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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하루 이야기

하루라는 단어는 특이한 말입니다. 사실 날짜를 세는 말은 구성이 특이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많습니다. 이틀, 사흘, 나흘, 열흘 등에서 ‘-흘’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흘’은 날짜를 나타내는 말로 보입니다. 사흘을 ‘사 일’로 잘못 알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사나흘’은 ‘서너’와 모음 교체된 말입니다. 며칠을 ‘몇 일’로 잘못 쓰는 사람이 있는데, 며칠에는 ‘일(日)’이 아니라 ‘흘’이 들어간 말로 보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 며칠의 옛말은 ‘며츨’이었습니다.   오늘은 날짜에 관한 우리말로 시작하였습니다만, 사실은 저의 하루를 보여 드리고자 글을 쓰고 있는 겁니다. 노후 준비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어떻게 앞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예비편, 준비이기 때문입니다. 노후 준비는 당연히 노후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하여야 하는 겁니다. 저의 하루를 보시면 저의 노후가 보일 겁니다.   저는 매일 아침에 사전을 봅니다. 주로는 방언 분류 사전을 보고, 일본어로 된 어원사전을 봅니다. 저의 머리를 휙휙 돌리는 시간, 즉 깨어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말을 머릿속에 넣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그래야 알고 있는 어휘도 오래 기억할 수 있습니다. 가끔은 불교대사전이나고어사전을 보기도 합니다. 제 연구실에는 사전이 참으로 많습니다. 가장 오랫동안 제 손에 남아있을 책은 아마도 사전일 겁니다.   일본어 어원사전을 비롯하여 일본어로 된 책은 주로 아침에 보려고 합니다. 외국어공부는 지적 호기심을 일으킵니다. 또한 좋은 외국어 책은 심리적 치유에도 도움이 됩니다.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주로 아침에 외국어로 공부를 시작합니다. 외국어에는 다양한 기능이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주목하고 있는 기능이 바로 외국어 교육의 치유기능입니다.   오후에는 주로 옛글을 읽습니다. 요즘엔 번역소학을 봅니다. 1518년에 번역된 소학을 읽으면 옛 우리말의 즐거움에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초기 한글 성경을 읽기도 하고, 초기 한글 불경을 보기도 합니다. 물론 최근의 종교 서적도 읽습니다. 종교는 말 그대로 가장 높은 가르침이고, 나를 깨우는 가르침입니다. 어휘와 사고의 보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녁엔 주로 역사와 문화 책을 읽습니다. 언어에 사고를 더하는 순간입니다     날마다 제자들과 만나는 시간도 귀합니다. 언어를 이야기하고, 교육을 이야기하고, 사람을 이야기하고, 삶을 이야기합니다. 선생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제자가 아니어도 사람을 만나는 일은 귀한 일입니다. 해외에서 온 분이나 멀리서 찾아주는 분도 많습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나누는 대화는 사람이 ‘말하는 동물’이라는 참 의미를 깨닫게 합니다.   매주 한두 편의 글을 쓰고, 격주로 평화방송에서 우리말에 관한 방송을 합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특강을 하고, 매주 수요일 밤에는 두 시간씩 제자들과 연구모임을 같이 합니다. 7개국에서 연구자들이 참가하여 열띤 토론을 합니다. 매년 수십 편의 논문을 함께 씁니다. 책을 쓰는 시간도 집중의 시간입니다.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나와 함께 쓰는 느낌입니다.   일요일에는 국악을 배웁니다. 민요를 배우고, 사물놀이를 배우고, 우리 춤을 배웁니다. 이렇게 배운 국악을 한 달에 한 번씩 요양원에서 국악치유공연을 합니다. 하는 이나 보는 이나 서로에게 치유의 시간입니다. 요즘에는 그동안 썼던 시를 가사로 바꾸어 노래를 만들고 있습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제 감정이 여러분에게도 전달되기 바랍니다. 이렇게 보면 엄청 바쁜 것 같지만 사실은 시간이 많이 남습니다. 공부할 게 많아 즐겁고, 배울 게 많음에도 스승을 찾지 않음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하루하루가 노후 준비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이야기 하루 이야기 시간씩 제자들 외국어 교육

2025.09.0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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