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감동적인 예술 작품들 중 일부는, 무명의 재능 있는 예술가들에 의해 탄생했다. 종교적 황홀경 속에서 그려진 신앙 예술, 가정의 안녕과 보호를 기원하며 정성껏 만든 민속 예술, 그리고 실용적인 물건이면서도 창의적인 공예품들이 그렇다. 불행하게도, 오랫동안 일부 사람들은 공예를 ‘예술’로 인정하지 않았다. 입거나, 마시거나, 혹은 어떤 방식으로든 사용되는 물건이라면 ‘진정한 예술’이 될 수 없다고 믿은 것이다. 다행히 이제 그런 편견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공예의 예술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이 변화는, 자신들의 이름을 작품에 남길 수 없었던 과거의 창작자들에게는 너무 늦었다. 그들 중 다수는 문자 그대로 ‘노예처럼’ 일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진짜 노예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수세기 동안 ‘노예 바로 위의 존재’로 취급받았던 또 다른 예술가들이 있었으니, 바로 여성들이었다. 여성들은 붓과 캔버스를 사용할 수 없었고, 청동으로 조각할 수도 없었다. 예술적 감수성을 지닌 여성이 창의력을 펼치려면, 자신에게 허락된 재료로 작업해야 했다. 그것이 흙일 수도 있었지만, 대개는 직물이었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 예술가가 억압받을수록 그들의 창조적 에너지는 자신에게 주어진 좁은 통로를 통해 폭발적으로 표출된다. 예를 들어, 오직 턴테이블과 마이크로만 음악적 아이디어를 표현할 수 있었던 이들이 만들어낸 것이 바로 ‘힙합’이다. 오늘날 대중문화의 가장 혁신적인 예술 중 하나로 평가받는 장르다. 이와 같은 창조적 폭발은 한국의 섬유 예술에서도 발견된다. 색채와 창의성, 예술적 감각, 그리고 생명력으로 터져 나오는 한국의 직물 예술은 경이롭다. 몬드리안보다 훨씬 이전에 등장한 듯한 기하학적 구성의 보자기 패치워크, 바늘로 그린 회화 같은 자수, 잃어버릴 뻔한 상징의 의미를 매듭으로 보존한 노리개, 대나무와 종이까지 확장된 직조 예술에 이르기까지…. 이름 없는 여성 예술가들이 창조한 아름다운 한국 예술의 세계는 끝이 없다. 다행히 오늘날 섬유를 예술적 표현의 매체로 선택한 여성 예술가들은 더 이상 익명이 아니다. 이는 수십 년간 역사적 소외를 바로잡기 위해 헌신해온 여러 단체들의 노력 덕분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단체가 풀브라이트 장학생 출신 이정희 교수가 설립한 ‘코리아 보자기 포럼(Korea Bojagi Forum)’이다. 이정희 교수는 수년간 국제 심포지엄과 전시, 행사를 꾸준히 주최하며 보자기와 한국 섬유 예술을 통해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힘써왔다. 그녀는 미국, 한국, 핀란드 등지에서 교편을 잡으며 국제적 교육자로서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그녀의 작품이 소장된 주요 미술관 목록은 세계 유수의 예술 기관 목록과 다름없다. 만약 11월에 보스턴 지역을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11월 8일부터 23일까지 렉싱턴 예술공예협회(Lexington Arts and Craft Society)에서 열리는 그녀의 개인전을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그녀의 놀라운 작품 세계를 감상하며, 동시에 그녀가 예리하게 다루는 여성의 권리 문제를 함께 성찰해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일본은 사상 처음으로 여성 총리를 임명했다. 한국 역시 몇 주 전 최초의 미국 주재 여성 대사로 강경화씨를 임명했다. 물론 여성의 완전한 대표성에 이르기까지 아직 갈 길은 멀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분명 진보의 신호다. 우리는 이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야 한다. 정부와 기업뿐 아니라 예술의 세계에서도 더 많은 여성이 힘을 갖게 될수록, 결국 그 혜택은 우리 모두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 글의 일부는 곧 출간될 로버트 털리의 회고록 『잉크타운(Inktown)』에서 발췌했습니다.) ▶코리안아트소사이어티: 이메일([email protected])/페이스북(Facebook.com/RobertWTurley) 로버트 털리 / 코리안아트소사이어티 회장K컬처에 빠지다 익명 여성 여성 예술가들 한국 예술 예술 작품들
2025.11.06. 20:16
〈페미니즘 미술 읽기〉라는 두툼한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 ‘한국 여성 미술가들의 저항과 탈주’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은 1980년대 이후 반세기 동안 한국의 여성미술가들이 이룩한 성과를 보여주는 여성적 시간의 지형도다. 김홍희 씨가 오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쓴 도전적 저술인 이 책은 44명의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세계를 페미니즘이 당면한 15가지 화두로 나누어 진지하게 탐구하고 있다. 차학경, 민영순, 김원숙, 윤진미 등 미주 한인작가들을 디아스포라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어서 반갑다. 저자 김홍희 씨는 지난 삼십여 년간 큐레이터, 평론가로 미술 현장에 몸담아 온 이 분야의 독보적 전문가다. 한국 미술사에 중요하게 기록될 많은 전시회를 기획한 독립 큐레이터이며, 경기도미술관 관장,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을 역임했다. 광주비엔날레 총감독,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카셀도큐멘타 예술감독, 홍대 미대 교수 등을 지냈고, 현재는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이다. 쉽게 술술 읽히는 책이 아니라서, 제대로 읽으려면 한참 걸릴 것 같다. 그래도 도 닦는 심정으로 읽고 있다. 오래 관심을 가져온 주제이기도 하고,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존중하고 싶어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머지않아 여성시대가 열릴 것이고, 그 시작은 예술부터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예술이라는 낱말은 근원적으로 ‘여성명사’다. 예술이란 결국 생명을 낳아 기르는 일이라는 말이다. 페미니즘 예술에 대한 논의는 이미 가부장적 가치관과 남성 중심의 문화 권력에 맞서 싸우는 단계를 넘어섰다. 물론, 아직도 불평등이 완고하게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제는 예술작품에서 남녀를 구분하는 일은 무의미해졌다. 김혜순 시인은 이 책의 발문에서 “여성 미술가들에게는 모델이 없고, 거장이 없으며, 본보기가 없다”고 지적했다. 정말 그런가? 빼어난 여성 예술가 몇 명의 이름만으로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한국의 예를 들어본다. ▶문학: 박경리, 박완서, 한강, 김혜순 시인, 이민진 등 ▶미술: 나혜석, 박래현, 천경자, 최욱경, 김윤신, 이성자, 윤석남, 양혜규, 이불, 김수자 등의 작가와 홍라희, 박명자, 김선정 등 ▶음악: 정경화, 진은숙, 성시연, 장한나, 김은선, 손열음, 강주미 등 노벨문학상의 한강 작가 같은 인재가 나타날 가능성은 크다. 결코 헛꿈이 아니다. 영화계의 강수연, 전도연, 윤여정 등이 국제무대에서 이름을 떨쳤고, 지금 각 방면에서 국제무대로 뻗어가는 우리 젊은 예술가들도 여자가 훨씬 많다. 우리가 여성 예술가들에게 기대를 거는 까닭은 사랑의 손길로 생명의 예술을 복원하는 어머니 마음과 능력을 믿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머니’라는 말은 깊고 근원적인 의미를 갖는다.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인종의 차원에서 젠더의 문제는 여성이 종족, 혈통의 생물학적 운반자로서 인종적 재현의 원천적인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여성만이 가능한 이러한 경험은 예술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여성 특유의 상상력과 본능적 사랑으로, 억압되어 보이지 않는 것, 존재하지만 부재하는 것들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일이 그것이다. “출산과 육아의 시간은 작가로서 부재, 공백을 의미하고 (…) 작가의 현실의 무게는 작업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그 경험은 새로운 미술적 시점을 마련해 준다”는 조영주 작가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근본적으로, 페미니즘의 이상적인 상태는 남성과 맞서 싸우며 우월을 다투는 이분법적 관계가 아니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세계를 넓혀가는 상호보완적 관계일 것이다. 바람직한 부부처럼….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페미니즘 예술 페미니즘 예술 여성 예술가들 페미니즘 미술
2025.03.13. 18:46
월터 N. 마크스 아트센터(Walter N. Marks Center for the Arts)가 아시아·태평양계(AAPI) 여성 예술가들의 창의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조명하는 전시 ‘사막 속의 달과 별’을 선보인다. 아트센터 측은 “이번 전시는 bG갤러리에서 시작된 ‘달과 별(Moon & Stars)’ 시리즈의 일환으로, AAPI 여성 예술가들의 개성과 다양한 유산을 조명하며, 오리엔탈리즘적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예술적 혁신을 탐색하는 작품들을 소개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현대적 주제, 재료, 기법을 아우르는 20명의 뛰어난 신진 예술가들이 참여한다.큐레이터는 정체성, 문화적 디아스포라, 경험과 상상 사이의 경계 공간을 탐구하는 LA 기반 아티스트 손성희 씨가 맡았다. 전시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현대 벽화가 로렌 YS가 아트센터 안뜰에 벽화를 그리는 것이다. 또한 메리 라이는 대담한 텍스처와 색채로 ‘달과 별’ 시리즈의 정신을 표현한다. LA 위클리가 2019년 ‘올해의 예술가’로 선정한 이부키 쿠라모치는 퍼포먼스 아트를 통해 관객을 매료시킨다. 이 외에도, 시지아 첸은 이민 서류를 종이 공예로 변형해 초현실적인 세계를 창조하며 문화적 정체성과 공동체를 탐구한다. 오경분은 자신의 이민 여정을 반영해 역사, 정치, 그리고 소속감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월터 N. 마크스 아트센터는 해마다 전문적으로 큐레이팅된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는 아트 갤러리다. 입장료와 주차는 무료다. 전시 기간은 6일부터 다음 달 28일까지이며, 오프닝 리셉션은 6일 오후 4시에 열린다. ▶주소:43500 Monterey Ave, Palm Desert ▶문의:[email protected]태평양계 아시아 여성 예술가들 신진 예술가들 정체성 문화적
2025.02.02.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