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광장] 슬픔의 깊이는 다르다
삶의 여정은 얼핏 서로 비슷해 보인다. 생노병사의 과정과 일상 수고와 애씀도 그러하다. 생의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크고 작은 상실과 슬픔을 계속해서 마주함도 비슷하다. 그런데 이 슬픔을 맞이하는 아픔과 애도의 깊음은 서로 다르다. 이러한 이유로 임상원목 업무에서 ‘슬픔돌봄(Grief Care)’과 ‘노년학(Gerontology)’의 분야는 더욱 소중히 다루어지게 된다. 여러 모양의 슬픔을 돌보는 과정에서 자신의 슬픔도 아파하게 될 때가 있는데 환자돌봄을 위한 임상이론과 영적케어 테두리를 넘어 실존의 거울 앞에 비친 우리 모두의 모습을 마주보게 된다. 생의 과정 가운데 사별이 주는 상실로 인한 슬픔과 아픔은 다른 아픔에 비할 바 아니다. 아픔의 정도 역시 당사자가 애도하는 대상과의 관계와 당시의 사별상황과 연결되어 있다. 어린 시절 슬픔(Childhood grief)은 정서적 이성적 성장과정에 있어서 아직 자신의 아픔을 적절히 표현 못 하는데 기인한다. 부모로서의 슬픔(Parental grief) 또한 특별한 상실과 아픔을 겪는다. 큰 이유는 상실한 자녀는 부모의 생애 동안 계속 마음에 존재하는 데 있다. 다른 의미에선 그 연속적 동행관계는 노년이 된 후 에도 계속되는 아픔 가운데 안위를 주기도 한다. 장년이 되어 배우자를 잃는 슬픔(Spousal grief)을 겪는 경우도 있다. 결혼 기간의 다양한 요소에 따라 사별의 아픔과 애도 기간의 영향을 받는다. 무엇보다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런 사별은 깊은 애도의 시간을 준다. 오랫동안 살던 집을 떠날 때도 갖가지 추억과 작별하며 아파하는데 하물며 수십 년을 동고동락하던 삶의 반쪽을 잃은 아픔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슬픔(Disenfranchised grief)도 있다. 자신의 상실을 사회적으로 애도하는 마음을 나누고 함께 의식을 가지는 것이 제도화되지 않은 경우가 그것이다. 산모가 새 생명을 기다리는 중 출산을 못하고 잃은 아픔과 슬퍼함은 당사자에겐 깊은 비탄을 가져오지만 공개적으로 함께 나누는 아픔이 아니다. 또는 질병으로 몸의 부분이나 기능을 상실한 때 공개적으로 아픔을 나누는 의식이 제도화되지않은 슬픔이다. 필자는 최근 여자 형제를 잃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임에도 곁에 있을 때 더 소중하게 여기지 못한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 아픔이 오래 지속된다. 약한 체력임에도 항공사 직원으로 근무하며 이민자의 삶을 살아 낸 모습이 생생하다. 아내 역시 침묵 중에 슬퍼한다. 시누관계로 처음에 기선잡기 하던 때가 그립고 수십 년간 새로 맺어진 가족으로서의 이민 여정에서 나눈 추억의 시간이 상실을 더 아프게 한다. 여동생의 예상하지 못한 질병으로 인한 갑작스런 작별이 더 아픔을 가져오지만 함께 걸어온 광야 여정의 시간은 소중하기만 하다. 상실 가운데 성서에서 위로의 언약을 읽는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 이민의 여정을 가는 동안 만나는 온갖 상실과 슬픔 중에도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약속안에 넉넉히 이기는 위로가 우리 모두의 삶에서 경험되기를 기원한다. 김효남 / HCMA 원목협회 디렉터열린광장 슬픔 시절 슬픔 childhood grief 애도 기간
2025.11.17. 1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