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강릉의 한 사찰에 갔다. 그곳에는 소원 맷돌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 평상시에는 문제없이 잘 돌아가는데 소원을 빌고 돌려보면 아무리 힘을 써도 돌지 않고, 그 소원은 이루어진단다. 에이, 뭐 그런 게 있나 싶어 한 번 돌려보았는데, 세상에! 정말이었다. 멀쩡하게 잘 돌아갔던 맷돌이, 소원을 빈 후에는 꼼짝하지 않았다. 정말로 맷돌 속엔 신령한 힘이 있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자기충족적 예언’과 연관 지어 설명한다. 자기충족적 예언은 믿는 대로 이루어진다는 개념이다. 행동이 기대를 무의식적으로 반영하면서, 자신이 믿은 바가 이루어지는 방식으로 본인도 모르게 행동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왠지 삼진당할 것 같은’ 느낌을 믿어버린 야구 선수는 정말로 삼진을 당한다. 의식적으로 ‘나 삼진당하고 말겠어’라고 생각하며 엉터리로 헛스윙을 남발하는 것이 아니다. 삼진을 당할 것 같다는 믿음이 무의식적으로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몸을 움직이게 하면서, 믿음을 실현시켰다 할 수 있겠다. 제대로 분석한 것은 아니지만, 내 느낌엔 소원 맷돌은 힘을 주면 줄수록 더 돌아가지 않는 것 같았다. 반드시 이루어지길 원하는 간절한 소원을 빌수록, 그 간절함이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을 더 주게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더 나아가 맷돌까지 멈추게 한 그 간절함은 그 소원이 실제 이루어지도록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최선의 노력을 하게 했을 것이다. 소원 맷돌의 전설은 그렇게 이어 오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새해가 밝았다. 우리는 실패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소원을 빈다. 새해와 같은 시간적 이정표를 통해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를 구분하고 새로운 변화를 꾀하는 ‘새 출발 효과’의 작용일 것이다. 기왕 소원을 빌 때, 그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간절히 믿어보자. 그 간절함은 맷돌도 멈출 것이고, 결국 소원이 이루어지는 행복한 새해를 만들어 낼 것이다. 최훈 / 한림대 교수심리만화경 소원 소원 맷돌 자기충족적 예언 시간적 이정표
2025.01.21. 19:38
정부나 단체 행사에서 자주 접하는 순서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 제창이다. 이 노래는 북한에서도 부르는 민족의 노래다. 그만큼 한민족은 남북통일에 대한 갈망이 크다. 그런데 최근 통일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남북을 ‘적대적인 2개의 국가’로 규정했고, 남한에서는 일부 종북 정치인이 이에 동조하는 듯한 입장을 보여 실망을 금치 못하게 한다. 북한은 남한을 적화 통일하겠다며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을 일으킨 원죄가 있는 집단 아니던가. 그런데도 난데없는 북한의 주장에 호응하는 좌파 정치인들이 한두 명씩 나타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을 서슴지 않고 있다. ‘통일’이라는 말은 수십 년 동안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단어다. 무엇보다 통일은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던가. 더 따질 필요 없이 통일은 남북의 사람들이 목청 높여 외쳐온 민족의 소망이다. 우리의 지상 목표요, 최대의 민족적 과제다. 그런데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역임한 정치인이 지난달 열린 ‘9·19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느닷없이 “통일하지 말자”며 ‘남북 2개 국가론’을 제기했다. 그러자 좌파 인사들의 ‘통일 포기’ 발언이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김정은은 ‘북남은 적대적인 두 개의 국가’라며 남한은 통일의 대상이 아니라 쳐부숴야 할 철천지원수 적대국이라는 독설을 토했다. 이후 북은 ‘통일 지우기’를 하고 있고 남북이 맺은 모든 합의를 사실상 무효화 했다. 남한의 통일 반대자들은 ‘두 개의 국가’ 체제를 만들기 위해 헌법 3조 영토 조항을 삭제하거나 개정하고 국가보안법도 폐지하자고 주장한다. 또 통일부도 정리하고 우리 정부의 통일방안인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도 내려놓자고 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자유당 정부 때 전쟁 중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북진통일’을 부르짖었고, 군사정권 시절엔 ‘반공, 타공, 멸공’등 이념의 구호를 외쳤다. 그런데 문민정부가 들어서 점차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국민의 반응이 너그러워지자 북한의 입맛에 맞춘 친북 세력이 나타났고 심지어 종북, 충북적 모습을 보이는 이들도 나타났다. 두 개의 국가론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남북기본합의서 체제를 해체하는 것이다. 또 우리 헌법을 부인하고 특히 탈북민의 인권과 혈연을 영구히 단절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종북 좌파인사들의 활동이 위축되고 친북 여론에 동조하는 사람이 줄어들자 이들은 방향을 틀었다. 남북한의 경제력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면서 북한은 최대한 남북 접촉을 차단하려 하고 있다. 좌파 인사들의 통일 포기론은 여기에 동조하는 것이다. 솔직히 남북의 국력 차이는 비교조차 안 된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통일한다면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의 길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아는 친북·좌파 인사들은 통일 논의를 무조건 피하고 싶은 것이다. 통일은 헌법적 명령이다. 헌법 3조·4조는 대한민국의 영토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고 규정하고, 국가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추구토록 하고 있다. 헌법 66조에는 대통령에게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올해 국군의 날 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기도한다면 그날 북한 정권은 종말을 고할 것”이라고 했다. 김씨 왕조의 노예로 살고 있는 북한 동포를 해방하는 길은 오직 통일뿐이다. 통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5000만 대한민국 국민에게 부여된 헌법적 명령이고 의무이다. 누가 뭐래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회장기고 소원 통일 통일방안인 한민족공동체 통일 포기 남북기본합의서 체제
2024.10.14. 19:16
6·25참전유공자회 이재학 회장이 며칠 전 들려준 이야기다. 수년 전 참전유공자회 회원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기 위해 맥도날드 매장에 갔다고 한다. 참전유공자회 모자를 쓴 시니어 남성 대여 섯 명이 매장으로 우르르 들어가니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가 보다. 매장 안에서 자녀들과 햄버거를 먹고 있던 한 백인 여성이 이 회장 일행에게 다가왔다고 한다. 그러더니 이 회장 일행이 쓴 모자를 가리키며 어떤 분들이냐고 묻더란다. 이 회장은 “백인 여성에게 ‘우리는 참전용사들’이라고 말했더니 ‘나라를 위해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더라. 그러더니 자신이 커피값을 내겠다고 했다”며 “모르는 사람인데도 우리가 한 일을 인정해 주는 그 한마디를 들으니 마음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에 그런 경험을 또 했단다. 그것도 LA한인타운에서였다. 이 회장은 “참전유공자회 회원들과 커피를 마시러 로데오 갤러리아 몰 안에 있는 베이커리에 들어갔다. 우리가 제복을 입고 모자를 쓴 게 이상했는지 종업원이 우리를 보더니 어떤 분들이냐고 묻더라. 그래서 참전용사라고 했더니 나중에 합류한 회원들의 커피값을 받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이어 이 회장은 “한인타운에서 한인으로부터 그런 대우를 받은 게 처음이었다. 그 젊은 직원의 마음 씀씀이에 회원 모두가 정말 감사해 했다”고 덧붙였다. 6·25참전유공자회와 월남전참전자회 회원들은 외출할 때면 가능한 한 제복을 입고 다닌다. 한국의 국가보훈처가 2년 전 제작한 제복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참전유공자들도 모두 받았다. 이 회장은 “한국 정부가 모든 참전유공자 가정에 제복을 보내줬다. 제복이 담긴 가방에는 ‘당신은 대한민국의 영웅입니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더라. 그걸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고 당시 심정을 들려줬다. 아이보리색 사파리 재킷에 남색 바지, 흰색 반소매 셔츠에 넥타이까지 맨 회원들의 모습은 예전 주머니와 어깨 부위에 기장과 훈장이 달린 조끼를 입고 다니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밝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6·25참전유공자회 임원들의 평균 연령은 80세 후반이었다. 감사위원으로 활동하는 최병길 유공자의 경우 올해 95세를 맞았다. 그는 불과 15세의 나이에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고 했다. 권영구 수석 부회장은 40밀리 포탄 2개를 짊어지고 경주에서 밤새 이동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육군협회 최만규 회장은 “한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현재 캘리포니아 주에 거주하는 생존 참전유공자는 830여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남가주에 150여명 정도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LA지역도 공식 회원 수는 70명이지만 실제 활동하는 분은 30여명 정도다. 그래서 마음이 매우 아프다”고 전했다. 6·25참전유공자회는 최근 LA한인타운에 참전비를 세우는 프로젝트 추진을 두고 고민하고 있다. 오렌지카운티에 세워진 6·25 참전비는 미군 이름들만 기록돼 있어서 한인타운에 별도의 참전비를 세웠으면 하는 희망이지만 누가 끝까지 남아 진행할 수 있을지 약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지금 미국에 한류가 널리 퍼지는 것을 보면 참전유공자들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분들이 목숨 바쳐 싸웠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그런 역사를 후손들에게 좀 더 알렸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우리는 소멸하는 단체다. 그나마 지금은 종종 만나서 안부를 나누지만 언젠가는 헤어지고 결국은 단체도 사라질 것”이라며 “하지만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슬픔은 없다. 다만 우리가 없어져도 한국전쟁의 역사는 끝까지 남았으면 좋겠다”고 담담히 말했다. 한국전쟁이 더는 ‘잊힌 전쟁’이 되지 않도록 한인 커뮤니티도 고민하고 참여해야 할 문제다. 장연화 / 사회부 부국장중앙칼럼 참전용사 소원 참전유공자회 회원들 참전유공자회 모자 25참전유공자회 이재학
2024.06.23. 19:00
나는 미국에서 별의별 일을 다 해보았다. 청소부, 접시닦이, 주 정부 안전 검사원, 그리고 연방 정부 안전 감사관으로 은퇴했다. 공무원직에서 은퇴한 다음에는 의료 통역 일을 했다. 하루는 ‘왼발이 들먹거리고 저려 잠을 이룰 수 없다’는 환자가 찾아왔다. 나는 의사에게 “My left leg is numb, throbbing, and tingling so much that I can hardly sleep at night”라고 통역을 했다. 아프거나 저리다는 형용사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과거 남이 아픈 것을 통역했는데 요즘은 내 다리가 들먹거리며 저려서 잠을 설치는 날이 있다. 잠이 오지 않으면 누운 채 팔과 다리 근육을 긴장과 이완, 즉 힘을 주고 빼기를 한 다음, 단전호흡하면서 ‘내 맘이 편안해’라는 말을 속으로 반복하면 다시 잠이 온다. 밤에 몇 번씩 잠이 깨는 탓에 이 최면술을 반복해야 한다. 팔과 다리를 90년 동안이나 사용했으니 이제 고장 날 때가 되었나 보다. 요즘 체중도 줄었다. 배는 나왔으나 팔과 다리는 가늘어져 주름이 보인다. 3일에 한 번씩은 비타민을 한 주먹씩 먹지 않으면 무릎도 쑤신다. 김형석 교수의 말대로 저녁에 침대에 눕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오늘도 아내와 내가 집 앞에서 걷다가 넘어지거나 쓰러지지 않고, 내가 만든 반찬과 밥을 잘 먹고, 무사고 운전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아내가 재작년 뇌졸중을 앓고 건강이 악화하는 바람에 내가 전업주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예전에는 내게 요리 솜씨가 있는 줄 몰랐다. 특히 김치와 빵을 잘 만든다. 공무원 생활 대신 식당을 운영했으면 경제적으로 좀 더 여유 있는 생활을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음식을 만드는 것이 글 쓰는 것보다 훨씬 쉽고 재미있다. 나는 글을 쓸 때 파란만장한 과거의 경험을 기록할 뿐, 이에 의미나 해석을 더 하는 상상의 필치(筆致)는 모자란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쓸 소재, 즉 밑천도 점차 고갈되는 것 같다. 글은 소재가 고갈되면 쓰지 못하지만, 식재료는 시장에 가면 언제나 풍부하다. 요즘 요리에 대한 관심은 건강식을 만드는 것이다. 음식 재료로는 파, 양파, 마늘, 버섯, 미역, 무, 양배추, 오이, 당근, 고추, 콩나물, 두부, 계란, 고구마, 단호박, 생선을 주로 이용한다.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드는데 유튜브도 큰 도움이 된다. 이 전업주부의 소원은 단순하다. 아내와 내가 양로원에 가지 않고 이 집에서 내 손으로 밥상을 차려 먹으며, 밤에는 아프거나 쑤시거나 저리지 않고 잠을 자고, 때가 오면 고종명(考終命)하는 것이다. 윤재현 / 전 연방정부 공무원열린광장 전업주부 소원 전업주부 역할 정부 안전 다리 근육
2024.02.14. 19:30
동이 트려면 아직 멀었는데 어이해 자규는 울지 않는가 안 보인다고 모르겠나 숲속에 있는 줄 어둡다고 못 듣겠나 태고의 소리 접동새야 이 새벽 찾아와다오 목에 피가 나도록 울어나 주렴 캄캄한 밤 곰산 정상에서 목 놓아 부르리라 내 소원 이루리라 시월의 마지막 날 먼동이 트기 전에 이강민 / 뉴저지글마당 시월 소원
2023.11.10. 18:42
흔히들 한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분단국가로 현존하는 나라가 더 있다. 키프로스, 아일랜드가 분단된 상태이며, 중국도 엄밀히 말하면 분단국가이다. 반대로 분단국에서 통일을 성취한 국가로는 독일, 베트남, 예멘이 있다. 독일은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평화적 통일을 이루었지만, 베트남은 전쟁을 통해 통일되었고, 예멘은 내전을 치르다가 합의 방식으로 통일을 이루었다. 분단국가(Divided Nation)란 본래는 하나의 국가였으나, 어떤 역사적 계기로 인해 복수의 지역으로 나뉘어 각각 다른 통치 기구가 공존하는 불안정한 국가를 말한다. 우리 세대는 어렴풋이 6·25 전쟁을 경험했고, 남과 북의 분단 현실(이산가족, 실향민, 이념 등)을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왔다. 전쟁 후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환경에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란 동요를 수도 없이 부르며 자랐다. 5·16 쿠데타 후에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말을 엄숙히 암기해 가면서 중,고교를 마쳤다. 그만큼 남북통일과 민족중흥은 우리 세대의 시대적 과제였다. 한국인이라면 통일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1990년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독이 통일될 때, 한국에도 통일의 열망이 한껏 고조되었었다. 북한의 값싼 노동력, 천연자원에 남한의 자본과 기술력을 합친다면 ‘통일은 대박이다’ 라는 선언이 나오기도 했다. 서독 정부도 동독의 값싼 노동력, 토지개혁, 지하자원, 낙후된 공장 시설의 재건 등 양독의 경제부흥 시너지 효과를 추산하며 오직 희망과 희열로 가득 차 있었다. 이에 따라 발 빠르게 동독지역에 공장을 짓고 시설을 이전한 기업들이 증가했지만, 동독의 청년들은 앞다투어 서독으로 계속 이동해 갔고, 노인층만 남은 동독엔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벌어졌다. 당초 기대와는 정반대 현상이 초래되었다. 서독은 갑자기 몰려오는 청년인구의 과부화로 실업률을 감당하지 못하자 직장마다 동독인 취업 할당제가 부여되었다. 필자는 2000년부터 5년간 독일 주재 근무를 하면서 통독 후의 경제, 사회, 문화의 격차를 실감하면서, 우리 회사에 함께 근무했던 동독인들의 의식구조, 행동과 능력, 경쟁력 등이 서독인보다 현저히 낮은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통독 후 10년이 지났지만, 동독지역은 여전히 폐허로 무성한 잡초와 유실된 도로망, 교량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동독에 투자했던 시설들은 결국 해체되어 다시 중국으로 이전하는 막대한 손실도 발생했다. 현재 독일은 통일된 지 32년째이다. 그간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엄청난 비용과 국민적 희생을 불러왔다. 사실상 동독을 생각보다 훨씬 비싸게 구입한 셈이다.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우리의 소원은 평화’ 라고 동요를 개사해 부른다. 그들도 통독의 30년 사례를 보고, 통일의 대가와 희생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게 되었다. 섣부른 통일로 자칫 함께 망하는 길보다 ‘각자도생 (各自圖生)’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부분의 청년들은 결혼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듯 통일도 부담스럽게 여긴다. 통일 없이도 평화는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지만,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군사력, 경제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타협이나 굴종으로 또는 어떤 대가를 주고 얻은 평화는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젊은세대는 기성세대에 비해 통일의 비전이나 필요성에 대한 인식과 기대가 낮고, 민족의 동질성 회복에 관심이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들에겐 ‘국가에 대한 희생’에 주춤하며 ‘생존 개인주의’ 가 핵심 가치관이 되었다. 세대가 바뀌고 환경이 변화되면 통일정책과 교육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 남과 북이 더는 적대적 대결이나, 경쟁적 소모는 지양하고 각자도생에 충실하도록 변해 가야 할 것이다. 이보영 / 전 한진해운미주본부장기고 통일 소원 평화적 통일 동독인 취업 독일 베트남
2022.08.10. 19:40
30여 년은 부모님 덕에 공부했다. 30여 년은 남편 뒷바라지와 아이들 키우며 작업했다. 남은 삶은 내가 선택한 작업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그런데 집을 떠나 공부하며 여행하고 직장 다니던 아이들이 돌아왔다. 세상 떠돌다 보니 자기가 태어난 곳이 제일 좋다며. 그렇다면 내가 집을 떠날 수밖에 없다. 2014년 초 나는 브루클린을 떠나 맨해튼 어퍼웨스트사이드로 왔다. 와서 보니 가격이 높은 홀푸드만 있고 내 수준에 맞는 장 볼 곳이 없었다. 나는 IKEA와 Trader Joe‘s를 좋아한다. 생각날 때마다 트레이드 조가 가까이에 들어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근처에 오픈했다. 이왕이면 한국 마켓도…. 조금 걸어가야 하지만 한아름도 들어왔다. 다시 내가 가끔 즐겨 먹는 Shake Sake 햄버거가 들어오기를 바랬다. 드디어 나의 산책로 반경 안에 오픈했다. 이번에는 재미 삼아 코로나 백신 맞은 증명을 보여주면 무료로 도넛을 준다는 ’krispy kreme 도넛 가게야 들어와라‘ 중얼거렸더니. 올봄에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오픈했다. 아쭈, 원하면 다 들어오네. 다시 한번 더 Target이 들어오면 어떨까 했더니만, 올가을에 떡하니 서너 볼록 떨어진 홀푸드 앞에 오픈했다. 내 사랑 아이키아가 들어오기를 원하지만, 넓은 쇼룸을 갖춰야 하기에 힘들 것 같다. “엄마, 나 이벤트에 당첨돼서 돈 받았어요.” 작은 아이가 자랑스럽게 말하길레 나도 위에 열거한 가게들을 말하면서 “엄마가 원했던 가게들이 동네에 다 들어왔다. 신기하지. 원하기만 하면 이루어진다. 하지만 정작 원하는 것은 좋은 작품과 글을 쓰고 싶은 것인데 차마 주문을 외울 수가 없다. 이 두 가지가 엄마에게는 제일 중요한 일인데.” “엄마가 원하던 세 가지가 이미 이루어졌으니까 안될 거예요.” “리필이라는 것도 있는데. 다시 원하면 이루어지지 않을까?” “글쎄요. 한 5년 즈음 후에나 효력이 발생할지? 시효기간이 지나면 이루어질 수도 있을 거예요.” 5년 후에 다시 원하는 것을 주문해 보라는 뜻은 그 기간 엄마가 하고자 하는 일에 집중하라는 아이의 충고가 아닐까? 내가 원했던 가게들이 장바구니 끌고 걸어가는 거리 안에 생겨서 삶이 편해졌다. 그러나 정작 늘 꿈틀거리며 불쑥불쑥 머리를 내밀며 내 마음을 뒤흔드는 그림과 글은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 능력과 노력에 달렸기 때문에 바랄 수 없는 일이다. 쓸데없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폭포수의 물줄기 같은 일상사를 정리하고 오직 한곳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내 작업을 겨냥해 똑똑 떨어지게 몰두해야겠다. 독자님들, 어려웠던 2021 잘 마무리하시고 포근하고 건강한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교향곡 소원 소원 교향곡 도넛 가게 기간 엄마
2021.12.31. 1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