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최신기사

[글마당] 김치 한 조각의 서글픔

“김치 좀 주세요”     반찬이 주르르 나오지 않고 기본 반찬으로 김치만 나오는 이 식당 김치를 좋아하는 남편이 말했다.     “식사시키기 전에 김치는 안 나옵니다.”   우리는 소주 한 병을 시켜놓고 서울서 온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황석영의 장길산 소설 속 나그네처럼 주막에 들러 국밥이 나오기 전, 빈속에 술을 털어놓고 김치 쪼가리를 씹고 싶어서였다. 무표정한 웨이터의 대답이 술맛을 싸하게 만든다.     우리가 초대한 두 분이 식탁 맞은편에 앉았다, 남편이 파전과 순대와 찐만두를 시켰다. 사이드 종지를 주지 않는다. 아무도 안주를 건드리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종지와 김치 좀 주실래요.”   다시 웨이터가 무뚝뚝한 얼굴로 “식사를 주문하지 않으시면 김치는 드릴 수 없습니다.”   “아니, 술과 안주를 먼저 먹고 식사는 나중에 시킬 테니 김치는 가져다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식사 주문하시면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언제부터 안주와 식사가 분리되었던가? 웨이터는 무반응으로 계속 외면한다. 술맛이 슬슬 달아났다.     “사장님 나오시라고 해요.”     웨이터는 그러든지 말든지 하는 무표정으로 가더니 누군가가 김치를 가져왔다.   물가가 너무 올라 김치가 금치 되었나? 식당 매니저의 지시인가? 웨이터의 융통성 부족인가? 안주만 시켜 놓고 김치를 달라는 우리가 무례한 건가? 아니면 요즘 한국 젊은이 중에는 나이 든 사람들에게 ‘무응답 凝視(응시)’ 즉 질문이나 말을 걸었을 때 대답은 하지 않고 상대를 빤히 바라보는 태도로 일관한다는데. 사회적 거리두기 이후 생긴 변화인가?     손님도 많지 않다. 웨이터는 우리 테이블에 시선을 두고 있는데도 여전히 종지는 가져다주지 않는다. 식탁에 앉아 술잔을 마주하면, 아주 오래전에 읽은 장길산에서 아낙들이 국밥 끓이는 장면을 연상하며 한마디 한다.     “종지라는 말 너무 예쁘지? 봉지도.”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다. 국밥 가격이 예전의 두 배 이상이 되었다. 어쩌겠는가. 식당도 이윤을 남겨야 하니. 그래도 소주와 안주를 세 개나 시키고 식사도 나중에는 주문했는데. 한국인의 기본 반찬인 김치는 미리 줘야 하지 않을까? 무척이나 야박하고 헷갈리는 저녁이었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서글픔 김치 식당 김치 김치 쪼가리 기본 반찬

2025.10.02. 17:50

썸네일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