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노숙자와 함께한 예배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다가왔다. 캐럴이 흘러 나오고 쇼핑몰은 성탄절 분위기를 띄우느라 분주하다. 코로나 사태 이전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분위기가 훨씬 좋아졌다. 성탄절은 태초적 침묵 속에 계신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와 평화 그리고 영원한 진리를 보내주신 사랑의 행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침묵 속에는 엄청난 사랑의 힘이 깃들어 있으며 침묵은 나아가 용서를 위한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탄절을 맞이하며 침묵으로부터 솟아나는 사랑의 힘과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진 용서의 선물에 감사를 드릴 뿐이다. 기독교에서 은혜의 의미는 하나님이 베푸시는 선물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죄인을 용서하고 구원과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사랑이다. 그 초월적인 사랑이 우리에게 귀한 선물로 오신 아기 예수이다. 하지만 세상은 침묵으로부터가 아닌 말에서 말로 번져가는 우울과 고독, 불안으로 가득차 있다. 오로지 침묵과 분리된 소란하고 공허한 빈말과 시끄러운 음악, 요란한 장식들만이 범람하고 있다. 얼마 전 필자의 교회에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랑을 실천한 아름다운 일이 있었다. 수요일 저녁에 수백 명의 교인들이 예배당 안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그때 한 노숙자가 덜컹거리는 자전거에 짐을 가득 싣고 예배당 창가에 와서 안을 기웃거렸다. 오랜 기간 동안 옷을 갈아입지 않아 그의 몸에서는 악취가 났다. 자전거 위에는 더러운 담요와 옷들, 비닐 봉지에 담긴 음식물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자전거의 뒷바퀴는 휘어져서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노숙자는 예배당 안을 쳐다보며 간간이 흘러나오는 설교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마침 이런 노숙자의 모습을 본 젊은 부목사가 노숙자에게 다가가 교회 안으로 들어가서 예배에 참석할 것을 권했다. 노숙자는 자신의 몸에서 악취가 난다며 거듭 사양했다. 젊은 부목사는 괜찮다며 노숙자를 데리고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마련해 줬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동료 부목사들과 함께 노숙자의 자전거 위에 있던 더러운 담요와 옷들을 세탁했다. 또 다른 부목사는 고장난 자전거를 가까운 수리점으로 가지고 가서 휜 뒷바퀴를 새것으로 교체했다. 노숙자가 예배를 마치고 나와서 보니 자신의 더러운 담요와 옷들이 깨끗하게 세탁돼 있었을 뿐 아니라 자전거도 고쳐진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연거푸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젊은 부목사들은 언제든지 예배에 참석해 달라며 정중하게 그를 초청했다. 우리는 이웃에게 덕을 끼칠 때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왜냐하면 이웃에게 덕을 끼치는 것이 사랑과 순종의 행위이기에 그 자체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와의 사이에 화목을 위해 사랑과 용서의 다리를 놓았듯이 우리도 이웃과의 사이에 같은 사랑의 다리를 놓아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돈과 명예나 권위의식 등을 교회 문 앞에 와서는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교회에서보다 일상에서 이웃에게 대등한 인격과 서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참된 신앙인의 삶을 보여야 한다. 하나님의 신비가 우리 앞에 침묵의 층을 펼쳐 놓은 이유는 하나님이 그의 사랑과 용서를 주시기 위함이다. 그래서 침묵을 통해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 때로 우리는 침묵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 침묵의 영역과 신앙의 영역은 하나를 이루고 있기에 침묵이라는 기반 위에서 신앙의 초자연성이 실현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침묵은 그의 사랑을 통해 진리로 변하여 우리에게 빛으로 오신다. 그 빛이 바로 성탄절에 우리와 함께 하는 아기 예수이다. 손국락 / 보잉사 시스템공학 박사·라번대학 겸임교수기고 노숙자 예배 예배당 창가 초월적인 사랑 성탄절 분위기
2021.12.23. 1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