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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아버지의 편지

작은 언니가 카톡으로 편지 한 장을 보내왔다. 해묵은 상자를 정리하다가 발견했다는 아버지의 편지였다. 눈에 익은 아버지 글씨. 약간 날이 선 듯한 아버지의 글씨체를 보니 아버지를 만난 양 눈물이 핑 돌았다.   ‘형도 어미 받아보아라’로 시작된 사연은 언니가 일전에 아버지께 무엇인가를 보낸 선물에 대한 답신이었다. 아버지 팔순을 바라본다고 적은 것을 보면 70대 후반이리라 짐작된다. 자식 보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않고 내비치는 아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성인이 된 후 우리 8남매가 모두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날은 드물었다. 어느 해는 언니가 아기를 낳아서, 또 어느 해는 오빠가 군대에 가서, 멀리 공부하러 떠난 나로 인해 또 몇 년간 함께하지 못했으니까.     글 속에는 내가 비인에서 건강이 회복되어 열심히 수학하고 있다는 얘기와 함께 내 동생이 D건설 기획실에서 절대적인 존재로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멀리서 가끔 아버지께 편지를 올렸는데 그때도 나는 몸이 약해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었다.   ‘절대적’이라는 말이 설핏 웃음 나오게 하지만 아버지의 기쁨이자 자랑인 우리 남매였다. 형제 많은 집안에 끄트머리인 나와 내 동생은 가끔은 안 낳아도 되는 아이였다는 자조적인 푸념을 했다. 3남 5녀 8남매 중, 나는 다섯째 딸, 내 동생은 셋째 아들이니 뭐 그리 반갑고 귀했겠나 싶다. 하지만 늘그막의 우리 아버지에게는 다시없는 소중한 존재였던 것 같다.   아버지와 가까이 살고 있는 언니 오빠들의 안부를 전하며, 작은 언니에게 틈나는 대로 연락하길 바란다는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자식 길러보면 부모 마음 알 것이라는 얘기와, 팔순을 바라보며 돌아갈 날이 머지않다는 대목에서는 목이 메었다. 단 하나 못이 박힌 게 있다고 하면서도 그 얘기는 상세히 적지 않으셨다. 여름쯤 언니를 만나러 가겠노라는 말씀을 끝으로 편짓글은 마무리되었다.     아버지 가슴에 박힌 못은 무엇일까. 언니와 통화하면서 물었더니 언니도 도통 모르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가슴의 못을 빼고 떠나셨을까. 내가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지 4년여가 흐른 후 아버지는 먼저 떠난 엄마의 뒤를 따라가셨다.     말년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폐가 될까 전전긍긍하셨다. 내가 어느 정도 자라서 익숙하게 듣게 된 것 중의 하나가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는 말이었다. 틈나는 대로 전화나 편지를 하라는 말씀 속에 아버지의 외로움이 짙게 깔려 있었다.     눈을 감고 아버지의 얼굴을 가만히 그려본다. 워싱턴 광장에 풀어 놓고 ‘헤쳐 모여’ 하며 서로 줄로 이으라고 하면 아버지와 나는 부녀라는 것을 누구도 알아볼 수 있도록 외모가 닮았다.       30년도 더 넘은 아버지의 편지가 시공을 넘어 오늘 나를 울리고 있다. 아버지는 유언으로 ‘동기간에 우애 있게 지내라’는 말씀을 남겼다. 오늘 아버지의 편지를 보니 아버지가 살아오신 것만 같아 아버지 얼굴을 더듬듯 전화기 속의 편짓글을 가만히 쓰다듬어 보았다.  이영미 / 수필가이아침에 아버지 편지 아버지 가슴 아버지 팔순 아버지 얼굴

2025.09.25.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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