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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연두

회색과 초록 사이 간절한 시간을 열고 회색에 매달린 우울을 털어낸다 가슴을 활짝 펴고 급히 지나가는 봄을 깊숙이 들이마신다 더는 버티기 힘든 무채색이   서둘러 그림자를 지우고 꼬리를 찾아 기억 속으로 사라진다 색을 입에 물고 붓질을 시작한다 새순을 톡톡 치고 꽃망울을 그린다 잎을 제치고 꽃부터 밀어낸 나무들은 벌써 얼굴이 하늘과 교감하며 허공에 풀어진다 꽃잎은 파문을 일으키며   문자가 되고 시가 되어 사뿐히 내려앉는다 꽃 장례의 진혼곡이 울려 퍼진다   오월은 옷을 갈아입을 시간 오늘은 연두 내일은 초록 오늘은 꽃분홍 내일은 양홍 봄의 탄성이 우렁차다 갓 태어난 진달래가 헉헉댄다 정명숙 시인글마당 연두 회색과 초록

2024.05.24. 21:45

[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연두, 그 비밀의 사랑

한 주가 살같이 날아갔습니다. 잡을 수도 잡히지도 않는 시간은 나와는 아랑곳하지 않고 속도를 유지하며 내 시야를 빠르게 지나쳐 갑니다. 이제는 지나치는 시간을 내 눈에 담고, 귀로 듣기 위해 그 자리로 찿아 나서는 길 밖엔 없습니다. 교회를 가는 길에 Higins park를 지나게 됩니다. 속도제한은 45mile이지만 가능한 속도를 줄여서라도 길 옆으로 길게 펼쳐지는 자연림과 그 뒤 길고 큰 호수와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즐거워집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연둣빛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park에 들렸습니다. 코 끝으로 성큼 다가오는 봄 내음. 의심 없이 봄은 park 구석구석으로 번져가고 있습니다.   온 대지는 간지럽습니다. 웃고 있지는 않지만 의식을 회복하고 있음에 틀림 없습니다. 기지개를 펴는 나무 뿌리는 온 땅에 가득하고 거대한 들판엔 연둣빛이 만연합니다. 귀를 기우려 보지만 들리는 소리는 없습니다. 가까이 귀 기울이면 흐르는 시내의 물소리로 전해 오는 다정하고 깊은 울림입니다. 고요는 숨겨진 비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봄을 향한 사랑입니다.       그 비밀의 사랑   연둣빛 유혹 앞에 어쩌다 꽃이 피면 새벽 빛에 스며드는   바람의 소리 지척에 향기가 피어나 분주하지 않아도 소리 높이지 않아도 잔잔히 달아 올라 제 길로 가는 봄날 이거늘 오늘 너에게 배운다     하늘에 별이 빛나듯 새벽 미명, 낮은 언덕 위   여명이 타 오르고 지나쳐 꽃이 피고 져도 가진 것이 너무 많아 헤아리지 못하였거늘 뒤란 꽃망울은 남김없이   꽃 피운 뒤 꽃대 위로 씨방을 맺거늘 오늘 또 너에게 배운다     그 비밀의 사랑,   고요     조금 이른 시간, 다시 어둠이 걷히고 하루가 열리는 시간입니다. 고요가 넓게 퍼져있는 호숫가를 걷고 있습니다. 신체의 모든 세포들이 깨끗하게 살아나는 청명하고 맑은 기운을 느끼고 있습니다. 깨끗한 거울을 마주하는 기분입니다. 하얀 커튼을 제치고 창밖을 바라보듯 봄기운이 물씬 풍겨옵니다. 연둣빛이 만연한 대지위로 별빛 떨어진 자국처럼 푸른빛이 도는 낮은 꽃망울이 터져 군데군데 푸른 물감을 뿌려 놓은듯 신기롭기만 합니다. 아스팔트와 시멘트를 부어놓은 곳을 제외하고는 온 땅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가진 것이 많아, 내려 놓지 못해 늘 불룩한 주머니를 확인하고서야 잠들 수 있었던 우리의 한계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곳. 허미진 곳을 찿아 피운 착한 꽃들과, 지고 난 후에도 성실함으로 꽃 대궁 위 씨앗을 만들어내는 그 비밀의 사랑을 배우고 있습니다. (시인, 화가)   신호철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연두 비밀 사랑 연둣빛 사랑 고요 연둣빛 유혹

2022.03.2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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