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투 달라스교회(IN2 Dallas Church, 담임목사 박대원)가 창립예배를 드리고 예수의 마음을 품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선교적 교회의 첫 발을 내디뎠다. 인투 달라스 교회는 26일(일) 프리스코에 위치한 프리스코 홀(Frisco Hall)에서 창립예배를 드렸다. 인투 달라스 교회는 미주 온누리 비전교회의 협력교회로 뉴저지 온누리교회에 의해서 달라스 지역에 개척된 교회다. 미주 온누리 비전교회 본부장인 마크 최 목사는 최근 몇 년간 미국의 많은 인구가 텍사스로 이주하는 현상을 지켜보며, 달라스 지역에 사도행전적 교회의 비전을 가진 교회가 필요함을 인식해 교회 개척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교회의 이름은 20년 전에 뉴욕 맨하튼에 개척된 ‘뉴욕IN2’의 이름을 따라 ‘IN2 Dallas’로 정했으며, 뉴저지 온누리교회에서 사역하던 박대원 목사를 작년7월에 달라스로 파송해 개척을 시작하게 했다. 지난해 7월7일부터 10 가정이 함께 모여 주일예배를 드리기 시작한지 7개월만에 이번 창립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다. 인투 달라스 교회 창립예배는 심형진 목사의 찬양인도, 최경주 장로, 이용규 선교사, 홍재회 선교사의 축사, 이재훈 위임목사, 박종길 목사, 이찬수 목사의 영상 축하 메세지, 마크 최 목사의 설교, 박대원 목사의 축도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이재훈 위임목사는 영상 축하 메세지를 통해 “달라스 지역에 IN2 달라스 교회가 시작됨으로써 사도행전적 교회의 비전을 더욱 힘있게 이루어 나가게 된 것에 감사드린다”며 “미주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통로가 되길 바란다”고 축복했다. 해외비전교회 협력위원회를 섬기는 박종길 목사 또한 영상 축하 메세지를 통해 “미국 남부지역에 Acts29의 비전과 예수바보행전을 써가는 귀한 교회가 세워짐에 감사하다”며 “개척의 기쁨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고 축복했다. 창립예배의 설교자인 마크 최 목사는 누가복음9장10~17절의 말씀을 바탕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헌신하는 선교적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히 이날 예배에는 마크 최 목사와 더불어 60여명의 뉴저지 온누리교회 성도들이 창립을 축하하기 위해서 동부에서 달라스까지 3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와 참석해 감동을 더했다. 박대원 목사는 “앞으로 인투 달라스 교회가 달라스를 넘어 텍사스에, 텍사스를 넘어 미주에, 미주를 넘어 열방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행전적 교회로 쓰임받을 것을 믿는다”고 포부를 밝혔다. 인투 달라스 교회는 매주 일요일 오전10시30분과 오후1시30분에 달라스 프리스코에 있는 프리스코 홀을 빌려서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다. 인투 달라스교회는 텍사스에 거주하는 한인과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을 복음화하는 비전을 가지고 뉴저지 온누리교회에 의해서 개척됐다. 박대원 목사는 “IN2라는 이름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두 가지 부르심을 의미한다”며 “그 부르심은 ‘예수께로 오라’(마태복음 11:28)는 예배의 부르심, ‘세상으로 가라’(마태복음 28:19)는 선교의 부르심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주일 1부 예배는 오전 10시30분 성인, 차세대 예꿈 및 꿈땅, Power Wave 등의 내용으로 진행되고, 2부 예배는 오후 1시30분엥 드려진다. 인투 달라스 교회 주소는 5353 Independence Pkwy. Ste 1, Frisco, TX 75035이며 웹사이트는 in2dallas.org다. 〈토니 채 기자〉 예수 마음 뉴저지 온누리교회 달라스 교회 선교적 교회
2025.01.31. 7:42
이제 부활절이다. ‘부활’은 인류 역사의 최고 정점이다. 누구나 예외 없이 맞이할 수밖에 없는 죽음을 쳐부수고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이건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대 사건이다. 바로 기적 그 자체다. 인류 역사에서 이같은 기적이 일어난 적이 언제 또 있었던가. 예수 부활은 그래서 단 하나, 유일무이한 패러다임인 인류 역사의 정점이 될 수밖에 없는 최대의 대사건이다. 그래서일까? 2000년의 긴 시간을 보내면서도 많은 사람이 그 사건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워낙 그 사건 자체가 믿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진짜인지 ‘증거(?)’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 오죽했으면 3년간을 함께 생활했던 당시 그분의 제자 토마스마저도 직접 눈으로 그분의 상처를 확인하고서야 어렵사리 스승의 부활을 믿게 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증거는 너무나 단순하고 확실하게 드러나 있다. 너무나 단순하기에 오히려 간과하기 쉬운 증거 말이다. 그것은 바로 ‘빈 무덤’ 이다. 무덤은 ‘죽음’의 상징이다. 무덤을 보면서 아무도 그 안에 묻혀 있는 사람의 주검을 의심하지 않는다. 무덤 자체가 바로 죽음의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성서 안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장황한 과학적 증거가 아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그분의 시신이 묻힌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한마디로 나와 있다. 그 까닭에 ‘빈 무덤’은 부활절을 맞는 우리 모두에게 부활의 기쁨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갖게 되는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의 해방이기에 우리는 기쁠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무시무시한 죽음의 원인인 질병과 사고, 재난, 실패와 좌절, 절망과 공포마저도 우리를 가두어 놓지 못한다는 ‘부활’에 대한 믿음과 희망으로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성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내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은, 어떤 처지에서도 항상 기뻐하십시오! 항상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언제나 기도하십시오( 데살로니까 전서5:16)”라고 일깨워 주시고 있는 것 아닐까. 모두 행복한 부활절 보내세요! 해피 이스터(Happy Easter)! 김재동 / 가톨릭 종신부제열린광장 무덤 예수 예수 부활 예수 그리스도 무덤 자체
2024.03.28. 20:38
잘나가는 광고 회사의 대표였다. 삼성, 소니, 파나소닉 등 유명 기업이 모두 고객이었다. 어느 날 그 회사를 접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정민(평촌새중앙교회) 이사장은 “보통 하루에 300여 개의 광고를 만나는데 그중 예수 광고가 하나도 없더라”며 “그때 회사를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복음 광고에 뛰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기독교 광고를 제작하는 선교 기관이자, 비영리단체 ‘복음의 전함’은 그렇게 2014년에 설립됐다. 유명 광고 기획자였던 고 이사장은 현재 미주 지역을 방문 중이다. 한인 교계를 돌아다니며 온라인 전도 플랫폼 ‘들어볼까’를 통해 블레싱USA캠페인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26일 고 이사장을 만나 그가 말하는 ‘복음’을 들어봤다. 잘나가던 회사를 접었는데. “기업들은 일을 의뢰할 때 몇억 원씩 선금을 준다. 돈이 쌓여가는데 순간 유혹을 이기지 못하겠더라. 예수님은 나만 생각하지 않나. 그런데 나에게 예수는 ‘One of Them(여럿 중 하나)’이었다. 그래서 정리하고 사재를 털어 예수님을 광고하기로 했다.” 뉴욕 타임스퀘어에도 복음 광고를 했는데. (복음의 전함이 2016년에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당시 영문 광고 카피 내용은 ‘사랑한다면 눈을 감아보세요. 조용히 눈을 감고 하나님께 기도해보세요.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였다.) “우리 아이가 그때 유학 생활을 하고 있었다. 타임스퀘어 광고 계약금을 내야 했는데 그 돈이 딱 우리 아이에게 대주려던 한 해 학비와 같았다. 회사를 접고 복음의 전함을 계속 운영하니 돈이 어디 있었겠나. 그냥 하나님만 믿고 그 학비를 계약금으로 냈다. 이제 운영 9년 차인데 많은 동역자가 생겼다. 기도해주시는 분만 3만여 명이다.” 운영에 어려움은 없나. “직원만 스무 명이다. 어려운 일은 매우 많다. 그러나 솔직히 가장 어려운 건 광고를 만들면서 예수님이 아닌, 자꾸 우리 마음에 들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자꾸만 세상 사람 눈에만 좋게 만들고 있더라. 사실 우리의 클라이언트는 예수님인데…그게 가장 어렵다.” (복음의 전함은 한국에서 블레싱 대한민국이라는 캠페인을 진행해왔다. 지하철, 버스정류장, 대형마트 등 곳곳에 복음의 메시지가 담긴 광고를 내걸었다. 급기야 팬데믹 때는 5500개 교회, 57개 도시, 12만6000대의 버스 및 택시 등에 복음의 전함에서 제작한 기독교 광고 문구가 붙었다.) ‘들어볼까’는 무엇인가. “맛집이나 좋은 카페가 있으면 공유한다. 그런데 내가 품고 있는 전도 대상자를 떠올리며 공유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해보니까 뭐가 없더라. 구글에 ‘예수’ ‘Jesus’를 검색해보니까 아무것도 없고 지식 백과만 나왔다. 이 세상에 교회와 크리스천이 얼마나 많은데 당장 공유할 수 있는 홈페이지 하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마음이 힘들었다. ‘들어볼까’는 셀럽들이 직접 나와서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를 5분 정도 들려주는 간증 영상이다.” 어떻게 만들게 됐나. “한 목회자를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이 우리에게 기독교 광고를 하는 건 좋은데 광고를 보고 난 후 ‘next(다음)’가 무엇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그래서 만들게 됐다. 지금까지 배우 윤은혜, 신현준, 개그우먼 이성미, 박미선 등 60여 명의 셀럽이 영상을 찍었다. 또 목회자 100여 명이 비신자들이 궁금해 할만한 질문에 답해주는 영상도 있다. 영어 자막도 달아서 많은 이들이 볼 수 있게 했다.” 미국을 방문한 이유는. “미주 지역에 200만 명의 한인이 산다는데 이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교인들에게 소속 교회와 자신을 설명하는 복음 명함을 만들게 하고, 차량에 기독교 메시지가 담긴 스티커를 붙이게 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먼저 남가주 지역을 중심으로 25개 교회 목회자들을 만나 취지를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블레싱 대한민국이라는 캠페인으로 시행됐는데 현재 우리 콘텐츠를 쓰는 곳이 4000여 곳 정도 된다.” 복음 명함은 무엇인가. “간단한 신상과 기독교 메시지가 담긴 명함이다. 명함 뒷면에는 QR코드도 있다. QR코드로 들어가면 소속 교회의 목회자가 복음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는 영상을 볼 수도 있다. 전도하기도 좋고, 비신자에게 부담 없이 건넬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복음의 전함은 여러 광고 문구를 제작해 선보이고 있다. 예시로 보여준 복음명함에는 ‘당신이 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을 이야기하면 싫어할 사람이 있겠느냐. 나도 곰곰이 생각해봤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한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행복하더라. 땅을 사도, 회사에서 진급해도행복하겠지만, 사람들이 예수님이 있기 때문에 진정 행복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당신이 행복해지는 이야기’라고 하니까 다들 찾아보더라.” 광고는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내 전부다. 그 전부를 그동안 세상의 클라이언트를 위해 사용했다면, 이제는 예수님을 위해 계속 사용했으면 좋겠다. 종종 사람들이 복음의 전함 비전에 관해서 묻는다. 사실 특별히 없다. 우리는 ‘양’ 아닌가. 양이 무슨 비전이 있겠나. 목자만 잘 따라다니면 된다.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보여주신 일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은 우리에겐 심부름과 같은 일이다. 나는 이 단체의 이사장이다.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다. 그때까지 예수님이 맡겨주신 일을 최선을 다해 할 뿐이다.” ☞복음의 전함은 의미가 중의적이다. 알린다는 의미의 ‘전함’과 군용선을 뜻하는 ‘전함’을 내포하고 있다.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과 복음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위해 광고로 예수를 전하는 단체다. 도심 빌딩, 대중교통, 티셔츠, 교회 외벽 등이 모두 그들의 광고판이다. 한국뿐 아니라 브라질, 태국, 뉴질랜드, 크로아티아 등 각국을 대상으로 육대주 광고 선교 캠페인도 진행했다. 복음의 전함 콘텐츠는 웹사이트(www.jeonham.org)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셀럽들의 간증은 유튜브 검색창에서 ‘들어볼까’를 입력하면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다. 장열 기자 [email protected]광고 예수 예수 광고 복음 광고 기독교 광고
2024.01.29. 18:03
와싱톤중앙장로교회(담임목사 류응렬, KCPC) 설립 50주년 기념 성탄 음악회가 25일 크리스마스 당일에 열렸다. KCPC 찬양대와 중창팀을 비롯 전 세대가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귀한 시간에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해 기쁨의 시간을 가졌다. 류응렬 목사는 “찬송은 사람이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예배요, 가장 고귀한 선물”이라며 “예수님 태어나신 성탄의 기쁨이 모두의 삶에 흘러 넘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윤미 기자 [email protected]평화 예수 기념 성탄 크리스마스 당일
2024.01.03. 10:23
건강한 사람에겐 의사가 필요 없다. 죄인을 위해 오신 예수님은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셨다. 그러나 세상엔 모두 선남선녀만 있어서 예수님이 거하실 곳이 없어졌다. 교회는 화려하고, 설교는 멋지고, 찬양대는 훌륭하다. 세상에는 예수님이 유하실 마구간도 말구유도 없다. 더는 고요한 밤도, 거룩한 밤도 없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는 크리스마스 카드도 실종되고 홀리데이(holiday) 카드로 변질하여 하나의 축제일이 되어버렸다.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 한 가지가 있다. 미국의 노예시대 때 한 흑인이 주인을 따라 교회에 갔다. 하지만 그곳은 백인 교회라 그는 들어가지 못하고 창밖에서 예배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예배는 드려야 하는데 보고만 있는 그의 곁에 한 백인 청년이 다가왔다. 이 청년도 그의 곁에서 교회 안의 예배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는 “왜 당신은 백인인데 교회 안에 들어가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청년은 “나도 쫓겨났다. 그들은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 나는 예수인데….”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우리도 예수님이 없는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작 주인공은 안 계시는데 끼리끼리만 모여서 흥겹게 잔치하는 성탄절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계는 지금 전쟁과 자연재해 등으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고통받고 있다. 특히 전쟁으로 힘없는 어린이와 여성의 희생이 많다. 제발 이 귀한 예수님의 탄일 시즌만이라도 전쟁을 멈추고 평화의 그리스도를 맞이할 수는 없을까? 오늘도 두 손 모아 기도한다. 낮엔 해가, 밤엔 달이 세상 곳곳을 비추듯 그리스도의 사랑이 소외되고 병든 이웃과 환난으로 신음하는 모든 사람에게 넘치기를 기도한다. 노영자·풋힐랜치독자 마당 죄인 예수 크리스마스 카드 백인 청년 정작 주인공
2023.12.19. 19:15
유기성 목사의 ‘예수동행’ 워싱턴 동포복음화 대성회가 지난 2일 와싱톤중앙장로교회(담임 류응렬 목사)에서, 3일 메릴랜드 휄로십교회(담임 김대영 목사)에서 각각 열렸다. 워싱턴지역한인교회협의회(회장 심대식 목사) 주관으로 열린 2일 집회에서 유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아는 것과 믿는 것은 엄청남 차이가 있다”면서 “많이 아는 것으로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며 말씀을 진짜 믿을 때 역사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베드로가 물위를 걷는 체험을 이야기하며 예수님을 믿고 산다는 것은 물위를 걷는 것과 같은 삶이라고 설교를 이어갔다. 그는 “우리의 실제 삶도 풍랑 이는 바다의 상황과 항상 똑같다”면서 “예수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진짜 믿게되면 어떤 풍랑이 와도 세상이 두렵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예수님을 영접했음에도 예수님이 실제로 함께 계신것을 믿지 못하는 성도들이 많은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유 목사는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지만 재정적, 신체적, 사회적으로 문제가 일어날 때 염려와 두려움에 사로잡힌다면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실제로 함께 계심을 믿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예수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시고 말씀이 귀에 들리지도 않아 예수님을 잊고 살고 있으며, 예수님을 실제로 바라보지 않아 풍랑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 목사는 ‘예수님을 믿어도 삶은 안 바뀐다"고 탄식하는 사람들에 대해 ‘만약 담임 목사님을 집에 모시고 살면 어떨까’에 대한 비유를 들며 “‘분명히 부부와 자녀와의 관계, 생활에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인데, 하물며 예수님이 내 안에 실제로 계시다는 것을 믿으면 어떻게 삶이 바뀌지 않겠느냐”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은혜를 사모하지만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는 ‘이미 받은 은혜에 눈이 뜨이는 것’ 뿐”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유 목사는 13년전 건강회복을 위해 제주에서 한달 안식월을 가질 당시를 회상하며 “‘주 예수님만 바라보고 한달을 살라’는 강한 성령의 감동을 받고 목사였으면서도 당황스럽고 곤혹스러웠다”며 “그러면서 일기를 쓰기 시작해 ‘주님’을 부르며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의 끝에 얼마나 주님을 바라봤는가를 기록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끝으로 유 목사는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비서가 될 수 있는 은혜를 허락받았다”면서 “주님이 배드로에게 ‘물 위를 걸어 내게 오라’하셨을 때 베드로가 따른 것 처럼, 우리 안에도 그런 ‘순종’이 있었야 한다”며 물 위를 걷는 성도의 삶을 이야기 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순종의 길을 가다 보면 풍랑속에 빠지는 어려운 일도 만나게 되지만 그것이 두려워 예수님과 함께 물위를 걷는 경험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강조하며 “파도를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볼 것”을 당부했다. 이어 자유로운 기도시간을 가지며 집회는 마무리 됐다. 한편, 유 목사는 내년 9월, 220여개국 나라, 5천 여명의 전세계 지도자들이 모이는 제 4차 로잔대회에 한국준비위원회 의장을 맡아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김윤미 기자 [email protected]풍랑 예수 담임 목사님 유기성 목사 담임 김대영
2023.06.05. 14:33
열린문 장로교회(담임 김용훈 목사)는 제 3세계 빈곤국가 어린이들을 후원하는 컴패션 아동 결연 사역 일환으로 지난 21일,22일 양일간 가난 체험 행사인 ‘컴패션 저니’를 개최하고 23일 주일예배를 컴패션 예배로 드렸다. 이날 예배에는 미주 대표인 문영명 목사와 도미니칸 리퍼블릭의 컴패션 수혜자인 벤자민 누네즈 마카리오스(Makarios) 대표의 간증과 말씀으로 진행됐다. 문영명 목사는 “열린문 장로교회의 동역에 감사를 전한다”면서 “빈곤 가운데 있는 어린이들과 가정들이 컴패션 지원을 통해 희망을 갖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훈 담임목사는 “열린문 공동체가 21년전부터 컴패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은 빈곤의 그늘에 있는 다음 세대 자녀들의 육적인 문제와 영적인 문제를 함께 돕는 길”이라면서 “꿈을 잃은 어린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자”고 강조했다. 열린문교회 양승권 컴패션 팀장은 “컴패션 결연 행사를 통해 한어권과 영어권 교회 107여명 성도들이 빈곤 국가의 어린이들과 결연했다"고 밝혔다. 컴패션 미주지부는 미국 이민 교회들과 후원자를 통해 빈곤국가 어린이들의 배고픔을 해결하고 학업과 신앙으로 선교하는 일에 동원하고 있다. 한편 열린문 교회 성도들은 컴패션 사역을 후원, 현지에 방문해 기도하고 매년 컴패션 주일을 섬기며, 다음 세대를 살리는 일에 후원해 오고있다. 현재 열린문 장로교회는 1천 3백여명의 어린이들과 결연했다. 김윤미 기자 [email protected]예수 사랑 예수 사랑 빈곤국가 어린이들 김용훈 담임목사
2023.04.24. 14:56
열린문 장로교회(김용훈 담임목사)가 부활절을 맞아 지난 9일 오전 6시, 타민족 지역이웃들과 연합 부활절 새벽예배를 드렸다. 매년 영어권 교회와 한어권 교회 연합으로 부활절 새벽예배 전통을 이어오던 교회는 지난 2017년부터 지역 타문화 교회를 초청해 다민족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부활절 새벽예배를 새롭게 굳혀 가고 있다. 이번 새벽예배는 김용훈 담임목사와 영어권 David Chang Lead Pastor의 예배 부르심으로 시작해, 찬양으로 ARABIC BETTER LIFE CHURCH, WORD OF LIFE CHURCH, SALAM CENTER(MD)가 함께 했다. 볼티모어 살람 센터(MD)에서 난민 정착 사역과 최근 아프간 난민 이웃 섬김을 시작한 레다 목사가 사역 보고와 기도를 인도했으며 ARABIC BETTER LIFE CHURCH의 FARAGE목사와 찬양팀이 아랍어로 ‘예수 부활 하셨네’를 찬양했다. 이날 설교를 맡은 열린문 교회 존 차 영어권 목사는 요한계시록 22장 1-5절의 말씀을 인용한 ”Living Now in the Light to Come”을 주제로 설교했다. 이어 이란에서 교회 지도자로 목회하며 감옥 생활을 겪고 터키를 거쳐 버지니아로 이주해, 현재 온라인 말씀 사역과 교회 사역을 이끄는 WORD OF LIFE 이란공동체 교회의 FAHARD 목사가 부활의 의미와 기도로 예배를 마친 후, 지역 교회 성도들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뻐하며 식사와 교제를 나눴다. 한편 열린문 교회의 부활절 다민족 연합예배는 교회를 빌려 예배하는 지역의 타민족 이웃 교회와 공동체의 고충을 이해한 김 목사가 이웃 교회를 예배에 초청하면서 시작되었다. 아울러 열린문교회는 꾸준히 타민족 교회 학교와 살람센터 지원에 앞장서고 있다. 김윤미 기자 [email protected]예수 부활 부활절 새벽예배 연합 부활절 예수 부활
2023.04.10. 14:40
1970년대 캘리포니아에서 일어난 기독교 부흥 운동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예수 혁명(Jesus Revolution)'이 극찬 속에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당시 영적 각성 운동이었던 '예수 운동(Jesus Movement)'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며 전국 2400개 이상 상영관에서 개봉, 누적 흥행 수익만 3000만 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 영화는 남가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데다 당시 젊은 세대였던 중장년층의 종교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주목을 받고 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실재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관객과 공감대를 쉽게 형성한다. 영화 속 인물인 그렉 로리 목사는 현재 리버사이드 등 곳곳에서 캠퍼스 교회를 둔 '하비스트 크리스천 펠로우십(Harvest Christian Fellowship)'을 운영하고 있다. 예수 운동을 이끌며 LA 갈보리 채플을 개척했던 척 스미스 목사(2013년 사망)의 신앙 이야기도 담겨있다. 영화 '예수 혁명'이 지금 이 시점에서 주목받는 이유에 대해 알아봤다. 기독교 신앙을 기반으로 한 영화가 박스오피스 순위권에 진입한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데이브 노 목사(어바인)는 "곳곳에서 전통적인 기준이 무너지고 새로운 사상과 가치관이 대두하면서 오히려 많은 이들이 과거를 그리워하고 그 시대를 다시 갈망하게 되는 것 같다"며 "예수 혁명은 그러한 의미에서 당시 기독교가 어떻게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줬고, 그들을 신앙으로 회복시켜 나갔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주며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예수 운동은 남가주에서 젊은 히피 세대를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일었던 영적 각성 운동이었다. 영화는 1970년대 당시 히피였던 그렉 로리가 히피 출신 설교자인 로니 프리스비를 만나 예수를 영접하고 수많은 젊은이와 함께 삶의 의미와 진리를 찾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를 본 김서준(28.LA)씨는 "영화에서는 교회 내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그려지는데 교회 문이 진정한 의미에서 열릴 때 부흥이 일어나더라"며 "당시 젊은 세대가 예수를 믿고 기독교의 부흥을 경험하는 것을 보면서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로서 부럽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실제 영화에서는 당시 전통적인 교회의 사역자였던 척 스미스 목사가 히피족의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수용하라는 프리스비 전도사의 조언을 듣고 방황하던 히피들을 갈보리 채플로 불러 수많은 젊은이를 예수 운동으로 이끌게 된다. 이 영화는 오늘날 시대상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렉 로리 목사는 크리스천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그때도 거리에는 폭동이 있었고, 인종 갈등, 전쟁의 공포 등으로 미국이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로리 목사는 "오늘날 각종 문제로 인해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젊은 세대를 보면 내가 젊었을 때인 1970년대 당시 문제에 대한 답을 찾으려 했던 당시 청년들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그때 우리 세대가 희망이 필요했듯이 이 영화를 통해 오늘날 젊은이들도 희망과 답을 찾길 바란다"고 전했다. 특히 영화 '예수 혁명'은 지난 2월 에즈베리대학에서 16일간 이어졌던 부흥 예배 소식본지 2월 28일 자 A-16면〉과 맞물리며 주목을 받고 있다. 영화를 만든 존 어윈 감독은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에즈베리대학에서 일어난 부흥이 전국을 휩쓴 가운데 많은 이들이 이 영화에도 주목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는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 하심 가운데 이루어진 것임을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어윈 감독은 타임지가 당시 1면(1971년 6월 21일 자)에 예수의 얼굴과 함께 'The Jesus Revolution(예수 혁명)'이라고 장식한 표지를 보고 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만큼 당시 예수 운동이 사회 전반에 미친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유석 목사(LA)는 "영화에서 전도사가 '나 같은 사람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당신이 마음을 열 때 모두에게 자리가 생긴다'는 대사가 있었다"며 "당시 교회가 진정한 의미에서 문을 열었더니 복음을 통해 그 시대에 소망이 퍼져나가는 걸 보면서 깨달음이 컸다"고 말했다. 당시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록 음악, 자유로운 이성 관계, 쾌락 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했다. 자유, 평화 등을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 우드스탁 페스티벌 등도 유행했다. 그렇다 보니 반작용으로 무분별한 자유를 반대하고 절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일부 히피들이 새로운 기독교 운동을 펼치면서 일어난 것이 예수 운동이었다. 월드미션대학 가진수 교수는 "당시 예수 운동은 코스타메사 지역 갈보리 채플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며 "기독교의 직설적이고도 복음적인 가사와 당시 유행하는 록 음악의 결합을 통해 경직되고 획일적인 모습을 개혁하고자 하는 움직임이었다"고 전했다. 당시 교회들은 고전적인 찬양과 경직된 형태로 운영됐었다. 하지만, 예수 운동을 통해 젊은 세대가 교회로 유입되면서 교회 음악이 서서히 바뀌고 염세주의에 빠져있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감각으로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기독교 문화 전문가로 활동하는 알렉스 맥팔랜드 작가는 크리스천 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점차 '워크(woke)' 영화 등의 폭격으로부터 떠나고 싶어하는 대중의 심리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워크'는 '깨어있다'는 뜻으로 오늘날 인종, 성 정체성, 환경, 동성결혼 등 각종 사회적 이슈에 대해 진보적 사상을 견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맥팔랜드 작가는 "이 영화에는 기독교 예수 운동에 따른 반응이 수십 년간 지속할 때 시대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절감케 하는 가치가 배어있다"며 "예수 운동의 여파로 수많은 젊은이가 복음을 통한 사랑을 접하고 개발도상국으로 선교를 떠났으며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 단체들이 생겨났다"고 전했다. 장열 기자 [email protected]예수 암울 예수 운동 예수 혁명 영화 예수
2023.03.20. 18:32
예수의 탄생과 공생애, 수많은 이적들, 죽음과 부활이 펼쳐진 예루살렘은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평생에 한 번쯤은 꿈에 그리는 성지순례지다.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고'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잔잔하게' 된 그 갈릴리 호수는 모양이 둥그스름하다. 예수는 또한 이곳에서 물고기를 잡던 베드로와 안드레를 물고기가 아닌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었고, 야고보와 요한 등도 제자로 삼아 키웠다. 갈릴리 북부 지역에는 오병이어가 모자이크화로 선명하게 새겨진 오병이어 교회, 부활한 예수가 베드로를 찾아와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라고 한 베드로 수위권 교회가 위치하며 유대 회당에서 설교를 한 가버나움과도 가깝다. 조금 멀리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살았다는 마을, 서남쪽에는 예수가 자란 나사렛이 자리한다. 또 성서의 주요 무대인 사해는 '명상의 바다' '고요의 바다'다. 염도가 바닷물의 10배나 높아 몸이 물 위에 둥둥 뜨는 체험도 가능하다. 물 위에 떠서 여유롭게 신문이나 책을 읽어도 좋고 인체에 유익한 광물질이 관절염에 좋다고 하니 머드팩도 즐겨봐야 한다. 베들레헴에 위치한 예수탄생교회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아도니스 신전을 허물고 세운 교회다. 이곳을 찾는 순례객들은 으레 고개를 숙여야 한다. 본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겸손의 문' '작은 문'으로 불리는 어린아이 키만한 작은 돌문을 통과해야 하는 까닭이다. 계단을 따라 제단 밑으로 내려가면 14개 꼭지점을 가진 은색별 문양이 바닥에 콕 박혀 있다. 예수가 태어난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표시해둔 것이다. 순례객들은 차례로 예수 탄생을 묵상하며 참배한다. 이윽고 '십자가의 길' '슬픔의 길' '고난의 길'인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에 이르는 십자가 수난의 길을 따라 걸으며 '우리의 죄가 용서되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것을 묵상하게 되는데 예수가 십자가를 진 지점부터는 그야말로 눈물바다가 된다. 골고다 언덕에 오르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맞이한 뒤 안장된 묘지에 세워진 성묘 교회, 예수가 죽고 다시금 부활했다는 예수승천교회에도 닿는다. 또 그 옛날 모세가 자신의 백성들을 이끌고 맨 처음 요르단으로 들어온 곳이 페트라 지역이다. 우리에게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와 드라마 '미생'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페트라 유적은 눈이 부실 만큼 경이롭다. 기원전 100년께 장밋빛 사암을 깎아 만든 신전이자 무덤인 알 카즈네를 위시하여 '모세의 우물'로 통하는 와디 무사, 고난의 출애굽 과정을 마무리하는 느보산, 날이 맑으면 예루살렘의 감람산까지 볼 수 있는 모세기념교회 등의 명소를 품고 있다. 페트라는 지금도 발굴 작업이 한창이며, 아직 발굴되지 않은 유적이 99%가 넘는다고 한다. 이스라엘과 요르단, 이 땅에 예수의 흔적이 없는 곳이 없다. 박평식 / US아주투어 대표·동아대 겸임교수투어멘토 박평식의 여행 이야기 성서 예수 예수 탄생 오병이어 교회 페트라 유적
2023.01.12. 20:41
영상 한기총 예수 해명 기회
2022.12.15. 15:12
서양의 전통신학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너무 중시하는 바람에 예수의 삶이 가지고 있는 ‘고통받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놓쳐 왔고, 지금은 예수의 삶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한국 교회가 서양의 전통신앙을 고집하고 있는 역설을 주목하고 본 칼럼에서는 예수의 삶을 계속해서 다루고 있다. 물론 이것은 한국 교회가 서양의 새로운 신학적인 경향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서양도, 동양도 다 감당하지 못할 신비요, 기독교 신앙의 참된 내용이다. 결국 우리는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모두 다 아우르는 ‘참된 예수(real Jesus)’, ‘총체적 그리스도(total Christ)’를 이해하고 그 예수를 살아가야 한다. 예수의 선포는 이러한 균형과 깊이로 우리를 인도하는 마중물이다. 누가복음 14장:15-24절에서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초청에 대해서 선포하신다. 잔치에 초청받은 자들이 밭을 사고 소도 사고 장가도 들고 해서 초청에 응할 수 없다고 하자(14:18-20), 잔치의 주인은 종들에게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 몸 불편한 자들, 앞 못 보는 자들을 데려오고(14:21), 큰길과 시골길로 가서 (사람을) 억지로 다 데리고 와서 ‘내 집을 채우라’고 한다(14:23). 마태복음 20장 1-16의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일한 자들과 오후 늦게 일을 시작한 자들이 모두 동일한 품삯을 받는다. 하루 종일 일한 자들이 원망하자 포도원 주인은 “나는 품삯에 대한 약속을 지켰고,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하며,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것이다”(마20:13-16)고 말한다. 두 이야기는 하나님의 사랑이 선민 이스라엘로부터 고난받는 자들과 모든 사람에게로 확장되거나, 하나님의 은총이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동일할 것(같은 품삯)이라는 구속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신비에 대해서 엿볼 수 있다. 가장 놀라운 점은 하나님 나라의 개방성이다. 특별히 고난받는 자들에게 활짝 열려있다: 가난한 자, 몸 불편한 자, 앞 못 보는 자! 세상에서 버림받은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다. 더 나아가 큰길과 시골길에서도 강권하여 데려와 하나님 나라를 채운다. 한국어 성경은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오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원문에는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다. 데려와야 할 대상을 고난받는 자들로 이미 언급했기 때문에 생략했을 수도 있지만, 목적어를 생략함으로써 하나님 나라가 전 인류를 향해 열려있다는 것을 시사할 수도 있다. 심지어 그냥 무심하게 지나가는 자들을 억지로 끌고 올 정도로 하나님 나라는 열정적으로 개방적이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하나님 나라는 ‘불공평’하게 개방적인 나라다. 종일 일한 자들이나 한 시간 일한 자들이 모두 동일한 삯을 받는다. 그렇다면 불공평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 불공평의 동기가 명확하다: 장터에서 놀고 서 있는 자들(마20:3), 종일토록 일거리가 없어서 놀고 있는 자들(마20:6)을 불쌍히 여겨서 그들에게도 같은 은총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선하심이다(마20:14-15). 하나님 나라는 일자리가 없어서 놀고 있는 자들에게까지 개방적이다. 그들이 왜 놀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 수는 없지만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다”(마20:7)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게으름을 넘어서서 사회적, 구조적 문제로 유추해 볼 수도 있다. 우리 모두를 애타게 찾아다니며 하나님 나라로 초청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일과 삯의 균등한 주고받음’이라는 속 좁은 개별적 평등에 집착하는 모두의 마음을 활짝 열게 하는 기쁜 소식이기를 소망한다. 차재승 / 뉴브런스윅 신학대학원 교수삶과 믿음 하나님 예수 하나님 나라 서양도 동양도 선민 이스라엘
2022.07.28. 17:32
기독교는 가난한 자들의 종교인가?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막10:23). 부자 교회, 부자 기독교 국가도 많을 뿐만 아니라, 부자도 부자 나름인데 도대체 예수는 왜 이 ‘땅에서의 부’와 ‘하나님 나라’가 서로 양립될 수 없다는 것을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을까? 오늘 본문에서 부자는 구약의 계명을 잘 따르는, 따라서 영적으로도 부자였다(막10:19). 구약을 잘 따른다는 것은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과 나눈다는 것도 포함한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잘 돌보는 것이 구약의 중요한 가르침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이러한 구약의 가르침을 잘 지켰다는 부자에게 예수는 충격적인 제안을 한다: 너의 모든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 후에 나를 따르라(막10:21). 만약 예수의 가르침이 사실이라면 기독교는 지독하게 극단적인 종교다. 우리 가운데 자신의 재산을 모두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서 예수를 따르겠다는 자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본문은 부와 하나님 나라를 대비한 것이라기보다는‘영생을 스스로 얻으려는 자’와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을 대비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제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에 당황해서 “도대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질문하자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다”고 답했다(막10:26-27). 그러나 이어지는 본문에서 예수는 다시 “나와 복음을 위해서 집, 형제, 자매, 어머니, 아버지, 자식, 전토를 버린 자들은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선포한다(막10:30). 부모와 자식까지 버리라니 참으로 끔찍한 말씀이다. 따라서 본문이 ‘하나님의 구원’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혹은, 제자들이 자신들을 미화하기 위해서 예수의 가르침을 편집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제자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쫓았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나라보다는 세상 나라의 권력을 얻기 위해서 자신들의 것들을 버리고 예수를 쫓은 것으로 보인다(막10:37). 그들의 버림은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함이었다. 기만적 버림과 내려놓음은 우리에게도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본문의 주된 주제가 정말로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라면, 본문이 선포하는 하나님 나라는 무엇일까? 구약의 욥처럼 자신의 소유를 가난한 자들과 부지런히 나누는 착한 부자들에게 예수는 어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해주실 것인가? 본문을 통해서 ‘부자’가 누구인가 규정하기도 어렵고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의 올바른 의미를 파악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은 자신의 소유에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부와 하나님 나라를 따로 구분해서 이해하는 경우가 흔하고, 따라서 부를 합리화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한다’는 표현도 교회에서 심심찮게 듣는다. 그러나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것이 결코 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반되어야 하는 ‘버림, 내려놓음, 나눔’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기독교 역사에서 많은 성자가 자신의 소유를 버리고 예수를 쫓았다. 사막 교부들은 자신들의 소유를 버리고 사막에서 움집을 짓고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 명상했으며, 그들의 버림은 기도와 노동이라는 수도원 운동의 초석이 되었다. 부와 부를 축적하는 일체의 과정은 이 땅의 나라에 속한 일이요, 나를 비우고 하나님으로 채우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속하는 일이다. 이 선명한 예수의 가르침이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여전히 생명의 양식이 되기를 소망한다. 차재승 / 뉴브런스윅 신학대학원 교수삶과 믿음 하나님 예수 하나님 나라 세상 나라 부자 교회
2022.06.30. 17:17
라미라다 지역 유명 기독교 명문인 바이올라(Biola) 대학은 보수 복음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한 바이올라대학에서는 요즘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흐른다. 진보적인 목소리가 캠퍼스내에서 서서히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바이올라대학의 정체성에 균열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LA타임스는 10일 학교 내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 “대학내에서 보다 진보적이고 정의를 추구하는 기독교가 꽃을 피우고 있다”며 “한편으로 바이올라 캠퍼스내에서는 보수적 뿌리에서 벗어난 자유주의적 기독교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러한 흐름을 밀쳐내려는 움직임도 있다”고 10일 보도했다. 먼저 바이올라대학에는 예술가 켄트 트위첼이 지난 1990년 학생 회관 벽면 전체에 그려놓은 예수의 그림이 있다. 이 대학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많은 기독교인이 바이올라대학을 방문할 때마다 사진을 찍는 곳이기도 하다. 이 벽화는 단순히 예수의 그림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지난 2018년 바이올라대학을 졸업한 브리아나 응씨의 경우는 벽화 제거에 적극 앞장서고 있다. 응씨는 지난해 학교 측에 보낸 편지에 “벽화의 이미지는 역사적으로도 부정확할 뿐만 아니라 백인의 우월성, 백인의 권력, 구세주가 백인이라는 사상을 강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지난 2020년 2월에는 ‘흑인 역사의 달’을 맞아 캠퍼스에 붙어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지도자들의 포스터가 훼손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에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워싱턴DC 연방의회 진입 사건과 관련, 이 학교 학생 뉴스 사이트의 이바나 업쇼 오피니언 에디터가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젊은 기독교인들은 트럼프 지지자들로부터 멀어져야 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올렸다. 이후 업쇼 에디터는 엄청난 비난에 시달린 끝에 다른 대학으로 편입을 해야 했다. 업쇼 전 에디터는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때 일로 소외감을 느꼈다. 흑인 문제 등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마치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USC 종교시민문화센터 리처드 플로리 디렉터는 “이러한 긴장들은 미국에서 복음주의의 미래가 어떻게 보일지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바이올라대학에서 근무했던 리사 스웨인 교수는 이러한 충돌을 두고 “복음주의가 오늘날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학내에서는 학생간의 균열도 감지되고 있다. 지난 2016년부터 일부 학생, 졸업생 등 50여 명이 일요일마다 인근 한 연합감리교회에 모여 신학 토론의 모임을 갖고 있다. 바이올라대학의 보수적 사상에 대한 실망감이 모임을 구성하게 된 계기가 됐다. 신학에 대한 의문, 의심 등 자유주의적 신학을 소유한 학생들이 모이고 있는 셈이다. 반면, 보수적 정체성에 대한 갈등, 흔들림 등이 이어지자 바이올라대학의 학생 등록률은 감소하고 있다. 바이올라대학은 지난 2014년부터 2021년까지 학부생 등록이 18%나 감소했다. 내년 예산은 전년 대비 500만 달러 삭감됐다. 바이올라대학은 이미 지난 2012년에도 큰 논란이 된 바 있다. 이 대학 재학생, 졸업생, 임직원 등으로 구성된 ‘동성애자 클럽’이 커밍아웃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입학시 술과 담배 금지 등 까다로운 규정에 따를 것을 서명까지 하는 이 대학에서 동성애자 클럽이 존재했다는 것 자체가 전국에서 논란이 되기에 충분했다. 〈본지 2012년 5월26일자 A-1면〉 오렌지카운티 지역 한인 학부모 김모씨는 “학부모 입장에서 자녀가 보수적인 교육을 받았으면 하는데 바이올라대학도 이제는 믿지 못하겠다”며 “한가지 확고한 철학을 갖고 학교를 운영했으면 좋겠는데 워낙 사회가 다양화되다 보니 기독교 사상을 유지하는 게 참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바이올라대학 배리 코리 총장은 지난해 9월 학생 및 교직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본래의 사명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설립자들이 우리에게 준 가치를 버리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렇게 할때 우리는 더 신실해지고 강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총장이 설립 철학을 고수하자 스콧 래 신학교 학장도 한마디를 거들었다. 래 학장은 “우리는 본래의 정체성을 고수하고 성경에 충실한 학교들이 실제로 등록 학생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올라대학의 이슈는 오늘날 신학교 및 기독교 계열 학교들이 직면한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기독교 대학 입장에서는 난감한 게 사실이다. 남가주 지역 한 신학교 관계자는 “학교는 성경에 근거한 철학을 고수하려 하지만 이미 자유주의적 신학에 물든 학생들이 많아서 교육 방침이나 학교 운영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신학교가 어려움을 겪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러한 갈등은 수차례 표면화됐었다. 한 예로 한인 유명 목회자들도 다수 졸업한 패서디나 지역 풀러신학교는 지난 2013년 긴급 기자회견을 개최한 적이 있다. 당시 학교 측이 동성애자 학생이 포함된 교내 토론 그룹을 승인하자 보수 교계로부터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당시 풀러신학교측은 “동성애적 행위와 동성결혼은 풀러신학교의 정책에 분명히 어긋난다. (중략) 학생이든 직원이든 이러한 규범을 지키지 않을 경우 공동체 규범에 따라 퇴교에까지 이를 수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공식 입장까지 이례적으로 밝혔지만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만큼 기독교 학교들의 고민은 시대적 변화와 흐름에 따라 더욱 깊어지고 있다. 그 사이 학교의 등록률 역시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장열 기자벽화 예수 학교 학생 자유주의적 기독교 학생 등록률
2022.06.20. 18:25
도대체 기독교는 어떤 종교일까? 나의 구원, 나의 헌신과 믿음, 나의 삶, 나와 하나님의 관계를 가장 우선적으로 하는 종교일까? 교회가 오랫동안 증거한 기독교는 사도바울이 기록한 서신을 중심으로 ‘누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라는 주제에 큰 관심을 보여온, 구원중심의 기독교 사상이었다. ‘구원’은 모든 종교의 보편적인 주제이긴 하지만 예수의 선포는 구원을 넘어서는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드러낸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25장은 예수께서 재림했을 때 고통당하는 자들을 도운 자들은 천국에, 그들을 외면한 자는 영벌에 처할 것이라고 기록한다. 구체적으로 본문을 살펴보면, 예수께서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충격적이다. 배고프고 목마르고 나그네 되고 헐벗고 옥에 갇힌 자들을 돌보고 섬긴 자들이 사실은 예수를 섬긴 것이다(25:35-40).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25:40). 더 나아가 고통받는 자들을 섬긴 의로운 사람들은 그들이 사실은 예수를 섬겼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주여 우리가 언제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25:37). 본문의 말씀은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의 예측을 넘어선다. 우선 고통당하는 자들을 섬긴 것이 어떻게 예수를 섬긴 것과 동일할까? 해방신학자들 가운데 “이 땅에서 고통당하는 자들이 바로 고통당한 예수다”는 다소 극단적인 견해를 보이는 자들이 있는데 오늘 본문은 이러한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다. 혹은 고통당하는 자들 속에 예수께서 계신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어떻게 해석하든 간에고난당한 예수와 고통당하는 자들의 깊고도 깊은 연대(solidarity)를 발견할 수 있다. 이 땅에서 가난, 질병, 탄압, 외면으로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 속에 예수께서 계신다. 기독교는 ‘나’에 관한 종교이기도 하지만, 고통당하는 ‘타자’에 관한 종교다. 둘째, 예수는 ‘고난 속에 있는 자들을 섬긴 사람들을’ 의인으로 간주했다. ‘믿음’ ‘예배’ ‘선교’ ‘헌신’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단어나 표현이 본문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사랑’이라는 단어도 언급되지 않았다. 오로지 고통당하는 자들과 그들을 섬긴 자만이 등장한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들이다. 그런데 고통당하는 자들을 섬긴 자들은 자신들이 사실은 예수를 섬겼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즉 의인들의 섬김은 ‘의식적인 선행’이 아니라 미처 자신들이 선행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일어난 행위이다. 이것은 윤리적, 종교적 올바름이라기보다는 인간과 인간의 본질적인 연대(solidarity)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수를 믿는 자들은 예수를 쫓아서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그런데 이 사랑이 단순히 ‘예수의 명령을 쫓아서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결코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혹은 오늘 본문을 윤리적으로 이해해서 ‘나도’ 의인들처럼 고통당하는 자들을 섬겨야지라는 결심으로 타자를 사랑한다면, 역설적으로 오늘 본문의 의인들이 결코 될 수 없다. ‘나의 선행에 대한 의식’이 이미 생겨나 버렸기 때문이다. ‘나의’ 종교적 신념이나 헌신이 동기가 아니라 ‘타자’의 고통과 아픔이 우리 행동의 주체가 되어서 우리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그들과 고통의 연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예수께서 선포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실체다. 기독교는 ‘나’에 대한 종교, ‘구원’에 대한 종교이기도 하지만, 고통받는 ‘타자’에 대한 종교, ‘연대’에 관한 종교다. 예수께서 그들과 연대를 이루시며, 고난의 연대 속에 있는 모든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차재승 / 뉴브런스윅 신학대학원 교수삶과 믿음 하나님 예수 하나님 나라 윤리적 종교적 가난 질병
2022.05.26. 17:19
지난 칼럼에는 ‘예수 자신’에 대한 예수의 선포를 살펴보았다. 이번 칼럼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수의 선포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많은 신앙인은 하나님 나라를 죽으면 들어가는 천국과 동일하게 생각한다. 실제로 마태복음에서는 ‘하늘나라(the Kingdom of Haven)’라는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되었다. 그런데 ‘회개하라’는 말씀은 마태복음에서는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3:2), 마가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막1:15)고 기록한다. 그 외에서 수많은 유사한 사건에서 마태복음은 천국,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하나님 나라라고 기록하기 때문에, 천국은 바로 하나님 나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하나님 나라의 한 단면은 죽고 나서 가게 되는 천국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마7:21) 말씀하셨는데, 한국어 성경은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번역했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천국에 있다”고 전한다. ‘들어간다’는 의미의 동사와 전치사(eis)와 ‘…에 있다’를 의미하는 전치사(en)가 뚜렷이 대구를 이룬다.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씀이 마태복음에서도 여러 차례 반복되고 있는데(마 3:2; 4;17; 10:7), 이는 하나님이 예수로 우리에게 찾아오신 것 그 자체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인 실체라는 것을 예수 자신이 선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천국은 우리 가운데 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 따라서 하나님 나라는 미래적, 장소적 의미를 넘어서 더 깊고 풍부한 의미를 가진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 위한 바로 그 목적을 위해서 보내심을 받았다고 예수 스스로 증거하고 있으며(눅4:43),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했고(눅 8:1),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도록 보냈다(눅 9:2). 예수의 사명 핵심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이 세상에 널리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일까? 예수께서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예측 가능한 나라와 예측 불가능한 나라로 구분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예측 가능한 나라는 예수께서 다시 오실 종말과 관련된 나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해서 세우는 나라에 관한 것인데 제자들도 이 하나님 나라를 증거했다. 제자들은 또한 하나님 나라에 누가 들어갈 것인가, 누가 들어가지 못할 것인가, 누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것인가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제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을 자신들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해버린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우린 늘 우리 자신에 대한 관심으로 충만하다. 예수께서도 교회를 통한 하나님 나라(마16:16-19), 악한 자는 쫓아버리고 선한 자들만이 속하는 도덕적이고 영적인 나라를 선포했다(막4:1-20; 마12:28). 하나님 나라는 불법을 행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나라며(마7:21-24), 의인들이 해와 같이 빛나는 나라고(마13:43), 눈이 범죄하면 눈을 뽑아버리고 들어가는 것이 더 나은 나라다(막9:47). 그런데 예수는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도 선포했다. 예측 불가능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다음 칼럼에서 다루겠다. 차재승 / 뉴브런스윅 신학대학원 교수삶과 믿음 하나님 예수 하나님 나라 나라 그리스도 예수로 우리
2022.04.28. 17:35
지난달에 이어서 계속 예수의 선포에 대해서 생각해보겠다. 예수의 선포는 ①자신에 관한 것 ②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사람의 아들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눅5:24),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눅6:5), “이 빵은 내 몸이고 이 포도주는 내 피의 새 언약이다”(눅22:19-20), “사람의 아들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주려한다”(막10:45)는 말씀은 예수 자신에 관한 예수 자신의 선포이며 기독교의 핵심적인 사상을 이룬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를 선포된 선포자(The Proclaimed Proclaimer)라고 부른다. 왜 예수는 이렇게 자신에 대해서 선포했을까?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끊임없이 알려오실까? 신적 존재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여러 종교의 선포 가운데 기독교처럼 신적 존재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선포하는 종교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슬람교는 알라신이 절대 초월자이기 때문에 그 신에 대한 내용을 인간이 잘 알 수 없다고 믿는다. 불교는 절대자 신이라는 존재보다는 수행을 통한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다. 도교는 신적 존재인 도(道)가 인격적이라기보다는 비인격적인 존재에 가깝고, 자연과 세상의 여러 비유로 그 내용을 선포하고 있다. 유대교는 구약의 하나님을 인격적 신 존재로 믿지만 성육신한 예수그리스도에게서 신 존재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찾는 것은 아니다. 도대체 왜 기독교는, 특히 예수는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치열하게 선포하고 있을까? 예수의 자기선포에 대해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보겠다. 첫째,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기까지 하나님 자신을 극단적으로 인간에게 알려오는 종교다. 자신에 도취한 신이라면 자신과 다른 타자를 창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그 타자와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자기증거는 자신에 취해 사는 자기애의 발로이지만, 예수의 자기증거는 역설적으로 자신을 낮추어 인간에게 찾아온 하나님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둘째, 예수는 ‘사람’으로 찾아와 사람에게 자신을 선포했다. 들판에 머물며 창기와 세리들과 식탁을 나누고, 인간의 위선, 폭정, 환호와 배신을 몸소 경험하며, 인간의 고난, 슬픔, 질병, 빈곤, 아픔과 함께하는 바로 그 자신을 우리에게 선포했다. 예수의 자기선포는 인간선포이기도 하다. 셋째, 예수의 자기선포 내용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예수는 자신을 “용서하는자”(눅5:24)라고 선포하면서 하나님의 용서가 인간의 용서와는 얼마나 다른가(마18:21-35), 인간 가운데는 인간을 심판하거나 용서할 자격을 가진 자가 없다(요8:1-11), 따라서 하나님이 인간으로 찾아와 그 삶과 죽음과 부활로 인간을 용서하신다(눅24:47)는 것을 선포했다. 예수는 또한 쉼·안식·평화의 주인이다. 안식일의 주인으로서(눅6:5),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을 쉬게 하시며(마11:28), 모든 민족을 자신에게로 불러모아(요12:32) 화해시키며 평화를 이룰 것이라고 선포했다. 마지막으로, 예수의 선포는 ‘선포’이다. 인간이 어떻게 이해·해석하고, 얼마나 실행하는 가라는 점도 중요하지만, 선포의 가치와 실재는 인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선포는 하나님의 일이다. 고통과 슬픔의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용서와 평화가 어디 있냐며 한탄할 수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예수의 선포가 세상을 건져내는 실체라고 믿는다. 나의 선포가 아니라 ‘예수 자신의, 자신에 대한, 자신을 통한 하나님의 선포’이기 때문이다. 이 사순절에, 예수의 자기 비움, 용서와 평화, 나눔이 우리의 삶과 이 세상 속에 널리 선포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차재승 / 뉴브런스윅 신학대학원 교수삶과 믿음 예수 선포 자기선포 내용 선포가 세상 선포 가운데
2022.03.24. 17:30
예수의 삶을 나눔, 가르침, 저항/ 투쟁, 영적인 삶, 선포, 보내심의 여섯 측면으로 분류해서 살펴볼 수 있고 지난 칼럼에서는 영적인 삶까지 다루었다. 그런데 예수의 삶 가운데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면이 바로 선포이다. ‘치맥은 진리다’는 표현 속에서 ‘진리’란 무엇일까? ‘좋다/옳다’는 것과 그 좋고 옳음이 ‘늘 그렇다’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는 듯하다. 진리가 이렇게 우리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온 것은 반가운 일인데, 일상을 넘어서는 그 어떤 것에도 진리에 관한 담론을 기대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릴까 염려되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진리를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태나 실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종교, 철학, 과학 모두 진리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그들의 접근법이 다양하다. 과학은 관찰과 경험, 가설을 근거로 진리를 찾고, 철학은 사유와 언어, 인간의 실재에 대한 분석과 통찰을 통해서 진리를 찾는다. 종교는 과학과 철학의 방법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위에 ‘선포되고 약속된’ 진리를 포함한다. 그런데 선포와 약속도 진리라는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과거에는 지성을 진리의 주체로 여겨서 지성의 정합성이 진리의 주된 척도였다면, 현대에는 인간의 총체적인 삶과 그 삶이 소통하는 인간의 상황, 그 상황 속에서 인간, 사회, 세계, 자연을 얼마나 참된 길로 인도하는가 하는 점들이 진리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다. 예를 들어, 어릴 때 부모와 함께 연주회장에서 들었던 음악 소리를 기억하고 그 소리를 재현하고자 하는 갈망을 가지게 되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오디오개발에 바친다면, 또한 그 개발된 오디오를 통해서 경험하는 음악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깊은 위로를 가져온다면, 자신의 몸속에 박혀버린 ‘기억과 꿈’, 그것을 타자와 나누는 ‘공유’도 진리다. 소설, 영화, 대중가요의 한 줄이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진리란 이렇게 지성, 삶, 상황, 아름다움, 상상, 기술, 지혜, 기억과 꿈을 포함한다. 예수의 선포와 약속은, 비록 우리가 그 실체를 ‘아직’ 찾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 ‘이미’ 선포되었고, 인간의 기억, 꿈, 아름다움, 나눔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치’를 우리에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거룩한 신적 갈망이 이 땅에서 이루어져 가는 일체의 과정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진리보다도 더 강력하며, 고난 속의 인간에게 깊은 위로와 소망이 되기도 한다. 누가복음 4장 18절에서 예수는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라고 선포했다. 예수는 이 말씀을 선포한 후에 이 말씀이 바로 자신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도 함께 선포했다(눅4:21). 이를 통해서 예수는, ①예수 자신이 자신의 일에 대한 가장 강력한 선포자이며, ②구약을 인용하면서 신약과의 연속성을 드러냈고, 그러나 ③선민 이스라엘에 초점을 맞추던 구약의 세계와는 다르게 전 인류를 향하는 신약의 새로운 세계를 열었으며, ④고난과 핍박, 질병과 무지로부터 고난당하는 자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바로 예수의 사명이라고 선포했다. 예수의 선포를 우리의 믿음, 기억, 상상, 꿈, 삶 속에 품고, 이 놀라운 예수의 세계가 어떻게 이 땅에서 이루어져 가는 가를 지켜볼 뿐만 아니라, 그 세계에 참여하면서 세상 그 어떤 것에도 찾을 수 없는 예수의 ‘이미 선포된 위로와 해방’을 경험하면서, 고난받는 자들과 거룩한 연대를 이루어 갈 수 있기를 소망하고 기도드린다. 차재승 / 뉴브런스윅 신학대학원 교수삶과 믿음 예수 선포 예수 자신 선포 보내심 모두 진리
2022.02.24. 17:42
예수의 삶을 나눔, 가르침, 저항·투쟁, 영적인 삶, 선포, 보내심으로 이해할 수 있고, 지난 칼럼들을 통해서 나눔, 가르침, 저항·투쟁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제 영적인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다. 예수는 육체로 세상에 찾아온 자로서 영과 육의 조화로운 삶을 살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인간이 얼마나 영적인 존재인지를 잘 드러내셨다. 그런데 영적인 삶이란 어떤 것일까? 우선 예수는 성령에 이끌리는 삶을 살았다. 예수는 성령을 우리에 주신 자이기도 하지만(요20:22), 세례를 받을 때 육적 형체를 가진 성령이 임했고(눅3:22), 성령의 충만함에 이끌리어 마귀의 시험을 이겨냈으며(눅4:1-13), 성령이 그 위에 임하셔서 자유와 해방의 개혁가로 살았고(눅4:18), 성령으로 기뻐하며 자신과 아버지의 신비한 관계를 선포했다(눅10:21). ‘예수와 기도’ 또한 예수의 영적인 삶을 잘 드러낸다. 예수는 주기도문, 간절히 기도할 것, 성령을 구할 것과(눅11:2-13),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눅21:36) 가르쳤다. 더 나아가 예수는 그 자신이 기도하는 자였다. 밤새도록 기도했을 뿐만 아니라(눅6:12), 땀방울이 피방울처럼 보일 정도로 치열하게 기도했다(눅22:44). 예수는 기도의 양과 질에 있어서 탁월한 영성가다. 예수와 성령, 예수와 기도는 ‘영적인 삶’의 중요한 틀을 제시한다. 인간이 자신에게 자신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 존재에게 이끌리며 그 존재에 의지하는 것을 영적인 삶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이 세상 속에서 세상의 어둡고 악한 가치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가는 것 또한 영적인 삶의 중요한 요소다. 성령에 이끌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는 사막교부처럼 움막에서 하나님과 마주하는 고독 속에‘하나님의 영’적인 세계를 경험할 수도 있지만, 그 영성으로 이 땅에서 악과 분열, 타락과 무의미와 싸우는 ‘인간의 영’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 본문에서 예수는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서 40일간의 금식 후에 마귀의 3가지 시험을 받았다. 먼저 마귀는 배고픈 예수께 돌들을 떡으로 바꾸라고 하자 예수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대답한다(눅4:3-4). ‘떡으로만’에서 만(alone)이란 표현은 예수께서 인용한 신명기 8장 3절에도 등장하고 누가복음에도 등장한다. 인간이 떡으로 생존하게 되는 것을 결코 부인하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한 그 무엇이 영적인 삶의 동력이다. 또한 마귀는 자신에게 절하면 이 만국의 모든 권위와 영광을 다 주겠다고 하자 예수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대답한다(눅4:6-8). ‘세상 나라의 권위와 영광을 추구하는 삶’과 ‘참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선명하게 대비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마귀는 예수를 성전 꼭대기 위에서 뛰어내리라고 하면서 만약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하나님의 사자들이 보호할 것이라고 하자, 예수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대답한다(눅4:9-12). ‘기적을 행하는 신적 존재’와 그 ‘신을 시험하는 일’에 사로잡힌 인간을 잘 드러낸다. 떡으로만 살아가는 자들, 부, 명예, 권력, 탐욕, 신념이라는 내 안의 여러 신을 섬기거나, 가족, 사회, 기술, 과학, 자연, 우주를 단순히 아끼고 사랑하는 정도를 벗어나서 그것을 숭배하며 그 속에서만 영적 실체를 발견하려는 자들, 기적을 행하는 신에 몰두하는 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예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어, 우리 스스로의 유혹, 세상의 유혹, 그 생생하고 끈질긴 시험들과 용기 있게 마주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차재승 / 뉴브런스윅 신학대학원 교수삶과 믿음 예수 성령 예수 초월적 존재 신적 존재
2022.01.27. 17:28
굿스푼 선교회(대표 김재억 목사)가 25일(토) 애난데일 메시야장로교회 주차장에서 라티노 도시빈민들을 위한 성탄절 행사를 개최했다. 행사는 오전 9시 버지니아장로교회 강세훈 목사의 설교를 조영길 선교사가 동시통역하면서 시작됐다. 성탄절 당일임에도 그리스도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나선 봉사자들의 여러 섬김의 손길이 분주하게 이어졌다. 강 목사는 “성탄의 아침,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사랑을 나눌 수 있어 감사하다”면서 “작은 섬김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의 기적이 라티노 이웃들에게 전해져 이 어려운 때를 잘 이겨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장에 간이 진료소를 설치해 수년째 라티노 도시빈민들의 건강 검진을 해 오고 있는 김영관 내과의는 “크리스마스 최고의 선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가 돼 기쁘다”고 말했다. 이날의 사랑나눔 행사에서는 300여명의 라티노 도시빈민들에게 굿스푼 선교회가 준비한 무료급식 점심 도시락과 빵, 과일, 야채, 생선, 고기, 컵라면이 담긴 푸드뱅크, 겨울용 점퍼, 담요, 방역 마스크와 손 세정제 등을 배부했다. 또한 라티노 어린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파티를 위해 함석호, 조영길 선교사가 산타로 분장해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며 즐거움을 선사했다. 이번 라티노 도시빈민을 위한 성탄절 행사에는 버지니아장로교회(강세훈 목사)에서 5천달러, 휄로십 교회(김대영 목사)와 열린문 교회(김용훈 목사)에서 각 1천달러를 후원했으며 지구촌 교회(담임 임광)가 1천3백달러 상당의 어린이 선물을 전달했다. 또한 낙스빌UMC 교회(김영민 목사)가 5백달러 규모의 그로서리 기프트 카드를 비롯해 백인 성도들이 봉사자로 참여해 힘을 보탰다. 특별히 이번 성탄행사에는 저스틴 김(11학년) 학생과 친구들이 도시빈민 돕기 후원금 마련을 위한 성탄 카드를 제작, 판매해 1천2백달러 수익금 전액을 굿스푼에 기부해 훈훈함을 자아냈다. 장두석 목사(열린문 교회)는 폐회기도를 통해 라티노 형제, 자매들이 이민의 땅, 타국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가정이 되도록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했다. 최정선 이사장은 “정성과 사랑으로 협력하는 모든 한인 교회들과 숨은 후원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 참여 단체 및 교회 봉사자들로는 굿스푼 최정선 이사장, 진순세 이사, 김진이 이사, 닥터 김영관 내과의, 버지니아장로교회, 열린문교회, 지구촌교회, 와싱턴한인교회, 낙스빌UMC 교회 등에서 한인 봉사자 35명과 백인 봉사자 8명이 함께했다. 김윤미 기자 [email protected]그리스도 예수 예수 그리스도 사랑나눔 행사 버지니아장로교회 강세훈
2021.12.26. 1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