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양파 향 가득한 부엌
결혼 초, 나는 부엌에서 늘 쩔쩔맸다. 설탕과 소금도 구별하지 못했다. 된장국에 설탕을 넣고는 싱겁다며 다시 한 숟가락을 더 넣던 철부지 주부였다. 냄비에서 넘친 고추장찌개가 가스레인지 위로 흘러내리면, 치울 줄도 모르고 속상한 마음에 가만히 서 있곤 했다. 밥 짓는 법, 국 끓이는 법을 남편에게 하나하나 배웠다. 시어머니께 반찬 만드는 법을 배우고, 큰동서의 나물 무치는 손놀림을 곁눈질로 익혔다. 겨우 식탁을 차릴 수 있게 된 어느 날, 내 손으로 지은 첫 밥을 남편과 마주 앉아 먹던 그 설렘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신혼’이라는 삶의 기쁨을 하얀 밥그릇에 가득 담았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세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 막내를 낳던 해, 남편의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꾸 목이 마르다 하고 살이 쑥쑥 빠졌다. 검사 결과는 당뇨였다. 남편의 집안에는 당뇨라는 깊고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 시아주버님과 시동생 모두 병 때문에 일찍 세상을 떠났기에, 진단 결과를 듣던 날 나는 냉장고 문을 열어둔 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냉장고의 차가운 기운이 꼭 내 마음 같았다. 두려움보다 먼저 미안함이 밀려왔다. 더 잘 챙겼더라면 하는 자책이 들었다. 의사는 식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식사는 곧 약입니다.” 그 한마디가 내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날 이후 부엌은 남편의 건강을 지키는 가장 소중한 곳이 되었다. 식재료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부엌은 작은 약재실이 되었다. 어느 날 신문에서 ‘양파의 효능’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피를 맑게 하고 인슐린을 돕는다는 어려운 말보다 내 마음에는 오직 한 문장만 남았다. ‘이것이 내 남편을 살릴 수도 있겠구나.’ 그 순간 양파는 더는 흔한 채소가 아니었다. 마음속에 희망이 조금 생겼다. 그날 이후로 양파는 우리 식탁의 주인공이 되었다. 볶음 요리마다 아낌없이 넣었고, 샐러드 위에는 보랏빛 양파를 올렸으며, 껍질조차 버리지 않고 채소수로 끓여 썼다. 여행을 가면 호텔에서도 양파를 물에 담가 키워 요리했다. 남편은 말없이 밥상 앞에 앉을 때마다 고마운 미소를 보여주었다. 양파를 손질하는 일은 내게 소중한 일이다. 재료를 씻는 일부터 정성을 다한다. 양파를 썰다 보면 눈물도 나지만 그 눈물은 매운 기운 때문만은 아니다. 서툴렀던 지난날에 대한 미안함과 여전히 내 곁을 지켜주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이 섞여 흐르는 까닭이다. 부엌은 내게 단순히 밥을 짓는 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남편의 건강을 지키는 병원이고,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내 마음 기도처다. 남편을 예전의 건강으로 완전히 돌려놓을 수는 없지만, 하루를 조금 더 건강하게 지켜줄 수는 있다. 오늘도 나는 부엌으로 가 양파를 손질하며 조용히 생각한다. 나의 수고가 남편의 건강이 되기를, 우리가 마주 앉는 이 시간이 계절을 지나 오래도록 계속되기를. 도마 위에 퍼지는 알싸한 양파 향이 집 안 구석구석 스며든다. 그 매콤하고도 달콤한 공기가 우리 삶의 온도가 되어 마음 깊은 곳까지 따뜻하게 데워주길 소망한다. 엄영아 / 수필가이 아침에 양파 부엌 보랏빛 양파 순간 양파 우리 식탁
2026.03.01. 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