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문은 LA타임스 11월7일자 “MS-13 gangsters used mountains around L.A. as killing grounds, prosecutors say” 기사입니다. LA의 밴나이스, 파노라마 시티, 노스할리우드의 좁은 주택가에 살던 젊은 MS-13 갱단원들은 범행 때마다 도시를 벗어났다. 그들이 ‘놀러 간다’고 표현했던 곳은 LA 북서쪽의 험준한 산악지대였다. 검찰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9년 사이, 갱단원들은 목격자도, 도와줄 사람도 없는 산속 헬기착륙장과 전망대 등에서 네 명을 살해했다. 에릭 시달 부지방검사는 화요일(현지시간) 연방 법정에서 열린 재판에서 이같이 밝혔다. 현재 재판을 받는 5명의 피고인은 밴나이스와 노스할리우드 지역에서 두 건의 추가 살인 혐의도 받고 있다. '마라 살바트루차(Mara Salvatrucha)'로도 알려진 MS-13은 40년 전 LA에 정착한 엘살바도르 이민자들에 의해 창설됐다. 이후 이 조직은 중앙아메리카 내 교도소에서 지휘되는 국제 범죄조직으로 변모했다. 검찰은 이번 두 달간의 공판에서 지역 갱단들이 2016년 무렵부터 훨씬 더 폭력적으로 변했다고 주장했다. 엘살바도르에서 넘어온 신입 조직원들이 ‘살바도르식 규율’을 들여왔고, 그 규율은 “충성을 입증하기 위해 반드시 살인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시달 검사는 설명했다. “살인이 잔혹할수록 그만큼 더 큰 존경을 받게 된다”고 그는 배심원들에게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한 피해자는 107차례 칼에 찔렸고, 또 다른 피해자는 생존한 채로 내장이 꺼내졌다. 이에 대해 변호인 측은 검찰의 핵심 증인 8명이 모두 살인 혐의를 인정한 뒤 형량 감경을 조건으로 거짓 증언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피고인 측 일부 변호사는 MS-13 단원들을 ‘폭력에 무감각해진 어린 병사’에 비유했다. 또 다른 변호인은 “그는 단지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며 “명령에 불복하면 다음 차례는 자신이었다”고 주장했다. 시달 검사는 모든 살인의 동기가 같았다고 말했다. 피고인들은 '홈보이(homeboy)'로 불리는 정식 단원이 되기 위해 피를 흘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로 얻은 실질적 이익은 거의 없었다. 정식 단원이 된다고 해서 마약 거래나 갈취 조직의 지분을 얻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허용된 특권이라곤 MS-13의 손 신호를 사용할 수 있고, 하급 조직원을 부릴 수 있는 정도였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의 설명에 따르면 LA의 MS-13 단원들은 조직 범죄 능력은 형편없었지만 살인만큼은 잦았다. 그들은 노점상을 협박해 푼돈을 뜯고 대마초를 팔았으며, 주된 활동은 조직 내외부의 ‘적’을 찾아내 제거하는 것이었다. 한 살인은 곧 ‘승진’의 기회였다. 세 개의 MS-13 하위조직(Clique) 지도부가 무단으로 갱단 신호를 쓴 한 남성을 처벌하기로 결정했을 때, 11명이 번갈아가며 그를 칼로 찔러 죽였다고 검찰은 밝혔다. 피해자는 '위니 더 푸(Winnie The Pooh)'라는 별명을 가진 20세 남성 엘빈 에르난데스였다. 그는 MS-13 단원은 아니었지만 그들과 어울렸다. 연방수사국(FBI)가 확보한 페이스북 메시지에서 한 여성은 파크뷰(Park View) 조직의 리더에게 “에르난데스가 갱단 소속이라 주장한다”고 알렸고, 리더는 “법정을 열어 처벌 하겠다”고 답했다. 2017년 6월 4일 밤, 에르난데스는 '디스트로이어(destroyer)'라 불리는 폐가로 끌려갔다. 한인타운 사우스 베렌도가에 불타서 버려진 집이었다. 그곳은 MS-13이 거주하거나 마약을 팔고 살인을 저지르는 장소였다. 세 조직의 리더들은 그곳에서 '롤콜'을 열었고, 에르난데스가 자기소개를 하며 손 신호를 보이자, 퓰턴(Fulton) 조직의 리더 월터 차베스 라린이 그를 폭행했다. 이후 그들은 두 대의 차량에 나눠 타고 앤젤레스 국유림의 '투 레이트(Too Late)' 헬기장으로 향했다. 에르난데스는 단순히 구타를 당할 거라 생각하고 엎드렸지만, 11명이 번갈아 그를 찔렀다. 시달 검사는 라린이 숨져가던 그에게 “사신이 널 데려간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라린의 변호인 로버트 슈워츠는 거짓 증언으로 그의 의뢰인이 누명을 썼다고 주장했다. 그는 “라린은 진짜 살인자가 아니라 허세만 부린 인물”이라며 “산에 올라간 건 살인이 아니라 허세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6개월 뒤, 갱단은 다시 살인을 저질렀다. 피해자는 파노라마 고등학교 2학년생 브라이언 안디노(16)였다. 안디노는 4년 전 온두라스에서 어머니를 따라 이민 왔으며, 경쟁 갱단 '18번가(18th Street)' 소속이라고 허풍을 떨었다. 그러나 캠퍼스 경찰은 “그저 강해 보이고 싶었던 10학년생의 허세였다”고 주장했다. 안디노는 학교를 빠져나와 여자 친구와 함께 산으로 향했다. 여학생은 당시 MS-13 추종자와 교제 중이었고, 검찰에 따르면 그녀가 안디노를 유인했다. 실마 위쪽 로페스 캐니언에서 안디노는 여섯 명의 청소년들에게 매복 공격을 당했다. 그중에는 '로스앤젤레스 로코스(Los Angeles Locos)' 하위조직의 리더 로베르토 코라도 오르티스도 있었다. 검찰은 코라도가 신입 지원자를 '시험 평가'한다는 명목으로 범행을 지휘했다고 밝혔다. 피해자는 철사 끈과 야구방망이, '창자 절단기'라 불린 톱니 칼로 살해됐다. 이후 산불이 지나간 뒤에야 탄화된 유골이 발견됐다. 코라도의 변호인은 “그가 한 모든 행동은 살아남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코라도는 엘살바도르에서 태어나 11세 때 MS-13에 가입했다. 그의 세계에서 '죽이거나 죽는' 규칙은 절대적이었다. 9개월 후, 코라도는 또 다른 청년 로저 차베스(19)를 데리고 말리부 인근 산으로 올라갔다. 차베스는 온두라스에서 이민 온 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정비 기술을 배우던 중이었다. 친구의 제안으로 대마초를 피우러 갔다가 함정에 빠졌다. 그는 경쟁 갱단과 연관이 있다고 자처했지만 실제론 무관했다. 그날 밤, 코라도는 그를 뒤통수에 총을 쏴 살해했고, 다른 단원들에게 총을 돌려가며 쏘게 했다고 검찰은 말했다. 차베스의 시신은 이듬해 산불로 드러났다. 2018년 12월 6일, 22세의 오스발도 에르난데스도 희생됐다. 밴나이스 자택 근처에서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던 그는 MS-13 단원들에게 붙잡혔다. 그는 갱단과 무관했지만, 퓰턴 조직 리더 라린의 지시에 따라 신입 단원들이 접근해 “어디 소속이냐”고 묻자 “젠장 …”이란 말을 끝으로 총에 맞아 숨졌다. 이어 2019년 1월, 19세 단원 오스카 푸엔테스가 또다시 희생됐다. 그는 마약 중독과 조직 회의 불참으로 규율을 어겼다는 이유였다. 그의 시신은 산불이 난 뒤 두개골만 발견됐고, 이마에는 총상이 남아 있었다. 검찰은 푸엔테스가 살해된 몇 시간 뒤, 가해자들이 다시 공원으로 돌아가 노숙자들을 깨워 문신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들은 노숙자 브래들리 해너웨이의 몸에서 '818'(샌퍼낸도 밸리 지역번호)과 ‘Forever Grateful’이라는 문신을 보고 이를 경쟁 갱단 표식으로 착각, 그를 총으로 쏘아 죽였다. 시달 검사는 “그의 유일한 죄는 그들이 ‘자신들의 공원’이라 부르는 곳에서 잠들어 있었다는 것뿐이었다”고 말했다. 배심원단은 11월5일부터 평의에 들어갔다. 유죄가 인정될 경우 피고인들은 모두 종신형에 처해질 수 있다. 글=매튜 옴세스한인타운 아지트 사이 갱단원들 신입 조직원들 국제 범죄조직
2025.11.12. 18:13
LA 한인타운의 밤은 수많은 이름들로 반짝였다 스러져 갔다. 저마다의 사연과 추억을 품은 채, 그 시절 우리들의 ‘아지트’가 되어주었던 공간들. 뜨거운 청춘의 광장이었던 그곳들의 풍경을 더듬어본다. 1981년, 7가와 후버 길 근처의 작은 술집 ‘여울’. 전직 통기타 가수가 운영하던 이곳은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들이 통기타 선율에 기대 시름을 내려놓고, 때로는 시계나 운전면허증을 맡긴 채 청춘을 마시던 낭만의 해방구였다. 주인의 셈법은 장사에 서툴렀을지언정, 그곳에 모인 이들의 마음만은 늘 풍요로웠다. 비슷한 시기, 라브레아 길의 ‘로즈가든’은 또 다른 설렘의 상징이었다. 가수 이장희 씨가 운영하던 이곳은 세련된 분위기와 예쁜 웨이트리스, 그리고 혹시나 마주칠지 모를 연예인에 대한 기대로 늘 북적였다. 훗날 라디오코리아와 신문사를 창간하며 언론인으로도 큰 족적을 남긴 그의 사업가적 면모가 처음 빛을 발한 곳이다. 3가길 ‘숲속의 빈터’는 한인타운의 트렌드를 이끌었다. 원래 유명 밴드마스터 이광수 씨의 술집 ‘별장’이었던 공간을 인수해, 당시로선 파격적인 DJ 박스를 갖춘 음악 카페로 탈바꿈시켰다. 신청곡 쪽지가 오가고 최신 음악이 흐르던 그곳은 현재 ‘올리브’ 가라오케 바로 명맥을 잇고 있다. 한인타운 ‘치맥’ 문화의 원조를 꼽으라면 단연 ‘황태자’다. 버몬트길에서 시작해 7가와 카탈리나로 이전하기까지, 바삭한 통닭과 시원한 맥주는 이민자들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최고의 조합이었다. 주인은 바뀌었어도 그 맛과 명성은 여전하다. 황태자 바로 옆, 지금은 22층 트윈 아파트가 솟아오른 자리엔 황태자 사장의 동생이 운영하던 ‘주막74’가 있었다. 현재 라스베이거스에서 ‘김치 바비큐’와 ‘야마스시’로 성공 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그는, 자신의 황금기였던 1974년을 기리며 주막의 이름을 지었다. 그의 바람처럼, 수많은 젊음이 그곳에서 자신만의 황금기를 보냈다. 그 시절의 맛과 인연은 꼬리를 물었다. 황태자 주방장 출신 사장님이 아들과 함께 7가 중앙일보 길 건너에 문을 연 맥주집 ‘OB베어’는 팬데믹 중 화재로 소실되기 전까지 3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며 중앙일보 기자들의 아지트로 유명했다. 타운 술집에도 ‘규모의 시대’가 열렸다. 의외의 장소인 알바라도 길 히스패닉 타운의 ‘상류사회’는 멜로즈 ‘뱀부’ 중국집의 푸짐한 안주를 앞세워 대박을 터뜨렸고, 윌셔와 알렉산드리아 교차점 건물 2층에는 6000스퀘어피트 규모의 ‘베어스 케이브’가 등장했다. 파이버글라스를 수입해 동굴처럼 꾸민 파격적인 인테리어와 2000cc 맥주 타워는 매일 밤 200~300명의 손님을 끌어모았다. 이는 한인타운의 밤이 단순한 음주를 넘어 거대한 ‘산업’으로 변모하던 시기의 상징적 사건이었지만, 잦은 사건·사고로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윌셔 길 아이매그닌 건물 3층에는 볼링 레인과 바(S바), 이자카야(아랑), 노래방(팜트리)이 결합된 복합 엔터테인먼트 공간이 들어서며 또 하나의 명소가 되었다. 지하철 공사는 한인타운의 지형도를 바꿨다. ‘영동설렁탕’ 사장님이 OB베어의 대항마로 열었던 ‘하이트광장’과 그 옆 ‘하네다’ 일식집은 건물이 수용되며 터를 옮겨야 했다. 하네다는 웨스턴에 맥주 중심의 ‘비어가든’으로 재탄생했고, 하이트광장 역시 올림픽길로 이전했다. 한 시대의 랜드마크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새로운 공간이 그 자리를 채우는 변화의 서막이었다. 이 무렵, 채프맨 플라자의 커피숍 ‘감’은 페리아 나이트클럽 파트너들과 손잡고 대형 이자카야로 변신하며 성공 신화를 썼다. 세련된 인테리어로 타운의 트렌드를 이끌었지만, 팬데믹의 여파를 넘지 못하고 지금은 문을 닫았다. 넓은 패티오가 매력적이었던 윌셔 길 ‘스타카페’ 역시 파트너 간의 갈등으로 폐업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 한편이 아련해지는 그곳들. 그곳은 단지 술과 음식을 팔던 가게가 아니었다. 고된 이민 사회를 함께 건너던 우리들의 거실이었고,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던 광장이었다. 불빛은 꺼졌지만, 그곳에 새겨진 그때 그 시절 이야기는 여전히 타운의 밤을 수놓고 있다. 라이언 오 / CBC 윌셔프로퍼티 대표K타운 맛따라기 아지트 연대기 la 한인타운 황태자 사장 황태자 주방장
2025.06.22. 1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