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믿음] 쌀에 새긴 복음
지난주, 1월분 식량 구매비를 탁 선교사님께 송금했다. 아이티는 성탄절 전부터 새해 첫 주까지 약 3주 동안 대부분 직장이 문을 닫고 긴 휴가에 들어간다. 물론 무급휴가다. 새해 첫 주나 둘째 주쯤에 일을 시작하면서 일상이 조금씩 회복된다. 이번 연말연시에는 갱들의 움직임도 비교적 잠잠해, 모처럼 나라 전체가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고요함과 달리 삶은 더 팍팍해졌다. 석유 공급은 여전히 불안정하고, 새해와 함께 식량 가격은 또다시 올랐다. 굶주리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지난해 유엔은 아이티 인구의 절반이 넘는 약 600만 명이 기아에 시달리고 있으며, 어린이를 포함해 100만 명 이상이 영양실조 상태라고 발표했다. 지금은 그 수치가 더 악화했을 것이라고 누구나 짐작한다. 이제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갱단의 폭력이 아니라 당장 입에 풀칠할 ‘식량’ 그 자체다. 물론 갱의 존재가 식량과 석유의 원활한 공급을 막는 근본 원인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이티 고아원 사역을 시작하며 단순한 목표를 세웠다. 하루 한 끼만이라도 아이들에게 쌀밥을 먹이자는 것이었다. 그 목표는 늘 아슬아슬하게 지켜진다. 어떤 달에는 겨우 채워지고, 어떤 때에는 모자라며, 때로는 전달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먹고 자란다. 그저 꾸준히 멈추지 않고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것이 은혜이기도 하고, 요즘처럼 아이티를 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고아원에 식량을 꾸준히 전달할 수 있도록 현지에서 묵묵히 사역을 이어가고 계신 탁 선교사님의 헌신 덕분이기도 하다. 고아원에서는 형편이 나을 때는 닭을 삶고 남은 국물로 밥을 짓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식용유 한두 숟갈 넣은 물에 쌀을 넣어 밥을 짓는다. 그렇게 기름밥을 만들어 그 위에 콩으로 만든 소스를 얹어 먹는다. 가끔 닭고기나 브로콜리라도 올라가면 아이들은 잔칫날처럼 기뻐하지만, 요즘엔 그런 식단이 꿈 같은 일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선교의 방식을 재난 구호, 특별히 식량 지원으로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먹어야 복음도 듣는다”라는 믿음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도 분명히 먹어야 살고, 살아야 복음도 들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제대로 먹지 못해 목숨을 잃는 경우도 보았고, 영양실조로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쌀은 우리에게 단순한 식량이 아니라 복음 그 자체가 된다. 굳이 “예수 믿으라”고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원장들도 아이들도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복음 때문에 아이티에 와서 쌀을 나눈다는 사실을 안다. 아이들을 직접 만날 수 있었을 때는 함께 찬양하고 기도도 했지만, 우리는 단 한 번도 믿음을 강요하지 않았다. 밥을 먹고 기운을 되찾으면, 그들은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예수의 복음이 따뜻한 밥 한 그릇이 되어 자신들을 살렸음을. 아이들에게는 곧 쌀이 복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입술에만 담지 않고 쌀에 새긴다. 광야에서 배고픈 무리를 보시고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이, 오늘 아이티 고아들을 보며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믿는 마음으로, 후원자들의 정성과 사랑을 쌀 한 톨 한 톨에 복음으로 새기며 식량을 준비하고, 콩을 준비하고, 기름도 준비한다. 오늘도 우리는 쌀에 새긴 복음이 아이들에게 온전히 전달되어 생명이 되기를, 소망이 되기를 기도한다. 조 헨리 / 선교사·더 코너 인터내셔널 대표삶과 믿음 복음 아이티 고아원 복음 때문 식량 구매비
2026.01.22. 1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