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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의 저울] 민주주의 심장부의 아이러니

미국에서 연방 상원의원이나 하원의원을 뽑을 수 없는 시민들이 있다. 놀랍게도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주민들이다. 50개 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특별구(District)’로 지정된 워싱턴 D.C.는 미국 정치 시스템 안에서 매우 독특하고, 동시에 모순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   연방 의회는 상원과 하원으로 구성된다. 상원은 주마다 동등하게 2명의 의원을 선출하고, 하원은 주 인구 수에 비례하여 의원 수를 배정한다. 인구가 적은 델라웨어, 버몬트 같은 주들도 상원의원은 2명씩 확보하고 있지만, 하원의원은 1명뿐이다. 이 구조는 미국 건국 당시 인구가 많은 주와 적은 주 간의 첨예한 이해 충돌을 조정한, ‘대타협(Great Compromise)’의 산물이다. 연방주의와 국민주권을 동시에 실현하기 위한 절묘한 정치적 균형 장치였다.   그러나 수도인 워싱턴 D.C. 주민들은 이러한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연방정부의 직할지로서, 독립성을 보장받는 대신 정치적 권리를 일정 부분 포기해야 했다. 1961년 비준된 수정헌법 제23조를 통해 비로소 대통령 선거 투표권은 부여받았지만, 상원의원은 여전히 한 명도 직접 선출할 수 없다. 하원에도 표결권이 없는 ‘비투표권 대표(Delegate)’만을 둘 수 있다. 즉, ‘민주주의의 심장부’에서 시민들은 여전히 ‘의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존재’로 남아 있는 셈이다.   자치권 역시 반쪽짜리다. 1973년 제정된 ‘홈 룰 법(Home Rule Act)’은 워싱턴 D.C.의 지방정부 설립과 시장·시의회 선출 등을 가능하게 했지만, 연방 의회가 언제든지 이들의 결정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권한을 유지하고 있다. 지방 세금의 사용, 형법 개정, 예산안 승인 등에서 D.C.는 다른 주들과는 다른 제약을 받는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명령으로 연방 정부가 워싱턴 D.C.의 경찰권을 장악한 사건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잘 보여준다. 연방정부는 ‘홈 룰 법’을 근거로 ‘치안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D.C. 자치정부의 의사와 상관없이 연방 법 집행 기관을 배치했다. 이 사례는 D.C. 주민들의 일상이 언제든지 연방 정부의 결정에 좌우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주가 아닌 특별구라는 태생적 조건이 민주적 자치의 한계를 낳고 있는 셈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미국의 독립을 이끈 구호가 바로 “대표 없는 곳에 과세 없다(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오늘날 워싱턴 D.C.에서는 그 구호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연방세를 납부하지만, 자신들을 대표할 상·하원의원을 선출할 수 없다. 세금을 내면서도 정치적으로는 소외된, 민주주의 원칙이 무너진 모순의 공간이 바로 수도 워싱턴이다.   이는 단지 법과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워싱턴 D.C.는 흑인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 중 하나이며, 인종·계층적 소외와도 맞닿아 있다. 투표권의 부재는 곧 사회적 영향력의 부재를 의미하며, 이는 지역의 교육, 복지, 주거정책 등에 있어 장기적인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한 채, 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객체로 존재하는 시민들의 현실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합리를 해소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워싱턴 D.C.를 51번째 주로 승격시키자는 논의는 오랜 기간 이어졌지만, 매번 정치적 벽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공화당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D.C.가 주가 될 경우 상·하원에서 민주당 의석이 늘어날 것을 우려하며 반대해 왔다. 결국 주 승격 문제는 민주주의의 원칙이 아닌, 정당 간의 이해득실로 변질되어 온 것이다.   연방주의의 역사적 유산이자, 미국의 정체성을 지탱해 온 원칙은 분명 다양성과 자율, 그리고 공정한 대표성이다. 이를 위협하는 제도적 결함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점검되고 개선되어야 한다. 김한신 / 변호사니케의 저울 민주주의 심장부 오늘날 워싱턴 시의회 선출 비투표권 대표

2025.08.20.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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