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붓글씨를 쓰기 위해 사자성어(四字成語) 책을 읽다가 ‘유단취장(有短取長)’이라는 말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다. 한문의 네 글자로 이루어진 사자성어 가운데는 역사적 사건, 신화, 철학적 사유가 응축된 것들이 많아 유익하다. ‘유단취장’은 ‘단점이 있더라도 장점을 취한다’는 뜻이다. 인간을 비롯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장단점을 갖고 있지만, 단점만 보고 평가하기보다는 그 속에 있는 장점을 배우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가르침의 글이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 선생의 일화는 이 말의 의미를 잘 드러낸다. 이익은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혁신적인 개혁안을 제시해 실학(實學)의 중조(中祖)라 불리는 인물이다. 평생 관직에 나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한 ‘재야의 지식인’이었다. 성호 선생 집 앞마당에는 두 그루의 감나무가 있었다. 한 그루는 열매가 드문드문 열리는 대봉감 나무였고, 다른 한 그루는 열매는 많이 열리지만 맛이 떫은 땡감 나무였다. 게다가 여름이면 그늘이 너무 짙어 마당이 늘 축축하고, 더욱이 장마철이면 햇빛이 들지 않아 늘 젖어 있었다. 성호 선생은 두 나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 베어 버리려 했다. 그때 부인이 나서 선생을 말리며 말했다. “비록 몇 개 열리지 않아도 대봉감은 제사상에 올리기에 귀한 감이고, 떫은 땡감은 잘 말리면 곶감이나 감 말랭이로 온 식구가 맛있게 먹을 수 있지 않습니까?” 부인의 말을 듣고 보니 누구의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니라, 무엇에 무게를 두느냐의 차이였다. 성호 선생은 나무의 ‘불편함(단점)’을 먼저 보았고, 부인은 나무의 ‘유용함(장점)’을 생각한 것이다. 밉게 보면 못나 보이고 좋게 보면 예뻐 보이듯, 같은 사물이라도 보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그 가치는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우리는 크고 작은 모임에서 서로 다른 성격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만난다. 어떤 이는 성격이 급하고, 어떤 이는 말이 거칠고, 어떤 이는 나와 생각이 다르다. 그런데 많은 경우 사람의 단점을 먼저 보게 된다. 세상에 단점만 있는 사람은 없다. 단점이 있으면 반드시 장점도 있다. 하지만 장점은 보려 하지 않고, 눈에 띄는 단점만 지적하며 그 사람을 평가하려 한다. 조금만 마음을 낮추어 상대방을 바라보면 그 사람에게도 미처 보지 못했던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남의 허물을 헤아리기보다 그 사람의 장점을 찾으려 할 때, 우리의 마음은 조금 더 넓어지고 삶도 더 깊어진다. 불편함을 베어내려고 도끼를 들었던 조급함을 내려놓고, 쓰임새를 찾아 바구니를 들었던 부인의 마음을 배울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유단취장’은 남을 위한 예절을 넘어 자기 수양의 과정이기도 하다. 타인의 장점을 인정하는 순간 나의 시야는 넓어지고 마음의 그릇은 더 깊어진다. 상대방의 장점은 나에게 배움이 되고, 서로 좋은 점들이 모여 더 큰 지혜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은 서로의 관계를 부드럽게 하고, 더 나은 사람으로 성숙시킨다. 남의 장점을 취하고 나의 부족함을 채우려는 겸손한 태도야말로 평생 실천해야 할 삶의 배움이며 지혜다. 구성원들이 이러한 마음을 갖게 된다면 모임의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부드러워지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이 싹틀 것이며, 한층 성숙한 모임이 될 것이다. ‘유단취장’의 지혜는 비단 인간관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더 넓게는 사회, 특히 갈등이 끊이지 않는 오늘날의 정치 현실에도 적용이 가능하다고 본다. 정치란 서로 다른 생각과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국민을 위한 더 나은 길을 찾기 위해 지혜를 나누는 과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의견이 부딪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속에서 공통의 해답을 찾아가는 것이 정치의 본질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본뜻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 상대의 약점을 드러내고, 차이를 확대하며, 때로는 갈등을 이용하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서로를 이해하기보다는 이기려 하고, 함께 나아가기보다는 네 편, 내 편 나누려는 태도가 사회의 균열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만일 각 정당의 당리당략의 차이를 인정하고 국민을 위한 공동의 이익을 향해 나아간다면 어떨까? 서로의 부족함은 그대로 두되, 각자의 강점을 취해 하나로 모은다면, 그것은 분열이 아닌 조화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조화는 결국 국민 전체의 행복이라는 결실로 나타나지 않을까? 어쩌면 오늘날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많은 주장이나 더 강한 목소리가 아니라, 서로의 장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함께 키워가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 마음이 모일 때, 비로소 갈등은 줄어들고 공동의 미래가 열릴 것이다. 오늘도 나는 조용히 내 마음의 뜰을 거닐며 자문해 본다. 나는 오늘 누군가를 향해 도끼를 들었는가, 아니면 장점을 담을 바구니를 들었는가. 사자성어 책을 덮으며, 내 삶의 뜰에도 ‘유단취장’의 향기가 가득하기를 소망해 본다. ‘유한흥국(流汗興國)’은 땀을 흘려 나라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개인의 삶도, 사회의 발전도, 나라의 번영도 결국은 보이지 않는 땀 위에 세워진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흘리는 땀,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흘리는 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성실히 이어가는 노력의 땀…. 그런 작은 땀방울들이 모여 세상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하루하루 정직하게 흘리는 땀은 비록 눈에 띄지 않을지라도 세상을 지탱하는 조용한 힘이 된다. 그러나 세상을 이루는 또 하나의 힘이 있다. 그것은 서로에게서 배우는 마음이다. 이명렬 / 경영학 박사문예마당 바구니 땡감 성호 선생 성호 이익 사자성어 가운데
2026.05.07. 19:06
고전을 읽으면 현재도 보이고 미래도 예측할 수가 있다. 현재나 미래와 무관한 옛날의 책을 모두 고전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세상일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풀리지 않는 일로 나라와 백성에 대한 근심을 떨칠 수 없을 때에는, 고전을 읽어서 옛날·현재·미래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요즘 나는 고전을 자주 들여다보고 있다. 까맣게 잊어버린 내용들을 다시 기억해내면서 다시 읽는 고전의 재미는 쏠쏠하다. 특히 조선 후기 실학자들인 반계·성호·연암·다산 등의 대학자들의 저술은 대부분 고전인데, 그런 책을 읽으면서 오늘의 난제들을 풀어보는 지혜를 얻고 싶은 심정에서 출발한다. 『반계수록』이나 『반계유고』에는 유형원의 정치·경제·사회에 대한 견해를 알아볼 수 있고, 『성호사설』이나 『열하일기』를 통해 뛰어난 사상가이자 경세가들인 이익·박지원의 생각도 접할 수 있다. 다산의 고전을 읽는 일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성호 이익의 저서 『성호사설』은 조선 실학을 대표하는 고전으로서의 지위를 얻은 지 오래다. 다산 정약용 같은 학자도 성호의 유저를 16세에 읽고 큰 학자가 되었으니, 성호를 계승한 다산에게 『성호사설』이 미친 영향은 대단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다산은 자신의 큰 꿈이 성호선생을 사숙하여 배우던 가운데서 깨닫게 되었노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런 정도의 큰 영향을 미친 책이 바로 『성호사설』이었다. 성호는 책에서 ‘간직(諫職)’이나 ‘간관참정(諫官參政)’, ‘간관불상견(諫官不相見)’, ‘직언극간(直言極諫)’, ‘직언이국(直言利國)’ 등의 여러 항목을 두고서 임금에게 바른말로 간(諫)하는 일의 중요성을 말했다. 반드시 간언하기를 꺼리지 않는 신하가 많이 있어야 하고, 간언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임금이 있을 때에만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질 수 있다는 것을 거듭 주장하였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임금은 직언하는 신하들의 말을 듣지 않는 임금이라고 하면서 천하의 폭군 대표자로 중국 고대의 걸(桀)과 주(紂) 두 임금을 들었다. 그 시절에 관용봉이나 비간(比干) 같은 충신들이 있었지만 죽음을 무릅쓴 그들의 간언을 듣지 않아 끝내 패망했다고 하였다. 성호의 해설은 참 쉽다. 듣지 못하는 사람은 귀머거리이고 보지 못하는 사람은 소경인데, 귀머거리나 소경이야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한 선천적인 것이지만, 보여주어도 보지 못하고 들려주어도 듣지 못하는 임금은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되어지는 귀머거리이자 소경이라고 평했다. 정상적인 신체로 본인의 의지에 의해 보여주고 들려주어도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걸(桀)이나 주(紂)는 어느 때나 있기 마련이다. 본인도 멸망하고 나라까지 망하게 하여 온 국민을 도탄에 빠뜨리고 마는 것은 고금에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성호는 간쟁(諫諍)의 문제를 상세히 거론하여 간(諫)하는 신하의 충언을 들어주느냐 여부에 따라 나라의 치란이 결정된다고 여겨, 간하는 신하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간하는 신하의 간언을 제대로 받아들여 자신의 비행을 시정하는 임금이 선정을 베풀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간언하는 일은 어렵다. 사람의 마음은 아첨하는 말을 좋아하고 곧은 말을 싫어하며, 곧은 말을 하면 반드시 불리해지고 아첨하는 말은 이익이 따른다. 곧은 말이 용납되는 경우도 있지만 아첨하는 말로 죄를 받았다는 말은 듣지 못했으니, 사람들이 누가 자기의 이익을 저버리고 위험한 데로 나아가기를 바라겠는가. 이래서 간언하는 일이 어렵다고 성호는 설명했다. 다산 정약용도 말했다. “아첨을 잘하는 사람은 충성스럽지 못하고 간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배반하지 않는다.「用人」)” 그래서 이 점을 안다면 실수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해, 아첨하는 무리들에게 둘러싸여 지내다가는 나라도 망하고 자신도 파멸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고대 중국의 요순시대나 우리 조선의 세종시대나 정조시대가 그래도 제대로 정치가 이룩되었다고 하는 것은 아첨하는 사람을 물리치고 간쟁 좋아하는 사람들을 가까이하고 중용하였기 때문임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 정권을 잡은 새 정부는 어떤가를 눈여겨보고 있다. 과연 간쟁 좋아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으며, 대통령은 간언을 재대로 들어주고 있는가도 지켜보고 있다. 성호나 다산의 지혜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잘하는 정치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박석무 / 다산학자, 우석대 석좌교수실학산책 간쟁론 성호 성호 이익 학자도 성호 다산 정약용
2022.11.06. 1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