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오리고기의 향연
지인네에서 저녁 초대가 있었다. 최근 들어 누구 집을 방문한 적이 거의 없다. 아마도 그 집 정원에 있는 수영장을 열었나. 그래서 바비큐를 하나라고 추측했다. 오랜 세월에 거쳐서 몇 번 만났지만 남자 주인은 수영장을 무척 아낀다는 것, 안 주인은 자식 이야기를 하기를 좋아한다는 것, 그 정도의 느낌만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 느닷없는 저녁 초대가 왔을 때, 나는 십여 년 전에 한 번 간 적이 있는, 수영장의 바비큐를 연상했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주소도 가물가물한 듯 스트리트 이름이 뭐더라 하고 물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 집 주소가 툭 튀어나왔다. 기억이란 참 제멋대로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스치는지, 나 편한 대로 형성된 기억의 조합이 사실처럼 들어앉아 있을 수도 있다. 그 집에는 세월이 가져다준 상장처럼, 벽마다 네 명의 손주 사진이 붙어 있었다.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은 그림도 함께 붙여 놓았다. “세상에 우리 손주가… 가문에 영광 아니가.” 안 주인은 눈을 초승달처럼 뜨면서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응접실에 햇볕이 드는 창가 쪽에는 탐스럽게 꽃이 핀 난 화분들이 보였다. 오래된 것 같은 화분들은 노랑, 분홍, 흰색으로 꽃을 피워 내고 있었다. 안주인은 먹다 남은 미네랄 워터에 물을 타서 주면 꽃이 더욱 생생해진다고 한다. 예상과는 달리 부엌에 식탁이 차려져 있었다. 정원이 한눈에 보였다. 팔을 넉넉하게 펼친 소나무가 주변의 집들을 완전히 가려 주었다. 고졸한 조형물이 수영장 둘레에 서 있다. 멀리 사는 아들네가 찾아와서 여름휴가를 함께 보낸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아침이면 갓 구운 크루아상을 베이커리에서 사 오고, 오후에는 놀이동산을 가든지, 손주들이 사달라는 펀치백을 사러 함께 운동구 점으로 가기도 한다고 한다. 한 달이란 시간을 오롯이 내어주는 헌신적인 조부모였다. 바비큐일 거라고 단정했던 내 예상은 빗나갔다. 오븐에서 갓 꺼낸 듯한 고기 냄새가 났다. 안 주인이 구워낸 오리를 남자 주인이 정성스럽게 살을 발라내고 있었다. 갈색으로 기름이 쏙 빠진 오리 껍데기는 조그만 사각형으로 잘라서 접시에 깔아 놓았다. 오이채와 파채가 한편으로 놓이고 세 종류 김치가 흰 접시에 담겨있다. 나는 오리고기를 어디서 시켜 왔을까를 생각하며 여자 주인이 쪄내는 밀전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 생오리를 사다가 오븐에 직접 구었다는 것이다. 나도 마트 냉동고에서 방망이처럼 길쭉한 오리를 본 적이 있다. 이 오리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했지만, 집에 가서 검색해 보기로 했다. 디저트 시간이다. 남자 주인이 내가 사서 온 케이크를 보고 반색을 했다. 골고루 먹어야 한다고 여러 조각으로 잘라서 접시에 담았다. “이게 행복이야. 친구와 더불어 맛있는 거 먹는 것.” 그는 감격해서 말했다. 알프스에서 산악 바이크를 타고 이탈리아 맛집을 순회하던 분이 이 여름에 어디 가지 않고, 손주들을 기다리며 케이크 한 쪽에 좋아하고 있었다. 나이 들수록 행복은 단순해지나 보다. 평소에 지인을, 친구를 생각하면 얼굴만 떠오른다. 밖에서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면, 얼굴만 둥둥 뜨고 배경은 백지로 남는다. 평소 밖에서 보던 안주인의 아름다운 모습은 오리고기하고는 거리가 멀었기에 난 밖에서 사 왔을 거라고 단정했는지 모른다. 실제로는 그분은 난을 예쁘게 피워내기도 하고 오븐의 열기에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기도 하고 김치를 정성스레 담그는 여자였다. 이렇듯 잘못된 기억은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한 사람을 알아가는 것은 한 우주를 체험하는 것이다. 사람을 편견 없이 진심으로 알아 간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김미연 / 수필가이 아침에 오리고기 향연 저녁 초대가 수영장 둘레 오리 껍데기
2025.06.25. 22:51