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광장] 막연한 공포 대신 ‘법치의 힘’ 믿어야
최근 한인 사회에 흐르는 분위기 가운데 하나가 ‘공포감’이다. 강력한 반이민 정책과 발언들이 평범한 이민자들의 일상을 뒤흔들고 있다. 특히 “시민권 취득 과정에서 부정한 방법이 있다면 시민권을 박탈하겠다”라거나 “미국적 가치에 반하는 이민자는 배척하겠다”는 정치적 수사들은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이럴 때일수록 미국의 합리적인 법리와 견고한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정치가 만든 안갯속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법치의 힘’을 신뢰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성 정체성과 관련된 이민 신분 문제다. 한국에서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미국에서 여성으로 성별을 바꾸고 운전면허증 등 법적 서류를 만든 이들이 “트럼프 정부가 이를 서류 조작이나 사기로 간주해 추방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밤잠을 설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우려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2025년 초 행정명령을 통해 연방 차원에서 출생 시 성별만을 공식 인정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주 정부 서류와 연방 이민 서류 간 불일치가 행정적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은 실재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법적 원칙이 있다. 이민법에서 정의하는 ‘사기’란 혜택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중대한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행위를 뜻한다. 주 정부의 적법한 절차를 거친 성별 정체성을 소급 적용해 추방의 근거로 삼으려면 반드시 법원의 판단을 거쳐야 한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적법 절차(Due Process)’ 원칙에 따른 것이다. 영주권을 취득한 뒤 타주로 이사하거나 직종을 바꿨다는 이유만으로 영주권이 취소된다는 소문도 떠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주권자는 미국 내 어디서든 거주와 취업의 자유가 있어 이사나 이직 자체는 영주권 취소 사유가 되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 반드시 구별해야 할 것이 있다. 영주권자가 장기간 미국을 떠나 거주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할 경우다. 즉 1년 이상 해외에 체류하거나 미국을 ‘주된 거주지’로 유지하지 않은 경우에는 영주권 포기로 간주할 수 있다. 이것은 정치적 탄압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있던 이민법 원칙이다. 실제로 재입국허가서 없이 한국에 장기 체류하다 공항에서 입국이 거부된 한인 사례도 적지 않다. 소문이 아닌 법조문을 기준으로 자신의 상황을 냉정히 판단하는 것, 그것이 불안을 이기는 첫걸음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시민권자 추방’ 역시 불안감을 자극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한번 부여된 시민권을 다시 빼앗는 일은 역사적으로 드물다. 그 절차 역시 행정부가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여러 겹의 법적 장치로 묶여 있다. 시민권 박탈은 반드시 연방 법원을 거쳐야 하며, 법원은 정부에 높은 수준의 입증을 요구한다. 애초에 신분을 속여 시민권을 취득했거나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성실히 살아온 이민자가 시민권을 박탈당할 가능성은 적다. 미국은 여전히 헌법으로 개인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사법부가 행정부의 과잉 조치를 견제하는 시스템 위에 서 있다. 하지만 냉혹한 현실도 직시해야 한다. 법적 보호가 존재한다는 것과 그 보호 장치가 작동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행정법원에서 연방 항소법원까지 이어지는 이민 재판 과정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뜬소문에 휘둘리는 대신, 본인의 체류 신분 취득 경로와 해외 체류 기록 등에 흠결이 없는지 점검하는 일이다. 법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알고 있는 것만큼 단단한 방패는 없다. 거센 정치적 파도 속에서도 법치주의와 이민법 시스템은 미국의 중심을 잡는 닻 역할을 한다. 막연히 추방의 공포에 떨기보다 자신의 법적 권리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김원아 / 변호사열린광장 공포 법치 시민권자 추방 시민권 취득 시민권 박탈
2026.04.15. 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