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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액션] 김태흥 씨와 에밀리 워넥

김태흥(40) 씨는 5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에 왔다. 에밀리 워넥(61)은 생후 3개월 때 미국에 입양됐다. 두 한인은 지금 미국에서 쫓겨날 처지다. 둘 다 영주권자이고, 오래전 경범으로 대가를 치렀다. 김 씨는 14년 전인 2011년, 에밀리는 29년 전인 1996년 일어난 일로 지금도 추방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미교협)와 입양인정의연맹(A4J)은 이 두 사람이 구명돼 평생을 자신들의 나라로 생각하고 살아온 미국을 떠나지 않아도 되도록 애쓰고 있다.   김 씨는 최근 결혼식 참석을 위해 한국을 2주 방문하고 돌아오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체포됐다. 텍사스 A&M 대학교에서 생명과학 박사 과정 중인 그의 구금은 14년 전 경미한 마리화나 소지 전과를 근거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법원은 사회봉사 판결만 내릴 정도로 경미한 처벌을 내렸는데 이를 빌미로 지금에 와서 추방 절차를 밟는 것은 극도로 가혹한 조치다. 그는 구금된 첫 일주일 동안 변호사 접견이 거부됐다. 세관국경보호국(CBP)은 “헌법은 당신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충격적 발언을 하고 비인도적인 처우를 했다.     24시간 전등이 켜진 채로 침대도 없어 의자에서 자야 했다. 적절한 의약품이나 음식도 받지 못했다. CBP는 72시간으로 제한된 구금 기간도 어기며 그를 일주일 이상 억류했다. 워싱턴포스트가 그의 이야기를 보도한 데 이어 한국과 미국에서 많은 언론이 주목하고 있지만 그가 추방을 피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에밀리는 현재 정기적으로 이민단속국(ICE)과 만나고 있다. 인종차별과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그는 정신건강 문제를 겪으며 약물 복용 문제로 처벌을 받았다. 하지만 재활에 성공해 성실히 살아가던 중 48살 때 퇴행성 척추질환 진단을 받아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시민권이 없어 장애인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어려운 삶을 이어왔다. 오는 8월 18일 다시 ICE에 출두해야 하는데 체포, 구금될 우려가 크다. A4J는 18일 회견을 열고 시민권이 없는 입양인들의 어려운 처지를 호소하고 그의 사면을 캘리포니아 주지사에게 촉구한다.   과연 이 두 사람이 미국에 얼마나 큰 위협이 돼서 꼭 추방해야 하는 것일까. 두 사람 모두 과거의 실수를 뉘우치고 법적 의무를 다했으며 사회에 대한 빚도 갚았다. 그런데 시민권이 없는 까닭 하나로 고초를 겪고 있다. 더구나 에밀리는 부모가 입양 뒤 서울 주재 미국 대사관으로부터 받은 잘못된 정보에 따라 자동으로 시민이 됐다고 믿은 탓에 오늘까지 고통받고 있다. A4J는 에밀리와 함께 비슷한 처지의 대만계 입양인 출신 주디 반 아스데일(68)도 돕고 있다.   미교협과 A4J는김 씨의 석방, 에밀리와 주디의 사면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의 처지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교협 베키 벨코어 공동 사무국장은 김 씨에 대한 석방 촉구 성명에서 “김 씨에 대한 이번 구금은 현 정권의 이민자·아시안 커뮤니티 탄압, 그리고 헌법 권리 침해가 얼마나 위험하게 확대됐는지 보여준다”며 “한 명, 한 집단의 권리를 침해하는 순간 모두의 권리가 무너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고 외쳤다. 김갑송 / 미교협 나눔터 국장커뮤니티 액션 김태흥 에밀리 석방 에밀리 헌법 권리 이번 구금은

2025.07.3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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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 가운데서] 미스 에밀리의 스토리

지난 8월부터 함께 운동하는 여인이 있다. 그녀의 인상이 작년에 세상을 떠난 둘째 사위의 할머니와 같은 분위기라 처음부터 마음이 열렸다. 매일 만나 가벼운 인사를 나누며 사귀니 그녀가 자신은 영국 이민자며 이름은 ‘에밀리’라 했다. ‘폭풍의 언덕’을 쓴 소설가 에밀리 브론테가 떠올라서 더 친근감이 들었다.     언젠가 운동을 하다가 몇 사람이 힘이 든다고 살살 불평을 토해내니 강사가 나이를 들먹였다. 자신은 70세인데 “당신은 몇 살이냐?” 차례대로 묻다가 막상 미스 에밀리가 88세라 하자 모두 놀라서 입을 꽉 닫았다. 불평없이 잘 따라서 운동하는 그녀는 그날부터 함께 운동하는 그룹의 영웅이 됐다. 모두 그녀의 건강을 부러워하며 이것저것 물으니 그녀는 발레를 67년동안 가르치다가 올 7월에 퇴직한 젊은 노인이었다. 영국 리버풀 근교에서 태어나 자란 그녀는 ‘미스 리버풀’ 이라는 애칭도 얻었다.    발레가 좋아서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다가 그만 둘 줄을 몰랐다는 그녀는 대단한 욕심꾸러기였다. 더구나 아침에 깨어나 세수만 하고 서둘러 집을 나선 나의 부수수한 모습이 민망할 정도로 그녀는 매일 머리 손질도 잘 하고 손톱 발톱도 빨간 매니큐어로 다듬고 간혹 립스틱도 바르고 운동하러 온다. 그녀의 깔끔한 외모 앞에서 나는 기가 죽는 날이 많지만 그녀의 나이가 되어도 내가 그렇게 단정하게 가꾸고 살기를 바라게 됐다.     우리는 소소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친분을 쌓다가 누가 하루 운동을 빠지면 서로의 근황을 챙겼다. 그러다가 이제는 밥을 같이 먹는 지인이 됐다. 그녀를 보면 마치 영국 여행중에 만났던 사위의 할머니와 마주 앉은 듯 편안하다. 헤어지면서 “내 손자를 부탁해” 하던 그녀의 얼굴이 미스 에밀리로 바뀐 듯 착각이 든 적이 있었다.     사람마다 가진 스토리에 난 언제나 자석처럼 끌린다. 영국에 주둔한 미 공군 군인과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고 미국으로 온 미스 에밀리는 나와 같은 공군 가족이다. 결혼한 다음해 큰딸을 낳고 이어서 줄줄이 5명을 낳았다. 큰딸이 8세 된 해, 그녀가 결혼한 지 9년째 되던 해 남편이 뇌수막염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졸지에 어린아이 다섯을 혼자 키워야 했을 적에 친정 어머니가 와서 도와주셨다. 그때 절망에 빠진 그녀에게 그녀의 어머니는 “물에 빠져 죽던지 아니면 헤엄쳐서 살아라” 했다.     그 조언을 받아서 아이들 키우고 돈 벌며 바쁘게 사느라 전혀 다른 생각을 못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한 공군을 만났다. 그녀의 두번째 남편이 된 좋은 남자는 다섯 아이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어줬다. 덕분에 아이들이 잘 성장한 것을 그녀는 감사해 했다. 친 아버지 기억을 못하던 아들 딸들이 따르고 사랑하던 그녀의 두번째 남편도 9년 전에 세상을 떠나서 그녀는 혼자가 됐다.     성인이 된 자식들은 모두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다. 다섯명의 아이들이 그녀에게 15명의 손주를 안겨줬고, 다시 15명의 손주들은 25명의 증손주를 안겨줬다. 복 많은 여인이다. 내가 성경의 창세기에 하느님이 사람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신 것을 “당신은 착실하게 잘 실천했다” 했더니 그녀는 크게 웃었다.     내가 스모키 마운틴 중턱의 캐빈에서 신선한 산의 정기를 받으며 딸네들 가족과 모여서 추수감사절을 보내며 내 삶의 가을을 감사하는 동안 미스 에밀리 역시 플로리다에서 바닷바람을 받으며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장성한 자식들과 후손들, 대가족이 모여서 그녀의 삶을 축하했다. 집을 떠나기 전에 우리는 진정 멋지고 풍성한 감사의 수확을 거두자고 서로에게 다짐했었다.   얼마전에 89 생일을 맞았던 미스 에밀리는 연말에 플로리다로 떠난다. 그곳에 집을 짓는 딸네로 이사 들어가서 딸과 함께 바닷가 동네에서 아름답게 살 것이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 재미있다. 오래전 내 딸이 발레를 배울 적에 분명 미스 에밀리가 가르쳤을 것이고 올해 그녀와 인연을 맺었던 나는 그녀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고 열정적인 삶을 사는 그녀가 “절대로 운동을 그만두지 마” 한 조언을 따라서 열심히 운동하며 건강을 지킬것이다.             삶의 한 가운데서 에밀리 스토리 미스 에밀리 소설가 에밀리 미스 리버풀

2021.12.0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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