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영화인 신상옥 감독을 그리며
‘나는 영화였다’. 한국 영화계의 전설 신상옥 감독이 남긴 회고록의 제목이다. 책 제목대로 신상옥은 단순한 감독이 아니라, 영화 그 자체였다. 그 전설이 하늘의 별이 된지 어느새 20년이 지났다. 4월11일이 20주기 기일이다. 일생 오로지 영화만 생각하고,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 한국과 북한, 그리고 미국 할리우드, 또 한국으로 이어지는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 자체가 영화였다. 올해는 신상옥 감독과 그의 영원한 동지요, 운명적 동반자인 최은희 여사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기도 해서 더욱 의미가 깊다. 한국 영화계에서 두 거목의 큰 업적과 지극한 영화 사랑의 발자취를 기리는 뜻깊은 행사가 많이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신상옥, 최은희 두 분은 미주 한인 사회와도 인연이 깊다. 극적으로 북한을 탈출하여, 1986년 미국으로 망명한 후 할리우드에 정착하여, 영화 ‘마유미’ ‘닌자 키드’ 등을 제작하며 본격적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특히, 남가주 한인 연극인들은 연극 공연을 통해 맺은 두 분과의 각별한 인연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최은희 여사가 주인공으로 열연한 연극 ‘오, 마미!’가 그 작품이다. ‘극단 서울’이 장소현 극본, 이효영 연출로 윌셔 이벨극장에서 공연한 이 작품은 최은희 여사를 위한 작품으로 주상현, 양진웅, 김영일, 고계영, 김철화, 크리스틴 리, 원수연, 전경숙 등의 연기자들이 대거 출연했다. 1997년 2월 말에 공연되었으니, 벌써 30년이 되어간다. 이 작품에서 최은희 여사는 전쟁 통에 잃어버린 아들을 그리워하며, 현대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감내하는 할머니를 열연하여 진한 감동을 주었다. 두 분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주인공 최은희 여사는 당시 70세를 넘은 나이였고, 자타가 공인하는 원로 연기자였지만, 누구보다도 겸손하고 진지한 자세로 연습하는 모습으로 감동을 주었다. 신상옥 감독도 줄곧 연습장을 지키며, 격려했다. 두 분의 그런 성숙한 인간미는 무대에서도 빛을 발했고, 관객들을 울렸다. 사람들은 신상옥 감독을 그저 영화에 미쳐 많은 작품을 만들고 감독한 사람 정도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의 존재는 매우 크다. 한국 영화산업을 몇 단계 끌어올린 것은 물론, 한국 영화를 세계에 알리는 일에 일찍부터 앞장선 인물이었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예를 들어, ‘빨간 마후라’ 같은 영화는 대만과 동남아에서 인기가 대단했다. 한국 최초로 ‘세계 100대 감독’으로 선정되었고, 칸영화제 심사위원, 프랑스 도빌 아시아 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릴 정도로 세계적 인정을 받았다. 여기서 신상옥 감독의 발자취를 다 거론할 수는 없고, 내 개인적 기억에 남아있는 인간적 면모를 되살려본다. 나는 신 감독의 회고록 집필을 거들었고, 영화로 만들어지지는 못했지만 몇 편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하면서, 비교적 자주 만나 이런저런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전설적 어른의 일을 거들면서, 스스로 시야가 넓어지고 내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내가 본 신상옥 감독은 우선 매우 성실하고 부지런했다. 집중력도 대단했다. 늘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신상옥, 최은희 두 분은 냉면을 좋아해서 냉면집에 자주 가곤 했다. 식당에서 신 감독은 냉면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도 책을 읽었고, 냉면이 나오면 후루룩 순식간에 마셔버리고는 또 책을 읽었다. 최 여사가 걱정스러운 눈길로 천천히 씹어 가며 드시라고 말하면, 신 감독은 씹는 시간이 아깝다는 투로 무심하게 대답했다. “냉면에 씹을 게 뭐 있누?” 제발 하늘나라에서는 최 여사 말대로 꼭꼭 씹어 드시기를! 꼭 만들고 싶어 하셨던 영화 ‘칭기즈칸’도 완성하시기를!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신상옥 영화 신상옥 감독 신상옥 최은희 한국 영화계
2026.04.09. 1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