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7월의 함성, ‘선한 분투’여야
수백만 명의 함성이 지난 14일 전국을 뒤덮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생일에 맞춰 열린 육군 250주년 기념 열병식에 맞서 2100여 곳에서 ‘왕은 필요 없다(No Kings)’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단일 시위 중 하나라고 한다. 대부분의 시위는 평화롭게 진행됐지만 뒤편에서는 비극도 발생했다. 유타주에서 시위에 참여했던 패션 디자이너 아서 폴라사 아루(39)가 총격으로 숨지고, 미네소타에서는 민주당 주 하원 의원 부부가 피살당했다. 분노가 거리를 채우고, 안타까운 죽음이 그 뒤를 따랐다. 다음달 17일, 또 한 번의 전국 동시다발 시위가 예고됐다. 이날은 2020년 세상을 떠난 민권 운동의 거목이자 전 연방 하원이었더 존 루이스를 기리는 날이다. 200개가 넘는 진보 단체가 연합한 시위의 중심에는 ‘인디비저블(Indivisible)’과 ‘50501(50개 시위, 50개 주, 단일 조직 운동의 줄임말)’ 두 단체가 있다. 이들은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직후 공화당이 풀뿌리 운동으로 시작한 ‘티파티(Tea Party)’의 조직 방식을 그대로 차용했다. 전직 의회 보좌관들이 주축이 된 인디비저블과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Reddit)에서 시작된 50501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국의 지지자들을 조직하고, 지역별로 동시다발적인 저항을 이끌어낸다. 이념적 방향은 정반대지만, 중앙 권력에 맞서는 풀뿌리 저항이라는 전술은 똑같다. 두 단체 주도로 올해 2월5일 열린 첫 시위를 시작으로 2월17일 ‘대통령의 날’ 시위, 3월과 4월의 ‘손 떼라(Hands Off)’ 시위를 거치며 트럼프 정부에 대한 저항의 규모는 계속 커지고 있다. 지난 14일 시위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더 강한 불법체류자 단속을 천명했고, 이는 다시 시위대에 기름을 붓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탱크와 장갑차가 워싱턴 D.C.를 활보하는 열병식은 ‘왕은 필요 없다’는 구호를 현실로 만들었다. 민주주의 국가의 자축이 아닌, 권위주의 통치자의 과시욕으로 비친 이 행사는 그 자체로 저항의 가장 큰 명분이 되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 거대한 분노를 자신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이용하려는 정치권의 계산이다. 공화당은 이를 ‘법과 질서’를 내세워 지지층을 결집하는 기회로, 민주당은 반트럼프 전선을 구축하는 동력으로 삼으려 한다. 어느 쪽도 “국민 편”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 현실이 개탄스럽다. 평화적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무차별적인 고무탄 발사와 과잉 진압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결국 양극단의 충돌 속에서 피해를 보는 쪽은 일부 폭도들 때문에 손가락질 받는 평화 시위 참여자들과 약탈과 방화에 속절없이 당하고 있는 소상인들이다. 극한의 대립이 임계점을 치닫고 있지만 상식과 이성을 가진 정치 지도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꼭 5년 전, 조지 플로이드의 비극으로 애틀랜타가 불타오를 때, 당시 케이샤 랜스 바텀스 시장의 울림 있는 연설이 절실한 순간이다. “저는 흑인 자녀 넷을 둔 엄마입니다. 플로이드 피살을 보고 그 어머니의 아픔을 절감했습니다. 그래서 폭력 시위가 발생하자 저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할 만한 일을 했습니다. 제발 오늘 밖에 나가지 말라고요. 지금의 시위는 시위가 아닙니다. 이것은 혼란입니다. 도시를 불태우는 건 우리의 공동체를 부수는 행위입니다.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유권자 등록을 하십시오. 투표소에 가십시오. 그것이 이 나라에 필요한 변화입니다. 도시를 진정으로 아낀다면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제발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다음달 17일 시위의 주제는 ‘선한 분투(Good Trouble)’라고 한다. 평화적 저항의 역사적, 도덕적 정당성을 평생 설파했던 루이스의 신념을 이어받자는 취지라고 한다. 이날의 외침은 증오와 파괴가 아닌,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한 평화의 행진이 되어야만 한다. 분노를 넘어서는 성숙한 저항의 품격을 보여주어야 한다. 가장 강력한 저항은 증오의 대상을 닮지 않으려는 노력이다.사설 함성 분투 시위 직후 시위 3월 전국 동시다발
2025.06.18. 1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