25일 20여 명의 학생 봉사자들을 초청해 오리엔테이션과 트레이닝 세션을 가졌다. 이 단체를 위해 봉사하고 있는 이지원 디렉터는 이날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후 "생활체육, 미술, 음악, 댄스, 태권도를 비롯해 간단한 요리를 재미있게 가르쳐 줄 교사들을 모집 중"이라면서 "반드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우리 학생들을 위하는 따뜻한 마음과 작은 정성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자격조건을 설명했다.   이 디렉터는 이어 "특히 각 담당 분야에 많은 분들이 지원해 준다면 교사 한 명이 매주 강의를 해야 하는 부담도 덜 수 있다"며 로컬 한인들의 많이 관심과 성원을 당부했다.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대면 수업을 재개하는 '핸드인핸드'는  매주 토요일 오전10시부터 12시 까지 콘보이 한인타운 인근에 위치한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봉사문의: (858)525-5300 (이지원 디렉터)/(619)857-6872(김병대 이사장) 서정원 기자마음 선생 이지원 디렉터 이사장 김병대 김병대 이사장

2023.02.2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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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 강 국 선생 18일 소천

강 국 선생이 지난 18일 오전 6시 플러싱병원에서 향년 76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소천했다.   환송예배는 뉴욕소금교회 한종은 목사 집례로 22일(목) 오후 5시30분(조문은 4시부터)에 뉴욕시 플러싱에 있는 중앙장의사(162-14 Sanford Ave., Flushing, NY 11358/전화 718-353-2424)에서 열린다.   장지는 퀸즈에 있는 프레시 폰드 세미트리로, 화장예배는 23일(금)에 열린다. 유가족 연락처 718-614-7003.부고 선생 소천 유가족 연락처 뉴욕시 플러싱 향년 76세

2022.12.20. 21:10

[중국읽기] ‘3다 선생’ 장쩌민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은 과거 집권 시기 베이징 외교가에서 ‘3다(三多) 선생’으로 불렸다. ‘말과 노래, 영어’ 세 가지를 많이 한다는 뜻이었다. 다변에 노래도 자주 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방중 시 환영 만찬 자리에서 먼저 한 곡 뽑은 뒤 노래에 자신이 없던 김 대통령에 기어이 노래를 시켰을 정도다. DJ는 귀국 보고에서 “다른 건 다 잘했는데 노래는 장 주석을 당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장 주석은 자신이 노래하면 황제가 아니라 보통 사람처럼 보일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또 외빈 중 미·일 두 나라 손님은 꼭 자신이 만나야 한다고 고집을 피웠다. 미국인은 자신이 영어를 잘하니 만나야 하고, 일본 사람은 과거 침략의 역사를 잘 모르니 가르쳐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1996년 7월 한국언론과의 첫 인터뷰인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과의 회견에선 공학도답게 반도체 회로 간극을 언급하는 전문성을 보였다.   1998년 중국에 100년 만의 홍수가 닥치자 그는 강(江)과 택(澤) 등 자신의 이름에 물(水)이 너무 많아 생긴 수재가 아니냐며 탄식했다. 굵은 뿔테 안경과 큰 입으로 인해 ‘두꺼비’란 별명도 얻었다. 서민형 리더였던 그의 최대 공헌은 ‘삼개대표(三個代表) 중요사상’ 수립에 있다. 이는 중국 공산당이 생산력, 문화, 광대 인민의 근본이익 등 세 가지를 대표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광대 인민’에 있다. 인민은 노동자와 농민을 뜻한다. 앞에 수식어 ‘광대’가 들어간 건 ‘자본가’까지 포함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중국 공산당은 예전 타도 대상인 자본가도 끌어안으며 전체 인민의 당인 전민당(全民黨)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이에 힘입은 기업가는 창의성을 발휘해 바이두와 알리바바, 텐센트 등 굴지의 민영기업을 일궜다. 중국이 G2 국가로 부상한 원동력이다. 그러나 20년이 흐른 지금의 시진핑 시대는 완전히 다르다. 민영기업은 국유기업에 흡수될 처지에 놓였고, 장쩌민 시대의 자유로웠던 공기는 숨 막히는 단속의 시대로 변했다.   그의 추도식이 6일 열린다. 76년 저우언라이 추모대회가 1차 천안문 사태를 낳았고, 1989년 후야오방 사망은 2차 천안문 사태를 촉발했다. 2022년 장의 추도식이 과연 3차 천안문 사태를 낳을 수 있나? 중국 당국의 철통통제로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최근 중국인이 보이는 거리 시위와 ‘공산당 타도’ 구호는 얼마 전까진 상상할 수 없던 모습이다. 중국 인민의 정치적 각성이 과연 중국 변화의 새로운 원동력이 될 수 있을지 베이징을 주목할 때다. 유상철 / 한국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중국읽기 장쩌민 선생 장쩌민 시대 천안문 사태 광대 인민

2022.12.05. 21:35

[영상] 고등학교 학생과 선생님, 치고 박고 싸워... 선생님은 중상입고 병원행

 영상 고등학교 선생 고등학교 학생

2022.03.08.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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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선생은 먼저 하는 사람

 선생(先生)이라는 말은 먼저 태어났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하루라도 먼저 나온 사람은 선생의 자격이 있습니다. 물론 선생이 생물학적인 먼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먼저 배운 사람도 선생이 될 수 있고, 먼저 겪은 사람도 선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세상에는 선생이 될 사람이 참 많습니다. 내게 선생이 될 사람도 많고, 내가 선생이 될 경우도 많습니다. 선생은 누군가의 앞에 서면 선생입니다.     선생의 생(生)은 생명이라는 뜻도 있고, 사람의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산다는 말은 살아간다는 말이고 살아가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일 겁니다. 살다와 사람이라는 단어가 비슷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우리말 ‘사람’의 어원을 ‘살다’에서 찾기도 합니다. 사람이 사는 게 삶입니다. 선생은 먼저 하는 사람입니다. 먼저 배웠기에 선생 노릇을 할 수 있을 겁니다. 학생(學生)은 선생에게 배우는 사람입니다. 나중이기에 열심히 배워야겠지요. 중생이라는 말도 사람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생’의 발음이 바뀌면 사람에서 멀어지기도 합니다. 중생(衆生)이라는 말이 변하여 짐승이 된 겁니다.   선생의 정의를 다시 반복하여 말하면 먼저 하는 사람입니다. 무엇을 먼저 하는 사람일까요? 기본적으로는 공부를 미리 하여야 할 겁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학생의 궁금증을 미리 경험해야 하고, 학생의 질문을 예상하여야 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내가 배운 것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내용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봐야 합니다. 선생 일이 쉽다면 그것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겁니다. 그러기에 우리 속담에 선생의 똥은 개도 안 먹는다고 그랬을 겁니다. 왜일까요? 모든 애를 썼기에 어떤 영양도 남지 않았을 겁니다. 선생도 참 힘든 직업입니다.   그런데 선생이 먼저 해야 할 것은 공부만이 아닙니다. 학생이 겪어야 할 힘든 일은 최대한 먼저 해 보아야 합니다. 직접 할 수 없다면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해 봐야겠지요. 수많은 독서가 필요한 이유일 겁니다. 앞선 이들이 남긴 책을 통해서 더 많은 간접 경험을 해야 학생의 고통 앞에서 공감할 수 있겠지요. 선생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는 공감 능력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학생은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선생이 해야 할 일 중 아마도 제일 어려운 일은 학생에게 뒷모습을 보이는 일일 겁니다. 뒷모습이 부끄럽지 않게 길을 만들며 사는 사람이 선생입니다. 선생은 그런 의미에서 앞서 걷는 사람입니다. 물론 항상 올바로 살 수는 없겠죠. 허나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자세만은 잃지 않아야 합니다. 선생의 뒷모습은 당당해야 합니다. 처진 어깨여서는 안 됩니다. 내 발걸음을 따라오는 학생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처님, 공자님, 예수님을 모두 선생님이라 부릅니다. 우리는 스승도 모두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대통령이나 총리라는 말보다 선생님이라는 말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합니다.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럴 겁니다. 직위가 중요한 세상이 아니라 가치가 중요한 세상이라면 말입니다. ‘선생’이라는 말은 직위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구나 선생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 역시 선생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선생입니다. 오늘도 다른 이도 먼저 할 일을 생각합니다. 오늘도 조금 더 빠르게 몸을 움직이고, 좀 더 바르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책을 읽고, 길을 걷고, 산을 오르고, 사람을 만납니다. 가치 있는 하루를 사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선생의 일은 힘들지만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선생 선생 노릇 간접 경험 부처님 공자님

2021.11.14.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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