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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계층 방언과 언어 접촉

우리는 방언이라고 하면 주로 사투리를 떠올립니다. 방언에는 지역 방언과 계층 방언이 있지만, 주로 지역 방언이라는 인식이 있는 겁니다. 계층 방언은 계층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가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상류층의 언어가 다르고, 중류층의 언어가 다르고, 하류층의 언어가 다릅니다. 계층을 상, 중, 하로 나누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불편하네요. 계층 방언은 지역 방언보다 오히려 언어 접촉의 기회가 적기도 합니다. 다른 지역의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다른 계층의 사람을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국어의 경우는 비교적 계층 방언이 덜 발달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전의 경우를 보자면, 왕실의 언어가 달랐고, 양반 계층의 언어가 다르고, 평민의 언어가 달랐을 겁니다. 물론 백정이나 심마니, 광대 등의 특수한 언어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최고의 권력층이라고 하는 사람의 말을 평민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황실이 남아있지 않은 것도 원인이 될 터이고, 권력자들이 서민의 말투를 쓰는 것도 원인이 될 겁니다. 서민이 된 것은 아니나 서민과 가까운 모습을 보이려고 일부러 계층의 말투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예전 양반의 언어는 아무래도 한자어나 고사성어의 표현이 많았을 겁니다. 과거 시험을 준비하고, 소학, 명심보감, 사서삼경, 통감 등을 공부하면서 공유되는 언어 표현이 많았을 겁니다. 당연히 이러한 한자어 표현은 계층 방언의 중요한 요소였을 겁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표현이 서민에게 확산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서 판소리를 비롯한 민요에도 수많은 한자성어와 표현이 등장합니다. 춘향가나 적벽가 등은 양반 계급의 취향의 노래여서 더욱 한자성어가 많이 사용됩니다. 이런 표현은 자연스럽게 서민의 언어 속에 담깁니다. 일반 민요에도 칠십 고래희(회심곡), 녹음방초승화시(사철가) 등등 수많은 한자성어, 고사성어가 담겨있습니다. 자연스럽게 계층간 언어접촉이 일어납니다.   계층 방언이 두드러지는 곳은 특정 직업을 바탕으로 한 집단입니다. 집단 안에서만 사용이 되기 때문에 ‘은어’라고 합니다. 비밀스러운 언어 표현이 많습니다. 접촉을 피하는 언어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집단이 비밀을 유지해야 할까요? 대표적으로는 범죄 집단이 있을 겁니다. 조직폭력배, 갱단, 깡패 등은 자신만의 은어를 사용합니다. 경찰이 알지 못하게 표현하는 겁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경찰도 다 알게 됩니다. 그러면 은어는 또 바뀌겠지요. 군인도 비밀이 생명이 조직입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분리된 생활을 하다 보니 은어가 발달하였습니다. 군대용어가 군대 밖에서는 암호처럼 사용됩니다.   지금은 방송 등의 매체가 발달하고, 민주화로 계층, 계급의 구분도 적어졌습니다. 따라서 과거에 비해서는 계층 방언도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세대 간의 차이는 훨씬 늘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세대 간의 언어 접촉이 제한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계층보다는 세대 방언이라는 용어가 적절해 보입니다. 청소년 계층은 중장년의 언어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한자 어휘에 약점을 보입니다. 반면에 중장년 등은 청소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신어, 유행어 등 새로 등장한 어휘가 많습니다. 게임이나 SNS 등에서 사용되는 어휘나 표현은 기성세대에게 암호처럼 보입니다.     세대 간의 언어 차이를 문해력과 연관 짓기도 합니다. 젊은 세대가 문해력이 부족하다고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어떤 부분에 대한 문해력인가는 차이가 있습니다. 실제로는 문해력은 관심 분야와 관련이 있습니다. 청소년의 문해력과 기성세대의 문해력은 범위가 다르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청소년 간에도 관심분야가 다르면 문해력의 범위가 달라집니다. 따라서 최근에는 세대의 간격이 매우 짧아지고 있습니다. 즉 예전에 비해서 여러 세대가 공존하고, 그래서 언어 차이가 점점 심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원인으로 세대 간의 언어 접촉이 적어진 것을 이유로 들 수 있습니다. 언어의 차이를 줄이려면 언어 접촉이 늘어나야 합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방언과 계층 계층 방언도 언어 접촉 언어 표현

2025.11.30. 16:09

[아름다운 우리말] 옛말의 덫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지금은 쓰지 않는 말인데, 속담이나 언어 표현 속에 남아있는 것을 화석화라고 합니다. ‘언어의 화석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간단한 말 중에 ‘하느님 맙소사’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때 ‘맙소사’라는 말은 다른 데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말입니다. 보통은 ‘마소서’라고 말합니다. 옛날의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겁니다. 언어학자에게 이런 흔적은 흥미롭습니다. 어원의 실마리가 되기도 하고, 언어 변화를 추적하는 단서가 되기도 합니다. 다른 예를 보면 ‘빼도 박도 못하다’라는 표현도 현대말로 바꾼다면 ‘빼지도 박지도’라고 해야 할 겁니다. 이런 말이 꽤 많습니다. 언어를 볼 때 의문을 가지고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휘 중에서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말이 속담에 남아있거나 비유적인 표현에 남아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석까지는 아닐 수 있겠습니다만, 그 말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화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하면 아이들은 포도청의 의미를 모릅니다. 포도당과 관련이 있냐고 묻는 아이도 있습니다. 화석이 속담 속에 남은 것이죠. 속담은 과거의 흔적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기에 수많은 화석이 남아있습니다.   아이들은 ‘쥐 죽은 듯이’라는 말이 어떻게 생긴 표현인지 이해가 갈까요? 집 천장에 쥐가 있었다고 하면 아마도 기겁을 할 겁니다. 쥐가 뛰어다니는 소리를 들어 보았어야 ‘쥐 죽은 듯이’의 느낌도 살아납니다. 한편 지금은 없는 제도이거나 명칭이어도 비교적 익숙한 경우도 있습니다. 양반이 대표적입니다. 아직도 ‘이 양반 저 양반’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때 양반은 칭찬이 아니라는 겁니다. 변한 모습으로 화석이 되어있는 겁니다. 그만하면 양반이다는 말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그런데 옛말이 아직도 그때의 모습처럼, 또는 그때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듯이 사용되고 있어서 놀랄 때가 있습니다. 어원의 탐구라면 옛사람의 생각을 따르는 여행이라 하겠으나 어휘의 남용이라는 생각이 들어 당황스럽기까지 합니다. 예를 들어 국무총리를 이야기할 때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을 보면 어이가 없기도 합니다. 한 사람에게만 아래고, 나머지 사람의 위에 있다는 의미이니 지금 세상과 맞지 않습니다. 상하관계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검사를 영감이라고 하거나 대통령의 부인을 국모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역모, 반역죄라는 말도 심심찮게 사용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왕정의 시대로 회귀한 느낌입니다.   대노나 진노와 같은 표현은 이해가 안 되는 바가 아니나 요즘에 맞지 않는 말들입니다. 사극의 말투를 현실에서 사용한다면 유머가 아닌 이상 문제가 있는 표현입니다. 물론 유머도 웃겨야 한다는 전제는 있지만 말입니다.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서 ‘이리 오너라~’라고 표현하면 웃길 수 있겠습니다. 만약 농담이라면 ‘통촉해 주십시오.’도 재미있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의도가 아니라면 옛말을 사용하는 것은 의사소통에 방해가 됩니다.   언어가 화석화되는 이유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화석은 연구의 대상일 때 재미있습니다. 화석을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언어처럼 사용하면 과거의 덫에 갇히게 됩니다. 언어만 과거에 가두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언어는 곧 사고이기 때문에 사고도 옛날에 머무르게 됩니다. 저는 그 점이 두렵습니다. 비민주적이고, 불평등한 세상으로 사고가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언어는 살아있는 현실 속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물론 언어의 화석 중에는 아름다운 화석도 있습니다. 좋은 뜻을 가진 우리말이 말속에 남아있는 경우입니다. 저는 그런 말을 어원 연구를 통해서 발견하고, 이를 현재의 언중(言衆)과 나누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권위적인 언어 화석은 화석 속에 남겨두고, 깨달음과 웃음을 주는 언어의 화석은 기쁘게 꺼내 보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언어의 화석을 탐구하는 즐거움입니다. 아름다운 우리말 옛말 언어 화석 언어 표현 언어 변화

2023.10.25. 14:15

[기고] 다양성 존중은 언어에서부터

서로 다른 문화와 인종이 어우러진 미국에 살면서 포용성과 다양성의 가치를 늘 생각하게 된다. 한국에 있었을 때는 다양성 가치를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머리로 생각했다면, 미국에 와서는 다양성의 가치를 매 순간 ‘지금 당장 나의 문제’로 느끼고 있다. 검은 머리 아시아인의 외모로, 여성으로, 또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일상의 소소한 부분에서 다양성을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가 많다.   최근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인 친구와 시애틀 여행 중에 주변 현지인(백인)들과 대화한 적이 있다. 늘 그렇듯이 아시아인 외모를 한 우리는 “어디서 왔냐(Where are you from)?”는 질문을 받았다. 미국에 와서 정말 아주 많이 받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캘리포니아에서 왔다”라고 대답하면 100이면 100명 모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원래 출신이 어디인데(Where are you originally from)?”라고 되묻는다. 이는 무례한 질문으로 들릴 수 있다. 그 백인 미국인은 ‘미국인이면 이렇게 생겼을 것이고 영어가 모국어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고, 아시아인 외모 사람은 당연히 외국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야 미국에 온 지 4년 정도밖에 안 됐다지만, 그 한인 친구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미국 사회에서 배제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한다.   사실 일상에서 편견을 없애고 다양성에 대한 민감도를 높이는 일은 그런 미국 백인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나 자신도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언어 표현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늘 돌아보게 된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 역사가 있는 미국에서는 자칫하면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들을 낮추본다고 오해받거나, 남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줄 수 있다.   미국에 온 뒤 얼마 안 돼서 매달 기자들과 공부하는 프레스 이벤트를 기획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별 생각 없이 자주 쓰던 ‘브라운백 런치(Brown bag lunch)’라는 단어를 써서 ‘브라운백 런치 프레스 미팅’이라고 내부 문서를 작성하고 동료들과 공유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동료가 조용히 다가와 ‘브라운백 런치’에는 흑인에게 부정적인 스토리가 있으니 다른 말을 사용하는 게 좋겠다고 말해 주었다. 그런 내용을 전혀 몰랐던 나는 바로 인터넷에서 그 용어에 대해 찾아봤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1960년대 한 대학교 학생들이 브라운백(마트 등에서 샌드위치 등을 싸던 종이) 색깔을 기준으로 흑인의 피부색을 측정해서 파티 입장 허용 여부를 가렸다는 내용을 봤고, 그런 이유에서 ‘브라운백 런치’란 말을 피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바로 브라운백 런치를 ‘런치앤런 (Lunch and Learn)’ 으로 바꾸었다. 이를 계기로 나 자신부터 언어 민감도를 좀 더 높이고, 또 어떤 말이나 표현을 써서는 안 되는지 찾아보게 됐다.   회사 직원들이 모아놓은 ‘포용적인 언어 리스트’와 작년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발표한 같은 내용의 리스트를 늘 챙겨보며, 외부로 나가는 공식 문서뿐 아니라 내부 문서도 성별, 인종, 장애인,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표현은 없는지 두 번 세 번 리뷰한다. 가능하면 성별을 굳이 나타내지 않아도 되는 성 중립성 단어들을 사용한다. 남편/아내, 남자/여자친구를 지칭할 때는 partner를 사용하는 식이다. 내가 가장 많이 쓰는 단어인 대변인은 spokesman 대신 spokesperson을 쓴다. 장애를 나타내는 단어는 일반 표현에 섞어 쓰지 않는다. 시각 장애를 부정적으로 고착화할 수 있는 ‘블라인드 스팟’(blind spot) 대신에 ‘인지하지 못한 부분’(not knowledgeable)으로 표현한다. 또한 개발자 용어에서도 포용적 단어를 사용하는데, 예를 들면 허용/비허용을 나타내는 화이트리스트와 블랙리스트 대신에 허용리스트(allowlist)와 비허용 리스트(denylist)라는 말을 사용한다.   한가지 문화와 인종이 두드러지는 한국 사회에서 50년을 살면서 놓쳤던 부분을 미국에 살면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 시각을 포용하는 일상의 민감도를 높이게 되었다. 내가 소수자로서 나의 나 됨을 존중받고 싶은만큼 우리 주변의 다양한 모습 사람들이 그들 본연의 모습으로 존중받는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정김경숙 /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기고 다양성 존중 다양성 가치 브라운백 런치 언어 표현

2023.03.10.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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