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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도둑, 싯다르타, 발레 이야기

한 달 전이었다. 주말 오후, 가족들과 저녁식사 후 쇼핑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그 사이, 세 명의 도둑이 내 집에 들어와 모든 걸 훔쳐갔다. 경찰도 오고 CCTV도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장갑을 낀 그들은 놀라울 만큼 기민하고 철저했다. 내 옷장, 서랍, 작은 상자들까지다뒤져 오랜 세월 모아온 가방과 결혼예물,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시간과 추억들을 한순간에 쓸어갔다.   도둑맞은 그날 이후 한동안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모든 게 귀찮았고, 몸은 움직였지만 마음은 멈춰 있었다. 훔쳐간 도둑들을 원망했고, 미워했고, 화가 났고, 허무했다. 한 달이 지나도록 그 감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문득 생각했다. ‘나는 무엇에 그렇게 집착하며 살았던 걸까?’ 문득 법정 스님이 탁상시계를 도둑맞았던 일화가 생각났다. 나도 스님처럼 담담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 내려놓는 것과 남의 손에 의해 잃는 것은 전혀 다른 무소유의 개념이다. 그렇지만 그 상실감은 오히려 나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게 했다.   마침 9월의 독서 모임 책 주제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였다. 왕의 아들로 태어나 모든 것을 가졌던 싯다르타는 세속의 풍요를 버리고 깨달음을 찾아 떠난다. 그의 여정 속 뱃사공 바수데바는 말한다. “강은 모든 것을 가르쳐준다. 강에는 모든 것이 있다.”     그 구절을 다시 읽으며 생각했다. 이번 일은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강이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멈추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이제는 조금 내려놓고 비워야 한다’는 강의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들렸다.     나에게 발레도 그랬다. 몸은 늘 무대 위에 날고 있었지만, 마음은 멈춰 있었다. 완벽한 자세보다 중요한 것은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힘이다. 발레는 내 안의 상실과 고통을 품는 예술이며, 그 속에서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운다.   도둑맞은 허무한 마음에 여기저기 하소연하듯 이야기를 꺼냈더니, 의외로 도둑을 맞은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열 명 중 네 명은 한 번쯤 그런 경험이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이것이 나 혼자만의 상처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에게나 상실은 찾아오고, 그때마다 삶은 우리에게 비우는 법을 가르친다. 나는 도둑에게 빼앗기고, 싯다르타에게 배우고, 발레로 다시 일어선다. 나는 여전히 완전하지 않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 속에서 배운다. 잃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깨달음의 시작이었다.     강이 흐르듯 내 삶도 흐른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바수데바처럼 조용히 웃으며 말하리라. “이 모든 일은 나에게 필요한 배움이었노라.” 진 최 / 한미무용연합회회장·진 발레스쿨 원장이 아침에 싯다르타 이야기 도둑 싯다르타 법정 스님 헤르만 헤세

2025.10.27.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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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자이언 캐년과 헤세의 싯다르타

  자이언 캐년으로 가는 길의 건조하고 마른 벌판 한쪽에 버팔로들이 보였다. 색다른 정경이라 차를 세우고 수십 마리의 버팔로와 시선을 나누었다. 8년 전, 이 길을 지나 브라이스 캐년을 관광한 다음 날 큰사위와 작은딸이 탄 ATV가 전복한 사고가 있었다. 자이언 캐년 입구에서 눈요기만 하고 다친 두 사람을 가까운 도시의 응급실로 데려가며 우리는 여행을 마쳤었다. 그때 언젠가 다시 온다고 다짐했는데 자이언 캐년의 협곡으로 들어서는 굽이굽이 도로와 긴 터널을 지나면서 기분이 좋았다.     장엄한 암봉에 감탄하다 찾아간 학 두 마리가 우아하게 자리 잡은 숙소는 정갈했다. 2층 방에 가방을 두고 아래층과 집 안팎을 살펴보는 사이 손주는 발코니에 있는 모래 상자에 작은 목재 빗으로 일본 정원의 디자인을 만들었다. 조심스럽게 작은 돌들 사이로 움직이는 아이의 손놀림을 지켜보니 마음이 평안했다.     뒤뜰 의자에 앉아 병풍처럼 둘러싼 멋진 산줄기의 정경을 즐기다가 응접실 커피 테이블에 진열된 유타주 캐년의 사진 책들을 봤다. 그리고 책장을 훑어보다 가슴이 뛰었다. 젊은 시절에 좋아했던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가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셔틀버스를 타고 캐년 깊숙이 있는 종점에 들어가서 만만한 트레일, ‘리버사이드 워크’를 걸었다. 다른 언어들을 사용하는 많은 방문자들의 대열에 섞여서 층층이 겹진 암벽만 아니라 숲과 물의 신선함에 더위를 잊었다. 손주가 신발을 벗고 강물 속에 들어가 좋다고 첨벙대는 것이 부러워도 우리 부부는 감히 따라 하지 못했다. 되돌아오는데 반대편에서 오던 한 여자가 불쑥 “아직 목적지가 멀었어요?” 물었다. LA에서 혼자 왔다는 그녀의 한국어가 마치 청량 음료수 같았다. 작가 레이첼 카슨이 한 말, ‘지구의 아름다움을 숙고하는 자는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견딜 수 있는 기운을 마련한다’ 처럼 우리는 많은 기운을 마련하고 있었다.       딸은 ‘에메랄드 풀’을 찾아 다시 떠났고 남자들은 놀러 간 사이 나는 숙소에서 헤세의 책을 들고 소파에 앉아 시간을 잊었다. 밖이 어둑하니 가족들이 돌아오며 저녁을 가져왔다.     자정이 넘어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집안을 어슬렁거리며 싯다르타와 그의 친구 고빈다, 그리고 연인 카말라에 잡혀 있었다. 내면의 갈등을 겪으면서 자신의 본질에 목말랐던 싯다르타가 평범하게 살면서 스스로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체험담이 잔잔한 공감을 줬다. 젊었을 적에 느꼈던 흥분이 아니고 이번에는 차분하게 내 삶을 돌아보게 했다. 더욱이 싯다르타의 연인 이름이 민주당 대선 후보와 같은 것이 재미있었다.     내가 밤하늘을 좋아하니 큰딸은 사진작가 크리스토퍼 이톤의 ‘밤하늘(Night Skies of the American Southwest)’ 사진 책을 구해와서 내 가방에 넣어줬다. 미국 대륙 남서부의 여름 밤하늘은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절경이다. 밤하늘에 반했던 반 고흐도 “나는 가끔 밤이 낮보다 더 생생하고 풍성한 색깔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하지 않았나. 그리고 앨라배마 대학축구팀 모자를 쓰고 다닌 남편은 여러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Roll Tide!” 인사를 나눴다. 북부에 사는 한 남자가 앨라배마와 전혀 관련은 없지만 앨라배마 팀을 좋아해서 로고가 프린트된 셔츠를 즐겨 입는다고 하자 모두 웃었다.     집 떠난 후 노는데 바빴는데 작은딸이 우리의 안부를 물었다. 딸과 전화하다가 떠오른 것이 있어 말해줬다. 여행 시작부터 매일 좋은 숙소와 비싼 음식, 멋진 볼거리 많이 보고 다니지만 정작 내가 쓴 돈은 앤텔로프 캐년 여행안내자에게 팁으로 준 20달러 밖에 없다 하니 딸이 깔깔 웃었다. 흔히 말하는 ‘효도 여행’을 받는다며 나도 행복했다.     마지막 날 공항으로 가면서 양옆에 앉은 딸과 손주의 손을 꼭 잡았다.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한 첫날, 숙소의 뒤뜰에서 본 부처의 미소 지은 얼굴에 마지막 숙소인 두 학의 집에서 다시 본 만족한 부처의 얼굴이 겹쳐졌다.     알찬 여행일정을 잡은 딸의 세심한 배려에 싯다르타가 동참한 것 또한 오묘했다. “근검절약하는 큰 딸네가 우리 부부에게 멋진 추억을 만들어준 호강을 받았다”하니 앞자리에 앉은 남편이 맞장구쳤다. 돌고 도는 삶의 매 순간을 우리 열심히 즐기자 했더니 남편이 크게 웃었다.   영 그레이 / 수필가문예마당 싯다르타 자이언 헤르만 헤세 앨라배마 대학축구팀 여름 밤하늘

2024.10.17.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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