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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남은 날을 세지 않으면 운명은 자유롭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이 만든 감옥에 길들여 산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형제와 친구들이 그려 놓은 그물에 갇혀 산다. 내가 누구인지, 뭐 때문에 사는 건지, 왜 사는 건지 질문조차 할 겨를이 없다.   실존주의 철학은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아간다.’는 논리로 스스로 산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 삶이 중요한 의미라고 주장한다. 노예선(slave ship)에 실려 발가벗겨져 사슬에 묶인 체 노예시장에서 팔려간 원주민은 선택을 포기한 것이 아닌, ‘인간’에서 제외한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갖게 한다.     사르트르는 소설가, 극작가로 실존주의 사상을 최초로 적용한 철학자로 평가받는다. 알베르 카뮈와 함께 사르트르는 프랑스 실존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철학자다.   실존주의(實存主義∙Existentialisme)는 개인의 자유와 책임, 주관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적, 문학적 흐름을 말한다. 인간은 단순히 생각하는 주체가 아니라(not merely the thinking subject) 행동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주체자(master)란 이론이다. ‘실존은 본질에 선행(先行)한다’는 주장은 ‘인간’이라는 개념이 정의되기 전에 인간은 존재하고 있었다는 논리다. 인간은 실존하는 주체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방인의 작가 카뮈는 프랑스계 알제리 이민자로 태어났다. 43세 때인 195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문맹이며 청각장애를 가진 어머니는 그의 책을 읽지 못했다. 카뮈는 페스트, 시지프 신화 등 주옥 같은 작품을 남겼지만 알제리의 독립을 반대한 이유로 카뮈의 흔적은 알제리에서 이름마저 지워진 체 방치되어 있다.   사르트르가 스스로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구토(La Nausée)’는 문학사의 희귀한 작품으로 꼽힌다. 실존주의 철학과 문학, 예술과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작품이다.   역사학자 로캉탱은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조용한 도시에서 생활하지만 일상 속 사물과 존재 자체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과 불안을 느낀다. 존재 자체가 우연이며 필연적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존재의 무상함을 느끼는 감정이 바로 구토로 연결된다. 결국 주인공은 실존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예술’을 선택한다.   ‘구토(La Nausée)’는 실존주의 철학을 문학적 형식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사회의 불안과 인간 존재의 부조리를 깊이 탐구한다.   사르트르는 피카소, 존 레논, 카뮈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진보주의 예술가로 꼽힌다. 반 자본주의, 친 공산주의적 사상을 공공연히 드러내기도 했는데 6.25 한국전쟁을 남침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사르트르는 1964년 노벨문학상이 서구 작가들에게만 치우쳐 공정성을 잃었다는 이유로 수상을 거부했다.   샤르트르의 외할아버지는 유명한 슈바이처 박사의 친할아버지였는데 어릴 적부터 외할아버지의 서재에서 마음껏 책을 읽으며 자유분방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작은 키에 사팔뜨기였지만 유머러스한 성격 덕분에 사람들을 곧잘 웃겼다.   인간은 타인이 던지는 사유의 그물에서 박제된 얼굴로 살아간다. 변장을 하고,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일상과 힘 겨루며, 삶과 죽음의 강을 허우적거리며 건넌다. ‘인간의 운명은 인간의 손에 달려있다’는 사르트르의 논리보다 운명은 더 자유롭다.     수첩에 남은 날들은 손꼽아 세지 않으면 운명은 스스로 굴러간다. 있음(有)과 없음(無), 많고 적음, 길고 짧음은 물량과 시간의 법칙일 뿐 존재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고통과 구토를 참으며 스스로 존재의 무(無)를 견딘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 하늘 실존주의 철학과 실존주의 사상 프랑스 실존주의

2026.05.2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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