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행복은 발견이자 누림
행복은 마음먹은 만큼 누릴 수 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늘어나는 주름만큼 마음도 가벼워지고 가벼워진 만큼 행복한 순간도 자연스레 늘어난다. 무언가를 더 얻기보다는 덜어내는 쪽으로 삶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나는 문득 어깨 위에 내려앉은 조용한 행복을 발견하곤 한다. 젊은 날에는 앞만 보고 달렸다. 이뤄야 할 목표, 증명해야 할 존재, 멈추면 안 된다는 강박, 그 시절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는 천천히 시야에 들어온다. 눈이 6인치 이상 내린 토요일 딸에게 전화했다. 나를 너희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9살 된 손주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눈이 많이 내리면 둘이서 눈사람을 만들기로 했다. 집에 내가 도착하니 손주가 너무 좋아했고 벌써 스키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나도 대충 두꺼운 재킷과 스키 신발로 갈아 신고 밖으로 나왔다. 날씨가 추웠지만 손주와 나는 눈을 굴리다가 힘이 들어 더럭 눈 위에 누워 버렸다. 조금 쉬운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 쓰레기통을 가져와 눈을 듬뿍 쓸어 담았다. 서로 꾹꾹 눌러가면서 담아서 뒤엎어 눈을 빼냈다. 다음은 조금 작은 쓰레기통을 사용했고 제일 윗부분은 큰 화분을 이용했다. 손주는 너무 신나고 좋은지 뛰어가 옆집 친구들을 불러 왔다. 모두 모인 아이들이 눈사람 만드는 것이 처음이라서 서로 만져보고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한 아이에게는 솔방울 두 개를 주면서 눈을 붙이라고 코는 긴 당근을 주면서 입은 조그마한 자두를 주고 만들어 보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간격도 조화 있고 보기 좋게 만들면서 웃고 난리가 났다. 오래된 마후라를 목에 걸치고 모자를 씌워 주었다. 아이들이 눈을 손으로 뭉쳐 서로 던지고 맞고 야단법석이다. 너무 놀아 지쳤는지 눈 위에 누워 눈으로 덮어 달라고 주문한다. 아이들이 나란히 눈 이불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눈과 같이 호흡하고 눈 인양 좋아한다. 소박하지만 잊지 못할 순간들이었다. 눈 위에 두 팔과 다리를 벌리고 누웠는데 문득 허탈함 속에서 잃어버린 일상을 되짚게 되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복권에 당첨된 사람과 큰 사고를 겪은 사람의 1년 후 행복지수는 거의 같다고 한다. 외부 자극은 일시적일 뿐 우리는 결국 익숙한 일상으로 되돌아온다. 즉 행복은 어느 지점에서 얻는 무언가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있다. 집안으로 들어온 손자 친구들에게 따뜻한 코코아차를 만들어 주고 서랍 속에 있는 쿠키를 내어주었다. 마시고 먹으면서 재잘거리는 소리도 귀엽고 빨개진 볼이 보기 좋았다. 오후 햇살은 창틀에 머물고 바람은 커튼을 가볍게 흔들었다. 이 평온한 시간이 행복이라는 말이 마음 깊은 곳에서 새어 나왔다. 특별하지도 않고 거창한 성취도 없는 날 그저 평화롭지만 심심한 시간 속에서 내가 나를 만나는 순간 행복은 복을 행한다는 뜻인 것 같다. 복은 하늘이 내리는 선물이고 행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다. 행복은 삶을 누리는 능력이며 지금 이 자리에서 그것을 알아채는 감각이다. 주행 중 푸르게 바뀐 신호등, 반가운 문자 알림, 내 호의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준 친구, 행복은 그렇게 일상의 틈마다 조용히 숨어있다. 행복은 얻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삶을 감사의 눈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드러난다. 때로는 불행의 그림자를 지난 자리에 조용히 앉아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행복 발견 친구 행복 순간 행복 옆집 친구들
2026.01.15. 1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