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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내가 글을 멈출 수 없는 이유

많은 작가가 ‘인류’는 사랑하지만 ‘사람’은 못 견뎌 한다고 한다. 나는, 그렇다면, 확실히 작가다. 사람 숲 속에서 어찌 처신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는 나는 그래서 글을 쓴다.   미국 작가 조앤 디디온은 말했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발견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치 않은 때가 많은 나는, 내면이 자주 혼란하고 무질서한 나는, 글을 쓸 때만큼은 질서정연한 언어의 우주에 몰입하는 투사가 된다. 그래서 글을 쓴다.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지만 내 방식대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내가 맘에 든다. 삶의 목적이 내가 행복하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면 나는 절반은 성공한 사람이다.   글을 쓸 때 행복했다. 40년 동안 글을 썼지만 글이 밥이나 국을 보태주지 않았다. 오히려 밥과 국뿐 아니라 반찬과 디저트까지 바쳤다. 그래도 좋았다. 글은 나를 살게 해주는 동력이었으니까.   미운 사람에게 밉다 말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는 나는, 글로 맘껏 미워하고 사랑했다. 소중한 가치와 진실이 훼손당하는 모습을 목격할 때, 친구에게 배신당할 때, 분노의 힘과 억울한 고통이 글을 쓰게 했다. 소나무 가지 위에서 부서진 빗방울이 카페 정원 테이블 위에 놓인 내 찻잔에 토도독 떨어질 때, 데자뷔 장면 속에서 느끼는 그 서늘한 정서가 글을 쓰게 했다.   좋은 글을 만나면 마음과 생각이 순해지고 언행이 부드러워진다. 마음을 치유하는 글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동기를 부여한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그날을 바라보며, 나는 글을 쓴다.     글은 마음대로 고칠 수 있다. 내가 쓴 모든 지난 글은 얕고 조잡하다. 어그러진 문장을 단단히 세우고 격에 맞지 않는 어휘를 아낌없이 버릴 때, 회심의 미소가 난다. 글을 정리 정돈하는 작업은 빗나간 내 삶의 방향을 제대로 바로잡는 일처럼 기쁘다.     신문에 발표되고, 책으로도 출판되어 어디에 대고 말할 수도 없지만, 고치는 이유다. 인생은 고칠 수 없지만 글은 얼마든지 고치고 또 고칠 수 있다. 글을 고치는 만큼 삶이 업그레이드 되고 영혼조차 맑아지는 느낌이다. 글이 좋은 이유다.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가. 오직 글과 나 사이에서 일어나는 비밀스런 쾌락이다. 글을 만들어가는 작업은 어떤 위로보다 깊이 있는 안정감을 주고 어떤 달콤한 음식보다 맛있다. 그래서 글을 쓴다.     미국의 시인 루이스 토마스가 말했다. 달만큼 멀리 떨어져서 보면 지구가 살아있다는, 숨 멎을 듯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달까지 멀리 가지 않아도, 나는 글을 쓸 때 내 안에서 놀라운 세계를 발견한다. 글로써 세상을 관조하는 나 자신을 관찰하는 메타의식이 촉발된다.   고통의 바다는 끝이 없지만 방향을 바꾸면 육지를 볼 수 있다는 명문은 책에서 읽어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다. 이 문장이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오면 식상하다. 글로 읽을 때 공감하고 감동한다. 감동과 공감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가히 혁명적인 감정이다. 내가 글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하정아 / 수필가이아침에 순해지고 언행 시인 루이스 카페 정원

2025.10.28.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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