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가작 "네 자매"
목구멍을 통과하지 못한 슬픔은 괴음으로 몸을 빠져나와 거실에 뒹굴었다. 대강 보아도 삶이 초라할 것 같은 얼굴들은, 어떤 무명 화가의 분노가 담긴 스케치처럼 강퍅하고 무미건조했다. 제구실을 못하는 표정들 때문에, 괴음이 거실을 점령한 이유를 누구도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네 자매는 지금껏 견뎌낸 그 어떤 절망보다도, 가장 가혹한 절망이 만들어낸 슬픔과 공황상태에 놓여있었고, 거기다 반평생의 한 까지 들쑤셔져, 세상에서 들을 수 없는 요상한 소리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슬픔의 제공자인 막내는, 괴음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신경질적으로 일어나 TV를 켰다. 한국 유명 연예인의 죽음이 화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발을 구르며,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다. 하지만, 영정사진 속 그녀의 해맑은 웃음은, ‘죽음의 티켓을 받은 여러분, 두려워 마세요. 그리고 어서 이 곳으로 오세요. 이 곳은 새하얀 꽃들과 푸른 초원이 펼쳐진 정말 아름다운 곳이랍니다. 이 곳엔 슬픔도 아픔도 없어요. 나를 보세요. 이렇게 웃고 있잖아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뒤를 따르며 까무러칠 듯 울어대는 사람들과 그녀의 죽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했다. 그녀의 하얀 목도리와 하얀 미소, 그리고 수천 송이 하얀 꽃들은, 그들의 발버둥을 의미없는 과장된 행위로 보이게 했다. 어쨌든 TV 화면은, 세상 모든 사람이 울고 있으니, 당신 또한 울어도 된다는 면죄부를 네자매에게 주었고, 비로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목구멍을 활짝 열어 슬픔을 토해내게 했다. “엉엉엉, 아이고 아이고, 엄마, 엄마,” 저마다 토해내는 방식은 달랐지만, 통곡의 끝은 없을 것 같았다. 막내만이 단정하게 TV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좋겠다. 저 여자는 제 목숨을 자기 의지로 거뒀네.” 막내의 한 마디는 절망의 핵을 터트렸고, 우리는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가슴을 치고, 거실바닥을 긁으며, 그 절망을 표현했다. “딩동 딩동 딩동….” 경쾌한 기계음이,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던 통곡을 한 순간에 멈추게 했다. 집 주인인 막내가, 문 쪽을 흘낏 쳐다보더니, 이내 시선을 TV로 돌렸다. 우리의 통곡도 계속 이어졌다. “딩동 딩동 딩동 딩동….” 초인종이 연이어 울렸다. 무엇이던 세 번이 넘어가면, 전하고자 하는 진실에 가시를 돋게 한다. 동생이 거칠게 일어나 문을 열었다. “Are you ok? What happen?” 옆집 사는 백인 노인이 부인과 함께 놀란 눈을 말보다 먼저 안으로 들이밀었다. “I am ok. We watching tv drama. Sorry.” “Oh, I understand.” 백인 노인은 자신과 아내도 슬픈 드라마를 보면 눈물을 흘린다는 둥, 한참을 떠들다, 계속 시청하라는 말을 남기고, 문까지 닫아주는 친절을 보였다. “미친놈 오지랖도 넓어.” 작은 언니가 닫힌 문을 향해 눈을 흘기며 말했다. 백인 노인의 방문은, 우리의 울음을 울음 끝도 남기지 않고 멈추게 했다. 우리 모두는 TV 속의 죽음으로 슬픔을 이동했다. 망자의 남동생이 가슴 깊숙이 사진을 안고 흐느끼고 있었다. 남자이기 때문에, 소리 내지 못하고 울음을 삼키는 모습이, 더욱 애처로운 장면을 연출했다. 우린 우리들 가슴에 안긴 막내의 영정사진을 떠올리며, 또 다시 통곡했다. “언니, 나, 영정사진 무엇으로 하지? 저 여잔 영정사진도 예쁘네.” 이미 화면 속으로 들어간 막내가 힘없이 말했다. “야, 너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우리가 울어주니까, 네가 정말 내일 당장이라도 죽는 줄 알아?” 작은 언니가 소리 질렀다. “나는 친구도 없고, 남편도 없는데, 박 서방, 나 죽으면 와주기나 할까?” “미친년, 요새 세상에 암이 병인 줄 알아? 암 걸리고도 팽팽하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리고 그 놈은 또 왜 찾아?” 그래도 작은 언니는 사태의 심각성을 나와 큰 언니보다 덜 감지한건지, 동생의 말을 놓치지 않고 받아쳤다. “나는 화장해서 훨훨 뿌려줘. 록키산맥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서. 뿌릴 땐, ‘사람과 시간과 바람소리’ 틀어줘. 아주 크게. 애들 말고, 내가 이 세상에 한 순간 머물렀었다는 증거가 또 뭐가 있을까. 저 여잔 이름도 남겼고 필름도 남겼는데. 세상에! 나는 뭘 하며 산거야 지금껏. 사는 게 죽는 거라는 걸, 왜 생각 못하고 살았지?” 막내는, 행운보다 더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죽음을, 삶에서 제외시킨 자신의 미련함을 힐책했다. “암을 정복한 사람은 정신력이 강한 사람들이란다. 그러니 너도 정신 줄 놓으면 절대 안돼. 지금껏 살아온 것처럼, 야무지고 독하게, 네 몸에서 쫓아내버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니? 왜, 평생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정기검진을, 계획도 없이 갑자기 하게 됐겠어? 너 살리려고 그런 거야.” 큰언니가 애걸하듯 말했다. “우리 아이들한테 뭘 해주고 죽을까? 애들 아빠한테 아이들 뺏어서 벌 받았나봐. 내 자존심 살리겠다고 천륜을 갈라놓았으니? 그렇다면 신은 누구 편인거지? 간통 한 자를 벌해야지, 정숙하고 모범답안처럼 산 나를 벌하고 있잖아?” 막내는 항상 성경책을 손에 쥐고 있는 큰언니를 향해 물었다. 하지만 큰 언니는 고통스런 눈으로 대답할 뿐 이였다. ‘아니란다. 사랑하는 동생아. 주님의 뜻이 있을 거야. 너를 벌하는 게 절대 아니야, 기다리자, 기다려보자’라고. 죽음은 오디션에서의 ‘땡’ 소리와 같다. 기회를 잃은 자와 얻은 자의 대화는 절대 합쳐질 수 없었다. 막내와 우리의 대화가 그랬다. 한 달 전, 가구점을 운영하던 둘째언니가 파산했다. 몽땅 털어 넣고 시작한 가구점이 2년도 안돼 문을 닫게 되었다는 소식은, 우리에게 가공할 충격이었다. 무엇보다 작은 언니가, 소리 소문 없이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것에 자책하고 괴로워했다. 미안함과 막막함으로 연락도 못하고 있을 때, 작은 언니로부터 전화가 먼저 걸려왔다. “오늘 밤부터 내일 아침까지 금식이야. 꼭 지켜야 돼.” 금식기도의 참여로 면죄부를 받은 우리는, 금식 뿐 아니라 철야기도까지 했다. 우리의 합심기도가 가구점의 문을 활짝 열어주기를, 간절히 간구했다. 다음날, 작은 언니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종합병원이었다. “뭐야? 너 왜 우리를 여기 데리고 온 거야?” 겁 많은 큰 언니가, 어떤 일이 일어나도 심장만은 지키겠다는 듯, 거친 손을 심장에 갖다대며 물었다. “언니!” 나는 더 이상의 절망적인 소식은 전하지 말아달라는 간절함을 담아, 작은 언니를 나지막이 불렀다. 막내는 이 상황을 빨리 해명하지 않는 작은 언니에게,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야, 야 놀래지들 마, 그런 새가슴으로 이 험한 세상을 살고 있으니, 우리가 이 모양 이 꼴인 거야. 우리 한 번도 건강검진 안 해 봤잖아. 물론 그럴 형편도 못 됐지만. 이번에 우리 사총사 건강 검진하자.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지. 우리가 누구야? 옛날 용산 땡땡거리 주름잡던 골목대장들이잖아. 가진 것 없이, 부모 없이 살아왔으니, 목숨만은 세상사람 그 누구보다, 가장 오래 붙들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 작은 언니는, 너무 가냘파 자신의 의도가 전혀 전해지지 않는 불끈 쥔 주먹을 내밀며 말했다. 건강 검진 받는데, 운명과 투쟁까지 선포하는 언니의 허전한 마음이 전해졌다. “비싸잖아? 얼마나 비싼데. 언니 미쳤어?” “어차피 파산이야. 남은 카드로 기분 한번 내려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 무엇일까? 많이 생각했거든. 여행을 갈까 했는데, 각자 생활도 있고 해서, 그것보다 이것이 더 필요할 것 같아서, 이걸로 했어. 내가 이 짓 안하면, 우린 병으로 죽어도 왜 죽는지, 언제부터 죽음을 달고 살았는지, 모를 거야. 하자, 하고, 건강하게 남은 인생 즐겁게 살자.” 작은 언니는 언제나 그랬다. 어릴 적부터 우리보다 생각과 행동이 앞섰다. 섭섭할 만큼 무관심하며 자신만 챙기다가도, 굵직굵직한 결정은 도맡아 처리했다. 큰 언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부모님은 지독한 가난만 남겨놓고 한달 간격으로 돌아가셨고, 우린 큰 언니를 엄마 자리에, 작은 언니를 아빠자리에 앉혔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작은 언니는 지금껏 자신의 삶보다 우리의 삶을 먼저 챙겼고, 중요한 결정을 주도했다. 우리 집에는 항상 학교에서 주는 급식 빵이 저장되어 있었다. 또한 학용품이며 수건, 비누 등 생필품이 모자람 없이 쌓여있었다. 작은 언니는 새들이 먹이를 나르듯, 생필품을 집안으로 날랐다. 소풍날이나 운동회 날, 어린이날이면 언니는 더욱 바빴다. 공짜로 배급이 시행되는 어떤 곳이건 달려가, 수 시간씩 줄을 서서라도 기어코 작은 가슴 가득, 물건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의 자존심, 큰 언니의 부끄러움, 막내의 철없음을 대신하기 위해서, 작은 언니는 어쩔 수 없이 남자가 되어야 했다. 남자들과 주먹싸움으로 세력을 장악하고, 부모의 부재와 가난이 만들어낸 선생님들의 지독한 괄시와 편애에도, 거침없이 저항하며 투쟁했다. 운동회 날에는 제일 앞에서 목청 터져라 우리의 이름을 부르며 응원했고, 어떤 행사건 우리를 끌어다 맨 앞에 세웠다. 지금껏 작은 언니는, 두려움으로 인해 우리가 뒤집어씌운 ‘아비 부’의 의무를, 처절히 수행하고 있는 중이였다. 그랬기 때문에, 이번 계획 또한 낯설진 않았지만, 언니의 표정에 무언가 단호함이 엿보여,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싫어. 난 안해.” 큰 언니가 몸을 돌려 차 쪽으로 걸어갔다. 작은 언니가 큰 언니를 쫒았고, 그 뒤를 막내와 내가 따랐다. 큰 언니가 몸을 돌린 이유를 우리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겨워서 그래. 참 열심히도 산 우리 자매. 그런데 누구 하나 내 놓으란 듯, 잘살지 못한 게 억울해서 그래. 나까지 이렇게 됐으니, 속상해서 그런다구.” “내 기분 모르겠어? 언닌 동생들 몸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걱정도 안돼? 그러다가 동생들이, 무슨 병이라도 걸려 치료도 못 받고 죽으면, 원통해서 살 수 있겠어?” "나는 화장해서 훨훨 뿌려줘 록키산맥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서" 작은 언니 말에, 거친 언니의 발걸음이 멈췄다. “하자. 어차피 없어지는 돈이야. 이제 내가 뭘 더 해 줄 수도 없어. 응? 언니.” “그래 하자. 하지만 내가 낼 거야. 네 말대로 동생들 건강 챙기는 건 큰 언니인 내 몫이야. 너는 언제까지 나를 바보로 만들래? 내가 변변치 못해서겠지만, 나한테 상의라도 했어야지. 왜 금식하는지, 어디로 끌려오는지도 모르고, 이 자리에 섰어야 하겠니?” 큰 언니는 눈물까지 글썽였다. 우리는 어린 나이에, 어떻게 엄마와 아빠 자리에 큰 언니와 작은 언니를 구별해 앉혔는지, 그 현명함에 감탄하며 살고 있다. 큰 언니는 지나칠 정도로 감정적이지만, 작은 언니는 섬뜩할 만치 이성적이기 때문이다. 자리가 바꾸어졌더라면, 성격도 바꿔졌을까? 모두의 머리가 주저없이 흔들릴 만큼, 가능성은 희박했다. “미안해 언니. 내가 생각이 짧았어. 해주고 싶은 생각이 앞서다보니.” “가자, 가서 샅샅이 검사 맡자, 잡초처럼 살아온 우리한테, 감히 어떤 병균이 들어와 자리잡을 수 있겠는가마는, 그래, 속 시원히 해보자.” 말을 끝낸 큰 언니가 다시 거친 발걸음을 병원으로 옮겼다. 우리는 그 뒤를 또 다시 뒤따랐다. “비쌀 텐데. 큰 언니가 무슨 돈이 있다구.” “얼마 정도 될까? 우리도 보태자.” 막내와 나는 숨죽인 소리를 주고 받으며 잔걸음을 옮겼다. 병원에 도착한 언니는 가방을 열어 카드 세 장을 내밀었다. 하나로는 한도가 안 되리라는 계산을 한 것이다. 작은 언니가 재빨리 자신의 카드를 간호원 손에 쥐어줬다. “아니요, 이것으로 결제하세요.” 큰 언니의 성난 목소리에 간호사가 어리둥절해하며 작은 언니의 카드를 내려놓았다. “이걸로 하세요.” 작은 언니가 또 다시 카드를 간호사 손에 쥐어줬다. “왜 들 이러세요. 저기 가서 의논하고 오세요. 왜 여기서 이래요. 카드로 내면서.” 간호사가 날카롭게 쏘아댔다. 작은 언니가 “뭐 이런 게 있어?”하며 자신의 카드를 그녀 앞에 던졌다. 싸움이 날 것 같자,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 같던 큰 언니가 당황해하며 자신의 카드를 손에 넣고, 작은 언니를 뒤로 잡아끌었다. 그렇게 해서 작은 언니의 카드가 미끄러지듯 카드기에 그어졌다. “내가 계산해서 둘째 줄 거야.” 큰 언니는 못내 마음이 편치 않은 듯 중얼거렸다. “그래 언니 우리 각자 것 계산해서 작은 언니 주자. 그러면 되지?” “얘들이 왜 이래, 내가 낼 거라니까.” 큰 언니는 금방이라도 한 바가지 쏟을 듯,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며 화를 냈다. “알았어, 알았어. 큰 언니가 내. 고마워 언니.” 모든 풍요를 완벽히 소유할 수 없는 것이 세상 이치라면, 우리에겐 재물이나 행운이 없는 대신, 차고 넘칠 만큼의 우애와 사랑이 있었다. 그건 아주 어릴 적부터, 서로 뭉쳐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몸으로 터득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누군가 몸살이라도 나면, 모두 모여 그 집에서 밤을 지새웠고, 자신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언니나 동생 입에 들어가는 것을 더 만족스러워했다.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소박한 행복을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이다. 잠깐의 소요는 지나가고, 우리는 즐겁게 검사를 받기 시작했다. 작은 언니는 열 다섯 가지가 되는 정밀검사를 신청해 놓았다. 각자 다른 검사를 시작으로 돌아가며 검사를 받았다. 마주칠 때마다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고, 이상 없음을 당연해 하며, 승리자처럼 미소를 주고 받았다. 검사가 끝나고, 의사는 우리를 함께 불러 앉혔다. 그리고 성적을 불러주듯, 한 명씩 건강상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시험은 잘 보았지만, 혹시나 하는 불안감으로 성적표를 기다리듯, 가슴이 조였다. 큰 언니는 류마티스 증상이 있으니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 외에는 아주 정상이라며 ‘정상’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언니의 논바닥처럼 갈라진 혈색으로 보아, 비정상이 정상이지 못한 것에 아쉬워 하는 듯했다. 작은 언니는 맥박수를 포함한 모든 수치들이, 일반적인 기준보다 약하지만, 별 문제점은 없다고 했고, 나 역시, 쓸개에 작은 혹이 있지만 염려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문제는 막내였다. 막내 차례가 되자, 그의 심각한 표정의 이유가 막내로 인한 것이라는 듯, 역설적인 온화함으로 표정을 전환하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자궁경부에 종양이 발견됐습니다. 정밀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상태로 보아 암일 확률이 큽니다. 어떤 방법의 치료가 가능할지, 검사 결과가 나온 후에 결정하기로 하고, 지금 바로 정밀검사를 합시다.” 소리가 귓속까지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귀는 소리를 차단했다. 의사는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그저 입을 뻐끔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대신, 귀에서는 지독한 이명음이 계속됐다. 큰 언니는 얼굴에 회칠을 해놓은 듯했고, 작은 언니는 표독한 얼굴로 의사를 노려보고 있었다. 당사자인 막내는,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진료카드를 넘겨다보고 있었다. “무슨 말인가요? 그럴 리가 없어요.” 큰 언니가 부들부들 떠는 손을 겨우 합장시켜 가슴에 올리며 물었다. “정밀검사 해 주세요. 아주 정밀하게.” 쇠꼬챙이 같은 목소리로, 하지만 침착하게, 작은 언니가 말했다. 불행의 바람이 불어오면, 작은 언닌 숨을 참는 고통을 견디고라도,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하지만 큰 언닌, 입을 벌려 그 바람을 전부 들이쉬고, 끝도 없이 비틀거린다. 나는 막내의 몸에서 희망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내 손을 힘껏 쥐었다. “너무 성급하신 것 아닌가요. 정밀검사도 해보지 않고 암이라고 단정짓고 있잖아요, 모든 병은 마음에서 오는 거라는 것 쯤은 잘 알고 계실 텐데, 확실하지도 않은 확률로, 환자에게 공포감을 주고 있지 않습니까. 암이 아니면, 암이 절대 아니겠지만, 제 동생이 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 겪게 될 정신적인 충격, 생각해 보셨나요?” 작은 언니는 제 정신을 차린 듯, 침착함을 벗어버리고 언니 특유의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병을 감추는 시절은 지났습니다. 암 같은 건 본인이 빨리 알고, 낫겠다는 의지와 신속한 치료가 중요한 겁니다.” 의사는 공격을 받았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서 암이라고 확정짓는 겁니까? 아닐 수도 있잖아요?” 작은 언니는 의자를 뒤로 밀치고 일어나, 그를 내리칠 것처럼 한 걸음 다가섰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궁경부암은 골반까지 전이되지 않으면, 자궁만 절제하면 되고, 연세도 있고 하니 크게 심려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당황한 의사는, 자기 나이의 여인들 앞에서 세우고 싶었던 권위를 내던지고, 내뱉은 말을 추스르기에 바빴다. “막내 재검사 받아야 한다잖아.” 나는 작은 언니를 밖으로 끌어냈다. “아무 것도 결정난 것 아니야, 막내야, 마음을 다잡고 먼저 나가지 말자, 설사 암이라고 하면, 이 언니들이 가만있겠니? 네 몸에서 암 병균들이 처참하게 말라죽게 만들 거야. 언니들 믿지?” 큰 언니는, 막내의 발아래 무릎 꿇고, 자신 입에서 빠져나온 말이 도망이라도 갈 듯, 한 마디, 한 마디 꾹꾹 눌러가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막내의 감정을 붙잡으려 애를 썼다. “오십대 오십이야, 부정적인 오십을 먼저 생각하면 안돼, 긍정적인 오십으로 부정적인 오십을 쫒아내. 우린 잡초야. 어떤 제초제로도 우릴 죽일 수 없어.” 작은 언니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막내옷의 단추를 풀고 있었다. 재검사를 끝내고 나온 막내의 얼굴은 도리어 평온했다. 막내를 낙천적이고 밝은 성격으로 세상에 내보내 준 것에, 처음으로 부모에게 감사했다. 하지만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희망은, 한 낮의 태양아래 저항도 못하고 녹아내렸다. 병원 문을 나선 우리는, 사막 한가운데 버려진 것처럼, 갈 곳을 찾지 못했다.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어찌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동생을 위로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는 것에 화가 났고, 배가 고픈 건지, 아니면 충격으로 위가 뒤틀리는 건지, 알 수 없는 모호함이 짜증났다. “나이가 들면 생각의 뿌리에 접근하지 못해, 그게 두려움으로 인한 자의적 현상인지, 아니면 신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는지 모르지만 말이야. 우리는 울 때 울지 않고, 웃을 때 웃지 않는, 감정 장애자들이 되는 거야, 그런데, 한 가지 더 왕성해지는 게 있어. 식탐이야 식욕. 조각난 욕망들이 그 쪽으로 모여드는 거지. 우린 그 마지막 욕망에 충실해야 돼, 그리고 사랑해야 돼. 절대 먹고 싶은 것을 참으면 안돼, 알았지?” 막내는 언제나 이렇게 말했었다. 삶에 지친 언니들이 끼니라도 거를까봐, 이뤄 논 것 없이 아귀처럼 먹는 것에만 신경 쓰는 스스로를 부끄러워 할까 봐. 하지만, 어제 저녁부터 굶고, 오후 세 시가 지나가는데도, 막내는 평상시처럼 언니들 먹을 것을 챙기지 않았다. 허기가 맹렬히 고개를 들며, 절망까지 덮쳤다. 속이 느글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소리 나지 못하도록 있는 힘을 다해 배에 힘을 주었다. 언니들도 그런가, 세심히 살폈지만, 배가 고파 창백한 건지, 충격으로 인한 건지 알 수 없었다. ‘배가 고프다니, 배가 고프다니… 동생 말대로 나는 감정의 장애자인 거야.’ “언니, 배고프다. 떡 보쌈 먹으러 가자.” 작은 언니가 말했다.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왜들 이래, 우리 엄청나게 배고프잖아, 막내가 죽어? 막내 너 배 안고파?” “고파, 누가 먼저 밥 먹자고 하나, 기다리고 있었어. 언제나 내가 먼저 먹자고 했잖아. 이젠 안 그럴 거야. 언니들 위장 언니들이 챙겨.” ‘아, 다들 배가 고팠구나.’ 그때서야 나는 배에서 힘을 뺐다. 식당에 도착해 삼겹살을 시킨 동생은, 짜증날 정도로 얇게 편 떡에, 삽겹살을 올리고, 그 위에 파김치와 마늘 그리고 매운 소스를 듬뿍 올려 한동안 게걸스럽게 먹기만 했다. 그저 귀엽게만 보이던 동생의 입이, 그토록 커다랗고 탐욕스러운지 그때 처음 보았다. 먹어도, 먹어도, 어딘가의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막내는 포만감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동생의 입이 잠시 쉴 틈도 없이, 우리는 먹음직스러운 쌈을 동생에게 연거푸 안겼다. 우리는 동생 입에서 새어 나올 슬픔을, 꾸역꾸역 떡보쌈으로 막고 있었던 것이다. “그만들 해. 암으로 죽기 전에 배 터져 죽겠어. 나한테 해 줄 말들이 그렇게도 어? 뭐가 그렇게 당당치들 못해? 이집 삼겹살 전부 동내고 가겠네.” 동생의 핀잔에, 어릴 적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저마다의 동작이 재빨리 멈춰졌다. 그리고 슬그머니 손에 든 것들을 내려놓았다. “그래? 네 배가 이제 불렀다 이거지? 그럼 이제 우리도 배터지게 먹자. 언니 먹어, 셋째 너도 먹고.” 작은 언니는 막내 입에 들어가다 만 것을 큰 언니 손에서 빼앗아, 자신의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언제나 어정쩡한 상황을 무마시켜 주는 작은 언니가 고마웠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 보쌈이었다. "무슨 말인가요? 그럴 리가 없어요" "정밀검사 해 주세요. 아주 정밀하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라는 막내의 말을 흘려버리고, 우리는 막내 집까지 따라 온 것이다. ‘가엾은 것, 혼자되어 오기와 악다구니만으로 세상 버텨 온 것도 억울한데, 이게 무슨 날 벼락이야.’ 차라리 이렇게 쏟아내고, 막내와 함께 신을 저주하고, 직무유기한 부모님을 원망하고 싶었다. 하지만 터를 잡은 절제된 감정은, 이런 원초적인 감정 폭발을 허락하지 않았고, 이유는, 험난한 인생의 반복, 혹은, 오래된 좌절로 인한 충격의 자정작용이었다. “암은 모르면 그냥 지나간다고도 하던데, 내가 검사를 괜히 하자고 했나봐.” 작은 언니가 울음 끝을 참지 못하며, 혼자 말처럼 중얼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되로 막을 것, 말로도 막지 못하는 게 병인데. 천만다행이지 미리 알았으니.” 이미 노안이 시작된데다, 퉁퉁 붓기까지 한 눈으로 인해, 사물의 초점을 맞추기 힘든 듯, 큰 언니는 연신 눈을 비벼대며 말했다. “야, 그 TV 꺼버려.” 작은 언니가 계속되는 장례행렬의 반복된 화면으로 인해, 동생의 슬픔에 몰입할 수 없다는 듯, 짜증을 냈다. 나는 얼른 일어나 리모콘을 눌렀다. 영정 사진 속에 있는 연예인이, ‘이건 완벽한 연극입니다’라며, 환하게 웃고 있는 장면이었다. “가만 있자, 내가 먼저 죽으면, 언니들하고 얼마나 헤어져 있어야 하는 거지? 언니들 평균수명까지 악착같이 살 거야? 내가 없는데도? 평균수명이 팔십이라고 하니까, 큰 언니는 이십년, 작은 언닌 이십 오년, 셋째 언닌 삼십년. 많이도 남았네. 정말 내가 너무 일찍 죽는 거네. 왜 이렇게 평균수명이 길어진 거지? 그러고 보면 웰빙 타령도 헛짓 하는 거야. 우리 조상들은 모두 웰빙식품 먹고 살았잖아. 그런데도 환갑이면 잔치했는데, 지금은 농약이니 뭐니 해도, 수명이 한없이 늘어나잖아. 의학과 과학의 발전이야, 그러니 너무 먹거리에 신경 쓰지 마, 죽을 팔자면 나처럼 이렇게 허망하게도 죽으니까.” “너 말 잘했다. 그래, 놀라운 의학의 발전이지. 네가 걸린 암쯤은 아무 것도 아니야.” “내가 이십년 전에 뭘 했지? 직장생활 했네? 즐거웠나? 아니, 즐겁지 않았어. 특별한 일도 없었고, 뭐 죽도록 사랑한 사람도 없었고, 사랑이라는 가면을 쓴 동정에, 어리석게도 내 인생을 던져버린 실수나 저지르고, 배시시 웃어볼 추억도 없고. 앞으로 이 삼 십년 더 산다고 특별한 일 있겠어? 그냥 이렇게 사는 거겠지. 억울하지도 않아. 못쓰고 죽을 만큼 벌어논 돈도 없으니 배 아플 일도 없고, 자식들도 베타맘처럼 키웠으니 당당하게 서 있을 거고, 남긴 것이 없으니 치고 박고 싸울 일도 없을 테고, 도리어 우리처럼 뭉치겠지? 가끔 언니들이 들여다 봐 주면되고. 무덤까지 함께 들어간다고 울어댈 남편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주 쌈박하네, 어떻게 이렇게 간결하게 살았지? 이렇게 될 운명인지 알고 산 것 같지 않아?” 속마음이 정말 어떤 걸까. 실제로 저렇듯 죽음을 초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막내의 지나칠 만큼 차분한 감정과 말투는, 우리에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강요라도 하고 있는 듯했다. “아이고 인물 났네. 암 선고 받고, 내 동생처럼 쿨한 여자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쿨하지 않을 것도 없잖아, 안 그래 언니? 다 죽을 거잖아. 시기가 조금씩 다를 뿐이지. 억울한 건 내 목숨 내가 거두지 못하고 뒤통수 맞았다는 거야, 미리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지각한 것처럼 뛰어가야 하잖아.” “이리와 폼 잡지 말고. 이제부터 언니가 하는 말 잘 들어.” 큰 언니가 동생의 공허한 말들을 허공에서 끄집어 내렸다. “일단 검사결과를 보자. 너도 들었지만, 상황이 안 좋으면 자궁을 들어내면 돼. 애 낳을 것도 아닌데, 우리 나이엔 아무 필요 없는 자궁이야. 너무 앞서나가 소설 쓰지 말자, 더한 병들도 완치되는데 이까짓 것 아무 것도 아니야. 상황이 심각했으면, 당장 입원하라고 했을 거야. 맞아, 가만히 생각해보니 입원하라는 말은 없었잖아? 너도 그동안 아무런 증상도 없었고. 돌아가신 엄마가 네가 아프기 전에 미리 알려 주신 거야. 치료하라고. 엄마가 우리 넷 중에 너를 제일 예뻐하셨거든?” “그러니까 나를 제일 먼저 데려 가시려나보지.” “야, 언니가 말하면 들어.” 날카로워진 감정을 숨기지 못하며 작은 언니가 소리 질렀다. “왜 소리 지르고 난리야 너는.” 큰 언니도 소리쳤다. 억장이 무너지는데, 어떻게 좀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