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뺐다! 9월 중순 한국 가기 전, 짬뽕을 먹는데 윗어금니에 - 이 분이 치아 14번님이시라는 것은 치과에 가서 알았다 - 이상한 감각이 왔다. 설마 부러졌다고는 생각 안 했다. 약간 불편했지만, 부러졌으면 와서 고치면 되지 하며 한국에 한 달 다녀왔다. 오자마자 치과에 갔다. 35년 나를 본 치과의사는 아주 바로, 윗어금니가 부러졌다고, 고칠 수 없으니 빼고 임플란트를해야 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심각함 1도 없이, 왜 코리안 국수를 먹지 차이니즈 국수를 먹다가 이를 부러뜨렸냐는 농담까지! 충격에 빠져있는 내게, 썬, 이런 건 그저 루틴이야 하시는데, 아 유 키딩 미? 난 기가 막힐 뿐이었다. 내 치아로 말씀드리자면, 어려서 건치대회까지 나간 바 있다. 물론, 순전히 초등학교 양호선생님의 독보적 사랑을 받아서였다. 〔〈【나를 우량아대회도 데리고 나가셨던 양호선생님, 당시 우량아 기준인 우람과는 거리가 먼 평균 체중 나는 바로 예선 탈락이었다. 】〉〕하지만, 시민회관 건치대회에서는 예쁘고 건강한 치아로 뽑혀 치약 한 박스를 상품으로 받았다. 치약 받아왔다고 오빠들이 놀리던 기억이 난다. 이런 나의 치아가, 대학교 때 다른 대학 회장단들과 정부 주관 여행을 갔을 때도, 그룹에서 충치 하나 없는 사람은 나뿐이었던, 이 자랑스러운 내 치아에, 문제가 생겼다! 멘붕에 빠진 나를 위해, 내 치과의사는 친히 구강외과 예약을 해주셨다. 그날 저녁 마침 동료 심리치료사들 모임이 있었다. 동정과 위로를 얻을 절호의 기회였다. 만나자마자 이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바로, 나보다 몇살 씩 어린 이 무정한 동료들의 집단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 나이에 처음 이 빼는 걸 행복한 줄 알라며, 자기들은 벌써 임플란트가 몇 개고, 치아, 잇몸 문제가 어떻고 하며 성토를 해대는데, 위로는커녕 구박만 받았다. 이분들, 심리치료사 맞으심? 다음 주 구강외과에 들어섰을 때, 주욱 늘어선 ‘연장’들을 보니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한 달 정도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입안이 편안하다. 요즘은, 만나는 사람들하고 자연스레 치아 이야기를 하게 된다. 와, 다른 사람들의 수난 스토리는 상상을 초월했다. 이를 빼고 며칠 유동식만 먹다 보니, 기운이 없고 살이 빠진다. 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 기본적인 상식을 이 나이에 비로소 깨닫는다. 임플란트 비용을 생각해보니, 우리 입속 치아 28개의 값은 거의 10만불이다! 치아 뿐이랴! 내 몸의 모든 작은 부분까지도 온전하게 자기 일을 해주는 것이 감사한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아무것도 당연한 것은 없다. 어금니 덕에 감사가 늘었다! 오늘은, 작년 가을 아들이 개척한 Vibrance Church가, 우리 집에서 추수감사 예배를 드리고 터키를 먹는다. 작년 20명 남짓 어색하게 모였던 우리가, 일 년 동안 완전 한 가족이 되었다. 백인, 흑인, 히스패닉, 한인 1세, 2세 다양한 35명 정도 모임을 위해 집 의자가 총출동했다. 아침, 감기 기운이 좀 있었지만, 그래도 거뜬히 일어나 아래층으로 가 커피를 만든다. 은은한 커피 향이 부엌을 채운다. 밖에서는, 마지막 단풍잎을 붙잡고 있는 나무 위로 늦가을 새소리가 들린다. 이 평범한 움직임들이, 감각들이 평생의 소원일 수도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그래서 내 몸의 모든 부분이 감사한, 내 삶의 모든 것에 감사한, 2024년 감사절이다. ([email protected])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어금니 감사 추수감사 예배 치아 이야기 치아 잇몸
2024.11.28. 18:23
이를 뺐다. 9월 중순 한국 가기 전, 짬뽕을 먹는데 윗어금니에 이상한 감각이 왔다. 이 분이 치아 14번님이시라는 것은 치과에 가서 알았다. 설마 부러졌다고는 생각 안 했다. 약간 불편했지만, 부러졌으면 와서 고치면 되지 하며 한국에 한 달 다녀왔다. 오자마자 치과에 갔다. 35년 나를 본 치과의사는 바로 윗어금니가 부러졌다고, 고칠 수 없으니 빼고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왜 코리안 국수를 먹지 차이니즈 국수를 먹다가 이를 부러뜨렸냐는 농담까지. 충격에 빠진 내게, 이런 건 그저 루틴이야 하시는데, 난 기가 막힐 뿐이었다. 내 치아로 말씀드리자면, 어려서 건치대회까지 나간 바 있다. 물론, 순전히 초등학교 양호선생님의 독보적 사랑을 받아서였다. 나를 우량아대회도 데리고 나가셨던 양호선생님, 당시 우량아 기준인 우람과는 거리가 먼 평균 체중이었던 나는 바로 예선 탈락이었다. 하지만, 시민회관 건치대회에서는 예쁘고 건강한 치아로 뽑혀 치약 한 박스를 상품으로 받았다. 치약 받아왔다고 오빠들이 놀리던 기억이 난다. 이런 나의 치아가, 대학교 때 다른 대학 회장단들과 정부 주관 여행에 갔을 때도 그룹에서 충치 하나 없는 사람은 나뿐이었던, 이 자랑스러운 내 치아에 문제가 생겼다. 멘붕에 빠진 나를 위해, 치과의사는 친히 구강외과 예약을 해주셨다. 그날 저녁 마침 동료 심리치료사들 모임이 있었다. 동정과 위로를 얻을 절호의 기회였다. 만나자마자 이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바로, 나보다 몇살 씩 어린 이 무정한 동료들의 집단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 나이에 처음 이 빼는 걸 행복한 줄 알라며, 자기들은 벌써 임플란트가 몇 개고 치아, 잇몸 문제가 어떻고 하며 성토를 해대는데, 위로는커녕 구박만 받았다. 이분들, 심리치료사 맞으심? 다음 주 구강외과에 들어섰을 때, 죽 늘어선 ‘연장’들을 보니 숨이 멎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한 달 정도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입안이 편안하다. 요즘은, 만나는 사람들과 자연스레 치아 이야기를 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수난 스토리는 상상을 초월했다. 이를 빼고 며칠 유동식만 먹다 보니, 기운이 없고 살이 빠진다. 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 기본적인 상식을 이 나이에 비로소 깨닫는다. 임플란트 비용을 생각해보니, 입속 치아 28개의 값은 거의 10만불이다. 치아뿐이랴. 내 몸의 모든 작은 부분까지도 온전하게 자기 일을 해주는 것이 감사한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아무것도 당연한 것은 없다. 어금니 덕에 감사가 늘었다. 오늘은 작년 가을 아들이 개척한 Vibrance Church가 우리 집에서 추수감사 예배를 드리고 터키를 먹는다. 작년 20명 남짓 어색하게 모였던 우리가, 일 년 동안 완전 한 가족이 되었다. 백인, 흑인, 히스패닉, 한인 1세와 2세 등 다양한 35명 모임을 위해 집 의자가 총출동했다. 아침에 감기 기운이 좀 있었지만, 그래도 거뜬히 일어나 아래층으로 가 커피를 만든다. 은은한 커피 향이 부엌을 채운다. 밖에서는, 마지막 단풍잎을 붙잡고 있는 나무 위로 늦가을 새소리가 들린다. 이 평범한 움직임들이, 감각들이 평생의 소원일 수도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그래서 내 몸의 모든 부분이 감사한, 내 삶의 모든 것에 감사한, 2024년 감사절이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어금니 감사 추수감사 예배 치아 이야기 치아 잇몸
2024.11.27. 19:17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내 입으로도 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눈에 띄지 않은 어른들을 둘러보면, 거기서 존경할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어딘가에서, 우리가 눈길을 자주 줄 리 없는 어떤 일을 평생을 바쳐- 바친다는 마음도 품지 않은 채로 그저 스스럼없이 묵묵하게- 하고 있는 이들. 그들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다고 느낀다는 것은, 내가 누구를 보고 있는지를- 누구를 안 보고 있는지를- 증명하는, 고작 그 정도의 말일 뿐이다. 보는 태도 때문에 있는 것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쉽고 어리석다. 김소연 『어금니 깨물기』 결국은 태도가, 시선이 문제다. 김소연 시인의 에세이집이다. “치장 없는 시의 진가”를 보여주는 폴란드 시인 비스와봐 쉼보르스카에 대해서도 이렇게 쓴다. “태도와 시선. 그리고 자기 자신의 삶. 쉼보르스카가 시를 위해 우선 노력한 것은 이것들일 거라고 나는 믿고 있다.… 시를 쓰는 과정에서 그가 염두에 둔 것은 아마 이런 것이었을 것이다. 무관심하게 지나친 것은 없는지, 놓친 것은 없는지.” 쉼보르스카를 읽으면 “우리가 인간이라는 점을 다행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인간됨을 회복하는 순간을 겪는다.” “시의 언어가 일상 언어와 따로 있다고… 주장하지 않음으로써 그는 시인의 위대함이 아니라 사람의 위대함을 완성해갔다.” 책 제목처럼 어금니 깨물고 버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껴지던 시절 쓴 글들을 모은 책이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문장으로 읽는 책 어금니 김소연 시인 폴란드 시인 태도 때문
2024.03.13. 1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