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건강한 예술 공동체를 꿈꾸며
책을 읽다가 ‘느낌 공동체’라는 낱말에 밑줄을 그었다. 느낌 공동체! 참 따스하다. 세상의 어떤 사물이나 일이나 생각에 대해서 같은 느낌을 갖는 사람들의 공동체…. 예술가들이 꿈꾸는 일이다. 나도 젊은 시절 한때 ‘예술 공동체’를 꿈꾼 적이 있었다. 한국의 산골도 좋고, 미국의 한구석도 좋으니 좀 넓은 땅을 마련해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자유롭게 창작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꿈…. 현실적 능력이 모자라서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런 꿈속을 헤매는 동안은 행복했다. 고흐도 ‘화가 공동체’를 꿈꾸었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도 여러 차례 나온다. 아주 구체적인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물론 고흐가 생각한 예술가 공동체는 내가 꿈꾼 것처럼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가난에서 벗어나 마음 놓고 그림을 그리기 위한 지극히 현실적인 구상이었다. “화가들이 연합해서 자기 그림을 공동체 소유로 하고, 그림 판 돈을 나누어 가지는 것보다 더 이상적인 방법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식으로 작업하면 공동체가 회원들의 생계와 지속적인 활동을 보장해줄 수 있을 테니까.” “인상파 화가들의 공동체 결성은 꼭 실현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 물론 이런 공동체가 무작정 지속되지는 않겠지만, 공동체가 존속하는 동안은 화가들이 용기를 갖고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고흐의 마지막 편지라고 알려진 편지에도 ‘화가 공동체’에 대한 아쉬움이 나오는 것을 보면, 매우 간절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고갱이 함께하기로 하고 아를로 와서 같이 살며 작업하는 동안 잠깐 꿈에 부풀었지만, 곧 갈등이 생기고 다툼 끝에 자기 귀를 자르는 비극적인 소동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혹시 고흐가 생각했던 공동체가 성사되어 성공적으로 굴러갔다면,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예술은 결국 혼자서 하는 것이지만, 뜻맞는 사람들이 힘을 모으면 큰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 서로 격려하고 자극하고 위로하면서 마음을 모으면…. 실제로 20세기 초 파리를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일어난 새로운 예술이나 철학 운동의 배경에는 이런 ‘생각 공동체’들의 결정적 역할이 있었다. 한국의 경우에도 전쟁의 잿더미에서 예술을 일으켜 세우는 과정에서 문학이나 미술의 동인(同人) 모임이 큰 몫을 했다. 우리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초창기에 꾸려진 예술단체나 동인들에 의해 문화의 기초가 다져졌다.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보니, 장르의 구분 없이 어울리며 공동체를 이루기도 했다. 단골 술집의 역할도 컸다. 전시회나 출판기념회 같은 행사가 끝나면 당연히 술집으로 몰려가, 시끌벅적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 보면 새로운 일이 하나 만들어지는 일도 자주 있었다. 공동체의 힘이다. ‘공동체’라는 말부터 정겹다. 생각의 공동체는 어떤가? 꿈의 공동체는? 그런 모임은 꼭 규모가 클 필요는 없을 것이다. 크기보다 실속이 중요하니까…. 예술계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에서도 다양한 ‘느낌 공동체’가 만들어지면 삶이 한결 풍성하고 즐거워지고, 건강한 공동체가 많아지면 사회도 건강해질 것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을 보면, 취미가 같은 동호인 모임, 수다 모임, 교회 친구 모임 등등 참 많은 동아리가 있다. 생각이나 성향이 비슷하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미술전시회도 보고, 음악회나 연극 공연 등을 함께 감상하고, 차를 마시면서 서로의 감상을 나누고, 같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이야기하고, 가끔은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하고…. 그런 모임들이 강한 공동체 의식으로 뭉쳐, 함께 가는 방향의 화살표를 선명하게 하면 한결 재미있고, 의미도 깊어질 것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산책 공동체 건강 예술가 공동체 예술 공동체 생각 공동체
2026.04.23. 1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