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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어두운 방을 함께 비추는 손전등

“철학은 캄캄한 방에서 검은 고양이를 찾는 것, 신학은 캄캄한 방에서 있지도 않은 검은 고양이를 찾는 것, 종교는 캄캄한 방에서 있지도 않은 검은 고양이를 찾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인문학 분야에서 전해 오는 비유다. 종교에 대한 거리감을 풍자한 것으로 과한 면이 없지 않지만, 전적으로 부인하기도 어렵다.   부처님께서는 “불법이 생활이고, 생활이 불법”이라고 하셨다. 진리는 어떤 형태로든 삶과 연결되어야 한다. 불교 수행자로서 두 가지 작은 깨달음을 나누고 싶다.   첫째, 진리는 쉬워야 한다는 것이다. 진리는 삶의 본질적인 질문, 곧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진리가 소설책이나 만화책처럼 쉬울 수만은 없겠지만, 소수의 지식인이나 전문 수행자만이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다면 그것은 진리의 본래 목적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둘째, 진리는 생활과 분리 되어서는 안 된다. 진리는 인간의 감정과 일상을 포함한 우주 전체에 깃들어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그 진리를 통해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간과 우주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불자들은 연기, 공, 무아 등을 평생 공부하지만, 체득은 고사하고 이론적으로라도 명확히 이해하는 경우를 많이 보지는 못했다. 한국만 해도 매년 2000명 이상의 전문수행자들이 동안거, 하안거 등 일 년의 절반을 수행에만 몰두한다. 수행의 깊이야 가늠하기 어렵지만 최소한 자식 문제, 취업 문제가 고민인 대중과의 소통에 한계를 보인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수행자일 뿐 아니라 전법자로서의 성직자 역할도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종교가 좀 더 친근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성직의 시작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출가식도 소박했으면 좋겠고, 성직자에 대한 과한 예도 현대에는 어색하다. 인류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를 짊어지신 예수님의 희생을 본받아야 한다거나, 일체 생령을 제도하기 위해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사무여한(死無餘恨)의 자세를 권하는 목사님, 교무님의 ‘친절한 안내’가 초보 신자들에게 어떻게 느껴질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세상을 위해 일생을 바치는 일이 고귀한 일임에 틀림없지만, 이제 막 동네 뒷산을 오르기 시작한 사람에게 에베레스트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정상에 서라고 다그치는 것과 같지는 않을까.   본인의 수준과 성향, 목표에 따라 공부 방법과 양이 다르게 설정되어야 하듯이, 종교생활도 각자의 수준과 목표에 맞게 이루어지면 좋을 것 같다. 표준은 일반 대중에 맞추고 대상의 필요에 따라 가감하면 될 일이다.     원불교 교무가 되겠다고 하니, 원불교 경전은 너무 쉽고 일반적인 내용이라 윤리교과서 같다며 다소 아쉬워했던 이모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종교 경전이 윤리 교과서와 달리 어렵고 추상적이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종교는 캄캄한 방에서 있지도 않은 검은 고양이를 찾았다고 말하는 난해한 모습이기보다는 그 방에 있을지 모를 검은 고양이를 함께 손전등으로 비추며 찾는 모습이었으면 한다.   [email protected] 양은철 교무 / Won Meditation Center삶의 향기 손전등 비추 종교생활도 각자 전문 수행자 불교 수행자

2026.04.13.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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