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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친한파 의원은 엘리자베스 워런 <연방상원>·엘리너 노턴<연방하원>

117대 연방의회에서 한인 관련 입법활동을 가장 많이 한 의원은 엘리자베스 워런(민주·매사추세츠) 상원의원과 엘리너 노튼(민주·워싱턴DC) 하원의원이었다.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17대 연방의회(2021~2022년)에서 한국·한인 관련 입법 활동을 가장 많이 한 의원은 상·하원에서 각각 18·19개의 법률안을 (공동)발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연방상원에서는 매사추세츠의 엘리자베스 워런(민주) 의원이 한인 관련 법률안을 18개 발의 및 공동 발의하며 1위에 올랐다. 이외에도 ▶매사추세츠의 에드워드 마키(민주) 의원이 17개 ▶일리노이주의 태미 더크워스(민주) 의원이 16개 ▶하와이의 마지 히로노(민주) 의원이 16개 ▶뉴저지주의 밥 메넨데즈(민주) 의원이 16개의 한인 관련 법률안을 발의하며 상위권에 올랐다.     연방하원에서 한인 관련 법률안을 최다 발의한 의원은 19건을 발의한 워싱턴DC의 엘리너 노튼(민주) 의원과 주디 추(민주·캘리포니아 28선거구) 의원이었다. 뉴저지주 연방상원의원에 도전하는 앤디 김(민주·뉴저지 3선거구) 의원과 그레이스 멩(민주·뉴욕 6선거구) 의원은 각각 18건의 법률안을 발의하며 2위에 올랐고, 현재 LA 시장으로 재임 중인 캐런 배스(민주·캘리포니아 37선거구) 의원이 17건을 발의하며 최다 발의 의원 중 한 명으로 꼽혔다.     특히 마지 히로노 연방상원의원은 지난 4일 시민권이 없는 입양인들에게 정당한 시민권 취득 기회를 제공하는 ‘입양인 시민권 법안((Adoptee Citizenship Act)’를 발의하며 주목을 끌고 있다. 이번 법안은 1945~1998년 사이 입양돼 ‘아동 시민권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약 5만 명을 구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 중 절반 정도가 한인 입양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방의회는 2000년 만 18세 미만 입양인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아동 시민권법’을 시행했지만, 법 시행 당시 18세 이상인 입양인들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입양인 시민권 법안’은 117대 연방의회에서 상원 13명, 하원 63명의 공동 후원자를 얻으며 하원에서 통과됐으나 상원에서 가로막혔다.   윤지혜 기자 [email protected]엘리자베스 연방상원 뉴저지주 연방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 엘리너 노턴

2024.06.21.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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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소녀, 정신건강 지킴이로…아역배우 출신 엘리자베스 노

할리우드 아역배우 출신인 한인 여고생이 청소년 정신건강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를 세워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 온라인매체 패치닷컴(patch.com)은 LA지역 스타 스튜던트(Star Student) 후보로 엘리자베스 노(사진)양을 소개했다.   패치닷컴은 지역사회에서 눈에 띄는 봉사활동을 펼치는 청소년을 스타 스튜던트로 선정하고 있다. 노양을 추천한 아버지 앤드로 노씨에 따르면 노양은 8세 때부터 배우 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 소속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노양은 연기활동 외에도 지역사회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부터는 한인클럽 회장 등으로 활동했고, 한인가정상담소(KFAM) 위탁가정 둥지 찾기 프로그램 지원, 노숙자 식료품 나눔 행사 자원봉사 등에도 앞장섰다.   11학년이 된 노양은 최근 오빠 조슈아와 비영리단체 ‘SMC(Share My Cope)’도 설립했다. 노양은 SMC 활동을 통해 또래 청소년 정신건강 지킴이로 나섰다. 이 단체는 청소년 정신건강 정보안내, 우울증 등 대처방법, 지역사회 연대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   현재 노양과 SMC는 청소년 자살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노양과 오빠는 우울증에 빠지고 자살을 생각하는 또래 친구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싶다는 의지도 보였다.   노양의 아버지 앤드류 노씨는 “그녀의 활동은 세상을 더 좋게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응원했다. 노양의 활동은 인스타그램(@elizabethlo_official)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형재 기자엘리자베스 정신건강 아역배우 출신 청소년 정신건강 할리우드 아역배우

2023.05.05.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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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에서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추모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대한 추모 물결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엔도 여왕 추모에 동참했다. 15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추모하는 특별회의가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주재로 소집된 가운데 참여자들이 기립해서 묵념하고 있다.       [로이터]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추모 추모 물결 가운데 유엔도

2022.09.15.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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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여왕 영면 위한 여정 올라

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11일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스코틀랜드 동북부 밸모럴성을 떠나 영면을 위한 여정에 올랐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시신이 든 참나무 관은 이날 오전 10시 밸모럴성을 떠나 약 280km 떨어진 에든버러의 홀리루드 궁전으로 운구됐다. 육로를 이용한 이 여정에는 약 6시간여가 걸렸다. 운구차를 선두로 7대의 장례 차량 행렬이 첫 마을인 밸러터를 지나자 시민 수천명이 도로 양옆에 서서 꽃과 직접 쓴 편지를 던지며 여왕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로이터]엘리자베스 여왕 여왕 영면 스코틀랜드 동북부 홀리루드 궁전

2022.09.1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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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지역도 엘리자베스 여왕 추모 열기

    워싱턴 지역에서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을 추모행사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8일 여왕의 서거 소식과 함께 워싱턴D.C. 매사츄세츠 애비뉴 선상의 영국 대사관 앞 국기 게양대에는 수많은 추모 꽃다발이 싸여 발디딜 틈이 없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질 바이든 여사는 오후 6시 대사관을 직접 방문해 고인을 추모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에 조기를 게양했으며 워싱턴 대성당에서 조종을 96회 타종했다.   뮤리엘 바우저 워싱턴D.C. 시장과 글렌 영킨 버지니아 주지사 등도 여왕에 대한 추모 메시지를 발표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영국 출신 이민자 뿐만 아니라 53개 영연방 국가 출신 이민자들의 추모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영국의 오랜 식민통치를 받았던 인도와 파키스탄 출신 이민자들의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존경이 남달랐던 만큼 이들은 큰 슬픔을 표시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통치시기 동안 미국 대통령은 14번이나 바뀌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공주 시절이었던 1951년 남편 필립공과 함께 워싱턴을 처음 방문해 해리 트루먼 당시 대통령과 면담했으며 이후 네차례 더 방문했다.  김옥채 기자 [email protected]엘리자베스 워싱턴 엘리자베스 여왕 워싱턴 지역 워싱턴 대성당

2022.09.0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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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타계

영국인의 정신적 지주이자 영연방의 수장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96세로 서거했다.   영국 왕실은 8일(현지시간) 여왕이 이날 오후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왕위 계승권자인 여왕의 큰아들 찰스 왕세자가 즉각 국왕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25살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오른 뒤 영국의 군주와 영연방의 수장 자리를 지켜왔다.   영국 최장수 군주이면서 세계 역사상 두번째로 오랜 기간 재위하며 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 여왕은 즉위 70년 만에 임무를 내려놓게 됐다.   건강 문제에도 불구하고 지난 6일 엘리자베스 트러스 신임 총리를 임명하는 등 최후까지 역할을 충실히 다했다.   이날 왕실이 여왕의 건강이 우려된다는 의료진의 판단을 공개한 후 왕실 직계 가족들은 속속 밸모럴성에 모여들었고 BBC가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여왕 관련 소식을 생중계로 전하는 등 전국이 긴박하게 움직였다.   한편 백악관은 여왕의 타계 소식에 즉각적으로 애도의 뜻을 밝혔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 도중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소식이 전해지자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여왕의 가족과 영국 국민에게로 향한다"며 깊은 애도의 뜻을 밝혔다.   그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말했듯이 미국과 영국 국민과의 관계는 점점 더 강해져왔다"며 "영국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동맹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타계 엘리자베스 트러스 도중 엘리자베스

2022.09.08.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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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96세로 서거

 [긴급]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96세로 서거 디지털본부 뉴스랩긴급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96세

2022.09.0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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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최장수 군주 엘리자베스 2세

 영국의 최장수 군주 엘리자베스 2세   김건흡 MDC시니어센터 회원   살아있는 사람에 대해 역사적 평가를 내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지난  70여년 동안 엘리자베스 2세가 통치했던 영국은 무사했고, 영국인들에게 ‘마음의 여왕’이 됐다.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인들에게 어떤 존재인가. 영국인들은 왜 왕조를 유지한 것인가. 이 질문은 이렇게 바꿔볼 수 있다. 영국의 왕가는 몰락한 다른 왕가들과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명예혁명이 끝나고 얼마 후, 영국에는 왕위를 이어받을 스튜어트 왕가 자손이 바닥나 버렸다. 결국 의회는 독일에서 스튜어트 왕가의 먼 친척을 데려와 왕으로 삼았다. 그가 바로 하노버 왕조의 시조인 조지 1세다. 평생 독일에 살았던 조지 1세는 영국의 정치상황에 대해 잘 몰랐고 아예 영어조차 못했다고 한다. 그 후 영국에서 정치적 실권을 쥔 것은 의회였고 왕은 자연스럽게 정치에서 배제되었다.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 것은 바로 이때부터였다. 하노버 왕조의 가장 큰 문제는 ‘나라를 다스리지 않으면서 어떻게 왕의 위엄을 유지하느냐’ 였다. 어떻게 해야 군주로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것인가. 시간이 걸렸지만 하노버 왕조는 그럭저럭 자신의 역할을 찾아냈다. 그것은 국기나 국가처럼 왕이 국가를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 되는 것이었다. 요컨대 왕의 역할이란 대외적으로는 영국을 대표하고, 대내적으로는 계급은 달라도 우리는 폐하의 신하라는 충성심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이 모든 역할을 아주 잘 수행했던 하노버 왕조의 군주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빅토리아 여왕이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독일 출신,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의 둘째 아들과 결혼했는데, 그 때문에 빅토리아 여왕의 아이들에게는 하노버가 아니라 작센-코부르크-고타라는 성이 붙게 되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작센-코부르크-코타 왕조가 시작되면서 영국과 독일의 관계가 아주 나빠졌다. 세계 1, 2차 대전이 일어나자, 영국과 독일은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적이 되고 말았다. 그러자 입장이 곤란해진 것은 독일에 본가를 두고 있는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였다. 더군다나 1차 세계대전 후에 얼마나 많은 왕조들이 무너졌던가? 그들도 같은 꼴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러한 몰락을 막기 위해서,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는 대대적인 혁신을 단행한다. 우선 작센-코부르크-코타라는 성부터 '윈저'로 바꿨다. 그리고 라디오 연설을 통해서 전쟁의 고통을 겪고 있는 국민들을 격려했다. 또 국민들이 싫어한다면 외국 왕가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1926년 4월 21일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녀에게는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메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엘리자베스는 어머니의 이름을 따온 것이고, 알렉산드라는 증조할머니의 이름을, 메리는 할머니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그녀의 가족들은 그 긴 이름 대신 그녀를 릴리벳이라고 불렀다. 릴리벳이 태어났을 때만 해도 그녀가 고조할머니처럼 여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다음 왕위는 조지 5세와 메리 왕비의 큰 아들이었던 에드워드 왕세자가 이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예상대로 조지 5세가 죽자 에드워드가 왕위를 물려받았다. 그가 바로 에드워드 8세다. 그러나 에드워드 8세는 왕위에 오른 지 1 년도 못 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를 포기했다. 이것이 세기의 스캔들이라 불리는 윈저공과 심슨 부인의 로맨스다. 이제 영락없이 차남이자 릴리벳의 아버지인 앨버트가 왕위를 물려받아야 할 차례였다. 그것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거기다가 앨버트는 사람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말더듬이가 아니었던가! 1936년 결국 앨버트가 왕위에 올랐다. 그가 바로 조지 6세이다. 더불어 릴리벳은 아버지의 추정 상속인이 되었다. 그 말은 앞으로 남동생이 태어나지 않는 한, 그녀가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되자, 릴리벳의 교육문제가 중요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릴리벳은 아버지, 조지6세처럼 되지 않기 위해 이 때부터 왕에게 필요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또 큰아버지처럼 되지 않기 위해 개인의 행복보다는 국왕으로서의 책임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배워야 했다. 왕이 되기 위해 필요한 학문은 훌륭한 교사들 밑에서 배우면 그만이지만, 국왕으로서의 책임은 교사들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릴리벳에게는 군주로서의 책임을 가르쳐줄 누구보다 훌륭한 선생님이 있었다. 바로 릴리벳의 할머니인 메리 왕비와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왕비였다. 할머니 메리 왕비는 엄격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무엇보다 왕실의 위엄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기 아이들에게 대중 앞에서 사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말라고 가르쳤다. 어머니 엘리자베스 왕비 역시 왕실의 의무가 무엇인지 분명히 아는 사람이었다. 릴리벳이 열세 살이 되던 해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런던이 독일 전투기에 폭격을 당하자, 릴리벳과 그녀의 동생 마가렛은 버킹검 궁을 떠나 윈저 성으로 피난을 갔다.   전쟁 중 메리 왕비와 엘리자베스 왕비는 누구보다 먼저 솔선수범하고 애국심을 발휘했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했던 것은 국민들에게 선심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아무리 신분이 높다고 해도 시대의 요구에 맞춰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그 자리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그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생존전략이었던 셈이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릴리벳은 열여덟 살이 되자 아버지 조지6세를 귀찮게 졸라댔다. 자신에게도 조국에 봉사할 기회를 달라는 것이었다. 요컨대 자신도 입대해 직접 전쟁에 참여하고 싶다는 것이다. 딸을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 보낼 수 없었던 조지6세는 결국 타협책을 찾아냈다. 1945년 3월 릴리벳은 영국 여자 국방군에 입대했다. 릴리벳의 계급은 소위였다.  릴리벳은 다른 병사들과 똑같이 트럭을 몰거나 탄약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 지금까지 거친 일이라고는 해본 적 없었던 그녀가 흙바닥에 앉아 타이어를 바꾸고, 보닛을 열어 엔진을 수리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현재 총 25억의 인구를 가진 영연방 15개국의 수장이다. 그런데 지금이 대체 어느 시절인데 그것도 명색이 민주국가에 군주가 존재한단 말이냐는 의문이 생기기는 한다. 아무리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지만 말이다. 그러나 영국에서 왕실은 국민 통합의 도구로 꽤나 유용하다고 할 수 있는데 사회구조와 사고방식이 급변해온 와중에도 그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상당 부분 이 엄격하고도 노회한 여왕의 역량 덕분이라고 하겠다. 여왕은 본인의 역할을 전통의 수호자이며 같은 자리에서 변함없이 국민을 보호하는 자로 설정하고 그와 같은 이미지를 조심스럽게 생산해 왔다. 현실 정치에 개입하지는 않지만, 적정한 가이드라인을 주는 믿을만한 존재인 것이다.  또 늘 바뀌고 사적 욕망을 추구한다는 느낌을 주기 마련인 선출직 정치인들과 대조적인 안정감을 준다.   지난해 4월 여왕은 남편 필립공(99)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여왕은 70여 년간 자신의 곁을 지키며 외조를 해왔던 필립공과 큰 잡음 없이 해로했지만, 자식문제로 골치를 앓아왔다. 아들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이혼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으며 ,다아애나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졌을 때는 왕실을 향한 따가운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올해로 즉위 70주년을 맞았다. 현군주중에 단연 최장수다. 여왕의 즉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플래티넘 주빌리’축제가 지난 2일부터 나흘간 영국과 영연방 전역에서 성대하게 펼쳐졌다. 여왕은 1년에 두 차례 생일축하를 받는다. 실제로 태어난 날인 4월21일, 그리고 6월초에 열리는 ‘공식 탄생일’이다. 공식 생일축하 행사는 5월말에서 6월초에 걸쳐 날씨가 좋은 날을 잡아 따로 열린다, 영연방 국가에서는 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한다. 영국인들은 역사적 순간마다 구심점이 되어준 그를 ‘마음의 여왕’으로 여기고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보내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삶은‘살아있는 현대사’ 그 자체다.  김지민 기자영국 엘리자베스 어머니 엘리자베스 엘리자베스 알렉산드라 엘리자베스 2세

2022.06.08. 7:16

남부 콜로라도 한인회 엘리자베스 김 회장 취임식

 남부 콜로라도 한인회가 2021년을 마감하는 연말 파티를 겸하는 회장 이취임식 행사를 개최했다. 지난 12월 29일 오후 6시에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소재한 힐사이드 커뮤니티 센터에서 열린 이날 행사에는 무려 80여명의 남부 콜로라도 한인회 회원들과 관계자, 덴버쪽 초대객들이 다수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마이클 송 명예영사를 비롯해 데이빗 도널드슨 콜로라도 스프링스 시의원 부부, 포트 카슨 데퓨티 시큐리티 사무실 관계자 부부 등 영어권 초대객들도 10여명이 참석해 행사는 영어와 한국어 두가지로 진행됐다.이번에 23대 회장에 취임해 앞으로 2년간 남부 콜로라도 한인회를 이끌게 된 엘리자베스 김(65)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한인회장으로서 내가 집중하고 싶은 것은 주류사회와의 협력관계 강화, 한인들의 적극적인 참여, 2세들의 참여를 많이 독려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 콜로라도스프링스 남부 한인회는 비영리 단체로 등록되어 있지만, 활성화가 안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남부 콜로라도 한인회를 비영리 단체로서 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또 우리 한인회를 명실공히 한인들을 대표하는 단체로 발전시키고, 한인들을 단결시켜 한인회를 이 지역 미 주류사회에 한인들의 위상을 보여주는 힘있는 단체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김 회장은 당선확정 직후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당선 소감으로 “책임이 무겁다. 어떻게 보면 내가 차세대로 넘어가기 전에 마지막 세대의 회장인 것 같다. 이민 1세대의 마지막 회장으로서, 차세대에게 한인회를 잘 넘겨줄 준비를 하고, 주류사회와 함께 협력하는 한인 공동체의 기초를 닦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1980년 8월에 미국으로 온 김 회장은 94년에 부동산 사업을 시작해 현재까지 28년째 부동산 브로커로 활동하고 있으며, 1980-90년 당시 영어가 어려워 도움이 필요한 한인들을 위해 법정 통역일도 하고, 노인들 시민권 강좌, 미군과 결혼해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사는 한인 여성 피해자들을 돕는 단체도 결성해 도왔으며, 상공인회 부회장, 민주평통 15기와 17기 위원, 이승규 회장과 함께 11대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또 20년간 콜로라도 스프링스 한인성당에서 지휘자로 봉사하는 등 다양한 봉사활동에 기꺼이 매진해왔다. 김 회장은 “요즘에는 한인회가 구심점이 되어 한인 이민자들을 도울 일이 많지 않다. 이민오는 한인들의 학력이 높고 인터넷이 발달해 필요한 정보들을 그때그때 쉽게 웹서핑으로 찾을 수 있기 때문에 한인회의 필요성을 못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인회의 역할도 현대사회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 이제 한인회는 한인 커뮤니티를 주류사회와 연결시키고, 한인들의 인지를 높이고 그 위상을 끌어올리는 역할이 주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인회는 주류사회와 연계 및 소통 기회를 늘려야 한다. 그동안 한인 회장님들께서는 영어권이 아니다 보니 언어소통의 문제로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있다. 나는 2년간의 재임기간동안 이런 주류사회와의 연계를 통해 동포사회에 많은 이익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전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어떤 회장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에 "모범된 한인회를 운영한 회장, 한인들만을 위한 한인회가 아니라, 동포사회 뿐만 아니라 주류사회와도 적극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한 회장, 소통을 많이 한 회장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답변했다.        현재 콜로라도 스프링스에는 최소한 만명 이상의 한인이 거주하고 있지만, 한인회관은 없다. 그래서 국선 전 회장은 지난 2017년에 한인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한인회관 건립을 추진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김 회장은 "물론 한인회관이 있으면 좋다. 내가 11대 부회장을 할 때부터 한인회관 건립 이야기는 늘 나왔었다. 그러나 한인회관 건립보다는 한인회라는 구심점이 한인사회에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건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식적인 사무실이라든지 늘 같은 전화번호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회장이 바뀔 때마다 연락 채널이 달라지고 인수인계가 불분명해지게 되면 한인회 운영이 제대로 될 수 없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시대에서 우리 한인회는 한인만을 위한 단체에 머무르지 않고 2세들이 마음껏 날개를 펴고 주류사회에 참여해 시의원이나 상하원 의원에 당선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한인회는 한인들의 위상을 높이고 한인들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한 채널로서 홍보를 할 것이다. 앞으로 남부 콜로라도 한인회는 다양한 주류인사들의 행사 참석을 유도하고 커뮤니티를 위한 봉사활동도 많이 하는 모범적인 한인회로서의 역할에 힘쓸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이하린 기자엘리자베스 콜로라도 남부 한인회 남부 콜로라도 회장 이취임식

2022.01.07.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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