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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예능과 언어학

언어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언어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예능 프로그램은 소중한 자료입니다. 가장 빠르게 변화하는 언어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능은 마치 유행어와 신조어, 은어와 속어의 경연장 같습니다. 당시의 언어를 알려고 한다면 실생활을 들여다 보는 게 가장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의 생활을 관찰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다양하기도 하지만 몰래 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능 프로그램은 비교적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눕니다. 예능 프로그램을 버라이어티라고도 하는데 이는 참으로 적당한 표현입니다. 다양한 사람의 사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스튜디오 촬영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여러 가지 기술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동안은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도전이나 여행, 게임 등이 어우러진 예능이 유행하였습니다. 또한 관찰형 예능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전지적 참견자 시점 등은 관찰의 의미를 명확히 합니다. 예전에는 몰래카메라가 유행이었다면 이제는 아예 사전에 이야기를 하고 관찰을 합니다.      자연스럽다고는 하지만 예능에는 기획이 있고, 연출이 있고, 작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들여다본다는 생각에 주저하는 참가자가 있을 겁니다. 따라서 완전히 현실 세계 그 자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능 이상으로 자연스러운 현실 세계를 관찰하고 연구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예능은 그런 의미에서 언어학자에게는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의 대화를 모아놓은 자료보다 어쩌면 더 현실적일 겁니다.      또한 예능 프로그램은 당대의 인기 스타들이 함께합니다. 따라서 가장 앞장서 있는 언어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기인이 사용한 언어를 자연스럽게 일반인들은 따라 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유행어가 됩니다. 유행은 따라 하는 겁니다. 그러나 아무나 따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 하고 싶은 사람을 따라 하는 것이기에 예능은 귀한 자료가 되는 겁니다. 유행을 이끄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능에는 평소에 보기 어려운 유명인이나 인기 연예인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종은 자신을 알리고, 자신의 영화나 노래를 소개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점이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가 높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보고 싶었던 유명인이 솔직한 모습을 많이 보이는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능에 나온 표현이나 말투는 유행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요즘 예능에는 이전과 다른 점이 눈에 띕니다. 그건 바로 자막입니다.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예능을 좋아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자막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막이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자막이 내용을 더 재미있게 만듭니다. 자막 때문에 웃고, 자막 때문에 울기도 합니다. 자막에는 언어학의 다양한 현상이 담겨 있어서 흥미롭니다. 아니, 언어학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수많은 새로운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능은 언어학과 언어교육의 귀중한 자료입니다. 그런데 비교적 예능에 대한 깊은 연구는 그다지 이루어지지 못하였습니다. 예능을 활용해 한국어를 가르친다고 하는 경우는 많이 있지만 체계적인지에 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예능을 언어학의 관점에서, 한국어교육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더 많은 것이 보일 겁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예능과 언어학 예능과 언어학 예능 프로그램 관찰형 예능도

2023.07.30. 16:39

[아름다운 우리말] 가슴으로 하는 언어학

우리는 과학적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보통 과학과 인문학은 구별되는 개념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인문학 속에 과학이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과학이라고 하면 자연과학만을 의미했으나 이제는 사회과학도 과학이고 인문학도 과학입니다. 과학이 아닌 게 없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과학자라는 말은 한정적이네요. 아마 사회과학 연구자가 스스로를 과학자라고는 하지 않을 겁니다.   과학은 학문이라기보다는 연구방법론이 된 느낌입니다. 과학적으로 접근한다는 표현이 방법론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과학적이라는 말은 객관적이라는 말이고 계량화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늘 통계가 중요합니다. 조사 방법에 감정은 주관적 요소이므로 제외해야 합니다. 그래서 과학적 연구라는 말에는 인간의 감정이 배제되어 있습니다. 감정이 들어가는 것을 비과학적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런 점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객관적인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통계로 측정되지 않고, 정리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이 있습니다. 언어의 많은 부분이 그렇습니다. 생각과 사고라는 말을 어떻게 구별하여야 할까요? 마음과 생각은 어떻습니다. 기쁜 감정과 즐거운 감정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물론 어느 정도까지는 설명이 가능할 겁니다. 설명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당연히 언어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설명을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언어에는 감정이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겁니다.   언어는 인간의 특징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언어를 연구한다는 것은 인간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연구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이해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위한 학문으로 언어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머리로 하는 언어학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언어학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머리와 가슴으로 하는 언어학입니다.     언어의 특성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저는 언어를 머리에도 담아보고, 가슴에도 비추어 봅니다. 머리로 생각할 때는 몰랐던 부분이 가슴으로 생각하면 뚜렷해집니다.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게 됩니다. 언어학은 과학적 접근도 필요하지만 인문학적 접근도 필요합니다. 두 접근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마치 믿음과 학문의 관계와 같습니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는 학문은 공허합니다. 배움이 없는 믿음은 허황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는 이미 공자께서 밝혀 놓으신 일이기도 합니다. 논어 위정(爲政) 편에 나오는 학이불사즉망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이 그런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는 것도 모두 문제입니다.     믿음은 종교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상이 그래야 한다는 믿음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픈 것은 나쁜 게 아닙니다. 그런데 병을 죄라고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병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고통스러운 것이니 낫게 해 주면 좋은 겁니다. 아픈 사람은 병이 나아야 한다는 믿음이 의학을 발달시킵니다. 믿음이 학문을 발달시키는 겁니다. 인간과 자연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믿음이 환경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한 믿음으로 청정에너지의 개발이 이루어집니다.     언어학을 공부하면서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떤 믿음을 가슴에 품고 있습니까? 그게 언어학의 시작입니다. 언어는 소통을 위한 도구입니다. 언어는 싸우지 말자고 하는 겁니다. 언어를 통해서 감정을 교류합니다. 언어를 통해서 서로를 더 깊게 이해합니다. 서로 말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기쁜 일입니다. 언어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언어학을 깊게 만듭니다. 가슴으로 하는 언어학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언어학 가슴 사회과학 연구자 과학적 접근 보통 과학

2022.04.03. 16:04

[아름다운 우리말] 가슴으로 하는 언어학

 우리는 과학적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보통 과학과 인문학은 구별되는 개념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인문학 속에 과학이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과학이라고 하면 자연과학만을 의미했으나 이제는 사회과학도 과학이고 인문학도 과학입니다. 과학이 아닌 게 없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과학자라는 말은 한정적이네요. 아마 사회과학 연구자가 스스로를 과학자라고는 하지 않을 겁니다.   과학은 학문이라기보다는 연구방법론이 된 느낌입니다. 과학적으로 접근한다는 표현이 방법론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과학적이라는 말은 객관적이라는 말이고 계량화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늘 통계가 중요합니다. 조사 방법에 감정은 주관적 요소이므로 제외해야 합니다. 그래서 과학적 연구라는 말에는 인간의 감정이 배제되어 있습니다. 감정이 들어가는 것을 비과학적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런 점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객관적인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통계로 측정되지 않고, 정리할 수 없는 인간의 감정이 있습니다. 언어의 많은 부분이 그렇습니다. 생각과 사고라는 말을 어떻게 구별하여야 할까요? 마음과 생각은 어떻습니다. 기쁜 감정과 즐거운 감정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물론 어느 정도까지는 설명이 가능할 겁니다. 설명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당연히 언어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설명을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언어에는 감정이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겁니다.   언어는 인간의 특징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언어를 연구한다는 것은 인간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연구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는 이해하는 것입니다.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을 위한 학문으로 언어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머리로 하는 언어학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언어학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머리와 가슴으로 하는 언어학입니다.     언어의 특성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저는 언어를 머리에도 담아보고, 가슴에도 비추어 봅니다. 머리로 생각할 때는 몰랐던 부분이 가슴으로 생각하면 뚜렷해집니다.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게 됩니다. 언어학은 과학적 접근도 필요하지만 인문학적 접근도 필요합니다. 두 접근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마치 믿음과 학문의 관계와 같습니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는 학문은 공허합니다. 배움이 없는 믿음은 허황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는 이미 공자께서 밝혀 놓으신 일이기도 합니다. 논어 위정(爲政) 편에 나오는 학이불사즉망사이불학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이 그런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는 것도 모두 문제입니다.     믿음은 종교 이야기가 아닙니다. 세상이 그래야 한다는 믿음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픈 것은 나쁜 게 아닙니다. 그런데 병을 죄라고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병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고통스러운 것이니 낫게 해 주면 좋은 겁니다. 아픈 사람은 병이 나아야 한다는 믿음이 의학을 발달시킵니다. 믿음이 학문을 발달시키는 겁니다. 인간과 자연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믿음이 환경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한 믿음으로 청정에너지의 개발이 이루어집니다.     언어학을 공부하면서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떤 믿음을 가슴에 품고 있습니까? 그게 언어학의 시작입니다. 언어는 소통을 위한 도구입니다. 언어는 싸우지 말자고 하는 겁니다. 언어를 통해서 감정을 교류합니다. 언어를 통해서 서로를 더 깊게 이해합니다. 서로 말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기쁜 일입니다. 언어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언어학을 깊게 만듭니다. 가슴으로 하는 언어학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언어학 가슴 사회과학 연구자 과학적 접근 보통 과학

2022.03.2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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