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정치 사회적 갈등 상황이 내전에 가깝다는 우려까지 제기될 만큼 양극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도 내전이 있었고 그 상처는 아주 깊고 오래 지속되었다. 어쩌면 오늘날에도 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흔히 ‘남북전쟁’이라고 불리는 노예제를 지키려는 남부와 이를 철폐하려는 북부간의 4년간의 전쟁, 그리고 링컨 대통령의 노예 해방령으로 기록되는 그 역사가 내전(U.S. Civil War)이었다. 그 상처는 아주 깊었다. 75년 전 발발한 동족 간의 전쟁을 경험한 한국인들의 입장에서 내전의 아픔과 긴 후유증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전쟁에는 패했지만 흑인들에게 동등한 시민의 권리를 부여할 수 없다고 저항하는 남부에서는 ‘흑인차별법’ (Black Codes)을 제정하여 흑인들의 재산권과 투표권을 제한하였다. 이에 연방정부가 소위 ‘재건 수정헌법(Reconstruction Amendments)’을 채택하기에 이른다. 수정헌법 13조는 노예제 폐지, 14조는 미국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시민권을 주고, 15조는 모든 시민의 투표권을 보장하는 헌법 개정안들이다. 이 수정헌법으로 인해 해방된 흑인 노예들도 법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부여받게 되었다. 소위 ‘속지주의’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 이 수정헌법 14조가 또 한 번 큰 격랑을 거치게 되는데, 아시안아메리칸이 사건의 중심이었던 1898년의 ‘웅 킴 아크 재판’ (U.S. v. Wong Kim Ark)이다. 187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중국인 가정에서 태어난 웅 킴 아크가 21세 되던 1894년 중국을 방문하고 미국으로 귀국할 때 미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입국이 거절된 사건이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웅 킴 아크가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중국 국적이어서 미국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연방대법원은 수정헌법 14조에 의해 미국내 출생한 사람은 부모의 국적과 무관하게 미국 시민이라고 판결했다. 이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아니었다면, 대부분의 한인들도 미국 시민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수정헌법 14조가 다시 소환되어 미국의 뜨거운 화두가 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내린 여러 가지 행정명령(Executive Order) 중 하나가 미국 시민 혹은 영주권자가 아닌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아니라면 미국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는 수정헌법 14조는 물론 연방대법원 판례와 상충하는 것으로 보여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필두로 한 강경파 공화당들이 주장하는 행정명령의 근거는 수정헌법 14조에 포함된 미국 관할권에 속하는지(Subject to the Jurisdiction There of)에 대해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가령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 법의 관할권에 속하지 않는 외교관의 자녀는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마찬가지로 서류미비자나(합법 체류라 하더라도) 학생 비자, 취업 비자 소지자등의 비영주권자 외국인들은 미국 법의 관할권에 완전히 귀속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자녀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수정헌법 14조가 보호하려고 했던 의도는 해방된 흑인 노예지 외국인이 아니라거나, 이민법을 관장할 권리가 전적으로 행정부에 있다는 논리 등이 트럼프 대통령 측의 법적 근거가 되고 있다. 다수의 헌법학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논리들은 ‘웅 킴 아크 사건’의 대법원 해석과 직접적으로 상충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연방대법원은 이미 부모의 국적과 상관없이 미국 내 출생자는 미국인이라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수많은 주들이 연방법원에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고 이미 워싱턴주 시애틀 소재 연방지방법원에서 이 행정명령의 효력을 일시 정지시키는 판결을 낸 바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연방대법원까지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현재 연방대법관들 대부분이 공화당 대통령들이 임명한 점을 고려할 때 궁극적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내전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수정헌법 14조가 오늘날 사회를 갈라 놓은 논쟁 대상이 되었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또한 수정헌법 14조를 강력히 채택했던 주체가 당시 공화당 강경파였고, 2025년에 수정헌법 14조를 제한하려는 주체가 트럼프 대통령을 필두로 한 공화당 강경파라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김한신 / 변호사니케의 저울 수정헌법 역사 재건 수정헌법 수정헌법 14조 수정헌법 13조
2025.02.06. 18:08
미국에는 27개의 수정헌법(Amendment) 조항이 있다. 헌법 개정이 쉽지 않아 새로 만드는 방식으로 보완하다 보니 27개 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이중 요즘 자주 소환되는 것이 1조와 2조다. 1조는 종교와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 그리고 정부에 대한 청원권을 보장한 것이고, 2조는 개인이 무장할 수 있는 권리, 즉 총기 소지를 허용하는 내용이다. 둘 다 1791년에 제정된 것들이라 역사가 깊다. 수정헌법 1조 내용 중에도 유독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기업 대 공화당 장악 주 정부’라는 다툼의 구도도 특징이다. 세계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디즈니랜드는 지난달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 등을 연방 법원에 제소했다. 수정헌법 1조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이유다. 양측의 갈등은 지난해 시작됐다.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플로리다 주의회가 이른바 ‘부모 교육 권리법’을 통과시킨 게 발단이었다. 이 법은 초등학생들에게 동성애 등 성 정체성 교육을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그런데 불똥이 디즈니로 튀었다. 평소 다양성을 강조해 온 디즈니의 슬로건에 반하는 법이 통과됐는데 가만있으면 되겠느냐는 압력이 쏟아졌다. 디즈니가 플로리다 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기업이라는 점이 작용한 듯하다. 이에 밥 체이펙 당시 디즈니 최고경영자(CEO)는 ‘부모 교육 권리법’에 반대하는 입장을 내놨다. 그런데 대통령 선거 출마에 뜻이 있던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판을 키웠다. 그는 즉시 수십년간 디즈니 측에 제공하던 자치권 혜택을 박탈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올랜도의 디즈니월드 옆에 교도소를 세울 수 있다는 엄포까지 놨다. 하지만 당하고 있을 디즈니가 아니었다. 디즈니에 우호적이던 자치권 감독위원회와의 발빠른 계약으로 디샌티스 주지사의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그리고 “주 정부 권한을 정치적 입장 표명에 대한 보복에 악용하고 있다”며 연방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보수의 아이콘이 되고 싶은 디샌티스 주지사도 물러서지 않았다. 디즈니 측의 제소 며칠 후 디즈니와 자치권 감독위의 계약은 무효라며 소송으로 맞대응했다. 동영상 공유 소셜 플랫품 기업 ‘틱톡(TikTok)’도 몬태나 주정부를 상대로 ‘표현의 자유’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몬태나 주 정부가 내년 1월부터 주민들의 틱톡 사용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짧은 동영상 중심의 틱톡은 젊은층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데도 몬태나주가 규제에 나선 것은 틱톡이 중국 기업이라는 이유다. 틱톡 측이 사용자 정보를 중국 정부에 넘길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유타,메릴랜드,사이스다코타 등은 주 정부 기기에서의 틱톡 사용을 금지한 정도인데 반해 몬태나는 몇 걸음 앞서간 셈이다. 틱톡 측은 사용자 보호와 근거 없는 주장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만약 미국과 중국이 지금과 같은 갈등관계 상황이 아니었더라도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싶다. 연방 법원이 두 가지 소송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표현의 자유’ 범주를 두고 양측의 치열한 공방이 전개될 수도, 아니면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날 수도 있다. 다만 디샌티스 주지사의 주장처럼 법 위에 존재하는 기업은 없다. 아무리 영향력이 큰 기업이라도 위법 사항이 있으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디즈니의 정치적 의사 표현이, 틱톡이 중국 기업이라는 것이 위법 사항은 아니다. 미국 사회가 빈부격차 만큼이나 정치적 양극화도 심해지는 양상이다. 진보를 넘어선 급진적 주장이, 보수를 지나친 극우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면서 부딪히고 있다. 아마 이런 현상은 내년 대통령 선거 과정을 거치면서 더 자주, 더 심각하게 벌어질 듯하다. 극렬 지지층에 기대려는 정치인들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적 목적을 위해 상황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것은 국민의 피로감만 키울 뿐이다. 김동필 / 논설실장뉴스 포커스 수정헌법 정치 정치적 입장 몬태나 주정부 플로리다 주지사
2023.05.25. 1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