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Antarctica)은 이 모든 수식어를 스스로 증명하는 곳이다. 그러나 막상 그곳에 다다르면 이 대륙을 설명하는 단어는 '추위'나 '바람'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평균 2.5km, 어떤 곳은 3마일에 이르는 두께의 얼음으로 뒤덮인 이 거대한 대륙은 인간의 시간과는 다른 속도로 인고의 세월을 견뎌왔다. 칠레에서 약 600마일 떨어진 남극은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채, 미국 영토의 1.5배에 달하는 규모로 고요히 펼쳐져 있다. 지구가 23.5도 기울어진 덕분에 11월부터 3월까지는 해가 지지 않는다. 다섯 달에 걸쳐 이어지는 낮은 단순한 계절이 아니라 생명이 폭발하는 무대다. ▶펭귄, 그 단순하고 완전한 삶 이 시기에 얼음이 녹으면 식물성 플랑크톤이 자라고 크릴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그 뒤를 따라 펭귄과 물개, 고래와 바닷새들이 연이어 모인다. 먹이사슬이라는 단어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정교하고 치열한 순환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광활한 남극에서 끝내 시선을 붙잡는 건 펭귄이다. 어쩌면 이 대륙을 이해하는 가장 간결한 방식은 펭귄들의 삶을 지켜보는 일이다. 수컷들은 10월 무렵 먼저 이곳에 도착해 둥지를 지어간다. 때로는 100미터가 넘는 바위를 오르내리며 조약돌을 하나씩 물어 나른다. 그 돌 하나하나가 보금자리가 되고, 약속이 된다. 그리고는 지난해 함께했던 짝이 돌아오기를 묵묵히 기다린다. 수많은 개체 속에서 다시 서로를 찾아내는 장면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그 재회는 곧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 된다. 알이 부화하고 새끼가 태어나면 부모는 바다와 육지를 쉼 없이 오간다. 목에 가득 담아온 크릴로 새끼를 정성껏 키우는 동안, 새끼는 3~4kg까지 자라고 부모의 몸은 그만큼 가벼워진다. 어떠한 계산도 없는 순수한 모성애는 사람과 동물을 막론하고 그 본질이 다르지 않은 듯하다. ▶문명과 멀어지는 원초의 여정 2026년 2월 3일부터 24일까지의 이번 여정은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해 산티아고(Santiago), 푸에르토 윌리엄스(Puerto Williams)를 거쳐 사우스 조지아 섬(South Georgia Island)과 엘리펀트 아일랜드(Elephant Island), 남극 반도(Antarctica Peninsula)와 사우스 셰틀랜드 제도(South Shetland Islands)로 이어진다. 사우스 조지아 섬은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다. 세계 최대 규모의 킹 펭귄 서식지로, 약 200만 쌍이 해변을 가득 메우고 있다. 여기에 Emperor, Macaroni, Chinstrap, Adelie, Gentoo 등 다양한 종의 펭귄과 바닷새들도 어우러져 살아간다. 하늘에는 알바트로스가 떠 있고, 해변에는 거대한 코끼리물범이 묵직하게 몸을 누이고 있다. 알바트로스는 최대 50년을 살며 연간 12만 마일을 날아다닌다. 이곳에서는 거리와 시간의 개념조차 인간의 기준과 다르게 작동한다. 한편, 과거 포경기지였던 그리트비켄(Grytviken)에는 인간 의지의 한계를 넘어선 기록이 남아 있다. 1915년,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Ernest Shackleton)은 인듀어런스호(Endurance)가 얼음에 갇혀 결국 바다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을 맞는다. 그는 22명의 대원을 엘리펀트 아일랜드에 남겨둔 채, 단 6명과 함께 작은 보트에 몸을 싣고 1300km의 바다를 건넌다. 그리고 이듬해, 다시 돌아온다. 단 한 명의 희생도 없이. 남겨진 대원들은 혹한 속에서 4개월 반을 물개와 펭귄으로 연명하며 버텨냈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 어디까지 견뎌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다. ▶조디악, 빙하 사이를 가르며 작은 고무보트에 몸을 싣고 빙하 사이를 가르는 순간, 풍경은 압도적인 크기로 다가온다. 얼음 절벽은 침묵 속에 우뚝 서 있고, 물개는 잠시 고개를 내밀었다 사라진다. 펭귄들은 망설임 없이 바다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이곳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그 고요를 깨듯, 어느 순간 바다가 깊게 출렁인다. 고래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물줄기가 사방으로 튀어 오르고, 꼬리를 높이 들어 올렸다가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다. 길이 30미터, 무게 80톤에 이르는 블루웨일(Blue whale), 18미터, 40톤에 달하는 혹등고래(Humpback whale), 그 압도감은 어떤 단위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남에 완성되는 여행 남극은 그 자리에서 완전히 이해되는 곳이 아니다. 떠난 뒤에야 비로소 그 의미가 또렷해진다. 지구의 생태계가 얼마나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자연의 압도적인 존재감과 생명의 경이로움, 그리고 사람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까지… 모든 것이 겹겹이 쌓이며, 그곳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감각들이 다시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결국 남극은 눈으로 보는 여행이 아니라, 마음속에 오래 남아 다시 완성되는 여정이다. ▶문의: (213)386-1818 남극랜딩 크루즈 출발 확정! 1/19/28-2/8/28 (18일) 여행사진가 빌리 장 동행 ━ *이 글은 3대가 함께 엘리트 투어 남극 여정을 다녀온 장정헌(John Chang) 씨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낸 기록이다. ▶여행팁 남극 여행은 이동 거리와 기후, 해상 변수까지 고려해야 하는 고난도 일정인 만큼 여행사의 전문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엘리트 투어의 '남극 전용기 랜딩 크루즈'는 전용기와 크루즈, 랜딩 탐험을 결합해 장거리 항해의 부담을 줄이면서 핵심 지역을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2027년 1월 26일 출발, 총 18일 일정으로 진행된다. 황제펭귄 섬 3박 4일 체류를 비롯해 트레킹과 남극 피요르드 항해 및 랜딩이 포함되며, 최소 2회의 트레킹으로 남극의 풍경을 가까이에서 체감할 수 있다. 숙박과 식사, 이동, 탐험 프로그램이 모두 포함돼 여정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전 일정은 여행사진가 빌리 장(Billy Chang) 대표가 직접 인솔해, 현지 상황에 맞춘 유연한 운영과 세심한 안내로 안정적인 여행을 완성한다. ━ 빌리 장 전 세계 100대 명승지를 무대로 활동하는 여행 사진가이자 엘리트 투어의 대표이다. 전 여행 일정 중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행 스토리를 만들어준다.극적인 순수 남극 반도 펭귄 서식지 사우스 조지아
2026.04.30. 21:01
2022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품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의 ‘단순한 열정(Passion Simple)’을 읽었다. ‘사적인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억압을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을 통해 탐구한 작가’라고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혼녀인 주인공은 연하의 유부남과 폭풍보다 심한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다. 이 사랑은 그녀의 일상을 송두리째 뒤엎어버린다. 그녀는 하루하루를 그 남자만을 생각하며 넋이 나간 상태로 보내고 그 남자만을 기다리는 일 이외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녀의 일상, 몸, 정신 그리고 영혼까지도 잊게 하는 열정으로 그에게 깊게 빠져들어 간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명품이나 저택 혹은 지적인 삶이 사치라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한 남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배경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이 책을 읽게 되면 사랑에 끌리는 정신적 교감이나 지적인 대화가 배제된 단순한 욕망만 드러내고 나열했다는 질타를 받을 수 있겠다. 이 글을 전개해가는 형식에 있어서 그녀는 감정 상태의 미묘하고 복잡한 내면세계를 묘사한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그 사랑을 낭만적으로 미화시킨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평평하고 객관적인 문체로 사실만을 적어 내려감으로써 독자는 일기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한 남녀가 불륜을 저지르며 긴장감을 즐기는 대중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도 제목을 ‘Passion Simple’이라고 붙였다. 그녀는 생생하고 강렬하게 거의 광적으로 묘사하여 정신병자가 아닌가 하는 의혹과 충격, 당혹감까지 자아내게 한다. 날마다 애타게 그의 전화만을 기다리고 만남을 위해 준비하고 황홀한 섹스를 한다. 그 이후로는 그와의 정사를 기억하고 보존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한다. 결국 1년 2개월 후 그는 본국으로 떠난다. 1년 후 꿈속에서처럼 다시 한번 만난 후 그녀는 그 기억을 오래 붙잡아 두기 위해 ‘단순한 열정’을 출간하기로 결심한다. 작가는 이별의 괴로움과 과거에 대한 기억은 풍화되기 때문에 어쩌면 단어들로 그 기억을 영원히 붙잡아 두려고 한 것이 아닐까. 오죽하면 혹시 그가 에이즈라도 남겨주지 않았는지 검사를 해보고 싶었을까. 작가에게 그는 그녀의 상대로서 가치 있는 사람인지를 재고하는 일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녀는 그 사람 덕분에 그녀를 남들과 구분시켜주는 어느 한계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그녀는 온몸으로 인간이 어떤 일에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무분별한 신념과 행동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이 책은 그녀에 관한 책도, 그에 관한 책도 아니다. 단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로 인해 그녀에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이 책에 대한 반응은 열광과 악평으로 나뉘었다. 말과 글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의 소외와 상처를 표현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작가의 말이다. 칼날 같은 글쓰기의 작가로서 그 용기와 단호함에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세상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선, 남에게 보이는 ‘나’와 내적으로 충만한 ‘나’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려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준 다리 역할을 해준 본인의 경험을 담담하게 적은 개성적인 글이다. 어린 시절 가난과 무지한 부모 밑에서 자라지만 학교에서 사회 계층을 알게 되면서 심한 충격을 받는다. 총명한 그녀는 신분 상승을 위해 공부하고 대학교수가 된다. 바흐를 듣고 책을 쓴다. 자신의 출신이 부끄럽고 그런 수치심을 느끼는 자신이 부끄럽고 그 수치심을 글로 드러내는 일이 자신을 낳아준 계층을 배반하는 일이기에 더욱 수치스럽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펜의 힘은 칼보다 강했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순수 열정 passion simple 노벨 문학상 감정 상태
2023.04.07. 17:52
슬픔은 마지막 순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참 신기했다 / 내가 바라보고자 하는 것만 보였다 / 유독 다가오는 것은 나와 닮았고 / 모양뿐 아니라 생각의 틀도 닮았었다 / 오늘 나는 눈을 뜨고도 심하게 넘어졌다 / 서로의 간극이 너무 커서였을까, 그럴 리 없다 / 바다와 하늘은 멀어도 맞닿아 서로의 모습으로 닮아가고 있는데 // 자유롭지 못한 내 잘못이었다 / 한 순간 스치는 생각을 벗지 못하는 / 슬픔은 무거움이란 생각이 든다 / 슬픔은 참아야 할 무엇이자 짊어져야 할 멍에란 생각에 잠을 설쳤다 / 결코 그럴 리 없다 손을 저어도 옥죄이는, 자유를 침해하는 무례는 / 누구도 받아드리기 힘든 짐이 되었으리라 // 늦은 밤 창문을 통해 나를 내려 보는 별들의 반짝임도 / 발자국 소리를 따라 깨어나는 새벽의 밝아옴도 / 겨울이 가고 봄이 올 때까지 혹독한 열병을 치를지라도 / 다시 태어나 당신의 세상으로 날아가리라 / 눈을 감고서야 보이고 입을 다물어서야 전할 수 있는 세미한 음성이 되어 / 푸르게 피어날 봄의 향기로 전해올 때까지 // 나 한 밤을 뜬 눈으로 지샌 반가움으로 다가갈 수만 있다면 / 내 마지막 순수의 노래로 당신을 뜨겁게 맞이할 수만 있다면 / 이게 다가올 세상에 가능하기만 한다면 세익스피어 ‘리어왕’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게 끝이 난다. 초도의 군주 리어왕은 숨이 끊어진 딸 코델리아를 안고 무대 위를 걷는다. 이 모습은 비극적 상실에 대한 상징적 이미지이자, 슬픔의 무게에 대한 은유다. 사람들이 슬픔을 말할 때 가장 흔하게 쓰는 형용사는 ‘참을 수 없는’이다. 그러나 슬픔은 참아야 할 무엇이자 짊어져야 할 짐이다. 슬픔이란 미처 체험 하지 못한 우리의 무지와 한계에서 비롯 된다. 무한에 대한 열망의 상실에서 비롯된다. 슬픔은 병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슬픔은 자기 욕구가 거절 되는 데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슬픔은 상실감과 희생을 거부하는 감정 표출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슬픔이 있어 기쁨이 있고, 죽음이 있기에 현재의 삶에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슬퍼한다는 것은 삶을 향한 회한이 담겨 있다는 증거이고 희망을 향한 첫 걸음이 아닐 수 없다. 슬픔에 잠겨있으면 미처 알지 못했던 경이로운 삶의 국면이 펼쳐진다. 슬픔 속에는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듯한 침잠과 무기력과 공허함이 따라온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삶의 역동성이 잠재 해 있기 때문에, 사람의 사고란 무한을 향한 갈망과 불리 될 수 없기에 거기서 오는 슬픔 또한 가슴 저미는 우리를 돌아 보게 한다. 과연 무엇이 슬픔인가? 슬픔의 본질은 무엇인가? 슬픔이란 단순한 감정을 표현한 단어지만, 그 속에는 수 많은 의미와 서로 상반되는 경우의 감정이 담겨 있다. 우리는 흔히 괴롭다, 슬프다, 울고 싶다는 절망의 편에 자주 선다. 슬픔은 무언가의 불일치에서 일어나는 감정임에 틀림없다. 무언가 충족 되지 않는 결핍감이 심해 질 때, 돌이킬 수 없는 실패와 좌절 속에서 슬픔을 많이 느낀다. 그래서 모든 생명은 슬픈 것이다. 슬픔뿐 아니라 기쁨, 분노, 사랑, 즐거움, 행복감 등 우리 감정 대부분이 현실에 대한 신체감각의 반응이다. 그 중에서도 슬픔은 뭔가를 잃고 빼앗긴 상태에서 시작 되기에 모든 사람들은 남이 모르는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 아름다운 얼굴에는 미소가 있지만 눈 속에는 슬픔이 가득한 사람들도 많다. 행복해 보이는 데 안으로는 슬픔을 숨기고 살아가는 힘든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나는 여기서 자유와 승화라는 두 단어를 떠 올렸다.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일을 하거나 또는 그처럼 지낼 수 있는 상태인 이 자유는 모든 사람의 중요한 권리 가운데 하나임을 기억해야 한다. 억압이나 제약이 없는 상태, 나쁜 것이나 싫은 것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의지를 말한다.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유와 어떤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자유. 이 두 가지 자유로부터 우리가 겪는 슬픔은 극복 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리고 그렇게 믿는다. 어떤 현상이 더 높은 상태로 발전하는 것이 승화의 정의다. 어떤 물질이 액체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기체에서 고체로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무엇이 더 높은 경지나 상태에 이르는 것. 슬픔이라는 참담함을 오히려 꿈과 이상을 통해 기쁨으로 바꿀 수 있는 힘. 충동이나 욕구를 예술 활동이나 종교활동으로 사회적, 정신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바꾸어 내는 것. 나를 누르는 슬픔의 무게를 자유와 승화의 정신으로 내려 놓는 일. 그래서 더 높은 뜻과 미래를 향해 비상하는 일.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정말 잘 살은 인생이 될 것이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순수 마지막 순수 감정 표출 우리 감정
2022.12.05. 1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