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마당] 스릴러가 아니고 코미디
나는 말도 느리고 행동도 어눌해서 언니는 늘 “널 잘 모르는 사람은 네가 국민학교도 못 나온 무식한 바보로 생각할 거다”라고 놀린다. 게다가 자타가 인정하는 기계치에 우리 집도 잘 찾지 못하는 길치다. 유리병이나 깡통도 못 따서 남편이나 아들에게 부탁한다. 컴퓨터가 익숙하지 않을 때, 지금도 서툴기는 마찬가지지만, 아들이 마우스를 잡고 손을 흔들며 여기를 보라고 하면 모니터 대신 아들 손을 보다가 아들에게 핀잔을 받기 일쑤였다. 운전 초기에는 운전대를 따라 몸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서 마켓 벽을 들이받고 차를 부숴버린 적도 있다. 운전한 지 35년이 넘은 지금에도 사고를 내지만 남들에게 “또?” 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창피해서 말도 못한다. 나이 들수록 운전 신경이 더욱 둔해져 스트레스를 받는다. 한국에선 운전을 못해도 지하철로 다 연결되어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한국에서 지내다가 LA로 돌아오면 운전대 잡기가 겁이 난다. 함께 사는 작은아들이 “엄마, 걱정하지 마시고 집 근처만 살살 다니세요. 한인타운이나 좀 먼 곳은 제가 모시고 갈게요. 직장에서 안 쓴 휴가가 많이 남아 있어요”라고 안심시켜준다. 최근에 한인타운에 있는 병원에 갈 일이 생겼는데 영 자신이 없었다. 아들에게 휴가를 내라고 하기엔 염치가 없었다. 마침 건강 보험사에서 일 년에 몇 번 병원까지 라이드 해주는 지원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보험사에서 보내준 우버를 타고 병원에 편하게 갔다. 끝나고 집에 올 때도 차편을 부탁했다. 2분 내로 차가 올 거라고 했다. 주차장이 복잡해서 길가로 나가니 금방 차가 도착했다. “우버냐”고 물으니 그렇다며 타라고 했다. 병원은 3가와 하버드가 만나는 코너에 위치하고 있다. 서쪽방향으로 3가를 따라 쭉 가면 되는데, 내가 탄 우버는 곧바로 하버드를 따라 남쪽 방향으로 4가, 5가를 지나 막 달렸다. 기사에게 그리 가지 말고 서쪽으로 가는 게 빠르다고 하니 내비게이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 가는 방법도 있나보다고 생각하며 주의 깊게 보고 있으려니 8가까지 내려갔다. 잘못 가는 것 같다며 우리집 주소를 말해주니 “NO ENGLISH” 라며 또 내비게이션을 툭툭 치는데, 밑에 보니 ‘주소를 변경할 수 없다’고 영어로 쓰여 있었다. 어디까지 가나 보자고 지켜보니 베니스도 나오고 110번 프리웨이도 언뜻 보이는 게 아닌가. 아무리 길치이긴 하지만 35년 넘게 한인타운을 다녀봤기 때문에 대충은 아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너무 낯선 동네였다. 순간적으로 ‘큰일 났다, 납치당했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차를 세우라고 소리 질렀다. 하지만 기사는 빨리 가야 된다는 듯 손목시계를 보여줬다. 두려움에 더 큰소리로 운전을 멈추라며 문을 열려고 하니 그제야 차를 멈췄다. 보험사에 전화를 걸어 전후 사정을 설명하니 우버 기사를 바꾸라고 했다. 기사는 영어를 못한다며 스패니시 구사자를 바꾸라고 하는 것 같았다. 기사는 화가 나서 뭐라고, 뭐라고 막무가내로 자기말만 해댔다. 보험사 담당자는 자기 말만 하는 그에게 화가 나서 전화를 끊어 버렸다. 다시 영어하는 사람으로 바꾸고, 말이 안 통하니 다시 스패니시 통역자로 바꾸다가 드디어 기사가 차를 돌렸다. 아마도 나를 태운 자리로 돌아가라고 단단히 경고를 한 모양이었다. 보험사 담당자는 내게 “뭔가 잘못된 것 같다. 영어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우버 택시 기사를 하는지 모르겠다. 병원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알려줬다. 우버 기사는 툴툴거리며 험악하게 운전을 해 사고가 날 뻔 했다. 그런데 병원에 도착해서 내리려하자, 그 기사가 “I am sorry!”라고 말하는 게 아닌 가. 아니, 영어를 못한다고 하잖았나! 보험사에서 다른 차를 보내줬다. 차 안에 그윽한 향기가 풍겼다. 기사는 “광자 맞느냐?”라고 확인한 다음, 내 얼굴에서 흥분한 기색을 읽었는지 차문 안쪽 포켓에 물병이 있다고 했다. 내가 재채기를 하니까 얼른 휴지도 뽑아서 줬다.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 친절함은 먼저 우버 기사에게 받은 공포감을 다 보상받고도 남을 만했다. 내가 “너는 네 일을 참으로 즐기는 것 같구나”라고 하니 “물론 그렇다”고 했다. 며칠 뒤 친구 모임에서 그 이야기를 했다. 한 친구는 “어머나, 큰일날 뻔했다. 참 무서운 세상이야”라고 했다. 다른 친구도 “그 기사 엉터리네. 기본적으로 승객의 이름부터 먼저 확인했어야지”라고 했다. 또 다른 친구는 “요즘 우버 기사들 평판이 안 좋아. 나는 우버를 탈 경우에는 꼭 여자 기사를 보내 달라고 해”라고 했다. 그러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한 친구가 차분하게 “내 생각에, 그 우버 기사가 너를 속일 생각이었으면 다짜고짜 다른 방향으로 가지 않았을 것 같다. 처음에는 비슷하게 가다가 네가 방심한 틈을 타서 다른 방향으로 갔겠지. 혹시 다른 곳으로 가는 손님과 널 헷갈렸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다들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나도 생각해보니 그 친구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 친구가 “그런데, 그 사람이 왜 너를 납치했다고 생각했니?”라고 내게 물었다. 나는 “그날 우버 기사 눈에 잘 띄라고 쫄바지에 노란 셔츠를 입고 모자를 썼어. 서양인들이 동양 여자들 나이를 잘 모르니, 우버 기사가 나를 젊은 아가씨로 착각하고 납치한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 친구가 웃으면서 “착각은 자유지만, 네가 아무리 쫄바지에 노란 셔츠를 입었다 한들 노인은 자세부터 구부정한 것이 젊은이 하고는 많이 틀리다”고 했다. 다른 친구도 “너 자신을 아세요”라고 놀려 다들 한바탕 웃었다. 우버 기사는 손님을 확인하지 않고 태운 큰 실수를 했고, 나는 내 나이 생각을 잊고, 흉악한 납치범에게 납치당했다고 생각했다. 피차의 착각과 실수가 빚은 해프닝을 공포의 스릴러로 만든 나의 망상이야말로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내가 겪은 그날 일은 당황스러웠지만 돌아보니 확인 안 하고 우버를 탄 나도 잘못이 있다. “정신 차려, 이 바보야.” 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듯하다. 배광자 / 수필가문예마당 스릴러 코미디 여자 기사 택시 기사 기사들 평판
2025.11.06. 1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