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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AI 억만장자들이 흔드는 워싱턴

2025년, 인공지능(AI) 붐은 미국 경제 지형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2022년 말 챗GPT 등장 이후 불과 3년 만에 160명이 넘는 신흥 억만장자가 생겨났고, 이제 미국 억만장자 수는 900명을 넘겼다. 이들이 보유한 자산은 7조에 근접해 중세 이후 가장 극단적인 부의 집중을 보이고 있다.   이 엄청난 부가 워싱턴으로 유입되어 정치 질서를 흔들고 있다. 자커리 바수(디지털미디어 ‘엑시오스’의 뉴스, 정치국장)는 억만장자들의 기부는 세제 혜택과 권력 접근성을 확보하는 수단이라고 분석한다. 그들의 진짜 힘은 의회를 우회하여 때로는 대통령의 정책을 직접 구현하는 실행 도구가 되는 데 있다.   억만장자의 정치 개입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2010년 ‘시티즌스 유나이티드 판결(Citizens United v. FEC)’ 이후 수퍼팩(Super PAC)을 통한 무제한 기부가 허용되면서 정치와 자본의 경계는 흐려졌다.     하지만, AI 호황으로 급부상한 테크 억만장자들의 워싱턴 진출은 그 영향력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그들은 후원자가 아니라 정책 결정의 파트너처럼 움직인다. 바이든 행정부의 기업 규제 강화에 반발해 실리콘밸리는 지난 몇 년 사이 보수 진영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공화당은 AI 규제 완화, 세금 감면, 암호화폐 친화 정책 등으로 테크 기업의 지지를 얻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2024년 총선에서 미국 상위 100대 부자들이 전체 선거 비용의 7% 이상을 부담했으며, 그 중 80%가 공화당으로 향했다.     현 정부의 핵심에는 억만장자와 테크 기업 간부 출신이 대거 포진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인공지능과 암호화폐 정책 특별 공무원(SGE)’ 데이비드 삭스(David Sacks)다.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삭스는 지난해 자택에서 트럼프를 위해 1200만 달러를 모금한 인연으로 현재 테크 업계와 백악관을 잇는 핵심 통로 역할을 맡고 있다.   기업 친화적 정책도 속도감 있게 추진 중이다. 트럼프는 캘리포니아 등 주 차원의 AI규제안을 무력화하기 위해 ‘AI 단일 규제’ 행정명령을 내렸다. 일론 머스크가 이끌던 정부효율성부는 기존의 감시, 규제 장치를 대폭 축소했다. 또한, 국세청의 대규모 인력 감축으로 탈세 단속은 약화됐고,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은 핵심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상태다.   이처럼 공공과 사익의 경계가 무너지는 가운데, 정책과 기부는 점점 더 밀착하고 있다.     테크 기업과 방산 업체, 코인베이스는 미 육군 창설 250주년 군사퍼레이드를 후원했다. 정부 셧다운 시기에는 사업가 티머시 멜론이 미군 급여 보조금을 부담했다. 백악관 무도회장 건축에는 37명의 기업인과 개인이 자금을 댔다.     델컴퓨터 창업자 마이클 델은 중간소득 15만 달러 이하 지역의 10세 이하 아동을 위해 62억 5000만 달러를 약속했다. ‘트럼프 구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를 위한 이 기부는 ‘베이비 본드’ 정책을 연상시키며 큰 관심을 받았다.     문제는 이들 기부가 선행인지, 영향력 투자인지 구분이 어렵다는 점이다. 공적 재원이 필요한 영역을 사적 기부가 메우면서 시민들은 정치 기부가 민주적 참여인지 영향력 매수인지 판단할 수 없게 됐다.   AI 시대의 부와 정치의 결합은 전례 없는 속도와 규모로 진행되어 워싱턴의 권력 구조는 이미 변했다. 억만장자 대통령이 다른 억만장자들과 사교클럽을 이루어 비즈니스 거래와 협상을 하는 듯한 국정 운영은 민주국가에서 목격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투명성 회복과 제도적 견제 장치다. 정치 자금 공개 강화, 수퍼팩 기부 한도 제정, AI 기업의 로비 활동 추적 등 실질적인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연방 대법원이 대통령의 권한 확대를 옹호하는 상황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 지금은 가슴보다 머리로 정치를 이해해야 할 시기다. 레지나 정 / LA독자발언대 억만장자 워싱턴 테크 억만장자들 신흥 억만장자가 워싱턴 진출

2025.12.2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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