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칼럼] 30년 된 이발기 살린 AI의 마법
요즘 스마트폰 다음으로 가장 자주 손이 가는 도구는 단연 생성형 AI 챗봇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맛집 검색이든 여행 루트든 늘 구글링이 먼저였는데, 이제는 챗GPT나퍼플렉시티에 먼저 물어보는 습관이 생겼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기계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 외할머니가 아끼던 탁상시계부터 트랜지스터 라디오까지 무엇이든 뜯어보는 것을 좋아했던 내게 AI챗봇은 새로운 즐거움을 주고 있다. 일본 유학 시절 이발비를 아끼려 파나소닉 셀프 이발기를 구매했는데, 미국으로 이주할 때도 가져와 몇 년간 요긴하게 썼다. 그러다 충전이 되지 않게 되면서 서랍 속에 넣어 뒀다. 팬데믹을 거치며 이발비가 2배, 많게는 5배까지 치솟으면서 다시 이 셀프 이발기가 떠올랐다. 막상 분해하려고 살펴 보니 나사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전혀 보이질 않았고, 모델명으로 구글과 유튜브를 뒤졌지만, 관련 수리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제품 자체가 일본 내수용이었고, 출시된 지 30년이 넘은 구형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AI 챗봇에 모델명과 증상을 입력해 봤다. 놀랍게도 제품 사양과 작동 원리는 물론, 충전되지 않는 원인으로 예상되는 항목들을 조목조목 짚어줬다. 분해해 보고 싶다고 하니, 숨겨진 나사 위치부터 해체 방법까지 순서대로 안내했다. 내부를 열어보니 배터리 누액으로 회로가 심하게 부식돼 있었다. 이 상황을 챗봇에 다시 설명하니 “내부 사진을 올려 달라”고 했다. 지시에 따라 이미지를 업로드하자, 배터리는 이미 단종됐고 수리보다 새 제품 구매를 권한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에 “배터리를 제거하고 USB 전원을 직접 연결해 유선으로 사용할 수는 없겠느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탁월한 아이디어’라며 전원을 어디에 연결하면 되는지 납땜 위치까지 상세히 알려줬다. 이후 USB 케이블을 잘라 배선하고 휴대용 파워뱅크와 연결하자 완벽하게 작동했다. AI 챗봇 덕분에 폐기 직전이었던 셀프 이발기가 다시 현역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오래된 제품을 스스로 수리하는 즐거움과 함께 AI와 손발을 맞추니 불가능할 것 같던 수리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얻을 수 있었다. 문득 다른 사람들은 AI챗봇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최근 필터드닷컴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생성형 AI가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분야는 놀랍게도 ‘심리 상담 및 감정적 동반자’ 역할이었다. 단순한 검색 도구를 넘어 외로움을 달래주고, 공감과 위로까지 기대하게 된 것이다. 2위는 ‘인생 계획 설정’, 3위는 ‘인생 목적 탐색’으로 나타났으며, ‘자기계발’이나 ‘코딩 지원’, ‘아이디어 발상’, ‘창의적 작업’, ‘건강 관리’까지 활용 분야가 점점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색에서 시작된 AI는 이제 사람의 마음을 읽고, 삶의 방향까지 함께 고민하는 동반자로 진화하고 있다. 실제 주변에도 AI 챗봇과 대화하며 일기 쓰듯 하루를 정리하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쯤 되면 단순한 ‘도구’로 보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AI 챗봇을 두고 ‘디지털 친구’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카네기멜런대, MIT미디어랩 등의 연구에 따르면, 생성형 AI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기억력과 창의력, 문제해결 능력이 서서히 저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뇌는 반복적 사용을 통해 강화되지만, AI가 대신 생각하고 결정해주는 상황이 늘어날수록 인지 능력 퇴화가 가속될 수 있다고 한다. 기억력과 창의력, 판단력은 인간만이 지닌 고유 능력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런 능력을 잃지 않고 AI라는 도구를 어떻게 통제하고 활용하느냐다. 도구를 사용하는 주체는 사람이지 도구에 의존하거나 끌려다녀선 안 된다. 이 단순한 원칙을 지킬 때 비로소 AI 시대 속에서도 주도권을 유지하며 균형 있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박낙희 / 경제부장중앙칼럼 이발기 마법 셀프 이발기 검색 도구 활용 분야
2025.07.07. 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